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생각지 못한 학장의 급습으로 생긴 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온이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대장장이가 되는 것이었다.
약초꾼, 상인, 낚시꾼, 요리사 등등.
판테라에는 수많은 생산 직업이 있었지만.
그가 그중에 대장장이를 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본격적으로 수입이 생기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들은 전부 제외해야 했다.
당연했다.
그는 지금 당장이 급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한동안 집에 남아 있는 음식들로 어떻게든 버틴다 하더라도, 곧 식비도 모자라게 될 것이었다.
요리사나 상인처럼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히 패스했다.
그리고 약초꾼이나 낚시꾼처럼 운빨에 기대야 하는 것들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지금 값비싼 약초를 캐거나, 희귀한 어종을 낚는 것을 기대하는 도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보다는 꼬박꼬박 들어올 수 있는 고정 수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고정 수입을 얻으려면, 대장장이가 제일 나아.’
그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대장장이는 전직을 하자마자, 수리 혹은 해체 노가다를 뛰면 곧바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처음 생산 직업을 선택하려는 유저들이 가장 많이 택하는 것이 바로 대장장이지 않던가.
한데 그 순간, 레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도중에 제일 많이 관두기는 하지만 말이야.’
레온의 말처럼, 대장장이 유저들은 거의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뭐 있겠어? 더럽게 재미가 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건 바로 대장장이로서 하는 작업들이 너무도 재미가 없다는 것.
분명 손수 장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의 관심을 쏠리게 할 만하다.
하지만 여태껏 사냥에서 드롭된 아이템보다 좋은 물건을 창조해 낸 유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대장장이가 되면 일의 대부분은 창조가 아니라 수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즉 내 무기가 아니라 남의 무기를 위해, 종일 망치를 휘두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즐기러 와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뻘뻘 나는 불덩이 앞에서 생판 남을 위해 쇳덩이를 두들기고 싶겠는가 말이다.
그뿐인가? 몸까지 고달팠다.
아무리 게임이기에 시스템적으로 작업 과정의 강도를 줄여 놓았다고는 하나, 게임 내에서 대장장이의 일은 고되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런 피하고 싶은 악조건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들, 레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아무리 초보 대장장이라지만 하루 종일 수리 노가다를 하면, 최저 시급보다는 더 벌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래, 돈이 나올 구석이 있는 것이 어디인가.
‘직업 퀘스트도 얽혀 있고.’
꿩 먹고 알 먹고 라고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렇게 레온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크흑, 근데 왜 이리 슬프냐.’
물론 그 일이 쉽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서글픈 맘을 꾹 참으며, 쟈켄의 집을 떠난 레온은.
“휴, 도착했군.”
이윽고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친 그의 시선 속에 평범한 마을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포트빌’이었다.
그는 바깥에 세워진 목책을 지나쳐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여관에 들르지 않은 채, 곧장 이곳에 있다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기왕 대장장이로 전직하기로 마음먹은 것,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법 걸은 것 같은데도, 아직 대장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에 레온은 살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마을, 생각보다 꽤 크네?’
특이한 일이었다.
대도시를 벗어나 외곽에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조그마한 크기인데 반해, 포트빌은 상당히 번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흠, 저긴가?”
마침내 망치 모양이 그려진 커다란 간판이 그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대장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한데 그러던 그때.
‘어라? 뭐야 저건?’
대장간의 코앞까지 당도한 직후, 그는 그곳에서 이상한 점 하나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사람이 왜 이리 많아?’
대장간 앞에 웬 유저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 있었던 것이다.
웅성웅성.
족히 100여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주위는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아니, 무슨 대도시의 대장간도 아니고. 이런 외진 곳의 대장간에 유저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거지?’
레온은 차오르는 궁금증을 한쪽에 감추어 놓은 채, 슬쩍 그들 틈에 끼어들어 상황을 파악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얘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는 그가 찾는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유저를 포착할 수 있었다.
“뭐야? 여기 왜 이리 사람들이 모여 있대?”
“너 여기 어딘 지 몰라?”
“여기? 그냥 대장간 아니야?”
“쯔쯔. 인마, 여긴 그냥 대장간이 아니에요.”
‘그냥 대장간이 아니라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레온이 자신의 두 귀를 더욱 쫑긋이 세웠다.
“아씨, 그럼 뭔데. 빨리 말해 봐.”
“엣헴, 최근에 밝혀진 사실인데 말이지, 생산 직업은 말이야. 실력이 좋은 스승을 모시면 그만큼 숙련도가 쭉쭉 오른대.”
“아, 그래?”
“……아, 그래가 아냐, 인마! 스승 하나로 성장 속도 차이가 몇 배나 날 수도 있다고 밝혀졌다고.”
“몇 배?”
‘정말이냐!’
순간 레온은 대화를 나누는 유저의 말을 듣고선, 그의 친구만큼이나 깜짝 놀랐다.
그 또한 처음 듣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숙련도가 몇 곱절로 빨리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큰돈을 만질 대장장이로 성장하는 길이 몇 배로 빨라진다는 뜻이 아니던가.
“헉! 그럼 네 말은?”
“그래, 여기에 있는 대장장이들이 그렇게 솜씨가 뛰어나다고 하더라. 네크로폴리스의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는 대장장이 NPC들조차 여기 대장간을 그렇게 칭송한다더라고.”
“우와! 이거 무기나 수리 맡길 때가 아니네. 우리 당장 여기에 취직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제야 레온은 유저들이 왜 이리 모여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너희들 전부 취준생인 거냐.’
이들 모두가 레온처럼 이 대장간에 소속되기 위해 몰려든 유저들이었던 것이다.
‘오! 운이 좋았는데, 나?’
레온은 제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렸다.
자신은 저런 정보를 획득하고 찾아 온 것이 아니라, 그냥 겸사겸사 직업 퀘스트도 같이 해결할 겸 이곳의 대장간으로 향한 것이었는데 완전 얻어 걸린 것이다.
“한데 그럼 뭐 하냐…….”
하지만 유저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레온이 그의 말에 다시금 주목했다.
“……지금까지 이 대장간에 단 한 명의 유저도 들어간 사람이 없는데.”
‘뭐?!’
레온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직까지 한 명도 되지 못했다니?
레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원래는 그냥 대장간에 찾아가 평범한 전직 퀘스트를 하나 거치면, 바로 그곳의 대장간에서 일하게 되지 않던가.
레온이 복잡하게 꼬였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끄응, 이래서 퀘스트의 난이도가 그렇게 높았던 건가?’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냥 대장간에서 일하는 것치고는 퀘스트의 난이도가 A로 상당했던 것이 떠올랐다.
퀘스트와 돈 벌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전부 허사로 돌아가게 될 상황에.
‘하아, 네크로폴리스로 돌아가야 하나?’
왔던 곳으로 복귀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이런 젠장!”
갑작스레 맨 앞줄에 서 있던 남자에게서 한줄기 고성이 터져 나왔다.
레온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험상궂은 인상의 그는 잔뜩 화가 나있었다.
그는 온통 새빨개진 얼굴로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NPC면 NPC답게 그냥 전직 퀘스트나 주고, 일하게 해 주면 되지, 왜 이리 귀찮게 구냐고! 대체 며칠째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
그러자 웅성대던 소리가 커져 갔다.
보아하니, 그처럼 대장간에서 일하기 위해 마을에서 죽치고 있던 이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래, 너무하긴 너무해.”
“아니, 대체 왜 안 받아 주는 거냐고.”
못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던 그는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깨닫더니, 방법을 바꿨다.
“안 그렇습니까? 이게 웬 개고생입니까! 여러분!”
“옳소, 옳소!”
선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는지.
잠시 후에는 어느 샌가 절반에 넘는 사람들이 함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포트빌 대장간은 각성하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일하고 싶다는 사람을 막다니! 우리도 취직을 하고 싶다!”
“신입을 안 뽑으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에서 일을 배우나!”
그 어수선해진 상황 속에서.
‘이거 원. 나도 이마에다가 끈이라도 묶고 참여를 해야 하나?’
레온이 시위대로의 합류를 고심하던 그때.
“……이보쇼들, 그렇게 영업 중인 가게 앞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 대면 손님들이 무서워서 들어오겠어?”
대장간의 문간 앞으로 중년의 대장장이 한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퉁명스러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온몸에 잔뜩 들어찬 구릿빛 근육 탓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상남자 그 자체랄까.
“뭐? 꽥꽥?”
순간 선동가가 곧 터질 것 같은 벌게진 얼굴로 그의 앞에 다가섰다.
제법 높은 레벨의 유저인지,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장장이는 살기를 가볍게 받아넘기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호오.’
그에 레온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혹시나 저자가 본 네크로맨서의 후예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었다.
“참 나, 애도 아니고 왜 자꾸 생떼를 부리나. 우린 아무나 안 받는다니까? 물건 살 생각이 없든가, 수리 안 맡길 거면 돌아들 가쇼.”
그때 대장장이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자 약이 바싹 오른 선동가가 선을 넘었다.
“이익! 이 한낱 NPC 새끼 따위가!”
남자의 말이 끝나자, 들어가려던 대장장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노려봤고.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경악한 모습이었다.
‘저놈, 선을 넘었네.’
왜냐하면 판테라에서 NPC에게 NPC라는 말을 하면, 현실의 패드립만큼이나 엄청난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현실감을 배가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만일 대장장이가 마을의 경비병을 부른다면, 볼 것도 없이 저 유저를 공격할 것이었다.
꿀꺽.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저의 침 넘기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하지만 대장장이의 선택은 모두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선동가를 잠시 바라보던 대장장이는 갑작스레 레온을 포함한 유저들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들어주지.”
뭐라고?
순간 레온과 사람들은 깜짝 놀라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장소를 마련한 뒤, 테스트를 진행하겠어. 거기서 통과하는 자는 오늘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될 거야.”
띠링.
순간 그곳에 서 있던 모든 유저들의 귓전에 한 줄기 효과음이 들려왔다.
-돌발 퀘스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해 볼 테면 해 보시지]
뛰어난 대장장이 기술로 네크로폴리스의 대장장이들에게까지 칭찬이 흘러나온다는 포트빌의 대장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여태껏 단 한 번도 유저들을 제자로 삼지 않았다.
사람들의 불만이 가득 차올라 대장간 앞에서 떼를 이루어 농성을 하자, 포트빌 대장간의 대장장이들도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일하고자 하는 이들을 선별하는 테스트를 보기로 한 것이다.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포트빌 대장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
퀘스트 보상 : 포트빌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
‘이게 무슨 일이야?’
뜬금없이 모욕을 당한 이후, 전직 퀘스트를 내려 준 것이다.
‘저놈, 마조히스트인가?’
“오!”
“이게 웬일이야!”
모든 사람들이 크게 소리치며 기뻐했다.
거기에는 선동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데 그때, 그가 한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단!”
그거 들떠 있는 선동가를 검지로 가리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만 빼고.”
“……뭐?”
“다시 한 번 말해 줘? 너.만.빼.고.”
띠링.
순간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조건에 ‘유저, 라쿤을 제외한’ 조항이 새로이 추가됩니다.
푸핫, 주변 사람들이 의외의 상황에 하나둘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이 씨발! 왜!”
선동가는 폭소의 도가니 속에서 악다구니를 써 댔다.
하지만 대장장이는 그에게 썩소를 지어 보인 후, 다시 대장간으로 쏙 들어갔다.
최고의 복수였다.
‘멋진데?’
어부지리를 취하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