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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68화 (6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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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으킨 첫 번째 기적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귀족들이 지켜보던 앞에서 있던 일이었다. 처음에는 말리크에게 큰 창피를 줬지만, 결국 자존심을 심어주었다고 평했다.

반면 이 두 번째 ‘기적’을 목도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장례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손님들도 없었고, 가족을 제외한다면 기껏해야 장례식장을 지키던 사용인들뿐이었다.

하지만 예로부터 발 없는 말이 먼 거리를 간다는 말이 있었다. 적은 사용인들을 시작으로 퍼진 게 틀림없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다.

엄청난 이야기에 프레이르 전역이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스운 건 그 많은 사람이 지켜보았던, 순전히 내 힘으로 일으킨 첫 번째 기적은 정작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몇 사람 보지도 못한 이 두 번째는 이그드라실의 인도를 받은 게 분명한데.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그리고 두 번째 난리의 당사자인 언니는 뒤늦게 모든 진실을 전해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늘였다. 기막힌다는 목소리로 덧붙인 건 덤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데.”

“왜 못 믿어?”

“누가 믿을 수 있어? 내가 죽었다가 되살아났다고. 소설도 그렇게 쓰면 개연성 없는 막장이라고 욕먹는다?”

“언니, 원래 현실이 더 막장인 법이래.”

내 목소리에 언니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거기 언니 장례식장이었어. 형부는 크리스털로 짠 관을 준비했고, 언니는 새까만 수의를 입고 있었고 어머니의 값비싼 신년 드레스가 언니 밑에 깔려 있었다고.”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자신의 옷으로 죽은 자식을 감싸 묻는 전통이 있었다. 검소함이 원칙인 아버지가 가장 좋은 드레스를 땅에 묻는 걸 허락하신 게 참 대단한 일이었다.

덕분에 새삼스럽게도, 부모님께 언니가 어떤 딸인지 알 법했다. 나는 오래도록 아팠으니까 모든 기대는 언니에게 걸려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팠던 나 때문에 언니에게 잘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 평생, 부모님 가슴의 대못으로 박혀 있을 것이다. 괜히 가족들에게 더더욱 미안해졌다.

“언니가 역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했다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기겁해서 오펠부터 한걸음에 뛰어왔단 말이야.”

그것도 울며불며……. 까맣게 잊고 있던 옛일을 떠올려 가면서…….

언니와의 영원한 이별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언니보다 먼저 죽으면 죽었지, 언니가 먼저 내 곁을 떠나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나 그래도 백합은 안 가져다 놨다? 언니가 정말로 내 결혼식 때 부케로 들고 올까 봐 무서웠어.”

일부러 장난스럽게 덧붙였지만, 언니의 얼굴이 제법 심각하게 물들었을 뿐이었다.

“나, 역병에 걸린 거까지는 분명히 기억하거든.”

이어 손끝을 까딱거렸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걸 확인하려는 듯이.

…저 기분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아팠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저런 행동을 하게 된다. 나도 자다가 일어나면 자주 했던 행동이고.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중요하고 굉장한 일이었다. 숨 쉬듯 당연한 일이 아플 때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이윽고 언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냥 한숨 아주 잘 잔 기분인데.”

“……그러면 다행이지.”

괜히 사후세계를 보고 왔다거나…… 이러면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손을 뻗은 언니는 습관처럼 내 머리를 쓱쓱 헝클어뜨렸다.

“어휴, 우리 쥐새끼. 대단한 쥐새끼였네.”

“언니, 나 아직도 쥐새끼야?”

“당연하지. 내 안에서 네가 변할 거 같아? 넌 평생 설치류 쥐새끼야. 다람쥐는 무슨.”

“…….”

지금은…… 저 쥐새끼 소리가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평생 듣지 못할 뻔했던 걸 다시 듣게 돼서 그런가.

나는 슬쩍,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는 언니의 손에 머리를 바짝 밀착시켰다.

꾹 잠긴 목소리가 이어서 울렸다.

“이래서 내가…… 언니 없이는 못 살아.”

“……얘가 지금 징그럽게 왜 이래? 너 그러면 안 돼.”

그리고 내 행동에 언니가 학을 뗐다. …내가 릴이 애정 표현을 하면 닭살 돋아 하는 모습과 묘하게 닮은 듯했다. 기분 탓일까.

언니는 샐쭉하게 눈을 뜨며 속삭였다.

“이제는 카림이 없으면 못 살아야지. 신혼인데 벌써부터 그러면 못쓴다, 너. 카림께서 날 경쟁자로 느끼실 거 아니냐고.”

“언니…….”

나는 한숨 섞인 아득한 목소리로 언니를 불러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언니가 되살아난 이후부터…… 릴을 마주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이제는 릴이 나를 어려워하는 건가? 아니면 해결해야 할 일이라도 생긴 걸까.

불안함이 물씬 피어올랐다. 이제는 릴도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인데. 이렇게 한순간에 멀어지는 건 아니겠지? 미묘하게 다가붙기 시작한 이 거리가 다시금 원상복구 되지는 않겠지?

갑자기 심각해진 내 눈치를 살짝 살핀 언니가 말머리를 돌렸다.

“아참, 카림 하니까 생각나는데 말이야. 너 혹시 그 얘기 알고 있어?”

“응?”

“말리카가 카림을 견제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는 한 차례 눈을 깜빡였다. 프레이르 사람들 중 저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냥…… 당연한 일 아니야? 자식 없는 말리카가 불안하니까. 게다가 언니 말대로 릴은 언제든지 존모하는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는 위치고.”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더라고.”

더 큰 문제라니? 말리크 자리를 빼앗길 수 있는 것보다 큰 문제가 있을 수는 없는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더 큰 문제?”

“예전에 왕궁에 이런 소문이 있었대.”

왕궁의 소문이라니.

시녀로 일할 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왕궁에는 헛소문이 거의 돌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느냐는 말이 있지. 말도 안 되는 헛소문 같아 보여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진실이 존재했다.

그 진실에 살이 붙어서 거짓처럼 보일 뿐이지.

“그게 뭔데?”

“말리크가 아미르로 있던 시절 말이야. 다른 아미르하고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거든. 즉위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 죽여버렸으니 오죽했겠어?”

뭐……. 물론 사이가 좋은 형제라면 굳이 죽일 이유는 없지.

다만 만에 하나 다른 형제가 말리크 자리에 올랐다면, 현 말리크가 그렇게 죽임당했을 것이다. 비정한 곳이니까.

“그런데 딱 한 사람. 카림만은 예뻐했어. 그것도 아주.”

“응, 릴도 말리크가 자기 업어 키웠다고 하더라. 자신을 사람답게 가르쳤대.”

“그래서.”

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브렌델 영주관의 안에 있는 언니의 방인지라 누군가 엿들을 염려는 없었지만.

“말리크가 사실은 형이 아니라 친부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소문이야.”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게 무슨 소리지?

“형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응.”

“그러면…… 말리크가 대체 몇 살 때 애를 낳았다는 거야?”

내 말에 언니는 기막힌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리크의 나이를 계산해야 했다.

일단 릴과 말리크가 열네 살 차이니까……. 열네 살이나 어린 동생을 귀여워하는 건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열네 살 때 애를 낳았다면 그건 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어색하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것도 레브아와?”

말리크가 열네 살 때, 레브아는 비교적 원숙한 삼십 대의 여인이었다. 릴은 레브아에게도 늦둥이니까.

어쨌든……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범죄였다.

언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더 속삭였다.

“레브아가 카림의 친모가 아니라면?”

“그건…… 말도 안 돼. 릴하고 레브아가 얼마나 돈독한데. 눈물 없이는 못 봐주는 사이야.”

릴은 말리카가 레브아에게 한 짓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레브아는 내 앞에서 대놓고 릴을 그렇게 낳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나는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왕궁에 헛소문이 도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건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네.”

“뭐, 어쨌든 그래서 말리카가 그렇게 카림을 견제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잖아?”

그 말에는 동의했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도리어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

“남편의 사생아라니. 끔찍하게 싫을 만하지. 차라리 하렘에서 얻었다면 말리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라도 하겠지만.”

언니가 덧붙인 말에 나는 괜히…… 릴과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가 가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하비에르를 남편이라고 말했던 거. 그 이후 종종 후궁이 어쩌고…… 하고 말을 꺼낸 것까지.

……릴에게 정말 못 할 짓을 했었구나, 싶었다.

휴, 릴을 보면 사과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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