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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21화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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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긴 했다.

애초에 귀족의 정점인 성주와 왕족의 일원인 카림도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고작 영주의 딸에 불과했던 내 신분이 카림의 성후로 수직상승 하는데 어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좀 씁쓸하지만, 언니도 이전처럼 나를 막 대하지 못하겠지.

물론 지금은 단순히 결혼한 것 이상이 되었지만.

…살아있는 신이라니.

내가.

더한 어색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네 부모님은 신을 낳은 분들로, 세린 성주 부부는 신의 조부모로 추앙받을 거야. 그렇게 엄청난 영예를 얻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속삭임이었다.

“그 사람들이 널 이전과 똑같이 대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에이, 설마.

오래도록 아팠던 내 인간관계는 지극히 협소했다. 시녀들도 어릴 때부터 친한 사람들끼리 파벌이 나뉘어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가족은 내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사이가 돈독했고, 내가 부모님의 딸이자 조부모님의 손녀라는 것은 변하는 게 아니었다.

내 알맹이는 그대로 프리드린 라비아인걸.

내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 * *

“이그드라실께 무한한 영광을.”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다리고 있던 여섯 사람이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말리크도, 말리카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까지.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물론 나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이그드라실이라고 나타났다면 저렇게 행동했을 터였다. 프레이르에서 이그드라실이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내 가족이었고, 이 나라의 지배자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우러러봤던 사람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일이었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때문에 당혹으로 물든 내 목소리는 마냥 흔들릴 뿐이었다.

“왜…… 왜들 이러세요?”

“응당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대표로 나선 말리크가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레이르에서 이그드라실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말리크라 하여도 한낱 인간에 불과한데 어떻게 감히 신을 능멸하겠습니까?”

너무 정중해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고 있을 때, 말리카가 우리 사이에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제 곁에 일 년이나 계셨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점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시지요.”

“아름다운 말리카…….”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 여기고 있긴 했어요. 허나 이 모두, 제가 아둔하여 생긴 불상사입니다.”

마지막 말을 남기며 말리카가 입술을 짓씹은 것 같았다. 카림이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한마디 했다.

“아름다운 말리카께서 제게 주신 선물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지요.”

……그놈의 것.

사람한테 이것저것 하지 좀 말라고!

차분하게 대꾸하는 말리카의 서슬이 어딘지 모르게 시퍼랬다.

“네, 당연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죄송해서 어쩝니까. 정말, 이렇게 가장 훌륭한 선물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아름다운 말리카께서는 기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말리카를 놀리는 소리였다. 말리카는 웃는 낯 그대로 천천히 반격했다.

“당연한 말씀을 왜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그드라실께서 재림하셨으니 우리 프레이르도 무한한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겠는지요? 하물며 그 짝이 이그드라실의 유지를 이으시는 분.”

그 목소리가 마치 칼날처럼 부드러웠다.

“신화의 재연이니, 우리가 걸어갈 길이 정말로 찬연하겠어요. 이 기적의 시대를 함께해 기쁘기 한량없답니다.”

“아름다운 말리카의 기쁨이 곧 프레이르의 기쁨이지요.”

두 맹수의 기 싸움을 뒤로한 채, 나는 떨리는 발걸음을 옮겨 어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앞에 멈추어 서자 어머니가 흠칫 몸을 떠시는 듯했다.

조심스러운 부름에,

“어머니.”

“하문하소서.”

들려온 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할 말을 상실한 나는 입술만 덜덜 떨었다. 천천히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대답 대신, 내 드레스 자락에 입을 맞추었다.

날 무척이나 아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내 가족은, 내 앞에서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가족은 날 더 이상 자신의 가족으로 대하지 않았다.

내가 이그드라실에 꽃을 피워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 충격은 생각 외로 커다랗게 나를 감쌌다.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는 카림의 말이 귓가에 어지럽게 떠돌았다. 이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예전처럼 대하지 않을 거란 말도.

‘왜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난 여전히 아버지 어머니의 딸인 뿐인데, 내 안에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어제까지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전혀 다를 게 없는데.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세상이 뱅글 돌았다. 미끄러지듯 카림을 붙잡았다.

말리카와 한참 입씨름을 하고 있던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마 내 뺨이 창백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나올 뒷말들은……. 응? 왜…… 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카림이 조심스럽게 나를 부축했다. 말리카와 기 싸움을 하던 것도 잊은 채 말리크를 돌아보았다.

“프리드린도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가장 먼저 형님을 뵈러 가겠습니다.”

“……그래.”

말리크의 답이 들렸다.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카림이 방 안으로 나를 인도했다.

“아, 말리카 표정.”

방문이 닫히자마자 카림은 가벼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천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네. 속이 다 후련하다.”

…그 활기찬 목소리 속에서 얼추, 카림이 내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지금 겪은 걸, 그는 오래전.

고작 다섯 살 때부터 겪어왔을 테니까.

자신이 경험자라서 한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경험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충고였을 것이다. 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이 사람도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외로웠구나.

저렇게 밝은 시늉을 하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내게 보여준 행동이 하나하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내 날 놀려먹었지만 구김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밝은 모습들.

……아니.

그 일련의 일들 속에서 묘한 걸 깨달은 나는 침대에 가만히 걸터앉았다.

카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릴.”

“응? 오, 처음으로…….”

내 얼굴을 본 카림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어느덧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신속하게 내 앞으로 날아온 카림이 눈물로 젖은 내 뺨을 매만졌다. 천천히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왜 울고 그래. 뚝.”

나는 카림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내가 깨달은 ‘묘한 것’을 읊조렸다.

“……다, 당신은 다 알고 있었죠.”

“응? 뭘 말이야?”

“내가…….”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 입으로 신이 어쩌고 하기에는 너무 닭살 돋았다.

“이그드라실에 꽃을 피울 거란 거.”

그대로 굳은 카림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부정도, 긍정도 없었다.

그동안의 태도를 보면, 카림이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세상천지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다.

내가 ‘무엇’인지.

“내게 청혼한 이유도 그거 때문이죠?”

이어진, 질문을 빙자한 추궁에도 그는 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둬야 할 듯해서, 나는 한 가지 제안했다.

“혼전계약서에 한 줄 추가하면 거기 도장, 제가 찍은 거라고 인정할게요.”

“……뭔데.”

“거짓말하지 않기. 비밀 만들지 않기.”

끙, 소리를 낸 카림이 내 옆에 걸터앉았다. 내 제안에 수긍한 듯 비로소 입을 열었다.

“뭐…… 그래. 일단은 알고 있었어.”

선명하게 떨어진 긍정에 카림에게 바짝 매달렸다.

“언제요? 대체 어떻게?”

“처음 만났을 때.”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어디에 있든 난 널 느낄 수 있다고 했잖아.”

…그 삼류 로맨스 소설 대사, 그냥 한 말 아니었니?

“생전 처음 드는 이상한 기분이었지. 손발이 떨리고 불안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무섭고, 두렵고, 이름 모르는 이상한 공포심이 치솟잖아. 그런데 그 감정 속에서 누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

카림을 처음 만난 그날.

그건 내가 느꼈던 마음 거의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따라 달려갔는데.”

카림이 천천히 내 뺨을 쓰다듬었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그곳에 네가 있었어.”

“…….”

“보자마자 알았어, 오래전 신화에서 이야기한 나의 신께서, 드디어, 내 곁에 오셨구나. 마침내. 유구한 기다림 끝에.”

한 마디, 한 마디 벅찬 감정이 가득했다. 이상하게도 카림이 나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카림은 혼란스러운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 속삭였다.

“설명이 됐어?”

“네…… 아니, 잠시만요.”

또다시 뭔가 걸리는 게 생긴 나는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렸다.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어디에 있든 절 느낄 수 있다고요?”

“응.”

“그러면 그…… 욕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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