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51화 (51/332)

# 51

* * *

유저들에게 당당히 선포를 마치고 대장간 안으로 돌아온 대장장이.

‘랄프’는 그대로 자신의 모루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려놓았던 자신의 망치를 다시금 들어 올렸다.

그런 그의 손은 온통 굳은살투성이였고, 군데군데 오래된 화상 자국들이 새겨져 있었다.

순간 멈췄던 담금질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깡!

까깡!

망치와 모루 위에 올려놓은 검이 맞부딪치자,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그와 조금씩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대장간의 다른 대장장이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밖에 나가서 조용히 시키고 온다더니, 난데없이 대형 사고를 치고 돌아왔으니 말이었다.

결국 동료들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하지만 동료의 말에도 랄프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밖에서 지었던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본인을 무시한다고 느낄 수도 있으련만, 동료는 이런 일이 다반사였던지 개의치 않고 계속 이어 말했다.

“대장간에 받아들인다니요? 어르신이 아시면 경을 치실 겁니다.”

그가 말한 어르신이란 이곳을 책임지는 수석 대장장이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대장간이 여태껏 유저를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은 그 수석 대장장이의 오랜 방침이었다.

한데 그가 잠시 일 때문에 바깥에 나간 이 짧은 시간 동안, 랄프가 독단적으로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이었다.

“……정말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깡-.

동료의 마지막 말과 랄프의 망치 소리가 하나로 겹쳐졌다.

그제야 작업을 멈춘 랄프가 후, 하고 거칠게 숨을 한 번 내뱉은 뒤 동료와 눈을 맞췄다.

“참 나, 누가 받아 준대?”

동료는 랄프의 적반하장의 태도에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새 까마귀 고기를 집어 먹은 겁니까? 방금 전에 본인 입으로 저들을 받아 준다고 했지 않습니까.”

순간 랄프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고는 동료의 어깨에 슬쩍 한 팔을 얹으며 말을 건넸다.

“이봐, 이봐. 지금 하나를 까먹고 있잖아.”

“……?”

“말했잖아, 내가. 테스트를 ‘통과’하면 이라고.”

* * *

두고 보자!

삼류 악당의 대사를 내뱉고, 망신을 당한 폭언 유저가 사라지고 나자.

‘이게 웬 꿀이냐.’

레온은 횡재했다는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히죽히죽 끊이지 않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대장간에 들어가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던 찰나 생각지도 않게 이렇듯 뚝딱 해결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안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 100퍼센트 해결된 건 아니니까 말이지.’

그랬다. 레온은 테스트라는 기회를 얻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퀘스트 창.”

레온은 대장장이가 던지고 간 퀘스트의 상세 설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곤 한 부분에 이르러,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만들었다.

그건 바로 A라는 퀘스트의 상당히 높은 난이도 때문이었다.

A라니.

레온이 여태껏 해결해 온 퀘스트들과 비교해도 높은 축에 속하지 않은가.

어느 누구든 듣는 즉시 ‘무슨 보조 직업 하나 얻는 퀘스트가 난이도가 이따위야.’라며 혀를 내두를 것이었다.

“후후후.”

하지만 이어진 다음 순간, 이상하게도 도리어 레온의 눈은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그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것들 봐라, 내 승부욕을 자극하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퀘스트의 제목이 레온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던 탓이었다.

어느새 돈이 급하다는 막중한 무게감은 두 번째 순위로 밀려나고, 내가 얻어 내고야 말겠다는 열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흠, 그건 그렇고.’

스윽.

그러던 순간 레온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줄었네?’

그러자 아까보다 많이 줄어든 유저들의 숫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무기를 맡기러 왔던 사람들과 그냥 구경하러 왔던 이들이 꽤 있었는지, 절반 정도의 유저들이 예상외로 퀘스트를 수락하지 않고 돌아갔던 것이다.

분명 난이도의 부담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다.

최소 40~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대로 대장간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후후, 하지만 최종 승자는 내가 될 거야.’

그러던 그때.

“흠, 어중이떠중이들은 다 사라진 듯하군.”

랄프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유저들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로 향하자, 랄프는 모두가 기다리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자, 준비가 다 됐으니. 해 보자고.”

랄프는 유저들을 데리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대장간의 지하로 데려갔다.

지하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었다.

마흔 명이 넘는 무리가 한꺼번에 들어섰는데에도 좁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아오, 왜 이리 더워 여기.”

“뭘 시키려고 이런 데로 데려온 거지?”

“여기다가 가둬 놓고 쪄 죽이려는 것 아니냐?”

“으아, 몸에서 육수가 흘러나온다.”

“님 육수에 밥 한 공기 뚝딱 해도 되나요?”

그 넓은 공간을 엄청난 열기가 감싸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 옆에 맨몸으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와, 근데 진짜 덥긴 덥네.’

레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스태미나 수치가 조금씩 떨어지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흥, 대장장이가 된다는 사람들이 이 정도의 열기도 못 참고 찡찡거릴 거면, 빠르게 생각을 접는 게 좋을 거야.”

랄프는 콧방귀를 끼며 불만을 일축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장이는 그의 말처럼 이런 몇천 도가 넘는 열기를 감내하며 망치를 휘둘러야 하는 직업이니까 말이다.

다른 유저들도 랄프의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탓인지, 점차 불만은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러고 나자, 다른 곳에 주의를 돌린 그들은.

“……어라? 근데 이건 뭐지?”

“이게 왜 바닥에 잔뜩 깔려 있는 거야?”

“흠, 생긴 건 꼭 아코디언의 바람통처럼 생겼는데.”

“어, 나 이거 뭔지 알아. 이거 풀무잖아!”

힘겹게 더위를 참아 내던 유저들의 눈에 바닥에 좌르륵 깔려 있는 엄청난 숫자의 풀무가 들어왔던 것이었다.

풀무는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여야 할 때, 화력을 높이기 위해 화로에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로 쓰이는 도구였다.

한데 그러한 물건이 가운데에 사람 하나가 설 공간을 비워놓고, 전후좌우 네 방향으로 하나씩 놓여 있었다.

‘딱 봐도 가운데에 들어가라는 거겠지?’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가운데에 빈 공간에 들어가 서로 열과 행을 맞추었다.

정말로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그 모습을 보고는 랄프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풀무가 없으면 공기가 부족해서 연소 속도가 느려지고, 그러면 화력이 떨어져서 철을 녹일 수 없게 된다.”

난데없는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

유저들은 말없이 자리에 서서, 표정으로 동일한 대답을 그에게 전하고 있었다.

‘무슨 헛소리냐. 더워 죽겠는데, 얼른 진행이나 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랄프는 그에 아랑곳 않고 약간 뜸을 들이다가 이어 말했다.

“이 말인즉, 풀무를 잘 다룰 줄 알아야 대장장이의 기본을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첫 번째 시험은 이 풀무를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를 보겠다.”

띠링.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효과음이 울려 퍼졌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모두의 눈앞에 떠올랐다.

-퀘스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 전직 / 연계]

대장장이 랄프는 대장장이의 작업과 연관된 테스트를 진행하려 한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는 바로 풀무질이다.

당신은 당신이 풀무와 얼마나 한 몸이 될 수 있는지를 랄프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해 볼 테면 해 보시지’ 퀘스트를 진행 중인 자.

목표 : 제한 시간 동안 풀무를 정확히 밟는 것.

보상 : 두 번째 시험으로의 진급.

“풀무를 정확히 밟으라고?”

“식은 죽 먹기 아님?”

“풉, 뭐야, 별것 아니잖아.”

“뭐야, 난이도가 A길래 괜히 걱정했네.”

생각보다 별것 아니잖아?

이것이 유저들 대부분의 1차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닐 것 같은데?’

그리고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히 지었어.’

바로 랄프가 그런 유저들의 반응을 바라보다 일순간 지어 보였던 의미심장한 미소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긴장을 놓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레온만이 알아차린 것 같았다.

‘쩝, 뭔가 불안한데?’

레온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랄프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그때.

“그럼 시작하겠다!”

언제 내가 웃었냐는 듯, 돌덩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랄프가 유저들에게 크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스리!

-투!

두근두근.

레온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꼈다.

‘시작인가!’

장내에 땀 냄새와 긴장감이 가득 찬 그 순간!

-원-!

비로소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을 비롯한 수많은 유저들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상황에 당황을 넘어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빠밤~.

빰. 빠밤!

‘뭐야? 웬 음악 소리?’

모두의 귓전에 뜬금없이 빠른 템포의 댄스 음악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어, 어?”

“뭐, 뭐야 이거!”

하지만 유저들은 그렇게 여유롭게 당황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순간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화면에서 위(↑), 아래(↓), 오른쪽(→), 왼쪽(←)의 화살표들이 폭우처럼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화살표들을 보는 순간, 한눈에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노트잖아?’

그랬다. 랄프가 낸 첫 번째 테스트는 바로.

“펌X?”

“DXR?”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발판형 댄스 리듬 게임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게임 장르가 바뀌었다고 의아할 수 있었지만, 사실 판테라에서는 퀘스트 내에 이런 작은 미니 게임 형식이 도입된 경우가 적잖이 있었다.

아무튼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뒤늦게 알아차린 유저들은 쏟아지는 화살표의 방향에 맞추어 바쁘게 풀무를 밟아 대기 시작했다.

“으아! 움직여! 얼른!”

“타이밍에 맞춰서 똑같은 방향의 풀무를 밟아!”

“나도 알거든!”

“아! 너무 빨라!”

하지만.

삐빅!

삑!

BAD!

MISS!

MISS!

한 귀에 들어도 실패를 알리는 날카로운 효과음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결과가 펼쳐질 만도 했다.

리듬 게임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잘하기가 어려웠으니까.

진입 장벽 자체가 엄청나게 높은 게임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장내에 스텝이 완전히 꼬여 버려 넘어지는 사람,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아씨! 이게 뭐야!”

“아니, 처음에는 좀 쉽게 봐줘야지.”

“전 치마 입고 왔단 말이에욧!”

“첫판은 연습 판인 거 모르시나! 리겜합시다! 리겜!”

테스트에서 떨어진 이들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는 랄프에게 항의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런 걸 하면 어떡해!”

“그래, 이런 걸 누가 잘할 수 있겠어!”

그러나 랄프는 그런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스윽.

그는 그저 손으로 한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흥분한 사람들이 그 손가락을 쫓아 시선을 옮기자.

“뭐, 뭐야, 저 사람들.”

그곳에는 매우 능숙하게 스텝을 밟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푸슉.

푸슈슉.

그들의 발 움직임에 맞춰, 풀무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만들었는데.

그 소리가 노랫소리와 맞춰지자 음악 소리처럼 들려왔다.

“……와! 저 사람 봐, 저 사람 미쳤다!”

“저 정도면 댄싱 10 나가야 되는 거 아님?”

“하, 얼마나 빠른지 여덟 개로 보이네. 저분 곤충이신가.”

그리고 그렇게 몰입해 있는 그들 중에는.

파밧!

파파파밧!

개중에 가장 능숙한 숙련도와 눈부시게 빠른 스텝을 보여 주는 레온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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