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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10화 (10/332)

# 10

* * *

“후욱. 후욱. 음, 파. 음, 파.”

레온은 연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은 그를 계속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인장 티어가 2로 상승하셨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와씨, 가슴 떨리는 거 봐.’

레온은 거칠게 날뛰는 심장박동을 느꼈다.

이번에는 제발 그래도 괜찮은 게 나오기를!

훈련소에서 허수아비를 두들기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꼼수였지만 어떻든 간에 몬스터와 전투를 했고, 게다가 최후에는 필드의 보스까지도 쓰러뜨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상한 게 뜨면 진짜 내가 저주캐인 거야.’

이제는 큰 욕심도 없었다.

“노멀 클래스만 줘라. 제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라도 키우고 싶다.”

노멀 클래스가 되면 보상이 있다는 퀘스트도 얻었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도 되는 레온이었다.

‘아, 잠깐만. 근데 그러면 허수아비 검사의 스킬들은 전부 사라진 건가?’

거기에 생각이 닿은 레온은 크게 아쉬운 표정이었다.

‘쩝, 제대로 꿀 빨았는데……’

물론 까마귀 쫓기 같은 스킬이야 없어도 됐지만, 부동자세는 그 효용을 똑똑히 본지라 못 쓰게 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뭐. 인장!”

[창생의 인장]

티어 2 / 경험치 0%

개방 특성(4/?)

직업 총람(2/?)

1. [허수아비 검사]

2. [비겁자]

클래스 랭크 : 러스티Rusty / 진화 가능

클래스 특성 : 단일

해가 저문 후 어둠 속에서 살금살금 걸어가 일격을 가하는, 결코 상대와 정정당당한 전투를 하지 않는 치졸한 급습의 달인. 우리는 그를 비겁자라 부른다.

보유 패시브 스킬

1. 치졸한 일격 : 불시의 일격 · 백어택 시, 크리티컬 확률, 대미지 증가

2. 고양이의 눈 : 어두운 곳에서 시력 상승

보유 스킬

1) ‘발도술’

기습에 특화된 검술. 칼집에서 빠르게 검을 뽑아 상대를 베어 낸다.

-5초간 정신을 집중해 참격을 날린다.

-모은 시간에 비례해 110~150%까지 대미지 상승

2) ‘독 살포’

은밀하게 독을 투척합니다. 적중된 상대는 중독 상태가 되며, 해독을 하지 않을 시 지속 대미지를 입습니다.

3) ‘복면술’

조악하게나마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복면을 생성합니다.

4) ‘고양이 발걸음’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움직입니다.

-이동속도 40% 감소, 발소리 80% 감소

-시전자의 몸무게 감소

마침내 레온이 쭉 설명을 전부 읽어 보았다.

한데 예상외로 반응은 조용했다. 허수아비 검사를 얻었을 때처럼 발광을 하지는 않았다.

“……휴, 이 정도면 최악은 면한 건가.”

솔직히 맘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손사래를 칠 정도로 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정크보다 한 단계 위, 노멀보다는 한 단계 아래.

뭐 그래도 상승을 했다는 게 어디인가.

설명 자체는 뒤나 노리는 비열한 직업이라지만, 내실을 보면 조건부이긴 하지만 발도술이라는 제법 쓸 만한 공격 스킬도 있었고, 지속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독 살포라는 스킬 또한 얻었다.

게다가 허수아비 검사와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진화 가능이라는 조건! 이건 분명히 의미 있지.’

그랬다. 비겁자는 클래스 랭크 옆에 불가능이 아닌 ‘진화 가능’이라 적혀 있었던 것.

쓸지 안 쓸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선택지가 늘어난 레온이었다.

띠링.

‘응?’

그때 레온은 새롭게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허수아비 검사’가 클래스 트리에 저장됩니다.

-저장된 직업의 스킬은 ‘초기화’ 전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오!”

레온이 놀라 스킬 창을 띄워 확인해 보자, 허수아비 검사의 스킬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머릿속으로 짜고 있던 전투법의 가짓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었다.

‘역시 히든피스는 히든피스구나!’

그러자 눈 녹듯 긴장이 풀려 갔다.

동시에 억지로 참고 있던 수마가 레온의 전신을 잠식해 들어왔다.

‘휴, 일단 한숨 자고 눈뜨자마자 세공점으로 가 봐야겠다.’

어느새 피곤에 절어 있던 레온의 눈이 스르륵 감겨 왔다.

이튿날.

레온은 눈을 뜨자마자 곧장 가죽 세공점으로 향했다.

물론 보스 래빗의 가죽을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걸음을 계속하던 그때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한데 생각해 보니 어제 인장이 말을 안 걸어왔네?’

그랬다. 어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정말 인장의 레벨을 올렸음에도 대화가 없었던 것이다.

‘쩝, 잠에 든다더니 이번엔 깊이도 잠들었나 보구먼.’

아쉽게도 매번 인장을 사용할 때마다 눈을 뜨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인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레온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던 레온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오! 이건 보스 래빗의 가죽 아닌가? 흠집 하나 없이 완전히 최상품이구먼.”

가죽 세공점의 주인은 레온이 건네준 보스 래빗의 가죽의 상태를 보고는 무척 기뻐했다.

적지 않은 물량으로 들어오는 품목이긴 했지만, 레온처럼 목검으로 처치해 작은 칼집 하나 들어가 있지 않은 이런 상질의 가죽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원의 지배자를 처치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와 1실버를 획득합니다.

“스텟.”

레온이 뭐가 그리 기쁜지 연신 떠들고 있는 주인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스텟 창을 열어 얻은 경험치의 양을 확인해 보았다.

레온

LV. 5(24퍼센트)-한계 레벨 15

종족 : 인간

직업 : 비겁자(러스티)

생산 직업 : - (없음)

칭호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탈착 불가)

명성 : 10,000

힘 7(선택 제한 / 칭호 페널티)

민첩 10

지혜 5

체력 8

생명력 500  마력 700

그리고 레온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드디어! 10을 찍은 스텟이 생기다니!’

민첩이 어느새 10에 도달해 있었던 것.

게다가 힘과 체력도 이 정도면 평범한 1레벨의 유저와 비슷한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5레벨까지는 다른 사람이면 눈 깜짝할 새 찍을 레벨이거늘, 자신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지…….

정말 인간 승리의 아이콘 아닌가.

그렇게 레온이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었을 때.

“……어떤가?”

세공점 주인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뭐지? 뭐라 한 거지?’

딴짓을 하고 있느라 제대로 못 들은 레온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크흠, 의뢰를 받아들일 거냐고 물었네만. 어째 대답이 없는가?”

‘에라, 다시 듣기도 귀찮은데. 뭐 별거 아니겠지.’

“예, 받아들이죠, 뭐.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핫핫.”

“오, 좋구먼. 그럼 특별히 자네가 구해 온 보스 래빗의 가죽으로 내가 가죽 갑옷을 만들어 주겠네.”

“하하, 감사합니다.”

“껄껄, 내가 고맙지. 자, 저쪽이 하수구네. 얼른 가 보시게.”

“네?”

하수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레온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띠링.

[폐하수구에서 블랙 랫 가죽을 수집하자]

포를란의 철거된 구 하수구에 서식하고 있는 블랙 랫의 가죽은 특유의 질감으로 수요가 많은 재료다.

하지만 서식하는 곳의 특징이 워낙 더럽고 냄새나는 곳인지라, 구해 오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

자, 그것을 바로 당신이 구해 와야 한다.

목표 : 블랙 랫 가죽 0/10

보상 : 경험치, 가죽 갑옷

레온이 생각 없이 승낙한 퀘스트의 상세 내용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런 빌어먹을!’

밝게 웃으며 하수구가 있는 방향을 향해 연신 손짓하는 주인을 보며, 레온은 뭐 씹은 듯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으아! 어떻게 된 게 하루도 깨끗이 있을 수가 없냐?”

그는 컴컴한 하수구를 걸으며 답답하다는 듯 한탄을 토해 냈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누구한테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NPC와의 친밀도는 한번 올리긴 어려웠지만, 내려가기는 쉬웠기 때문에 웬만하면 승낙한 퀘스트는 완료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게다가 이런 큰 도시의 NPC들끼리는 친분 관계도 얽혀 있어서, 잘못하다간 나중의 퀘스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었으니까.

‘아오! 왜 이딴 냄새까지 구현하고 난리야, 대체!’

이제 쓰이지 않는 하수구라 바닥에 고인 물의 수위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걸을 때마다 첨벙첨벙하며 오폐수가 튀어 올랐고, 더불어 구역질 나는 냄새가 올라왔다.

그렇게 레온의 스트레스가 최고조를 찍을 무렵.

‘옳지!’

그의 시야에 목표 대상이 포착되었다.

‘블랙 랫!’

어느새 눈빛이 달라진 레온이 주위를 면밀히 살피며, 칼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 후 3초, 4초, 5초!

행동을 멈춘 채, 힘을 모았다.

파밧!

그리고 한순간 레온의 칼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써컹!

찍.

참격이 발휘되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반 토막이 나 버린 블랙 랫.

‘오호! 이것 봐라? 꽤나 괜찮은 위력인데?’

레온은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심 그리 생각했다.

새롭게 얻은 발도술 스킬이 예상외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위력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발도술]

기습에 특화된 검술. 칼집에서 빠르게 검을 뽑아내 상대를 단숨에 베어 낸다.

-5초간 정신을 집중해, 참격을 날린다.

-집중 시간에 비례해 110~150%까지 대미지 상승

5초의 충전 시간을 전부 채운 후 발동하니, 까마귀 쫓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대미지가 뿜어져 나왔다.

전직을 하며 스텟도 올랐고, 이렇듯 새로운 공격 스킬도 생기자 레온은 사냥이 좀 더 쉬워진 것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흐흐, 토끼평원 버전 2군. 금방 끝나겠어.’

발도술을 통해 깔끔하게 블랙 랫을 처치한 레온은 곧장 바로 토끼평원에서와 같이 쏜살같이 부동자세를 사용했다.

‘허수아비 검사의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니 개꿀이구먼.’

그렇게 레온이 긴장을 놓은 순간.

사각사각. 사각사각.

컴컴한 하수구에 원인 모를 소음이 채워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지 이건?’

레온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치 ‘무언가가 갉아 먹혀지는’ 것 같은데?’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HP가 감소합니다.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부동자세를 사용하고 있는데, HP가 계속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어라?’

그러고 보니 발밑의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간질간질하던 것이 따끔거리기도 하고.

이윽고 레온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으아아아! 이 새끼들, 뭐야 이거!”

어느새 모여든 블랙 랫 무리가 허수아비가 된 자신의 발끝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

‘서, 설마?’

부동자세라는 스킬이 만능이 아닌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지형이나 지물 또한 파괴해 버리는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는 몬스터. 혹은 광역기를 맞으면 허수아비로 변했다고 한들 스킬에 휩쓸려 파괴되고 말 것이란 예측 정도는 말이다.

한데 이 상황을 통해 하나를 더 깨달을 수 있었다.

무기체로 변했다고 한들 주변의 모든 물건을 갉아 먹는 습성이 있는 쥐 떼에게 허수아비는 먹기 좋은 음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힘겹게 쥐들을 떼어 낸 레온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느낌이 좋지 않다.

찍.

찍.

찍.

꿀꺽.

블랙 랫의 울음소리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늘어 갔다.

“자, 잠깐. 우리 말로 하지 않을래?”

찌익!

레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쥐 떼가 레온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악!”

레온은 뒤도 안 돌아보고 출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수구의 바닥과 천장을 온통 뒤덮을 정도의 쥐 떼가 그를 쫓고 있었다.

따라잡히면 죽는다!

도대체 뭐 하나 쉽게 가는 일이 없는 건가!

‘역시 나는 저주캐임이 틀림없다!’

“헉헉! 이런! 빌어먹으으으으을!”

레온의 애절한 비명이 하수구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