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투다다다-.
들판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꺼번에 달려드는 역병 들개들의 모습들은 장관이었다.
‘……쩝, 목걸이가 있어도 스켈레톤들한테 어그로가 끌리면 선공 회피가 안 되는군.’
물론 그놈들의 살기등등한 어금니들이 본인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않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와왕.
지면을 박찰 때마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들개들의 네 다리는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궤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놈들이 죄다 부패한 몸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포착한 먹잇감을 향해, 쇄도해 오는 놈들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레온과 멀찍이 떨어져 있던 거리가 단숨에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조금 뒤면, 놈들은 레온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리라.
하지만 레온은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가만히 노려볼 뿐이었다.
‘일곱, 여덟, 아홉.’
태연하게 속으로 적들의 숫자를 세어 보면서.
씨익.
그때 레온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아홉이라.’
적지도 않고, 너무 많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숫자였다.
‘쓸어버리기에 말이지.’
레온은 단단이의 어깨를 툭 건들이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단단아, 땅땅아, 저 경험치 덩어리들 보이지? 자, 모두 꿀꺽하러 가 보자.”
그리고 레온의 그 말이 떨어지자.
타다닷-.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단단이가 역병 들개들을 향해 그대로 뛰어 들어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이 떨어지자 달려드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단단이가 달리는 속도는 역병 들개들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주위로 묵직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크와앙!
따닥!
단단이와 들개들, 순식간에 서로를 향한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지만.
양쪽의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향해 다가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서로 충돌하리라.
한데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건 바로 레벨 차이.
단단이의 레벨은 10, 역병 들개들의 평균 레벨은 16.
6이라는 커다란 레벨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쪽에서 천천히 단단이를 따라붙고 있는 레온은 여전히 여유 만만이었다.
타다닷! 파바밧!
크왕!
그리고 그때, 드디어 단단이와 들개들이 맞부딪쳤고.
다음 펼쳐진 상황으로 여태껏 레온이 그처럼 여유로운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실히 드러났다.
퍼버엉!
갑작스레 마치 북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레온의 시야에 담긴 것은 난데없이 무언가가 허공을 유유히 날아오르는 모습이었다.
물론 허공에 떠오른 그것들은 단단이의 몸통 박치기 스킬에 적중당한 두 마리의 역병 들개들이었다.
텅. 터텅.
맞부딪칠 때의 충격을 못 이기고 튕겨 나간 들개들이 처참한 꼴로 들판에 나뒹굴었다.
‘후후, 역시 6레벨 차이 정도는 가볍게 제압하는군.’
그리고 레온은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레온은 단단이가 놈들에게 밀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단단이의 스텟과 지금껏 치렀던 전투들의 내용을 분석해 보며, 최소한 10레벨 정도까지는 커버 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았었으니까.
그, 그르릉.
그때 레온의 귓전으로 튕겨 나간 역병 들개들이 내는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쭈?’
그래도 꼴에 16레벨이라는 이름값을 하려는 듯 바닥에 추락해 망신창이로 허우적대고 있던 역병 들개 두 마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야생 스켈레톤 때처럼 스킬 한 방에 처치하는 것은 무리인 모양이다.
저놈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격하는 무리에 합류하기 전에 숨통을 끊어 놓아야 했다.
크르릉!
크와앙!
하지만 단단이는 어느새 마저 도착한 일곱 마리의 공격을 막아 내느라, 움직이기 쉽지 않은 상황.
‘흠, 그래도 중과부적인가. 떼로 덤벼드니 단단이가 조금 힘들어하는군.’
도리어 단단이의 체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피융! 피융!
갑작스레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퍼퍽! 퍽!
이윽고 무언가를 둔기로 후려치는 소리로 바뀌더니.
곧 ‘띠링’ 하는 경쾌한 기계음으로 2단 변신을 했다.
-역병 들개를 처치하셨습니다.
-역병 들개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땅땅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후략…….
“굳 잡! 땅땅이!”
주르륵하고 눈앞에 연이어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레온이 땅땅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그랬다. 이 일련의 상황은 땅땅이가 비틀거리던 역병 들개 두 마리에게 마무리 일격을 박아 넣으며 발생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무리 일격이란.
땅땅이의 스킬인 ‘스톤 애로우’였다.
[스톤 애로우]
지정한 방향으로 돌로 이루어진 화살을 쏘아 맞힌 적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10% 확률로 맞은 적에게 0.5초간 스턴 효과를 적용합니다.
조금 전 바람 가르는 소리는 땅땅이가 스톤 애로우를 쏘아 내며 생긴 것이었으며.
둔탁하게 얻어맞는 소리는 날아간 그 돌화살이 정통으로 직격하며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톤 애로우! 어쩐지 하나밖에 없는 공격용 스킬이더니만, 대미지 하나는 진짜배기네.’
레온이 화살촉이 있어야 할 부분에 주먹만 한 크기의 뭉툭한 돌덩어리가 달려 있는 스톤 애로우의 살벌한 형상을 보고는 이내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전투 중이었으니까.
그 후, 레온은 단단이를 철통 방어 스킬을 사용해 버티게 만든 뒤.
“으하하! 짱돌 애로우 사격 개시!”
땅땅이의 스톤 애로우 쿨 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덤벼대는 역병 들개들에게 날려 버렸다.
슈웅! 퍽!
피융! 퍼퍽!
깨깽!
깨, 깽!
끈질기게 단단이에게 엉겨 붙던 역병 들개들은 쉼 없이 날아오는 스톤 애로우에 얻어맞고 있었다.
놈들은 온몸에 퍼지는 끔찍한 고통에 지면을 뒹구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원거리 공격을 지원해 줄 소환수가 생기니까, 전투가 훨씬 쉽게 풀리네.’
힘겨워하던 단단이는 어느새 여유롭게 놈들을 맞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온은 그 진풍경을 보며, 악마의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동안 레온 진영의 일방적 공격이 이어지던 그때!
역병 들개들에게도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무슨 이유에선가, 날아오던 돌화살 세례가 갑작스레 딱 끊긴 것이었다.
그러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던 역병 들개들이 고개를 들어 서로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그 눈빛들의 의미는 이러했다.
무슨 이유에선가 쏟아지던 화살이 끊겼다.
우리에게도 공격할 기회가 왔다.
하지만 이놈은 너무 단단해 쉽게 어찌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빛이 단단이 너머로 향하더니, 이내 다시금 살의로 번뜩였다.
타다다!
순간 역병 들개들이 단단이를 포기하고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단단이를 빙 둘러 선회하더니, 뒤에서 명령만 내리고 있던 레온을 향해 쏜살같이 공격해 들어왔다.
그들은 레온으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사실 이렇게 술사를 막아 주는 방어벽이 뚫려 버린 상황은 소환수를 부리는 직업들에 있어 가장 위험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소환수가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그것을 지배하는 중추가 잘려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니까.
단단이가 뒤늦게나마 역병 들개 두 마리를 온몸으로 잡아냈지만.
이미 나머지 다섯 마리의 역병 들개들은 이미 그를 지나쳐 레온에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크르르!
피부가 다 썩은 탓에 역병 들개들은 웃음을 지을 수 없지만, 지금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다면 놈들은 이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리라.
하지만 위기 상황이 분명함에도.
레온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전투준비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칼을 뽑지도 않았고, 스킬을 준비하고 있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그냥 달려드는 몬스터에게 한 끼 식사로 제 몸을 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리라.
그만큼 지금 보이는 레온의 행동은 미친 짓이었다.
역병 들개들은 레온이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자 자신들에게 겁을 먹어 몸이 굳어 버렸다 생각하고는 더욱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한데 그때.
“후후.”
놀랍게도 레온이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전혀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 그 웃음은 쉽사리 의미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역병 들개들이 레온과 불과 몇 걸음 거리에 불과한 지척에 도달했을 때.
이윽고 레온의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어이구, 진짜 불나방같이 달려드네…….”
뒷말이 더 있는 듯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코앞까지 도착한 역병 들개들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레온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으니까!
하지만.
푸욱.
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지면을 박차는데, 푸욱이라니?
크르?
크릉?
순간 역병 들개들의 의문에 가득 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당황이 묻어나는 소리들 사이로 조금 전 레온의 미처 듣지 못한 한마디가 들려왔다.
“……쯔쯔, 지들 무덤인 줄도 모르고 말이지.”
발끈한 역병 들개들이 다시금 레온을 공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놈들은 땅바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푸욱. 푸우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발 딛고 있는 땅이 어느새 진득한 늪으로 변하여, 네발 모두 안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진짜 단순하다, 너네도 화살이 안 날아오니까 할 만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다. 땅땅이가 스톤 애로우의 사격을 중지한 것은, 마력을 다 소모해서가 아니었다.
마력은 얼마든지 더 남아 있었다.
지혜가 몇 스텟인데 벌써 소진되었겠는가.
그저 준비 시간이 꽤 긴 다음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스킬의 결과물이 레온의 주위로 깔린, 바로 이 늪이었고.
“흠, 진흙 무덤이었나? 이 스킬도 쓸 만하네.”
[진흙 무덤]
적이 딛고 있는 지면을 일시적으로 늪 상태로 만들어, 적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늪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며, 그때까지 해당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대로 함께 굳어 버린다.
크르르르.
역병 들개들이 연신 으르렁거리며 위협했지만, 레온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늪에 파묻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들이 뭐가 두렵겠는가.
“하나도 안 무서워, 이 똥강아지들아. 그만 좀 끙끙거려라.”
레온이 피식하고 비웃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역병 들개들을 향해 말했다.
……끼이이, 잉.
발목을 넘어 어느새 몸통까지 진흙 무덤에 빠져 버리자, 이내 역병 들개들은 당황을 넘어 패닉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레온이 악마처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좀만 기다리고 있어 봐. 곧 형이 편하게 해 줄 테니까.”
역병 들개들은 레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미소는 몹시 두려웠기에 빠져나가기 위해 더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몸을 버둥댈수록, 더욱 깊숙이 빠져 갈 뿐이었다.
딱, 따닥.
그리고 그때, 어느새 단단이가 자신이 감당했던 역병 들개 두 마리의 시신을 어깨에 하나씩 둘러멘 채 레온에게 뚜벅뚜벅 돌아왔다.
투툭.
단단이는 레온의 발밑에 놈들을 던져 놓은 후, 슬쩍 레온의 곁에 섰다.
그러자.
“아이구, 그래, 잘했어.”
레온은 마치 공을 물어 온 강아지를 대하듯, 단단이의 두개골을 살포시 토닥여 주었다.
순간 단단이가 어깨를 쭉 펴며 뿌듯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 그 귀여운(?) 광경을 지켜보는 역병 들개들은 죽을 맛이었다.
저기 어깨에 들쳐 메여 있는 동료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 될 것임을 짐작한 것이리라.
“자, 그럼…….”
이윽고 레온이 성큼성큼 진흙 무덤에 빠져 있는 역병 들개들을 향해 다가가며.
채앵!
허리에 달려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역병 들개들의 잔뜩 겁먹은 눈동자 속으로 레온의 반짝이는 검날이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