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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52화 (5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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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딱 한 번만 좀 져 주면 안 되냐고. 응? 왜 다들 어떻게든 나를 이기려고 하는 거야? 나 이기면 뭐 큰 상품이라도 주냐고! 월간 억이라도 쏟아져?

…아니, 월간 억이면 언니는 좋아해도 그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돈이라면 썩어날 정도로 넘치니까.

그럼 그에게는 뭐가 쏟아지지? 그가 좋아하는 게 뭐려나? 취하지도 않는다는 술?

겉으로든 속으로든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이 왜 그렇게 되는…… 항.”

순간 목을 꺾은 나는 짤막한 비명을 토해냈다. 허리를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던 손이 움직여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내 몸을 어루만졌다.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솟은 둔덕을 그윽하게도 매만졌다. 붉게 솟은 정점을 가지고 노는 게 정말로 에로틱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숨결 덕분에 그러잖아도 예민해진 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손짓 하나에 흥분을 알고 턱턱 숨이 막혀왔다. 더운 공기가 더더욱 뜨겁게 나를 달구었다.

“노래도 잘 부르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은근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손으로, 입술로 자신의 욕심을 채워 나가며 덧붙였다.

“싫어한다더니.”

“제, 제가 언제 노래를…….”

채 내뱉지 못한 말이 허공에서 부서졌다. 내가 내뱉고 싶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언제 노래를 싫어한다고 했어요?’일까, ‘내가 언제 노래를 불렀다고 그래요’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저 그가 주는 감각에 취한 머릿속이 새하얗게 빛바랬다. 끊임없이 헐떡이던 나는 속절없이 그의 품으로 끌려 들어갔다. 곧 흥분한 남자는 주저 없이 날 한입에 집어삼켰다.

* * *

밤은 지칠 정도로 길었다.

안기다가 지쳐서 까무룩 기절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어김없이 밤이었다. 그러면 이 짐승 같은 남자는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물고 빨고 핥는다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그 말이 왜 사람을 예뻐하는 데 쓰이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아침.

이번에는 그에게 밤새 시달린 내 다크서클이 복숭아뼈까지 내려올 차례였다.

“처음 보는 과일이네.”

하녀들이 차린 아침상을 보던 릴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처음 보는, 이름 모를 과일의 달콤함을 잘 아는 나는 과일을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물고 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달콤한 과즙이 가득 터졌다. 텁텁하지 않은, 상큼한 단맛.

과육을 씹던 나는 자연스레 말을 붙였다.

“릴도 처음 봐요? 어제 언니도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응. 신기하게 생겼네.”

“좀 특이하게 생긴 것 같아요. 근데 맛있어. 한 입 먹어 볼래요?”

내 물음을 뭐라고 받아들였던 건지, 그의 얼굴이 훅 가까이 다가왔다. 그대로 내가 먹던 걸 베어 물었다. 그 너무 자연스럽고 친밀한 행동에 순간적으로 당황을 곱씹었다.

내, 내가 오해하기 좋게 말한다는 하비에르의 말이 맞나 봐.

다만 과일을 씹은 그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아무래도 단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너무 달다. 이런 걸 어떻게 먹어?”

“달아도 맛있게 달잖아요. 안 텁텁하고. 바나나보다 나은데.”

내 대꾸에 릴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름 모를 과일을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아삭, 소리와 함께 신선한 과즙이 입 안에서 톡톡 터졌다. 혀끝에 번지는 놀라울 정도로 달콤한 맛이 날 즐겁게 했다.

정말 맛있다. 한동안은 이것만 먹어도 별로 질리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이 작은 과일에 이만큼 많은 과즙이 들어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문뜩 그가 중얼거렸다.

“오물오물 맛있게도 잘 먹네. 다람쥐 같아.”

오물오물, 잘 먹어…….

평소였다면 다람쥐 같다는 말에 신경 썼을 텐데, 지금은 앞부분에 한 말이 마음에 턱 걸렸다.

저, 저 말이 무척이나 외설적으로 들렸다면 지금의 내가 미친 걸까? 이제 남녀의 비밀스러운 일을 잘 알게 된 내 발끝이 남몰래 진동했다.

릴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빨개져?”

“제제제제제가 언제요?”

“거울 줄까?”

……씨!

얼굴로 피가 새빨갛게 몰려 있다는 걸 내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았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나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모로 꺾었다. 먹고 있던 과일이 두르륵, 바닥을 굴러갔다.

“어, 얼른 출근이나 하세요.”

“출근이라니.”

그런 내게 다가온 릴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단 하루 만에 익숙해져 버린 품에서 괜스레 발버둥을 칠 적 나지막하게도 중얼거린다.

“쉬면 안 되나? 딱 하루…… 아니, 하루는 너무 짧은데. 일주일만.”

카림 부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세…… 밤일만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냐고! 그것도 일주일이나 두문불출하면서!

그 행위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의 문제였지.

차마 나오지 않는 속삭임이 혀끝에서 까끌거렸다. 내 속을 전혀 모를 남자는 애틋하게도 속삭였다.

“떨어지기 싫다.”

애정 가득한 속삭임이 떨어졌다. 저런 느끼한 말에 내성이 없던 나는 겨우겨우 중얼거렸다.

“미, 미쳤어요?”

“신혼이잖아. 당연한 거지.”

“곧 하비에르 올 시간이란 말이에요.”

내게도, 릴에게도 일정이라는 게 있었다. 보여주기식이라지만 최소한의 일정은 지켜야 하잖아? 그걸 지적하는 말이었지만 짓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하비에르를 남편이라고 하더니……. 역시 본처보다는 후궁인가?”

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예전부터 본처보다 애첩을 더 소중하게 아끼는 사람이 많다고야 했지. 그런데 세상에, 내 아내님이 그럴 줄이야. 첩에게 안 지려면 어떤 매력을 키워야 할까?”

“그, 그런 말 아닌 거 알잖아요!”

내 언성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날 놀려먹는 그의 입꼬리가 짓궂게 말려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난 그저 당신처럼 뻔뻔하지 못할 뿐이에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신혼인데 안 하고 사는 사람 있어? 내가 밤을 새워 야근을 해도 할 짓은 다 하고 다닌다고 생각할 텐데.”

……맞는 소리였다. 그 누가 알까, 우리가 첫날밤을 이제 겨우 보냈다고. 나를 잘 아는 언니조차도 아직도 안 했냐고 한 소리 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뭐 어때. 내가 뻔뻔한데.”

그 순순한 인정에 할 말이 없어졌다.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게 자랑입니까, 이 인간아?

“부끄러워해도 되고 창피해해도 돼. 괜찮아.”

“내…… 내가 안 괜찮아요.”

내 필사적인 반발에 그가 장난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은근해진 목소리로 속삭인다.

“저녁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보고 싶을 거야.”

“……왜, 왜 이래요.”

“애정 표현도 못 해?”

애, 애정 표현……. 조금 전에 먹었던 과즙이 그대로 얹힐 것만 같다.

그는 그윽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원래도 예뻐 죽을 거 같았는데 오늘은 더 예뻐.”

아니, 이 놀라운 태도의 변화는……. 아니, 사실 태도가 변한 게 없나? 내가 그의 모든 것을 조금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어 내뱉는 음성이 덜덜덜 떨려왔다.

“가, 갑자기 이러시면…….”

“갑자기라니.”

그의 입술이 내 귓가에 바짝 다가붙었다. 은밀하기 그지없는 말이 떨어졌다.

“어제 낮부터 밤, 오늘 새벽까지 사랑을 확인했잖아.”

발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세상에, 소설의 한 대목이었다면 가슴 설레 하면서 봤을 말이 야릇하게 느껴지다니. 내가 드디어 미친 게 틀림없다.

“내 사랑 표현이 모자랐어?”

그게 사랑 표현이라면 넘쳤다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나 밤새 시달려서, 누구 표현대로라면 다크서클이 복숭아뼈까지 내려왔는데?

“지금 한 번 더 하면 알까? 아침에 하는 게 좋다잖아.”

“그…… 그런 걸 바란 게 아니거든요!”

발악하듯 소리친 나는 그를 와락 밀어버렸다. 밤일이 왜 밤일인데! 이른 아침부터 그러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무엇보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인간이었다. 자기가 지치기 전까지 날 잡고 놓아주지 않겠지? 어젯밤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릴을 어떻게든 단념시키려고 나는 일단 생각나는 일을 입술에 얹었다. 나와 그가 오펠까지 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여, 역병이 돌고 있잖아요! 우리 한가롭게 이러고 있을 때예요?”

“전쟁 중에도 애들은 태어난다?”

그건…… 그렇지. 오늘도 역시나 맞는 소리에 입술만 달싹였다. 대체 왜 나는 그에게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는 걸까.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새파란 눈이 만족스럽게 반짝였다. 이어 그가 또다시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그거, 역병이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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