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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지 마세요 (10)화 (10/136)

10화

다음 날도, 그리고 다음 날도 저택에 어둠이 내리면 루시안 마이어는 라비엘리의 침실로 올라왔다.

“……다섯.”

다섯까지 숫자를 센 루시안이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숨을 참고 있던 라비엘리는 그제야 뜨거운 공기 한 줄기를 뱉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침대를 말아 쥔 손에는 힘을 풀지 못했다.

호흡을 고른 라비엘리가 허벅지를 오므리려 했을 때였다. 루시안이 라비엘리의 무릎에 손을 올리더니 건조한 음성을 냈다.

“아직 안 끝났어요.”

나른한 힘이 곧바로 라비엘리의 무릎에 전해진다.

다리는 속절없이 벌어졌고 또다시 사내 앞에 무방비한 자세를 하고 말았다.

루시안은 무릎을 양손으로 잡고 라비엘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픈가요?”

“…….”

라비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목소리를 낼 기분도,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틀어 사내를 쳐다보았다.

어딘가 모르게 음울한 기운이 서린 표정.

지금 아프다고 말하면 그만하자고 하진 않을까?

라비엘리는 첫날 이후, 창밖이 어둑해지면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곤란해졌다.

매일 밤, 낯선 사내에게 치부를 보이는 건 죽을 만큼 끔찍했기에.

그러나 루시안은 라비엘리의 감정은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 마치 테아노가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하는 양 그의 말을 철저히 지켰다.

물론 메마른 몸에 약을 바르는 것,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 위의 루시안은 생각보다 점잖았고 라비엘리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은밀한 시선을 보내거나 평소처럼 농담도 건네지 않았다.

행여 무방비 상태가 된 라비엘리를 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루시안이 다시 묵직한 질문을 던져왔다.

라비엘리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 루시안은 갈색 병을 들고 다시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대답한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루시안은 테아노와는 다르다. 머리를 조금 쓴다면 어쩌면 이 치욕스러운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비엘리는 잠시 고민하다 저도 모르게 시든 장미 같은 음성을 툭 떨구었다.

“……아파요.”

라비엘리의 가녀린 목소리가 루시안에게 향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대로 열린 약병에 손가락을 넣으려 하자, 라비엘리가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파요. 많이.”

이번에는 루시안 마이어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루시안은 라비엘리의 정확한 병증이 무엇인지 몰랐다.

‘여인에게 아이를 갖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지. 혹시…… 몰라 얼마 전 산파를 불러 확인했는데 지금 그 아이는 산과 병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구나.’

하지만 이런 식의 처방은 의사인 그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세히 묻고 싶었고 알고 싶었으나 루시안 마이어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언제 떠들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내였다.

“그만하고 싶어요.”

거짓된 음성이었는데 목소리 끝이 떨리며 얼핏 울먹이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만하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이 행위가 끔찍하였고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울음을 터트릴 만큼 아픈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목소리 끝이 떨린 것이 퍽 다행이라 생각하며 부러 고개를 한쪽으로 틀었다.

“제발…….”

라비엘리는 다시 가녀린 목소리를 내며 무릎에 힘을 주었다.

연기가 통한 것일까.

이쯤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오면 좋으련만, 라비엘리는 연기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

대신 천천히, 아주 조금씩 루시안이 눈치채지 못하게 허벅지를 안쪽으로 모으려 했을 때였다.

“아픈 게 당연하죠.”

루시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라비엘리의 종아리를 붙들었다.

“성숙한 여인이 모를 리 없고…… 도와달라는 건가요?”

라비엘리는 루시안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겨우 우수에 찬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부디 이 끔찍한 처방을 끝내길 바랐으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라비엘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루시안이 갑자기 다리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더니 라비엘리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

“아픈 게 당연하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손을 넣는 거니까.”

“…….”

루시안은 낮게 깔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런 준비가 없어서 아픈 겁니다. 원한다면 다른 방법이 있어요.”

여전히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거리자 루시안의 얼굴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왔다.

긴장감으로 달궈진 숨이 그의 코끝에 닿을 것만 같다. 아니, 이미 서로의 호흡이 느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맞닿을 듯 은근한 거리.

라비엘리가 눈을 질끈 감아버리자 루시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속눈썹을 간질였다.

“긴장 풀어요.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으니 아플 수밖에.”

그러곤 라비엘리의 어깨를 두 손으로 천천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살갗에 닿은 사내의 체온이 뜨겁다. 뜨겁고, 불편한 것이 그녀의 어깨를 슬금슬금 어루만지더니 팔뚝으로, 마른 장작 같은 팔을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쉿.”

그러고는 찬찬히 라비엘리의 팔을 쓸어내렸다.

간질거리는 감각에 몸이 움찔거렸지만, 움직이는 순간 루시안의 입술에 제 얼굴이 닿을 것만 같아 쉽사리 저항할 수도 없었다.

“몸이 너무 굳어 있어요.”

“…….”

“당신 몸이 천천히 물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봐요.”

잔뜩 젖은 음성이 라비엘리의 몸을 휘감는다.

“아니, 숨은 참지 말아요. 하나, 둘…….”

루시안은 마치 최면술사라도 되는 것처럼 나른하게, 그러나 제법 손에 힘을 주며 라비엘리는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은 낯설었고 불편했으며 당장에라도 일어나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라비엘리의 육신은 조금씩 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좋아요, 이제 정말 중요한 순간이에요.”

루시안은 그 말을 끝으로 제 입술을 라비엘리의 빗장뼈에 대었다.

차갑게 식은 살결 위에 뜨겁고 보드라운 것이 찍히자 라비엘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지, 지금 당신……!”

그러나 작은 반항으로는 루시안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여기 들어오기 전 배우지 않았습니까? 여인의 의무니, 도리니 하는 것들을요.”

루시안이 입술을 들어 빗장뼈 조금 아래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안다면 얌전히 있어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그, 그만……!”

입술을 짓씹은 라비엘리가 몸을 반대로 돌리려 했다.

은근함이 더 아래로 내려올까 봐 두려웠다.

얇은 슬립 사이로 루시안의 나른한 숨이 스밀까 겁이 났다.

‘제발, 제발 그만.’

그러나 라비엘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루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몸을 일으켰다.

다시 마주한 루시안의 두 뺨은 평소보다 붉은 듯했으나, 분명 흥분한 얼굴은 아니었다.

뜨거운 기운에 휩싸인 건 라비엘리였다.

처음보다 거칠어진 호흡을 애써 달래려는 순간, 루시안의 손가락이 다시 짓쳐 들어왔다.

루시안의 입술이 남긴 열감 탓인지, 사실 라비엘리는 처음보다 놀라지 않았다.

정말 그의 말처럼 온몸이 나른해지더니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 있었으나 뻣뻣하게 굳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 순간, 오히려 당황한 건 루시안였다.

‘어떻게 된 거지?’

루시안은 여인의 성감을 잘 알고 있었다.

팔 안쪽, 빗장뼈에서 봉긋한 가슴으로 향하는 길목, 희고 곧은 목…….

직접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자극했다고 생각했다.

여인이란 감정 없이 애무만 한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는다.

그렇게 단순했다면 모든 일이 쉽게 풀렸겠지.

만약 그러했다면 역사는 몹시 단조롭게 흘러갔을 것이다.

애무의 강도보다 순간의 감정이 중요하다. 그저 작은 손길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라비엘리의 속살은 여전히 좁고 메말라 있었다.

루시안은 손가락을 넣었다 도로 빼며 라비엘리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흥분감으로 뺨에 홍조가 피어나 있는데.

그녀의 속은 표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라비엘리 르휜은 제 손길을 받았음에도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것이다.

전에 없던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루시안은 벌어진 다리 사이에 슬그머니 시선을 주었다. 그러곤 동그란 무릎에 입술을 댄다.

라비엘리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을 때, 그의 머리가 아주 천천히 허벅지에, 조금 더 안쪽에 닿았다.

단순한 움직임이었으나 손길은 몹시 섬세했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음부에 닿을 것만 같았다. 라비엘리는 지금의 감정이 애가 타는 것인지 대체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호흡이 가빠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러나 루시안은 음부 주변만 빙글거릴 뿐이었다. 뭉근하게 이어지던 입술, 보드라운 손가락 하나가 허벅지 안쪽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나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루시안이 기름 바른 손가락을 라비엘리에게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라비엘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끝났습니다. 수고했어요.”

루시안은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고 적당히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쉬어요, 라비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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