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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101화 (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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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무슨 비명 소리가 들린 것도, 눈앞에 영혼이 보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내 안에서 무언가가 튕겨져 나가는 듯한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어?’

당황은 순간이었다. 나는 지극히 본능적으로,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처럼 손을 움직여보았다. 손가락 끝이 내 명령대로 멀쩡하게 움직인다.

고개를 돌려본다. 내 의지대로, 조금은 힘겹게 고개가 움직였다.

눈앞의 릴을 올려다보는데 눈시울이 핑 감돌았다. 동시에 세상이 뱅글 돌았다.

“리, 리일…….”

힘없는 목소리가 흘렀다. 바닥으로 허물어지듯 무너지는 몸을 릴이 받아들었다.

나는 그런 릴의 가슴을 팍팍 때리며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죽어줘, 누구 마음대로! 왜 그런 말을 해!”

…물론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그를 친 건지, 민 건지, 뭘 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떨떠름했다.

“……프리드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새 앙상해진 내 어깨를 끌어안는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아니…….”

이어 속삭이는 릴의 음성이 온화하게 물든 채였다. 아마 안도에 젖은 입술이 습관처럼 말려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진짜로 그러겠다고 한 적은 없잖아.”

나는 다시 가까스로 손을 움직였다. 릴의 가슴팍을 겨우 건드리는 주먹이 파들파들 진동했다.

“그러면 그런 걸 왜 입 밖으로 꺼내냐고!”

“아니, 일단 살리고 봐야 할 거 아냐. 네가 죽기 직전인데.”

그 말에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이그드라실을 낚을 생각이었구나.

정말 어떻게 서 있었는지, 손은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꺼이꺼이 울 힘도 없었다.

되찾은 육신이 끔찍한 굶주림을 호소했다. 노랗게 물든 눈앞이 뱅뱅 돌았다. 허기진 배가 시끄럽게도 요동쳤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고통은 이그드라실이 내 육신을 차지하고 있을 때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근데 고통의 정체가 굶주림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릴의 품 안에 기댄 내 몸이 저절로 축 늘어졌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속삭였다.

“우리 먼저 뭐 좀 먹을까?”

대환영이었다. 지금 쇠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아, 살 것 같아…….”

쇠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며칠이나 쫄쫄 굶은 몸은 맛있는 걸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묽게 끓인 수프 몇 스푼이 들어가자 느껴지는 만족스러운 포만감이란.

더 신기한 건, 평소에 먹는 양의 절반도 먹지 못했는데 어지럽게 뱅글뱅글 돌아가던 세상이 멀쩡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끝, 발끝에 힘이란 게 들어간다.

이제 아까보다 릴을 조금 더 세게 때릴 수 있을 것 같다.

짙은 안도감 속에서 나는 릴을 올려다보며 내뱉어야 했다.

“내, 내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요?”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너 정말 이대로 죽는 줄 알았다고.”

……그럴 만했다. 나도 죽어간다는 걸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굶어서!

이상한 죄책감이 느껴졌던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도 살다 살다 제가 아사 위기에 처할지 몰랐어요.”

말단 귀족이긴 해도, 우리 집이 귀족치고는 썩 부유하게 산 것은 아니었어도 먹을 게 모자라지는 않았었다.

당연히 허기가 이렇게 끔찍한 것일 줄은 몰랐다. 온몸이 작열하는 고통이라는 말을 이해했다고 해야 할까.

‘정말 좋은 거 알게 하네.’

속으로 투덜거리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내 몸을 이렇게 되찾았다면 이그드라실은 어떻게 된 거지?

“근데 이그드라실은 어디로 간 걸까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시스가 이대로 사라지지는 않겠지.”

릴은 다소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하긴, 릴이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그드라실이 이대로 사라질 존재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그리워하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러면 지금 이그드라실이 있을 만한 곳은 신전이 아닐까. 근데…… 신전으로 돌아간 거면, 다시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자면…… 안 되려나? 아사의 위기에서 벗어났더니 이제는 잠 못 자는 고문에 시달려야 하는 건가?

“그나저나 프리드린, 이제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

“네?”

갑작스런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날 보는 릴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이시스가 왜 나타난 거야? 넌 어디에 있다가 온 거고?”

“어, 그게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그동안 있던 일들을 곱씹은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저 그동안 종종 잠이 들면 왕실 신전에서 깨어나곤 했거든요……. 꿈인가 싶었는데 꿈은 아니었어요.”

“왕실 신전?”

“네. 거기서 이그드라실이 절 보고 있고요.”

흠, 소리를 낸 릴이 눈을 내리깔았다. 손으로 자신의 턱을 잡으며 중얼거린다.

“이시스가 널 불렀나 봐.”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네가 왕실 신전에서 깨어난 게 아닐까?”

그건 그렇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직접 경험했잖아!

……난 정말 바보인가 보다.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일단 난 그런 식으로 불려가 본 적은 없거든. 근데 나와 이그드라실보다는 너와 이그드라실이 더 비슷하니까.”

저 말을 반대로 생각하자면, 이그드라실이 내게 영향을 끼치는 건 가능하지만 릴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아닐까.

뭐, 이그드라실이 릴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면 일찌감치 시도를 해봤겠지.

“그래서 그다음에는?”

“며칠 전에도 왕실 신전에서 깼는데, 내가 자기 부탁을 안 들어주니까 다짜고짜 몸을 빼앗잖아요. 이그드라실이 자기 멋대로 내 몸을 움직이는 걸 계속 지켜봐야 했다고요.”

“부탁?”

말을 곱씹은 릴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아마 저기서 이상한 걸 느낀 게 틀림없었다.

“무슨 부탁?”

“어, 그게요…….”

언니의 일부터 시작해서 그놈의 부탁이라는 거까지, 나는 그간의 일들을 늘어놓아야 했다. 짧게 축약되지 않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릴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일단…… 너 말이야.”

“네?”

“아무 데서나 넙죽넙죽 알겠다고 대답하면 돼, 안 돼?”

악!

릴은 일단 나를 혼내고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일이었다.

“내가 사탕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저기……. 그거랑 이거랑 같은가요?”

“당연하지.”

“대체 어디가요?”

“같은 맥락이잖아.”

그, 그런가? 물론 언젠가 사탕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고 말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아니, 내가 세 살 먹은…….”

“처음 말리카한테도 그래서 데스테리언까지 오게 된 거 아니었나?”

어린애냐고 따지려고 들 찰나에, 릴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튀어나왔다.

어, 어라? 저, 저건 어떻게 알았담?

그때 일을 옆에서 지켜본 게 아니면 저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말리카와 있던 일을 아무에게나 말할 정도로 내 간은 크지 않았다.

릴은 ‘그래도 느낀 게 없어?’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추위에 떠는 설치류처럼 몸을 바짝 웅크리며 속삭였다.

“자, 잘못했어요. 안 그래도 절실하게, 온몸과 마음의 열과 성을 다해서 느끼고 있다고요.”

“느끼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네. 또 어디서 사고 친 건 아니지?”

“어…….”

사고, 소리에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겠다를 온몸으로 깨달았던 때를.

“저, 저기…….”

양심이 쿡쿡 찔려왔던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응?”

“레브아께서 부르셨을 때 한 번…….”

“어머니께?”

“네에……. 무, 물론 별일은 없었어요!”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라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 나는 레브아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그 온후한 분이 이그드라실처럼 막 나가지는 않으시겠지.

릴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니께서 네게…… 해악을 끼치시지는 않겠지. 그래, 어쨌든 간에.”

릴이 잠시 관자놀이를 압박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시스에게 받은 힘을 돌려줘야 한다는 건가?”

“네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긍정을 표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릴의 대답은 삐딱하기 그지없었다.

“싫은데?”

그…… 삐진 어린아이 같은 태도에 나는 눈을 멍청하게 끔뻑였다. 그리고 반문해야 했다.

“……네?”

“그 악신이 뭐가 예쁘다고, 걔 좋은 일을 시켜줘?”

빠드득, 그의 고운 치열이 갈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짙은 원한이 묻어 나오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당장 월계수 나무를 구해다가 제령해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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