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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지 마세요 (30)화 (30/136)

30화

“수상한 자들을 어디에서 봤습니까?”

갈라테이아 인근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순수하게 사냥을 하러 온 자들, 가죽과 고기를 얻으러 온 사람들, 혹은 사고를 위장해 위험한 일을 꾸미는 자들로 말이다.

사냥터는 버트란드 가문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일대에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을 별도로 설치할 만큼 사건 사고가 잦았다.

살인을 저지른 자를 찾으러 나온 병사들 역시 버트란드 가문 소속이었다.

키가 몹시 크고 체격이 좋은 병사 하나가 묻자 루시안이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사냥을 가기 전, 아내가 아직 승마에 익숙하지 않아 이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려 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루시안은 라비엘리가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라비엘리는 표정 없이 등허리를 세우고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발목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걸 보지 못했다면, 어디가 아픈 사람이라고는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그래서요?”

“그런데 갈라테이아로 들어가기 전, 이오네의 돌 근처에서 사내 두 명이 싸우는 걸 보았죠.”

병사 중 손가락이 길고 마른 사내가 그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서쪽에 있는 이오네의 돌 말입니까?”

“네.”

라비엘리는 그때, 루시안과 앉아 쉬었던 거대한 바위가 이오네의 돌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라비엘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갈라테이아에 관해 꽤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왜 그건 알려주지 않았을까.’

더하여 지금의 상황이 끔찍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미쳤어. 미친 사람이 분명해.’

아침에 제 상처를 봐준 뒤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라비엘리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의지할 자는 루시안뿐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밤 그녀의 은밀한 곳에 약을 바르고 있었으나 그 이상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며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매너가 있었다.

더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내지만 저택으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준비된 아침 식사 중 수프만 두어 숟갈 뜬 뒤 물렸을 때까지만 해도, 오전에 찾아왔다는 병사들이 다시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커졌을 때까지만 해도.

라비엘리는 루시안 마이어를 믿었다.

그러나 병사들을 부른 게 루시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라비엘리의 모든 믿음과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쉽지 않겠구나, 여기서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

저택으로 돌아가는 건 고사하고 살인자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병사들을 부른 거지?

날 함정에 빠뜨릴 생각인 걸까?

그 와중에 루시안은 태연한 얼굴로 서늘한 눈을 가진 사내들을 맞이했다.

그는 라비엘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범하고 무서운 자였다.

왜 병사들을 불렀는지 따져 묻고 싶었으나 지금은 루시안을 따라 말간 얼굴을 유지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라비엘리는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으나 그가 멋대로 벌인 판에 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초조하게 이어지던 생각이 돌연 어딘가에서 뚝 멈추었다.

‘여기서 내가 루시안이 범인이라는 걸 말한다면?’

가만히 앉아 있던 라비엘리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다리가 떨려온 탓에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혼자 말을 타고 달리다 낙마했고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지나던 사냥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겁탈을 당할뻔했다…….’

거기까지 떠올렸을 때 라비엘리는 어쩔 수 없이 어깨를 움츠렸다.

병사들이 제가 긴장하는 모습을 봤을까 봐 황급히 몸을 세웠는데,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 루시안이 나타나 사내의 머리에 총을 쐈다. 그리고 다른 사내에게도 총을 쐈다. 경고 사격도, 무엇도 아니었다. 저항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이 죽었고 우리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피와 진흙으로 엉망이 된 드레스와 부러진 발목이 증거다.

‘발목에 난 상처 때문에 묻은 피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피가 묻었어. 로제에게 말하면 증인이 되어 주려나?’

하지만 그 부분에선 확신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내 말을 믿어줄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라비엘리의 머릿속은 차분해지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라비엘리는 제 모습이 낯설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전부 진술한다면 일단 루시안은 끌려갈 거야. 나는 단순한 목격자이니 함께 가지는 않을 테고 그럼 저택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자 묘하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루시안 마이어는 누구인가.

지금껏 저를 불편하게 했던 사내다.

평화롭지는 않았으나 조용했던 제 삶에 돌을 던진 자다.

그가 만들어낸 파장은 얼핏 단순해 보였으나 점점 그녀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 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제게 친절한 듯했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고, 뒤로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모를 사람이었다.

반강제로 갈라테이아까지 끌고 와 불안에 떨게 했으며 돌아간 이후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만약 여기서 그가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다면, 후작에게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생기지 않을까.

‘미쳤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나 라비엘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병사들에게 루시안의 살인을 고백하는 짓 따위는 결코 할 수 없었다.

이 가설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다.

루시안은 재미 삼아 살인을 저지른 것도, 실수로 누군가를 해친 것도 아니다.

라비엘리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사냥을 가는 것 같았는데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멀리서부터 큰소리가 나기에 쳐다봤는데 잠시 말소리를 줄이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 다시 험악한 말이 오가는 것 같았습니다.”

라비엘리는 루시안이 태연히 거짓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가 오전에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면 코가 빨개져.’

‘뭐라고요?’

‘나는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것 같습니까?’

‘…….’

‘지켜보면서 차차 알아봐요.’

저도 모르게 루시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저와 단둘이 있을 때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동료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만큼.”

“두 사람이 다투면서 지나갔다는 겁니까?”

“네.”

병사의 질문에 루시안이 가볍게 대답했다.

‘거짓말.’

라비엘리는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가져온 수첩에 내내 메모를 하던 병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루시안을 한 번 쳐다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들의 인상착의가 혹시 기억나십니까?”

병사의 질문에 루시안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며 고개를 한쪽으로 틀었다.

사실 생각을 떠올려야 할 정도도 아니었다.

제가 총을 겨누고 최후를 본 자들의 마지막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이 워낙 험악하게 싸운 탓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억나는 대로 말하자면…… 한 명은 양 볼이 오목할 정도로 말랐고 녹색 조끼를 입고 있었어요. 다른 한 명은 덩치가 좋았던 것 같군요. 아, 그리고 인중과 턱 아래가 전부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루시안의 말에 병사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머리와 배에 구멍에 뚫려 죽은 사내들의 인상착의와 정확히 일치했다.

병사 중 한 명이 수첩을 접으며 루시안에게 말했다.

“번거로우실 텐데 이렇게 증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거롭다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병사는 수첩을 한 손에 움켜쥐며 이번에는 라비엘리 쪽을 쳐다보았다.

“부인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병사의 말에 라비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루시안이 죽은 사내의 인상착의를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라비엘리는 이제 병사들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두 사람이 싸우다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병사의 눈이 저를 향했을 때, 라비엘리는 순간 밀려든 두려움에 입술을 꼭 붙였다.

“제 아내는 어제 낙마 사고를 당해 몸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짧게 끝내주십시오.”

“단순히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부인, 괜찮으실까요?”

라비엘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며 대답했다.

“네.”

“고맙습니다.”

기다렸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라비엘리에게도 발언할 기회가 왔다.

라비엘리는 조금 전 혼자 상상했을 때보다 더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루시안이 한 말은 전부 거짓이며 사실 이 남자가 두 사람을 죽였다는 걸 말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부인께서도 혹시 말을 타고 가는 사내들을 보셨습니까?”

“네, 봤어요.”

“부군께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

“동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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