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마이어가에도 어김없이 밤은 찾아왔다.
침실에 홀로 앉아 있던 라비엘리는 테아노가 오후에 남긴 당부를 힘겹게 삼키고 있었다.
“오늘 밤부터 내 아들 루시안 마이어가 나를 대신할 것이오.”
라비엘리는 테아노의 말 중 어느 것 하나 이해되는 것이 없었다.
“내 아들이라니요?”
그녀는 테아노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으려 그를 저택에 들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아들로 인정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되었소.”
“하지만.”
물론 그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라비엘리는 다시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내 아들이 나를 대신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설마,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소. 그 아이를 여기 남겨두는 게 꺼림칙해도 방법이 없으니.”
라비엘리는 입술을 짓씹고 치맛자락을 움켜쥐다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차라리 후작님께서 돌아오신 뒤에.”
“아니, 그건 안 돼.”
테아노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우선 산파 헤레스가 준비하라 한 재료는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시 약을 만드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아야 합니다. 하루라도 걸렀다간 효험을 잃지요. 또한, 하녀의 힘을 빌려선 안 됩니다. 반드시 사내의 손이어야 합니다. 각하의 도움이 절실하지요.’
테아노는 헤레스의 말을 맹신하고 있었다.
“헤레스의 말을 잊었소? 하루도 빠짐없이,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라비엘리는 팔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아니 안 돼요. 설마 그자가 아들이란 걸 완전히 믿으시는 건 아니지요?”
“방법이 없어. 나라고 지금이 좋을 것 같소?”
믿을만한 사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타나 후작에게 해를 가하려던 수많은 이들을 생각해보라며, 차라리 오스트린에서 돌아온 이후 다시 시작하면 안 되겠냐고 매달렸다.
그러나 테아노는 강경하였다.
어차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곳에 손가락 하나 집어넣어 약을 바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다.
라비엘리의 저항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가 저를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받을 뿐이었다.
“휴…….”
라비엘리는 읽던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후작이 저택을 비운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잃었던 삶의 의지가 다시 피어나는 듯했는데.
어디 출신인지도 모를, 게다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 앞에서 매일 밤 다리를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치욕스러움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우울한 마음에 연신 어둠에 묻힌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문이 열리고 키가 몹시 큰 사내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루시안이 왜 왔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테아노가 떠난 순간부터 온종일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를 마주하자 온몸이 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루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색이 좋지 않군요.”
“…….”
“누워 있지 그랬어요, 라비엘리.”
사내는 나른한 목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라비엘리의 방은 단정하고 차분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후작께서 어떤 부탁을 하셨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싫어요.”
라비엘리의 반응은 어느 정도 짐작했으나 물러설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라비엘리, 오해하고 있군요.”
방 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분위기를 헤치고, 루시안은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후작께서 신전으로 가시면서 하신 건 부탁이 아녜요.”
“…….”
“명령이지.”
어느덧 침대로 올라온 사내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겁먹지 말아요. 난 아버지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저 따른다고 생각해요.”
라비엘리를 반듯하게 눕힌 루시안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정리하는 양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잘 해낸다면 아버지께 제 위상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죠.”
“루시안, 제발.”
“그러니 라비엘리, 부디 나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사내의 음성이 더는 들리지 않아 불안하던 찰나.
종아리에 서늘한 기운이 스미더니 이내 치마가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졌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라비엘리는 그저 시트만 움켜쥐곤 어금니를 살짝 물었다.
전신에 힘을 빼고 누운 채 그의 움직임만을 기다리고 있다.
루시안은 조심스레 허벅지를 쥐고 천천히 벌렸다. 위태로운 호흡이 들려오긴 했으나 다행히 저항하진 않았다.
어쩌면 포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퍽 딱하다는 생각을 하며 첫 번째 손가락에 진득한 기름을 발랐다.
“천천히 할게요.”
살점을 젖히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쪽에 가까웠으나 라비엘리는 수치스러움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하나, 둘, 셋…….”
라비엘리의 방은 지독히도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