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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33화 (3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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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와 카림은 귀빈이었다.

그 말인즉 나와 그가 오펠에 온 걸 환영하는 연회가 성대하게도 펼쳐졌단 소리다.

처음에는 내 눈치를 슬슬 보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부어라 마셔라 술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카림과 한 약속이 있던 나는 당연히 술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흑흑.

얼근하게 취해가는 이들을 관찰하던 나는 슬그머니 카림의 허리를 쿡 찔렀다.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뭘.”

“역병이 돌고 있다잖아요. 이렇게 맘 편하게 먹고 즐겨도 되는 거냐고요.”

“오, 역시 이그드라실은 다른가.”

싱거운 소리를 한 카림이 술잔을 뱅뱅 돌렸다. 이윽고 단 냄새가 나는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 치사해. 나는 한 입도 못 먹게 하더니!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술을 비운 카림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신민 걱정을. 카림의 성후로서 아주 좋은 자세야.”

내 입술이 댓 발 정도 튀어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농담 아니거든요?”

“알아. 근데 그쯤에서 신경 꺼.”

연회에 취한 사람들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참…… 무미건조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 옳을까.

가끔 카림이 저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가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카림은, 릴 데스테리언은 저런 인상이 아니었으니까. 왕실의 망나니였지.

…뭐, 진짜 망나니는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만.

어쨌든 신경 끄라는 말은 내가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신경 끄라뇨. 아버지께서는 늘 영주민을 제 몸같이 돌보라고 하셨다고요.”

그래, 바로 저것.

아버지는 고루할 정도로 올곧은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교육받은 내가 어떻게 올곧지 않은 일을 하겠냐고.

물론 언니는…… 음. 우리 멋진 언니는 예외로 치자.

“사람들이 역병 때문에 고생하는데 우리는 부어라 마셔라, 놀자판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양심이 쿡쿡 찔려요.”

“그것참, 장인께서 너무 좋은 분이셔도 문제네.”

툭 대꾸한 카림이 지나가는 시종을 붙잡아 다시금 술을 받아냈다. 습관처럼 술잔을 뱅뱅 돌리며 말을 이었다.

“프리드린. 그거 알아?”

“뭘요?”

“네가 말리카였으면 지금 네 자세가 정말 좋다고 칭찬해줄 수 있거든. 신민을 제 몸같이, 참 이상적이잖아.”

“……아.”

그 오묘한 말에 내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다.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라고 생각한 듯 카림이 눈을 휘었다.

“지금,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명령해도 되는 사람은 형님뿐이거든.”

그, 그렇겠지.

나는 동의한다는 듯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경고처럼 속삭였던 카림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 이런 것도 포함이겠구나. 나 정말 살얼음판 위에 발을 디뎠구나.

카림은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기 싫으면 아무 생각하지 말고 즐겨.”

“……네에.”

죽기 싫으면, 이라는 말은 내 이상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죽는 것보다는 양심 아픈 게 낫지. 내 원대한 꿈은 무병장수일 뿐이라고! 가늘게 살아도 좋으니 길게 살 거야!

“그래, 착하다.”

따뜻하게 중얼거린 카림이 훅 손을 뻗었다. 누구와 다르게 풍성한 내 머리 위에 손을 얹더니 사정없이 흐트러뜨렸다.

……아니, 내가 무슨 강아집니까. 멍멍이는 당신이지 않나요!

“하, 하지 마요.”

“왜. 내가 내 아내 머리도 못 만져?”

“계약서에 이런 말은 없거든요!”

“거참, 까다롭기는.”

투덜거리는 듯했던 카림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니까.”

“댁 마음에 들라고 이러는 거 아니거든요!”

“그래, 의도는 잘 알겠어. 그런데 결과가 이런 걸 어떻게 해? 뭘 하든 마음에 쏙 드는데.”

“씨이…….”

결국 한 마디도 이기지 못한 나는 씩씩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말로는 이 인간을 절대 이길 수 없겠지. 아니, 이 세상에 내가 말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괜한 자죄감에 입술을 씰룩거릴 적 누군가 슬그머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두 분, 금슬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그, 금슬?’

저 끔찍한 단어 선정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온몸을 파들파들 떨던 나는 발악에 가까운 목소리를 짜냈다.

“그게 무…….”

“신혼이니까.”

덜덜 떨리는 내 어깨를 자연스레 끌어안은 그가 속삭였다. 이어 보란 듯 내 뺨에 입술을 들이밀었다.

쪽 소리가 남과 동시에 기겁한 내가 소리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카…… 릴!”

“왜.”

나와 시선을 맞댄 그가 뇌쇄적인 웃음을 보였다. 은밀해진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이걸로는 부족한가?”

그 의미심장한 말에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의 시선이 음흉해졌다. 무슨 동물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시선에 기가 찰 지경이다.

“아니, 제가…….”

“그럼 슬슬 돌아갈까?”

내 말을 끊은 카림이 가만히 내 손을 붙잡았다. 다 들으라는 듯,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색다른 곳에서 즐기는 건 새로운 맛일 거야.”

“…….”

순간 기가 막힌 난 입술만 달싹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듣는 사람이 이상한 상상 할 거 아니냐고! 벌써부터 저런 오해 받고 싶지 않단 말이야!

얼근하게 술에 취해 있던 사람은 씨익 웃으며 한마디 할 뿐이었다.

“신혼은 참 단꿈이지요.”

가볍게 눈을 찡긋거린 카림은 내 무릎 밑에 손을 집어넣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연회장을 빠져나와 조용한 복도에 나를 내려놓았다. 땅바닥에 발을 디딘 나를 내려다보며 어김없이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살 좀 쪄야겠다, 너.”

내 덕에 압사당할 뻔했다고 말할 땐 언제고! 입술을 비죽거린 나는 조금 전의 발언을 따져야 했다.

“……오해하기 좋게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오해? 무슨 오해.”

“무슨 오해라뇨, 정말 몰라서 물어요? 뻔뻔한 파렴치한이야!”

“다람쥐야.”

카림은 얄밉게도 웃으며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부끄러움 많은 게 귀여운 건 한순간이다?”

“뭐……. 그게 무슨 의미예요?”

“너 얼굴이 새빨갛거든. 네 머리카락만큼이나.”

그 말에 깨달았다, 얼굴에 피가 몰려있다는 걸. 그걸 깨닫자 주변 공기가 덥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할 말을 상실한 내가 입술만 달싹거리자 카림은 어김없이 날 놀려먹었다.

“엉큼한 생각 적당히 해.”

“어, 어, 어, 어, 엉큼한 생각이라뇨!”

내가 언제! 엉큼한 생각을! 했다고!

나름대로 억울했던 나는 울상을 지으며 외쳐야 했다.

“이, 이거 성폭력이에요! 성희롱이라고요!”

“아하. 그렇게 받아들였던 거구나?”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네가 엉큼하단 말을 듣는 거야. 난 못다 한 카드 게임이나 하자는 거였는데.”

뻔뻔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는 발언이었다.

복도에 멈추어 선 나는 한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얄미운 카림은 생글생글, 잘만 웃고 있었다.

“정말…… 정말 너무해요.”

“왜. 우리 어제 카드 게임 하다 말았잖아? 내가 이기기 직전이었어. 난 그 얘기를 했을 뿐인데.”

…그건 사실이었다. 열 판을 내리 진 나는 바짝 약이 올라 있었고, 한 판만 더를 외치다가 마지막 게임은 하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었다.

“그걸 누가 색다른 곳에서 즐긴다고 표현하냐고요.”

“오펠이 색다른 곳인 건 맞잖아? 내 순수한 의도를 오해하고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 너하고 성주지.”

본인이 저렇게 주장하는데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카림이 대놓고 말을 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성주가 이상한 건 아니야. 어쨌든 우린 신혼이니까.”

저 말도 맞았다. 언니의 말대로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가장 꿀이 떨어질 시기니까.

“프리드린,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 다들 눈 빠지게 지켜보고 있을걸? 네가 언제 아이를 가지는지.”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이라니? 무슨 백 년은 이른 소리야!

“네에에에?”

“조용히 있어도 다들 염두에 두고 있는 일이라고. 그러면 사이가 좋아 보이는 편이 낫지 않나?”

소박데기 소리 듣는 것보다야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쯤 울상이 된 나는 겨우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저런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단 말이에요…….”

“왜? 방금 알아듣게 설명한 거 아닌가?”

카림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 이 마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직 난 부끄럽단 말이야. 언니처럼 철면피가 아니라고!

얼굴이 더 새빨개진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뭐라고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저런.”

내 상태를 본 카림이 가볍게 혀를 찼다.

“다람쥐야.”

카림이 내 뺨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대게 했다.

양 뺨을 둥글게 부풀린 나는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요.”

“키스는.”

귀에 닿는 목소리가 참 색스러웠다. 미끄러진 손가락이 내 입술을 매만졌다.

“해 본 적 있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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