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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48화 (4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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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그 말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내가 뭐라고 더 말을 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카림의 편이다 못해, 카림이 말리크를 향해 반기를 든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수긍하겠노라고.

하지만 그 이유가 신앙. 결국은 신앙, 신앙이라.

광신도도 이런 광신도가 없었다.

프레이르를 살아가는 이상 독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신앙은 이 나라의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신앙 때문에 카림을 섬긴다면 그것 나름대로…… 씁쓸한 일이지 않나.

덕분에 카림이 하던 말을 뼛속 깊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서만 인간이라던 그 속삭임.

……뭐, 물론 카림이 만인에게 미친개로 통했기는 하지만 말이다.

* * *

그렇게 찾아온 점심시간이었다. 언니가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점심에 혼자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침저녁은 카림이 같이 먹어주지만, 나름대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시늉을 하는 그는 점심까지 시간을 비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지 않았다. 덕분에 그동안 너무 외로웠다고.

간만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행복한 점심 식사 시간,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새빨간 과일을 보며 물어봐야 했다.

“언니, 이거 뭐야? 처음 보는 과일인데.”

“응?”

언니가 흘끗 과일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뒤틀린 타원형 모양의 과일은 새빨간 게 꽤나 탐스러워 보였다.

이윽고 언니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게. 나도 처음 보네. 이게 뭐지?”

언니는 별 의심 없이 과일을 집어 들었다. 언니가 과일을 베어 물자 톡,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눈을 동그랗게 늘였다.

“맛은 있네. 먹어봐. 딱 네가 좋아할 거 같은데?”

“그래?”

아무리 날 놀려먹는 걸 좋아하는 언니라고 해도, 내가 아팠기 때문에 먹는 걸로 장난을 치지는 않았다. 언니를 따라 과일을 집어삼켰다.

과일을 깨물자마자 입 안 가득 달콤한 과즙이 번졌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하면서도 텁텁하지 않아서, 내가 정말 딱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맛있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과일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오늘 점심의 주식은 과일이 될 것 같다. 아니, 한동안 이 과일만 찾지 않을까.

그러던 중, 언니가 보란 듯 자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입술을 뗐다.

“참, 이거 봐라~”

“응?”

언니의 귀에서 내 눈만 한 크기의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반짝거렸다.

내가 아무리 보는 눈이 없어도, 작은 성 한 채를 살 수 있을 법한 진귀한 물건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언니가 쉽게 살 수 있는 보석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형부가 주는 품위유지비를 평생 모아도 사지 못할 수준이다. 덕분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야 했다.

“이게 뭐야? 누구 거 훔쳤어?”

“제부가 줬지롱~”

평소였으면 훔쳤다, 소리에 내 머리를 쥐어박았을 언니는 날 약 올리듯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대꾸할 뿐이었다.

근데…… 누가 줘? 제부?

“……제부?”

제부, 언니가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는 말. 한 박자 늦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내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어깨를 들썩였다.

“카, 카, 카림 말이야?”

“어머, 당연하지. 내가 여동생이 너 말고 또 있었나?”

“제, 제부라고? 언제부터 카림을 그렇게 불렀어?”

“오늘 아침부터?”

언니가 보란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덕분에 돋보이는, 반짝이는 눈알만 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란.

……우, 우씨. 저게 부러우면 지는 거지? 그런 거지?

그런데 부러운 마음 외에 이상한 마음이 날 좀먹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불편함이었다.

내 불편함을 모를 언니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제부, 아주 통 큰 사람이더라? 호호, 역시 품위유지비를 팔천이나 기꺼이 주신다고 하실 때 알아봤어야 했다니까!”

그 품위유지비 팔천, 처음으로 쓴 게 언니잖아! 나는 아직 한 푼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언니는 날 놀려 먹으려는 시동을 걸고 있었다. 저기에 넘어가면 내가 지는 거다. 입술을 비죽 내민 나는 툴툴거렸다.

“……언니는 좋겠네.”

“응? 뭐가 좋아?”

“동생 잘 둬서! 난 아직 받아보지도 못한 다이아몬드도 받고!”

“그럼, 당연히 좋지.”

휙 손을 뻗은 언니가 내 머리를 사정없이 헝클어뜨렸다. 돈 밝히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언니는 제대로 된 물건을 받아서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 쥐새끼, 넌 평생 내 거야.”

언니의 능숙한 손길 밑에 내 머리카락이 마구 흐트러졌다. 날 향한 아낌없는 애정이 느껴졌지만 찝찝한 내 기분은, 이상한 불편함은 도무지 가실 줄을 몰랐다.

“다음에는 목걸이까지 부탁할게. 귀걸이하고 목걸이는 한 세트로 해야 예쁘다? 반지까지 같이 하면 더 좋지만 반지는 클리드에게 받아야지. 어휴, 그래도 내가 이 정도 양심은 있어.”

언니는 장난스럽게 내뱉었지만 괜히, 카림이 언니에게 반지를 주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다.

…왜인지 모르게 굉장히 보기 싫은 그림이 그곳에서 피어났다. 으, 너무 싫어.

뺨에 바람을 넣어 둥글게 부풀린 나는 비뚤게 중얼거렸다.

“……흥. 동생이나 팔아먹고. 나쁜 언니. 못된 아리엘.”

“요게 버릇없이, 언니 이름을 막 불러?”

“아얏!”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손이 그대로 이마를 쥐어박았다. 얼마나 세게 쥐어박았는지,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힝, 왜 때려!”

“새파랗게 어린 게. 버릇없으면 혼나야지?”

입술을 비죽거린 나는 알아서 매를 벌었다.

“……올챙이 배 언니에게 다이아몬드는 너무 과분한데. 귀걸이 나 줘. 같은 크기의 뽕으로 바꿔 줄게.”

“프리드리인?”

사근사근하게 나를 부르는 언니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들렸다면, 내 귀의 착각이 아닐 터였다. 날 응시하는 언니의 두 눈이 시뻘겋게 번뜩이는 것만 같았다.

“착하지? 다시 말해보렴?”

당연하게도 올챙이 배 언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 * *

언니와 한 차례 시원한 혈투를 벌인 나는, 절대적인 내 편일 카림에게로 도망쳐야 했다. 겨, 결단코 내가 싸움에서 졌거나 언니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게 아니다.

“역병이라고는 합니다만.”

카림이 있는 영주의 집무실에서는 제법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좀…… 이상한 건 사실입니다.”

“뭐가.”

“다수가 같은 증세를 보이며 죽어가는 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병이라고 여긴 것인데, 다만…….”

말꼬리를 흐린 영주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그간 역병이라고 하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집단적으로 걸리는 경향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역병은 신께서 내리는 벌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역병이 번져 나가는 것은 사람의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물론 저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병에 걸린 사람의 근처에 가면 함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드문드문…… 발병한다고 해야 할까요.”

“신께서 벌을 내리고 싶은 인간이 드문드문 있을지도 모르지.”

카림은 심드렁하게, 농담처럼 대꾸했다. 영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드물게 생존하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만, 생존한 사람들은 갑작스레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물론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만 역병의 증세와는 다른 고통을 말합니다. 게다가 한 번 역병에 걸렸다고 해서 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요.”

“흠.”

카림은 심드렁한 목소리를 냈다. 그 태도를 보면 영주가 말한 바를 알고 있었는데도 부러 모른 척해온 게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일단 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보았다.

“릴!”

“프리드린?”

내가 등장함과 동시에 집무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바닥에 무릎을 붙였다. 반면 내게 서둘러 달려온 카림은 일단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 뺨에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춰대며, 아주 느끼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건 덤이었다.

“벌써부터 보고 싶어서 왔어?”

“…….”

이, 이 인간이 미쳤나.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이 자리에서 내뱉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불퉁한 얼굴이자, 집무실 안의 사람들을 돌아본 그가 툭 내뱉었다.

“오늘은 먼저 갈게. 다들 적당히 하다 가.”

그대로 내 어깨를 끌어당긴 카림이 자연스레 나를 인도했다. 집무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웬일이야? 여기까지 오고.”

두어 발자국 떼던 카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던 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다 불쑥 내뱉었다.

“……나도 주세요.”

“응?”

“왜 언니만 줘요?”

내 언니였지만,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내 언니였지만.

정작 그가 언니에게만 어떤 걸 줬다는 사실에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마음이 이상하게도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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