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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직까지 나한테는 저런 걸 준 적도 없으면서!
지금 이 순간 날 가장 서럽게 하는 건 저것이었다.
내가 언니 소리를 꺼내자 깨달은 게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에 걸린, 정작 나는 그가 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금목걸이를 빼 들었다.
“……이거라도 줄까?”
“아뇨! 때 탔잖아요! 새걸로!”
말도 안 되는 투정이었지만, 정제되지 않은 말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생떼였다.
“언니보다 큰 다이아몬드로 주세요. 이왕이면 색깔 들어간 거! 초록색이 좋겠어요.”
“그래, 초록색 다이아. 물론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카림이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온화한 미소가 그렇게 돋아났다. 상냥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외네, 이런 걸 욕심 내고.”
“흥. 보석 싫어하는 여자 봤어요?”
콧방귀를 뀌며 대답하는 내 모습에 카림이 눈을 휘었다. 갖은 떼를 쓰는 모습에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이럴 때의 그는 어른이었다.
“글쎄. 너?”
“안 싫어해요! 나도 보석 좋아하거든요?”
“넌 보석보다 초콜릿 쪽 아닌가?”
“…….”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 당연하지. 먹지도 못하는 보석보다는 초콜릿이지.
애초에 초콜릿은 쉽게 맛볼 수 없는 고급 간식이었다. 국토 대다수가 사막인 프레이르에서는 카카오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쪽 근방에서는 우기 동안의 강수량이 많아서 잘 자라려나? 참, 그럼 다른 곳보다는 초콜릿을 구하기 쉽겠네?
엉뚱한 생각을 이어 나가는 내 머리를 다시금 흐트러뜨린 카림이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 디저트는 좀 더 제대로 준비하라고 할게.”
“누…… 누가 초콜릿이 더 좋대요! 나도 다이아몬드!”
“생크림 듬뿍 올린 딸기 케이크는 어때.”
카림이 제안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다이아몬드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조합은 완벽하다고!
그 말에 홀린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생크림? 딸기?”
“응.”
“생크림에 초콜릿 섞은 걸로요.”
딸기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를 떠올린 나는 줄줄 흘릴 뻔한 침을 닦아야 했다. 게르드에 둘썸이라는 이름의, 저걸 잘하는 제과점이 있는데. 한번 맛보면 그 감동적인 맛에…….
……이게 아니잖아! 아니, 이 인간은 왜 나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거지?
“……가 아니잖아요. 말 돌리지 말고요! 나도 목걸이! 반지!”
빼 들었던 금목걸이를 다시금 자신의 목에 걸던 카림이 속삭였다.
“넌 너 자체가 보석이잖아.”
어김없이 흐르는 그 느끼한 말. 나는 지나치리만큼 당당하게 콧대를 높이며 대꾸했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그러니까 좀 덜 꾸며도 돼. 조만간 좋은 물건으로 알아봐서 안겨줄 테니까 보채지 말고.”
좋은 물건, 이란 소리에 나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카림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언니에게 준 것보다 더 값비싼 보석이란 소리였다.
속물 같지만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약속이에요?”
“그래. 새끼손가락이라도 걸까?”
카림이 쓱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찍고 나서야 흐트러졌던 마음이 좀 원상복구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여기까지 찾아와서 생떼를 쓴 게 창피해졌다. 슬쩍 고개를 숙인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나한테는 준 적도 없으면서, 언니한테 먼저 주고. 나빠요.”
“어이고, 그게 서러웠어?”
카림은, 정말 날 예뻐 죽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엉덩이를 토닥거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네, 서운했네요.”
“기분 좋네. 질투도 다 하고.”
……질투?
나는 그제야, 마음을 차지하는 이상한 불편함이 질투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카림이 언니에게 귀걸이를 줬다는 이유로.
내 남편이, 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줬다는 게 서운한 일이었을까.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 참…… 못됐다.”
내 잘못을 깨닫자 어깨가 저절로 축 늘어졌다.
그런 내 양어깨를 부드럽게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다정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왜 그래, 너 안 같게.”
“별것도 아닌 보석 때문에 언니한테 질투나 하고.”
자가 반성 시간이 이어졌다. 카림은 상냥한 손으로 내 통통한 뺨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나한테 뛰어온 거잖아? 왜, 예뻐 죽겠는데.”
“저…….”
뭐가 예뻐 죽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둘째 치고. 나는 소심한 목소리로 이실직고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언니랑 싸우다가 도망친 거예요.”
“싸워? 어쩌다가.”
“그럴 일이 조금…….”
차마 올챙이 배와 간에 기별도 안 갈 크기의 뽕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맞을 짓을 했다는 걸 내 자신조차도 너무 잘 알았다.
그것도 질투 때문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있던 나는 아득바득 소리쳤다.
“어, 어쨌든 제가 이겼어요. 안 졌다고요!”
“프리드린?”
카림은 제법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이어 어이가 없다는 듯 읊조렸다.
“이긴 사람은 도망치지 않아.”
“…….”
이보세요. 치사하게 팩트로 때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립니까?
오늘도 팩트 몽둥이로 얻어맞은 내 얼굴이 제법 볼만해졌을 것이다. 카림은 단정한 검지 손끝으로 내 통통한 볼을 두어 번 툭툭 건드렸다.
“너, 이래서 내 취향이라니까.”
“……그, 그런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요.”
내 반응에 카림이 짐짓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에는 묻지 않던 것을 물어왔다.
“내 취향이 뭐가 어때서 그래?”
“그간 릴이 했던 짓을 떠올려 보라고요. 특이하고 이상할 것 같단 말이에요.”
“그래서 네가 특이하고 이상한가?”
되묻는 말에 펄쩍 뛰어야 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저, 절대 아니거든요! 저만큼 예쁘고 귀여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하세요?”
“그렇지. 그러면 내 취향도 예쁜고 귀여운 거야.”
“그런 거예요?”
“당연하지.”
딱 자른 말에 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좀 예쁘고 귀엽긴 하지, 하는 자뻑까지 곁들이면서.
…머잖아 단순하기 그지없는 내 행동을 깨닫고 침울하게 중얼거려야 했지만.
“……나, 어디 가서 사기당하기 딱 좋겠어요. 귀가 이렇게 얇아서야.”
“걱정 마. 당해도 되니까.”
카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도 덧붙였다.
“너 사기당해서 털려봤자 한 달에 팔천밖에 더 나가? 그 정도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님과 함께 사는 데 충분히 치를 법한 대가지.”
팔천이 밖에 소리를 들을 금액이냐고!
저 어마어마한 금전관에 입이 떡 벌어진다. 새삼스럽게도 왕족의 재산이란 감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싶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일단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하비에르가 사기는 당하는 사람이 멍청한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내가 말했지? 애당초 다람쥐는 자기 먹이 숨기고 못 찾는다고.”
결론적으로 나 멍청하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뭐라고 반박을 할 수 없는 게 더 슬펐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한심함이었다.
카림이 내 별명 정말 잘 지었구나! 그래도 징그러운 쥐새끼보다는 멍청한 다람쥐가 낫긴 하다.
“우씨…….”
“처형이 그러더라.”
카림의 입술에서 언니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기분이 또 이상하게 물들었다.
“넌 그런 점이 귀엽다고. 동의하는 바야.”
“이래서 놀려먹을 점이 생기는 게 아니고요?”
“그것도 맞지.”
“…….”
이상하게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남몰래 주먹을 꾹 움켜쥔 나는 겨우겨우 중얼거렸다.
“둘이 죽이 참 잘 맞아요.”
“너랑은 더 잘 맞을걸?”
그 잘 맞는다…… 의 의미가 좀 다르게 들렸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왜 평면 그대로의, 멀쩡한 뜻으로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지?
카림의 말대로 내가 자꾸만 이상하게 듣는 건가? 아니면 카림이 일부러 노리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너 있잖아.”
카림이 꾹 움켜쥔 내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새파란 눈에 붉은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이럴수록 한입에 집어삼키고 싶어지는 거 알아?”
“……네?”
“이제 말뿐인 남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도 될 거 같은데.”
훅 뻗어 온 손이 나를 끌어당겼다. 전달되는 심장 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제법 위험하게 들렸다.
“아무래도 밤까지 못 기다리겠다.”
“모, 못 기다리면요?”
“나 이제 정말 못 참아.”
“참……!”
참아요, 라고 소리치려던 내 작은 목소리는 그의 입술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버둥거리는 날 가볍게 낚아챈 그는 능숙하게 키스해 왔다. 혀를 얽고 차오르는 숨결마저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엄마야.
나 정말 잡아먹히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