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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29화 (2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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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꿈속에서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은 천만다행히도 존재하지 않았다.

뚝, 소리가 나며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뽑혔을 뿐.

나는 그 머리카락을 이리 보고 저리 봐야만 했다. 다행히 모근이 보이는 게 가짜는 아닌 모양이다.

기막힌 시선으로 나를 본 카림이 중얼거렸다.

“……와, 이제는 남편 머리도 막 뽑아버리네.”

“다, 다행이다.”

“왜.”

내 안도의 한숨에 그는 기막힘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머리 남편은 싫어?”

“다, 당연하죠! 누가 좋아해요!”

“한 달 품위유지비로 팔천이나 주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휴, 정말 다행이다. 가슴을 붙잡은 나는 진심을 다해 안도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자.

카림은 애초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건 외모뿐인데, 대머리였어 봐.

내 남은 평생이 우울해졌을지도 모른다. 팔천 정도로는 대머리를 이길 수 없다.

카림은 관자놀이를 또다시 압박했다.

“참…… 처형 봤을 때 느꼈는데, 너도 만만찮게 엉뚱하다.”

“아무리 그래도 릴보다 엉뚱하지는 않잖아요.”

“아니, 네가 더 엉뚱해. 지금 대머리가 중요해? 너, 형님 가발을 벗겼다니까?”

…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는데.

내가 괜히 딴청을 부리자 그는 묵직하게 말을 이었다.

“사고는 치고,”

윽!

“기억을 못 하고,”

악!

“걱정도 안 해.”

한 마디, 한 마디 끊어 말하는 게 나를 툭툭 때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이보세요. 치사하게 왜 팩트로 공격하세요?

공정하게 날조와 선동으로 때려달란 말입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카림은 어울리지 않게도 진지하게 속삭였다.

“내 골치가 다 아프다.”

“있잖아요.”

나는 그런 카림의 앞에 바짝 엎어졌다. 최대한 불쌍한 시늉을 하면서.

“……최대한 편안하게 죽여주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가차 없이 하는 대답에는 고개를 다시 바짝 들어 올려야만 했지만.

그의 눈이 장난기로 빛나고 있었지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쳐 온 내게는 전혀 장난처럼 들리지가 않는 말이었다.

“저, 정말요?”

“응.”

“저, 저 죽이실 거예요?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아내를요?”

“다람쥐야, 생각해 봐.”

그는 가벼운 어조로 전혀 가볍지 않은 내용을 말했다.

“말리카가 나서면 정말 고통스럽게 죽을걸? 내가 그 전에 편하게 샥.”

장난스럽게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마저 한다. 덕분에, 내 눈앞에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 그려졌다.

카림의 앞에 있는 나는 사자 앞에 선 다람쥐에 불과했다.

…근데 사자가 다람쥐도 먹나?

“흐음, 어떻게 죽여야 할까.”

카림이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듯했다.

그 ‘죽인다’라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자, 잘못했어요.”

일단 무릎에 매달렸다.

죽기는 싫단 말이다! 이 좋은 세상에서 누가 죽고 싶겠어!

……죽을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거다.

“제 꿈은 무병장수라고요.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단 말이에요. 그래서 릴의 청혼도 거절했던 거고, 죽인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승낙…… 아무튼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요! 아팠던 것도 억울한데 일 년 만에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그게 꿈이면 왜 그런 짓을 했어. 물은 벌써 엎어졌다? 내가 아니라 네가 엎었어. 난 못 주워 담아.”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울상인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카림이 천천히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귓가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두 번 다시 술 마시지 마.”

“그, 그럼 살려주실 거예요?”

“글쎄. 아마도? 적어도 노력은 해 보겠지.”

아마도라니. 그 불확실한 대답에 나는 항상 그렇듯 말꼬리를 잡았다.

“……그러면 술 마시면요?”

“마시면?”

카림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잠시 고민하는 듯 짧게 앓는 소리도 냈다.

“음.”

제법 긴 고민의 시간 끝, 나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더 열기가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걸까.

카림이 내게 조금 더 바짝 밀착했다. 묘하게 위험해진 공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연회에서의 그 일이 생각났다.

그때 어떻게 됐더라.

이번에도 낚이면 난 인간이 아니라 정말 다람쥐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연회에서와는 다르게 정말로 입술을 겹쳐 와서.

갑작스러운 일에 파리하게 굳어버렸다.

말캉한 살덩이가 빳빳하게 굳은 내 입술을 비집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내 안을 자극했다.

동시에 저도 모르게 움직인 손이 그의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찰싹.

제법 요란한 마찰음이 들렸다. …조금 전 베개를 휘두를 때에는 내 손목을 붙잡았는데, 이번에는 순순히 맞아주었다.

“이게 뭐, 뭐, 뭐, 뭐, 뭐, 뭐예요!”

화들짝 놀란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내게서 멀어진 그가 물어왔다.

“왜. 그렇게 싫어?”

맞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라고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구든 이런 식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는 멍청하게 입술을 매만졌다. 그런 나를 본 그가 씨익 웃었다.

“근데 이건 약과다?”

“야, 약과요……?”

“지금 네 꼴이 어떤지 봐 줄래?”

그 말에 내 모습을 다시 살펴야 했다.

…훌륭하게도 상반신 탈의 중이셨다.

이 위대하신 남편님의 말씀에 의하면 덥다고 옷을 다 벗어 던지고 토악질까지…….

“다음에는 더한 일이 있어도 난 모른다?”

“더, 더, 더한 일이요?”

“다시 그러면.”

그의 말이 끊어져서 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냉큼 잡아먹을 줄 알아.”

내게 다시 가까이 다가붙은 카림이 손등으로 내 뺨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니까 술 먹지 말자, 다람쥐야?”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린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아주 효과 좋은 경고였다.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성을 간다.

“좋아, 그러면 더 쉬어. 내일 아침에 깨워줄게.”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도 아프고, 온몸도 쑤시는 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머잖아 노곤한 수마가 날 덮쳤다.

* * *

“프리드린, 살아 있니?”

언니의 목소리에 나는 멍청하게 눈을 끔뻑였다.

세상에, 술이 정말 독한 것인지.

연회부터 이틀이 지난 아침이었지만 아직도 머리가 욱신거렸다.

“응…… 아니…….”

겨우 대답한 나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아직 말리크도, 말리카도 그 어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 없으니까 도리어 불안했다.

대체 어떤 벌을 내리려는지.

고개를 바짝 들어 올린 나는 애타게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나 이제 얼굴 들고 어떻게 다녀?”

“왜, 재밌는 구경거리였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걸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을 줄이야!”

“소문? 무슨 소문?”

“응. 말리크께서 대머리라는 소문이 파다했거든.”

아무래도 공공연한 소문이었던 듯싶다. 말단 시녀였던 내 귀에는 닿지 않은.

까르륵 웃음을 터뜨린 언니는 은근슬쩍 덧붙였다.

“카림께서는 멀쩡하시니?”

“응, 당연하지!”

내 남편이 대머리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사기 결혼으로 당장 이혼할 거야.

…아, 이혼 못 하지! 빌어먹을 혼전계약서 때문에!

내가 속으로 울상을 지을 적 언니가 짓궂게 한마디 했다.

“그걸 벌써 확인했어? 어떻게 확인했어? 또 벗겼니?”

“……버, 벗겨?”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카림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벗겼지.’

그리고 그다음에…….

얼굴로 피가 확 쏠렸다. 순식간에 잘 익은 토마토가 된 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내 이상한 반응에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 지금 무슨 상상 하니?”

“아, 아무것도…….”

“뭐가 아무것도야. 벗겼다는 말에 빨개진 거 보면…….”

언니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손바닥으로 내 작은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우리 쥐새끼, 요 작은 머리로 무슨 앙큼한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안 봐도 선하다, 선해!”

“아, 아니거든!”

“무슨! 야한 생각 하다가 딱 걸렸지? 들켰지? 시집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요망한 건지. 늦바람이 무섭다니까.”

“늦바람이라니!”

내가 늦바람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잖아! 그리고 억울했다, 정말 저런 생각을 했으면 모를까!

“그냥 카림이 이상한 소리를 한 게 떠올라서 그래!”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셨는데?”

“벗겼지! 라고 했단 말야!”

“뭘? 그게 중요하지.”

“형님의 가발을.”

웃음을 터뜨린 언니는 그대로 뒤집어졌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때리면서, 눈에 눈물까지 달아가며 웃어댄 언니는 겨우 속삭였다.

“사, 사실이네, 사실이야. 네 반응이 눈에 선하다, 선해.”

“내 반응이 뭘?”

“뭐긴 뭐야, 보는 사람이 즐거운 거지. 내 쥐새끼지만 놀려먹기 딱 좋다니까. 이 재미를 또 누가 알까 몰라.”

그렇게 말하는 언니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눈앞의 인간이 언니인지 원수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휴, 착한 내가 참자.

“그래서 카림은 뭐라시디?”

“나, 날 죽이겠다잖아.”

“죽여?”

반쯤 울먹거리며 한 말이었지만,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언니, 지금 하나뿐인 동생이 죽을 위기에 봉착했단 말이야!

“아무래도 그 죽인다가 그 죽인다가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뭐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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