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6화.누구의 손바닥 안일까? (329/371)

<누구의 손바닥 안일까?>

YH엔터테인먼트 대표 및 신인개발팀장직에서 사퇴.

업키걸과 YH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앞에서 사라질 것.

물음표가 내게 요구한 것이다.

그것만 지킨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 자료가 외부로 새어나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 [나는 당신이 업키걸과 어글리 더클링을 포함한 소속 아티스트, 그 외 연예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 [하지만 나 혼자서는 참을 수 있었다]

? [그러나 너의 꼬리가 매우 길었다. 그리고 그 꼬리는 짧아지기는커녕 계속 길어질 것이다]

? [왜냐하면 김윤호는 그것을 멈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남창 짓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나.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내팔자가 그렇다 이 새끼야.

뭐··· 꼬리가 계속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그 말이 그 말이지만.

? [그렇기 때문에 굳이 내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김윤호와 업키걸의 부적절한 관계가 민간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 [그렇게 된다면 YH엔터테인먼트와 업키걸, 어글리 더클링은 파괴될 것이다]

? [업키걸 팬으로서 나는 당신을 용서 못하게 된다]

? [지금이라도 김윤호는 아티스트의 주변에서 당장 먼지가 되어 사라져야 한다]

? [또한 당신이 나의 뒤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 [지선경과 덩치 좋은 흑인 친구의 존재를 알고 있다]

? [하지만 나 역시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잡는다고 해도 쓸모없다.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 [헛수고 하지 말고 내 말을 따르는 것이 당신과 나 모두에게 이익이다]

? [내 말대로 행동한다면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약속 한다]

피부가 서늘해진다.

지선경은 아직 이놈의 정체를 모르는데, 그는 지선경과 존슨이 자신의 정체를 쫓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나는 물음표의 긴 혼잣말 끝에 답장을 적었다.

나 [제가 그쪽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 [어차피 김윤호는 선택권이 하나 이상 없지]

? [내가 하는 언어를 따르거나 철저한 파국 뿐이다]

나 [업키걸 곁에서 사라지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 [대한민국을 떠나라]

? [지금 나와 대화를 거래하는 이 시간 안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오늘 밤에 너의 불명예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될 것이다]

? [(나와 규율이가 공중화장실 야외 섹스를 마치고 차로 돌아가는 사진)]

? [(나와 GIG 혜진이가 가로수 길에서 만나는 사진)]

혜진이와 만난 것까지 알고 있다니···.

구도를 보니 내 주변에서 잠복하다가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인근 건물 어딘가에서 카메라 줌을 최대한 당겨서 찍었다.

단순히 내 미행을 한 것이 아니라 내 세부적인 일정과 행동반경을 샅샅이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혹시 우리 회사 직원으로부터 내 개인정보가 새어나간 건 아닐까 의심을 했었는데 이건 그 수준을 넘었다.

일단 핸드폰 해킹은 확실하고 -예전에 리야에게 당해봐서 느낌을 안다- 그것과 더불어 매일같이 나를 따라다니는 미행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날 가로수길에서 혜진이를 만난 건 미리 약속을 한 것이 아니고 우연히 마주친 것이기 때문에 핸드폰 해킹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정보였다.

나는 계속 들어오는 그의 메세지에 집중했다.

? [혹시 내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면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줄 수 있다]

? [김윤호와 이요나가 방송국 대기실에서 밀회를 나눈 것까지 알고 있으니 놀이는 끝난 것이다]

그가 가진 정보와 행동력, 결단성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나경이와의 스캔들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나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때문인지 오히려 포기가 빨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녀석의 손바닥 안이요 덫에 걸린 생쥐라는 걸 인정한다.

현 상황에서 철저하게 약자인 쪽은 나고, 주도권은 오직 그만이 잡고 있다.

지금 당장 나를 올인시킬 수 있는 최강의 패를 들고 있으면서 이렇게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 수도 없었다.

사회와 가정에 소속된 사람이, 그것도 한 회사의 대표가 하루아침에 일에서 손을 떼고 한국을 떠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그의 비위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면서 유예기간을 요구했다.

나 [선생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제가 맡고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주셨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 [얼마나 필요한가]

나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업키걸의 뒤를 잇는 신인그룹의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만 데뷔시키고 나면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 [2개월 제안합니다]

충분하다.

두 달이면 회사에서 예상한 어덕의 음원 발매 및 데뷔 예상 날짜와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문제는 데뷔가 아니라 그 이후다.

내가 없을 때 라희의 다리 마비 증상이 나타난다면?

란이가 발정이 난다면?

미오의 남근 증후군이 도진다면?

지유의 틱이 터진다면?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어덕은 차라리 데뷔를 안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데뷔를 한 이후, 내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이 터진다면 그건 녀석들의 인생이 더 괴로워질 뿐이다.

그래도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당장 내 스캔들이 터진다면 어덕뿐만이 아니라 우리 회사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

그나마 요즘 들어서 아이들의 증상이 더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지유의 틱을 제외하면 꽤 오랫동안 잠잠한 상태고 란이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 금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그래서 나도 요즘 마음을 놓고 녀석들과의 의무 사정을 소홀히 하고 있었는데, 남은 두 달 동안 1일 1사정을 하면 그 시절처럼 증상은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라희의 다리 마비 같은 경우에는 미오의 갓 핸드 마사지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니 아쉬운 대로 미오를 활용하면 되······ 잠깐만?

미오도 퍽커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던 그 순간, 문득 강혜민의 정액 알레르기를 치유해준 보상으로 받은 능력치 업그레이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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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엑의 효과 및 보존 기간이 늘어난다.>

-정액, 타액 등의 체액에 포함된 '여성에게 이로운 성분'의 효과와 지속력이 20% 증가한다. 또한 체내에서 배출된 타액의 효용 기간이 기존 7일에서 30일로 대폭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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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의 남근 증후군과 이 능력치를 이용하면 돌파구가 생길 것도 같다.

나는 물음표의 말을 따르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어쩌면 이런 식의 불가항력과 결정적인 전환점이 오기를 내심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나 [대한민국을 떠나라는 게 아예 국적을 옮기거나 이민을 가라는 뜻은 아니죠?]

? [2년 동안 떠나 있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에 잠시 들어오더라도 가족 외의 누구도 만나서는 안 된다]

나 [잠깐 잠깐 들어오는 것 자체는 상관없습니까?]

? [그러하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스캔들이 일어날 만한 부적절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 [나는 김윤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2년은 너무 긴데.

거의 중동 파견 수준이잖아. 그리고 나를 업키걸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해외가 아니라도 된다.

내가 그의 앞에서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것을 알게 됬으니 그냥 회사 일에서 손을 놓고 지방 쪽에서 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더 이상의 에누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 [이제 김윤호와 협상하지 않는다]

? [김윤호 당신을 생각해서 조언한다. 나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를 뒤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내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게 좋다]

? [나는 당장이라도 내가 가진 자료를 기자에게 남길 수 있지만 김윤호가 업키걸을 세상에 탄생하도록 해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나 [알고 있습니다]

? [오늘부터 시작이다. 60일 뒤에도 김윤호가 한국에 있을 경우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순차적으로 배포할 것이다]

물음표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나는 내 핸드펀에 해킹 프로그램이 깔려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한 스마트폰 데이터 관련 업체에 문의를 해봤다.

하지만 3~4시간 정도 폰을 맡겨야 한다는 점과 업체 측에 내 핸드폰 정보를 노출해야 한다는 위험성 때문에 결국 의뢰를 맡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굳이 업체에 의뢰를 하지 않아도 해킹 프로그램이 깔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업체와 통화를 마치자마자 물음표에게 바로 문자가 온 것이다.

? [김운호의 개인 스마트폰에 스파이 앱이 있다]

? [하지만 더 이상 팔요가 없으니 내가 스스로 삭제할 것이다]

? [오늘 바로 삭제를 할 테니 김윤호는 두 달 후에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된다]

나 [알겠습니다]

앞으로 두달 뒤. 

퍽커의 의무고 뭐고 간에 나는 한국을 뜬다.

떠야 한다.

이 지긋지긋한 남창 짓으로부터······.

"해방이다."

***

칠레의 수도 산티에고에 위치한 리츠칼튼 호텔 스위트룸.

그 안에서 울려 퍼진 알리야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울림이 깊었다.

업키걸 멤버 진리야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귀족 교육을 받은 브루나이의 공주이자 호텔 경영에 참여했던 CEO이자 테러범들의 납치와 협박으로부터 살아남을 알리야로서의 품격과 악다구니가 느껴지는 강단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장담하는데, 이 세상에서 뮨뮨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저랑 우리 언니들이에요."

알리야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와 그녀의 흑인 보디가드를 향해 강한 어조로 강조했다. 본인의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지도 않고 급식체도 쓰지 않은 평어로 말이다.

"요즘 뮨뮨이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아무리 책임감이 강한 뮨뮨이라고 해도 이제 한계에요. 여기서 한 발만 더 내딛었다가는 망가져 버릴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그 낭떠러지에 서게 된 이유가 우리 알리야 공주님께서 터뜨린 스캔들 때문인 것 같은데···. 아닌가?"

"나경이 언니 열애설은 뮨뮨한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불가피한 충격요법이었어요. 뮨뮨이 보기에는 세련돼 보여도 가끔 멘탈이 나가면 폭주할 때가 있거든요. 그 폭주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던 거죠. 본인이 자각해서 브레이크를 좀 밟아둬야 중요한 순간에 급정거를 안 하고 서서히 멈출 수 있으니까요."

김윤호의 뒤를 캐던 팩트프레스의 배후가 알리야라는 사실을 존슨으로부터 확인 받았을 때, 지선경은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다.

팩트프레스와 알리야의 연관성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했던 사람이 바로 지선경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루나이 왕족 정도면 퍽커와 반인족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따는 것을 지선경도 인지하고 있었다.

김윤호가 퍽커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선경은 오늘 알리야의 정체를 까발리거나 제지하기보다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김윤호의 주변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과 스캔들은 알리야가 꾸민 짓이었다. 김윦를 해외로 보낼 명분을 쌓아 퍽커와의 관계를 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알리야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업키걸 멤버들의 동의가 있었을 것이다.

"알리야 공주님. 우리는··· 아니, 인류는 김윤호 대표님의 힘이 필요해."

"뮨뮨은 할 만큼 했어요. 이제는 우리가 뮨뮨을 지켜줘야 해요."

"그럼 적어도 한국에서···."

"아니요. 한국에 계속 있다가는 소처럼 일만 하다가 죽을 거예요. 제2의 업키걸, 제2의 어덕은 계속 나올 거고, 여자들은 뮨뮨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날 거니까요."

"만약 내가 반대한다면?"

알리야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도발하는 지선경의 기에 눌리지 않고 당돌하게 대꾸했다.

"싸워야죠."

"자신 있어?"

"고맙게도 우리 아빠가 뮨뮨을 사위로 생각하고 있어요. 언니는 제가 아니라 브루나이 왕족과 싸워야 될 거예요. 그리고 브루나이 왕족 뒤에는 DNI, MI6가 연관돼 있고요."

지선경은 그런 기관들에 위축되지 않았다.

현재 세계 중요 국가의 정보국에는 반인족 전담팀이 구성돼 있는데, 지선경 역시 퍽커라는 특수 동맹을 통해 우리나라 국정원을 비롯한 세계 중심 정보국과 연줄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지선경이 경계하는 건 알리야와 업키걸이 품은 독기와 오기였다.

김윤호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20대 여자들의 한(恨)이라는 것이 반인족보다 더 무서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은, 며칠 전 있었던 '뮤노신의 밤꽃 축제'를 통해 서울의 네임드 반인족은 거의 척살했다는 것이다.

물론 김윤호의 압도적인 버프가 있다면 편하겠지만, 당분간은 그 정도의 치열한 전투는 없을 것 같으니 한 발 양보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하긴. 그동안 김윤호 대표가 이래저리 열일을 하긴 했지. 공주님 얘기를 들어보니 해방까지는 아니더라도 휴가 정도는 필요하겠네."

"언니도 뮨뮨 좋아하죠?"

"좋아하지."

"그러면 이제 놓아주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윤호를 감금이라도 시킨 줄 알겠어.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공주님이랑 우리는 한 편이야."

"그럼 뮨뮨 놔주는 거예요?"

지선경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과도 같은 알리야의 패기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사실 미국도 안 무섭고 국정원도 안 무서운 사람이거든? 근데 자기네들은 좀 무섭네."

"···뮨뮨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알리야가 이런 짓 꾸몄다는 거 알면··· 알리야는 뮨뮨한테 뼈도 못 추릴 정도로 혼구녕이 날 거예요."

천하의 지선경도 무서워하지 않는 알리야 공주가 김윤호 앞에서는 겁 많은 소녀가 된다.

지선경은 그 상성 관계가 재밌다는 듯 쿡쿡쿡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슨, 우리도 온 김에 투어나 좀 하다갈까?"

"예, 마담. 저는 남미 남자들의 구릿빛 피부와 열정을 좋아합니다."

지선경은 스위트룸을 나서기 전에 알리야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세상에서 윤호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자기네들이라고 했지?"

"그런 거예요. 뮨댕쓰는 아무리 굴러도 알리야 손바닥 안인 거예요."

"윤호도 자기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업키걸을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정답이에요."

"그럼··· 나도 눈치 챈 걸 윤호가 과연 모를까? 윤호도 자기가 누구 손바닥 위에서 구르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거 같은데, 흐흐흥."

<누구의 손바닥 안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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