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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75화 (7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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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품은 말리카의 두 눈이 곱게도 휘었다. 확인하듯 물어왔다.

“기억하고 계시지요?”

“네, 물론……. 아름다운 말리카의 말씀을 어떻게 잊겠어요.”

“다른 이야기도 혹시 기억하시나요?”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런 일에 기겁하기도 잠시,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물어야 했다.

“다른 이야기라면, 어떤 말씀이요?”

“프리드린은 왕실의 미친개를 훌륭하게 길들이실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말리카는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까지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셨답니다.”

“아, 아름다운 말리카…….”

“카림께서 허튼짓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오지 않으니 제 마음이 참 평안했답니다. 그간 이상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프리드린은 모를 거예요.”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저기요, 말리카. 입술에 침이나 묻히고 거짓말을 하시는 게 어떠실까요오……. 이상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 게 아니라, 웃느라 입술을 졸이셨겠죠.

릴이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말리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상관이었던 말리카를 좋게 생각한다고 해도 저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말리카는 릴을 경계하니까.

말리카는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즘 한결 편해졌어요. 다 프리드린 덕이에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말씀드려요. 프리드린은 신의가 있는 분이니 저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실 거라 믿고 있답니다.”

…난 신의 따위 없는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말리카를 빤히 바라보며 눈만 멀뚱멀뚱하자 상냥한 압박이 이어졌다.

“왜 말씀이 없으실까요?”

“…….”

에라, 모르겠다. 말리카처럼 뭔가 뱅 에둘러 압박할 말재간이 없던 나는 맞불을 놓았다.

“저, 죄송한데 카림과 결혼할 때에 혼전계약서를 썼거든요.”

“저런. 여러모로 현명하신 선택이었네요. 어떤 내용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카림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안 된다고 하셨어요.”

내 말에 말리카의 입술이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괜히 겁을 먹은 나는 소맷자락 밑에 숨은 주먹을 움켜쥐어야 했다.

“말리카께서는 딱 일 년을 말씀하셨지만, 전 좋으나 싫으나 남은 세월 평생 카림 곁에서 살아야 하거든요…….”

“카림께서 생각 이상으로 프리드린을 마음에 들어 하셨군요. 그래요, 누가 프리드린을 싫어할 수 있겠어요.”

으레 하는 입에 발린 말을 내놓은 말리카의 눈이 날카롭게도 벼려졌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어깨를 들썩여야 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만을 조율하셨을 리는 없을 거고요.”

내용을 더 캐묻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 혼전 계약서는 보여줘도 무방할 수준이긴 했다. 어린아이 소꿉장난 수준이라고 하면 딱 걸맞으니까.

“품위 유지비에 대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건 없긴 해요. 원하신다면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그런데요, 아름다운 말리카.”

“네, 프리드린.”

“카림께서 재상이 된 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내 직설적인 말에 말리카가 맞댄 시선을 깜빡였다.

저것 말고, 말리카가 나를 찾아올 만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이그드라실에 꽃을 피우게 된 그 순간에 이미 버린 패 아니었을까.

나한테 한 방 맞은 말리카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큰 문제랍니다.”

“사실 카림께서도 학을 떼고 질색하거든요. 아름다운 말리카께서도 아시다시피 신혼이라서요…….”

나는 슬쩍 말꼬리를 흐려야 했다. 세상에, 이그드라실이여. 제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릴을 닮아 갈수록 뻔뻔해질 모양이다. 엄마야, 이건 좋은 건가?

“제 소견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리크께 여쭈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조심스레 속삭인 것에 페라엘 샤리프스가 옆에서 쌍심지를 켰다. 이, 이크.

“프리드린은 말이죠.”

순간적으로 겁을 집어삼킨 내가 바짝 움츠러들었을 때 말리카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 페라엘을 말리는 행동이었다.

“저조차도 레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면, 제 말을 믿어 주실까요?”

“……네?”

“말 그대로의 의미랍니다. 의아해하실 것 없어요.”

살포시 두 손을 모은 말리카는 나한테 잘 먹히는 가련함을 내비쳤다.

“레반은 왜 갑자기 자와 성주를 쫓아내고 카림을 그 자리에 앉혔을까요. 카림께서도 학을 떼신다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물론이고 다른 일곱 명의 재상들도 반대한 일이에요. 그런데도 레반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죠. 저도 레반의 속을 도통 읽을 수가 없어요.”

목소리도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근데 놀랍게도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그랬다, 이번 말은 나조차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도 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추 읽는데 말이다. 우리보다 쌓아 온 관계가 깊고 신뢰가 클 말리크와 말리카가, 저 잉꼬부부가…… 뭐가 어떻다고?

아무리 봐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프리드린, 아시다시피 제 입지가 좋지 못해요. 프리드린이 절 도와주시면 정말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나는 오늘도 가련한 말리카를 빤히 응시했다. 이윽고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를 것으로, 있는 그대로를 내뱉었다.

“릴과 반목하지 않으시면 좋을 텐데요.”

내리깔려 있던 말리카의 눈이 치켜떠졌다. 희번뜩하기 그지없는 시선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목소리조차 꽤나 흉흉했다. 어, 엄마야. 말 잘못했다가는 목이 날아가겠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아하신 레브아께서도 두 분이 화해하기를 바라시거든요. 그리고 카림께서도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고요.”

“카림께서 원하지 않는다고 끝날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말리카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진동했다. 최대한 친절하게 내뱉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전 무서워요. 어느 날 갑자기 레반이 날 버리고 카림을 택할까 봐.”

파르르 떨리는 눈매에 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리카의 목적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내게서 답이 없자 말리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페라엘 샤리프스가 그 뒤를 따랐다.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믿고, 이만 가볼게요.”

“부디 살펴 가셔요.”

내 답에 다시금 우아한 가면을 쓴 말리카의 눈이 부드럽게 휠 뿐이었다.

* * *

연못에 발을 담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양이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인데. 내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나.

“잡았다.”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 뒤에서 날 와락 끌어안는 온기가 있었다. 내게 이럴 사람은 한 명밖에 없지.

이제는 그 온기도, 체취도, 목소리도 모든 것이 다 익숙했다. 익숙한 사람에게 취한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벌써 왔어요?”

“벌써라니. 나는 하루 종일 죽는 줄 알았다고. 우리 다람쥐가 보고 싶어서.”

온몸의 솜털이 우수수 곤두서는 말이었다. 내가 당연하게도 몸서리를 쳤을 때, 이 부끄러움 모르는 남자는 내 뺨에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쪽,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얼굴을 냅다 밀어낸 나는 볼멘소리를 냈다.

“하, 하지 마세요. 닭살 돋는단 말이에요.”

“너무해라. 나 피곤한데 때릴 거야?”

“이, 이게 때린 거예요?”

“그럼. 예뻐하지는 못할망정.”

아니! 애초에 내가 기겁할 만한 소리를 안 하면 되잖아!

릴의 너스레가 이어졌다.

“휴, 우리 다람쥐랑 놀면 이 피로가 가실 텐데.”

그 논다…… 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건 내 귀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하루라도 날 놀려먹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으시니, 오늘도 날 놀릴 생각이거나 엉큼한 살색의 향연이거나 뭐. 둘 중 하나일 건 뻔할 뻔 자지만.

“그러면 더 피곤해지는 게 아니고요?”

“그럴 리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피로 회복제지.”

나는 예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봐야 했다. 되묻는 건 덤이고.

“정말요?”

“응, 정말.”

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양 뺨을 둥글게 부풀렸다. 오기가 생겨서 괜히 아득바득 기어올랐다.

“나도 피곤하거든요? 그 좋은 피로 회복제, 조금만 나눠줘요.”

“아주 좋은 제안이야.”

릴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익숙한 무게가 내게 기울었다.

“기꺼이 나눠줄게.”

그의 양손이 내 팔을 움켜쥐었다. 곧 단단한 대리석 바닥 위에 등이 닿았다.

온몸으로 그의 무게를 느끼던 나는 덜미 물린 짐승처럼 버둥거렸다. 당혹에 젖은 목소리가 흐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 잠깐만,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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