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슈웅.
캡슐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유호가 퀭해진 얼굴로 힘없이 걸어 나왔다.
“휴.”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오한이 드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슬며시 소매를 걷어 보자, 닭살이 돋아나 있었다.
그러자 로그아웃을 하기 전,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처럼 경악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하나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온몸에 쥐가 들러붙은 채 하수구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대부분의 감상평이 그럴 테니까.
‘쥐를 이불처럼 뒤집어쓰고 로그아웃이라니……. 으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야.’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유호의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었다.
‘하, 근데 이걸 어쩐다. 부동자세가 막히다니…….’
토끼평원을 사냥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부동자세 스킬이 파훼당한 것이다.
이 퀘스트도 간단하게 해결할 줄 알았거늘.
그의 예상보다 일이 복잡해져 버렸다.
사실 부동자세가 여러 가지로 허점이 있는 스킬이기는 했다.
언젠가 분명히 이처럼 예상외의 상황 때문에 막히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 시점이 올 줄은 몰랐다.
블랙 랫이 잡식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변신한 허수아비 또한 갉아 먹어 버린다니.
이런 결과를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 퀘스트만 아니었어도!’
사실 퀘스트만 아니었으면, 다른 사냥터로 옮겨 버리면 그만인 문제였다.
하지만 쉽사리 포기하기에는, 차후 불이익으로 다가올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얼른 돌파구를 찾아야 해.’
이 시간에도 제한 시간은 계속 깎여 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의 머리에서 김이 나려 할 때.
띵동.
“응?”
유호은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지, 택배인가?
하지만 무엇도 시킨 게 없었기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가 제대를 한 후 판테라에만 빠져 있었던 지 어언 6개월.
현재 자신의 집을 찾을 이유를 가진 어떤 사람도 생각나는 이가 없었다.
‘어라, 잠깐. 좀 서글픈데……?’
문득 여느 복학생이라도 겪고 마는 슬픈 현실이, 비수가 되어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다.
심장 한구석이 시큰거리는 것을 힘겹게 참아 내며 유호는 인터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그러자 거기에는.
‘……깡패?’
평범한 사람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거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가려져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데 어찌나 붙어 있는 근육들이 엄청난지, 그 덩치가 인터폰의 화면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저,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여긴 그쪽 분께서 수금하러 오신 분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만?”
잠시 머뭇거리던 유호가, 이내 인터폰 너머의 대상에게 말을 건넸다.
“크헐헐, 그쪽한테 볼일 있는 것 맞으니까 얼른 문 여쇼.”
그러자 의문의 남자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문을 열라 재촉했다.
‘어라?’
익숙한 웃음소리였다.
자신이 아는 한, 저런 특이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동석이?”
허리를 굽혀 노안의 극치인 제 얼굴을 인터폰에 들이밀고 있는 남자는 분명 유호의 대학 동기인 차동석이었다.
“그려, 진유호 학우. 얼른 이거부터 좀 열지?”
웃는 것조차 험악한 동석이 인터폰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이어 말했다.
유호의 방 안으로 들어온 동석은 인터폰으로 본 것보다 더욱 험악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190이 넘는 키,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
그 몸무게의 절반, 아니 전체가 다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 절륜한 신체 때문에, 그가 들어서자 유호의 방이 현저히 작아 보였다.
“자식, 잘 살아 있네.”
동석이 얼굴을 보자마자 뜬금없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살아 있지, 인마. 왜 벌써 올라왔어? 아직 방학이잖아.”
동석이 방학에는 항상 고향에 내려가 있는 것을 아는 유호였다.
그러자 도끼눈을 뜨며, 동석이 말을 이었다.
“……동기 중에 친하다고 한 명 있는 놈이 갑자기 캐릭터는 없어지고 연락은 두절되고 하니까 와 봤지, 인마!”
동석은 그렇게 말하며, 유호의 팔뚝을 주먹으로 한 대 퍽 쳤다.
‘컥!’
매서운 타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석의 걱정과 진심이 담긴 펀치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생각해 보니 진짜 한동안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하고 살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씩 동석과는 게임에서라도 연락을 주고받고 했었지만, 그것도 최근의 기억 속에는 전무했다.
정말 계정을 팔기 한 달 전쯤부터 현재까지,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한 시간을 모두 게임에 투자하느라 다른 곳에 일절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동석이 첫 안부를 ‘살아 있네.’라는 첫마디로 뱉을 만했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상당히 많은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동석의 이름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었고 말이다.
‘자식,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세심하기는.’
문득 유호는 이렇게 올라와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기뻤고, 그만큼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미안하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그 후 유호는 동석과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밀린 대화를 나눴다.
등록금을 쏟아부었는데 들키며 어머니가 모든 지원금을 끊은 것부터, 현재 자신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히든피스에 관해서는 전부 말하지 못했다.
“크헐헐, 비겁자? 어디서 그딴 직업을 얻었대?”
……라고 말하며 유호의 직업을 들은 동석이 배를 잡고 비웃어 댔기 때문이었다.
“시끄러, 인마. 아는 저렙 유저 있으면 한 명 붙여 줘 봐.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는 클리어하지 못하겠다…….”
민망해져 붉게 상기된 얼굴의 유호가 말을 이어 나갔다.
동석은 실력 있는 베테랑 전사로, 유호와 동일한 100레벨을 달성한 유저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솔로 플레이를 고집하지는 않았다는 것.
이름은 생각은 나지 않지만 꽤나 명망 있는 길드에 들어가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아마 지금은 그 길드의 주축일 것이다.
한데 그냥 빈말처럼 던진 동료를 구해 달라는 유호의 말에 불쑥 동석이 대답을 해 왔다.
“잘됐네.”
“으응?”
무슨 말이지 하며 의아한 표정의 유호.
“저렙 유저 여기 있다. 나랑 같이 돌자.”
그리고 그는 동석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옵쇼.”
덥수룩한 수염의 가게 주인이 반가운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사내 둘이었다.
순식간에 그들의 장비를 위아래로 훑은 주인은 어느새 덤덤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주인장이 포를란에서 무기 장사를 한 지 어언 20여 년.
이제는 한눈에도 들어온 고객이 매출을 많이 상승시켜 줄지 아니면 쥐꼬리만 한 몇 푼의 돈을 쓰고 갈지 대번에 감이 오는 것이었다.
‘쩝, 오늘은 공치겠군.’
그리고 눈앞에 사내놈들은 후자에 매우 가까웠다.
덩치가 산만 한 사내 옆에 있어 선 날렵해 보이는 남자가 그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을 뱉었다.
“초보자용 장비 좀 보여 주시죠. 아, 힘 제한이 낮을수록 좋아요.”
수더분하게 말을 거는 그 손님은 바로 레온이었다.
“쩝, 얼른 골라.”
물론 옆에서 지루하다는 듯 재촉하는 거구의 사내는 동석, 아니 브룩이었고 말이다.
그들은 유호의 집에서 끼니를 때운 뒤, 함께 근처의 캡슐 방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판테라에서 다시 만난 그들의 첫 행선지가 바로 무기점이었던 것.
이곳을 첫 번째로 온 이유는 브룩이 만나자마자 뱉은 첫마디 때문이었다.
-야, 일단 장비부터 좀 바꿔라. 그게 뭐냐, 꼬락서니가.
사실 레온의 장비가 볼품없기 짝이 없긴 했다.
무기는 초심자용 목검을 아직도 쓰고 있었고, 초기 정착용 갑옷을 아직까지도 입고 있었으니까.
‘좀 바꿀 때도 됐네.’
목검의 내구도도 한계까지 와 있는 상황.
어차피 돈이야 맨 처음 시작할 때 계정과 아이템을 팔고 남은 돈을 조금 남겨 놓았지 않았는가.
그저 페널티 때문에 아무것도 장착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것뿐.
그때 무기점 주인이 무심한 투로 대답을 툭 던졌다.
“쯧, 초보자용 무기는 저어기 선반에 올려놓았네. 맘껏 보시게.”
주인이 혀를 차며 손짓한 곳에 여러 무기들이 그냥 내던져 놓은 것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새 무기를 살피는 레온의 눈은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드디어 목검 탈출이구나!’
나무가 아닌 날붙이를 들 수 있다는 것이 기뻤던 것.
잠시 후 둘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것저것 비교해 골라 가며, 신나 있는 레온과 달리 막상 무기점에 오자고 한 브룩은 지루해 보이기 그지없었던 것.
“……빨리 좀 골라라. 대충 사, 대충.”
주인의 추천이나, 손에 잡히는 걸 대충 사는 브룩의 성격과, 꼼꼼히 비교해 보며 구매하는 레온의 성격이 정반대여서이리라.
레온의 고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마치 여자 친구의 쇼핑에 끌려온 남자 친구처럼, 점차 브룩의 표정이 심각해져만 갔다.
“저, 이건 얼마인가요?”
그때 레온이 주인을 향해 한 물품의 가격을 물어 왔다.
자신의 페널티에도 낄 수 있는 물건들을 선별해 매대에 올려놓은 그는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은 안 팔리는 물건들을 보고 있었던 터였다.
그중 한 품목이 그의 눈에 들었던 것.
하나 주인은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거 말인가? 이것들을 10실버에 사 간다면 덤으로 얹어 주지.”
그럴 것이 레온이 지목한 물품은 그중에서도 처치 곤란인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레온이 손가락으로 8 자를 만들었다.
“그래요? 그럼 8실버에 덤으로 주시죠.”
“젠장, 쪼잔한 영감태기 같으니라고.”
결국 1실버밖에 못 깎은 레온은 영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하수구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어휴, 너도 참 여전하다 1실버 가지고. 그냥 대충 사지.”
“야, 임마! 그런 스튜핏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네가 항상 사냥은 열심히 하면서 모은 돈이 얼마 없는 거야, 알간?”
“……윽. 그런가?”
머리를 긁적이는 브룩.
살펴보니 레온의 장비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양산형 숏 소드]
분류 : 한 손 검 등급 : 하급
내구도 : 15/15
공격력 : 7~10
마치 공방에서 찍어 내듯 만들어 낸 검. 가격은 좋으나, 성능은 기대하지 말도록 하자.
[가벼운 팔목 보호대]
분류 : 보호구 등급 : 하급
내구도 10/10
방어력 5
팔목을 지킬 수 있는 간단한 보호대. 어린아이도 쓸 수 있게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악한 한 손 방패]
분류 : 방패 등급 : 하급
내구도 20/20
방어력 10
다른 방패를 만들다 남은 자투리 부분으로 만들어 낸 나무 방패. 이름처럼 조악하기 그지없다.
‘휴, 무게 제한 때문에 더 못 산 게 아쉽다.’
더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 이상 장착하면 무게 제한에 걸려 움직이지조차 못했던 것.
하여튼 얼른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떼어 내야 했다.
‘흐흐, 그래도 뭐 이게 어디냐.’
이름들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이전까지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쓰레기들보다는 훨씬 좋은 물건들이지 않는가.
그때 문득 레온이 브룩을 스윽 살피더니, 말을 걸었다.
“……그건 그렇고, 네 거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니냐?”
그러자 브룩이 자신의 그것을 살피더니 이어 대답했다.
“흠, 내 게 많이 크긴 하지?”
“그래, 커도 너무 크잖아.”
그럴 만도 했던 것이 크다는 표현보다 거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것이 그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려 있다는 것에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설명하자면.
“아니, 대체 ‘방패’가 왜 이리 무식하게 큰 거야?”
그랬다. 브룩의 오른팔에 장착되어 있는 거대한 방패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던 것.
1.5m는 넘을 것 같은 길이와 브룩의 덩치를 가리는 너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의 브룩의 몸에도 오른팔에 달린 방패는 커 보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분명 일반적인 방패와는 전혀 다른 방패 때문에 주위에서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쑥덕거리며 탐욕스러운 시선을 날리는 이들도 존재했다.
“누가 봐도 ‘희귀’ 등급 이상의 아이템으…… 읍읍.”
브룩이 레온의 입을 솥뚜껑 같은 손으로 움켜쥐어 막았다.
“야! 작게 말해. 누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지가 제일 크게 말하고 있구먼.’
브룩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이유와 100레벨을 넘었을 그가 유호와 같은 저레벨 신세가 된 이유는 동일했다.
‘그건 그렇고 히든피스들은 모두 레벨 초기화를 겪나 보군.’
바로 히든피스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방패가 브룩의 히든피스였고 말이다.
수호자의 방패, 파비스.
그가 알려 준 방패의 이름이었다.
-길드원들과 레이드를 하다가 드롭된 건데, 귀속하면 직업을 준다 하더라고. 바로 전직해 버렸지, 크헐헐.
화통한 웃음과 함께 밝히는 비화를 다 들은 레온은 입맛을 다셨다.
‘운도 좋지. 유일 등급의 아이템을 얻다니.’
그랬다. 브룩의 방패는 무려 유일 등급의 아이템이었던 것.
일반 등급까지야 손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고급, 희귀만 하더라도 경매장에서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던가.
그런데 유일 등급이라니, 대단하긴 대단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뿐.
[파티 목록]
브룩 / LV. 6 / 수호 전사
레온 / LV. 5 / 비겁자
레온은 파티 창에서 브룩의 ‘수호 전사’라는 히든 직업의 이름을 확인하고 또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자신이 얻었다면 비싸게 팔았겠다 싶었다.
‘……탱커는 그다지.’
수호 전사는 완벽한 탱커 직업이었으니까.
뭐, 나중에 탱커류의 직업을 손에 넣을지 모르지만.
레온의 개인적 취향으로는 어디까지나 딜러의 역할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브룩에게는 딱 맞는 직업이었다.
그는 항상 전투에서 팀원들을 지키는 방벽 역할을 선호했었다.
그래서 이전의 직업에 대한 미련 없이 바로 전직을 한 것일 테고.
“뭐야, 여기라고? 뭐 이딴 퀘스트를 받았냐.”
어느새 두 사람은 하수구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브룩은 입구부터 뿜어 나오는 매캐한 냄새에 코를 부여잡으며 연신 레온을 타박했다.
“쩝, 그래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저렙이 상대하기에 나쁘지 않아. 떼로 몰려 있으니 레벨 올리기에도 좋고.”
레온은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이 자식, 자기가 몸빵 아니라고. 말하는 것 보소.”
‘어떻게 알았지?’
뜨끔하는 레온이었다.
“……자 자, 그만 엄살 피우시고 얼른 들어가자고.”
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브룩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하수구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