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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향기로운 구원자 (37)화 (3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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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괜찮습니까?”

왠지 다정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죄책감이 커진 해나가 미안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속은 괜찮은데….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제가 혹시 실수를 했을까요? 정말 죄송해요.

인우는 영상 통화도 아닌데 해나의 표정이 보이는 듯해 눈을 감은 채로 피식 웃었다.

“안 했습니다. 얌전히 집에 잘 들어갔고요. 걱정할 일 없으니까 안심하고 출근하세요.”

인우는 어젯밤 일을 기억하면 퍽 곤란할 해나를 배려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네에…. 진짜 미안해요오….

끝까지 사과를 하며 말꼬리를 늘이는 해나의 목소리가 귀여웠다.

해나와의 전화 한 통으로 피곤이 가신 인우는 곧장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그럼 이제 상황 파악을 좀 해 볼까.”

준비를 마치고 나온 인우가 향한 곳은 제 회사가 아닌, 한주 전자였다.

전무실이 있는 층 로비의 비서가 제집인 양 편하게 전무실로 향하는 인우를 막았다.

“무슨 일이시죠? 소속, 성함 말씀해 주시면 면담 스케줄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을 마치 잡상인 취급하는 비서의 태도가 살짝 성가신 인우가 비서를 무시하고 제가 가던 길을 갔다. 그러자 놀란 비서가 바로 가드를 호출해 순식간에 인우의 발이 묶였다.

훅 들어오는 가드들의 냄새에 속이 역해진 인우가 비서에게 차갑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주영우 호출해. 이 개 같은 상황을 주인우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

인우의 말에 사색이 된 비서가 호출 버튼을 눌러 영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전무님…. 지금….”

3초, 딱 3초였다.

비서의 말이 끝난 지 3초 만에 직접 전무실 문을 열고 나온 영우가 눈짓으로 가드를 물렸다.

잔뜩 불쾌해 보이는 인우의 손목을 잡고 전무실로 들어온 영우가 소파에 앉았다.

“사랑하는 동생님아, 좀 평범하게 연락하고 올 순 없었을까?”

아침부터 봉변을 당한 영우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말했다.

“형은 언제 연락하고 왔나? 저가 모시는 상사의 가족 관계도 모르는 저 비서는 계속 쓸 거야?”

제 잘못은 티끌만큼도 없다는 듯한 인우의 말투에 영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애야…. 왜 아침부터 찾아와서 화풀이야. 뭐 때문인데.”

그래도 최측근이라고, 단번에 인우 기분을 캐치한 영우가 일어나며 물었다.

“어제 오해나랑 밥 먹었다며.”

그 말에 비서를 호출하러 가다가 멈칫한 영우가 인우를 한번 돌아보았다.

“앉아서 얘기해.”

영우의 말에 소파에 앉은 인우가 삐딱하게 영우를 올려다보았다.

“캐모마일 세 잔 준비해 주세요.”

인우가 좋아하는 티를 비서에게 요청한 영우가 소파에 가서 앉았다.

“차 한잔씩 마시면서 얘기하자.”

“좋을 대로.”

삐딱하기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영우를 노려보는 인우의 얼굴은 살벌함 그 자체였다.

이내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문제의 그 비서가 티 세 잔을 들고 들어왔다.

“저, 죄송합니다.”

인우는 저를 향해 사과를 해 오는 비서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고마워요. 이 한 잔은 비서님 거. 아침부터 봉변당했죠. 놀랐을 텐데 가져가서 마셔요.”

어쩐지 사람은 둘인데 티는 세 잔을 주문하더라니.

비서가 나갈 때까지 속으로 혀를 차던 인우가 문이 닫히자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래서. 오해나랑 밥 먹었냐고.”

잔뜩 성이 난 인우와 달리,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신 영우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먹었다, 그래. 안 그래도 오늘 이 이야기 좀 하려 했더니만 너 오늘 출근 안 한대서 말았더니, 아침부터 찾아와 깽판을 쳐?”

인우를 밉지 않게 흘겨본 영우가 다시 한 모금 차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해나 씨 요즘 회사에서 좀 안 좋아. 들리는 소문으로는 팀원들이 해나 씨를 피한다나 봐. 나도 소문 듣고 혹시나 하면서 가 봤는데, 점심시간인데 혼자 사무실에 있더라고.”

술 취해 한 말이 진짜였구나.

인우는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채로 가만히 영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밥도 못 먹고 그러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모른 척해. 그래서 같이 낙지나 먹자 했다, 왜.”

챙겨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웬 오지랖이냐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한 인우가 선택한 건 후자였다.

“형이 왜 그렇게 오해나를 신경 쓰는데.”

질투인가? 

아무래도… 질투인가 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에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인우를 보며 영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이니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영우가 결국 말을 뱉었다.

“뭐가 나 때문이야.”

“해나 씨 원래 팀원들이랑 사이좋았대. 근데 너랑 결혼한다는 사실을 안 후로 해나 씨를 피한다나 봐. 잘은 모르는데 어쨌든 그래.”

어제 해나가 한 말과 같았다.

“오해나가 그래?”

저에게 말하기 전에 영우에게 먼저 말한 걸까.

왠지 영우에게 밀려난 듯한 느낌에 인우의 기분은 점점 다운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나한테 그런 말을 하겠어? 들리는 소문에. 이 회사 곳곳에 내 눈과 귀가 있는데, 다 들려오는 소문이지.”

인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내가 첫 번째였구나.

자꾸만 유치하게 굴어 대는 자신이 한심하고 싫은데도, 그건 인우가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된 거야. 이제 됐어?”

“하나 더.”

인우가 집을 나가 혼자 살기 시작한 뒤로 이렇게 오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이 반가워 이야기를 이어 가고는 싶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주제에 영우가 일 핑계를 댔다.

“빨리빨리 물어봐, 동생아. 조금 있다 나가 봐야 하니까.”

“어제 그 여자… 아니, 사모님 만났다며.”

평소처럼 혜영을 그 여자라고 지칭하려던 인우가 영우를 의식해 호칭을 바꿨다.

인우는 그래도 영우 앞에서는 꽤 조심하는 편이었다. 영우도 그런 인우를 잘 알고 있어, 어제 혜영의 무례함이 더더욱 미안했다.

“응. 그건… 미안해. 나도 갑자기 그렇게 오실 줄 몰랐어. 해나 씨 들어가고 단단히 주의도 드렸고. 미안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혜영이 사고를 치면 수습하는 건 언제나 영우였다.

형도 참 힘들겠구나. 

영우의 노고를 알 것 같은 인우가 넌지시 물었다.

“오해나, 많이 속상해했어?”

세상에. 영우로서는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천하의 주인우가 저 말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걱정하다니.

인우의 변화는 점점 더 해나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시켰다.

“속상해했는진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해나 씨가 이겼어. 엄마도 유라도 시원하게 한 방 먹였었거든. 확실히 보통은 아니더라, 야.”

그럼, 오해나가 어떤 여잔데.

저를 이렇게 구워삶을 만큼 대단한 여자니, 혜영과 유라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잘 키운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뿌듯함에 인우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럼 다행이고. 할 말 다 했으니 이제 갈게, 수고.”

본인의 용건이 끝나자마자 쿨하게 일어서 나가는 인우의 그 잘난 뒤통수에 꿀밤을 한 대 갈겨 주고 싶었다.

아침부터 탈탈 털린 영우가 소파에 기대 멘탈을 회복하는 동안, 인우는 상쾌한 기분으로 차에 올라탔다.

“점심까지 한참 남았네.”

인우는 저 때문에 해나가 점심을 혼자 먹게 됐다는 사실이 맘에 걸려, 오늘부터 점심을 같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한참 남은 점심시간에 일단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

“내일이군.”

드디어 내일이면 결혼식이었다.

신혼여행을 생략해 식을 마치면 바로 해나가 인우의 집으로 들어올 테고, 인우는 이미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준비는 완벽한데 자꾸만 초조해지는 인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해나가 들어올 2층을 들락거렸다.

“미친놈이 따로 없네.”

확실히 요즘의 인우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정상은 아니었다.

후회하고, 사과하고. 사랑받고 싶다가, 기대도 하기 싫고.

귀여웠다가, 미웠다가. 화가 났다가도 또 금세 풀리고.

“나 때문이야, 오해나 때문이야.”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싱숭생숭한 인우가 집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일을 잔뜩 벌이는 건 해나나 인우나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일에 몰두하던 인우는 시간을 확인하고 해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것 봐, 별것도 아닌 말이 이렇게 듣기 좋잖아.

“오늘 점심 같이 먹죠. 제가 마침 시간이 비어서.”

일을 하려면 더 할 수 있었다.

인우는 사실 시간을 비우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제 얄팍한 자존심을 위해 거짓말까지 해 가며 해나를 찾았는데.

-미안해요. 오늘 점심에 팀원이랑 선약이 있어서요.

어떤 발 빠른 인간이 벌써 해나의 시간을 낚아챈 걸까.

아쉬움은 둘째치고 창피함에 순식간에 귀 끝이 달아오른 인우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괜찮습니다. 일 보세요.”

-네…. 미안해요, 다음에 같이 먹어요!

전화를 끊은 인우가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다음에? 내일이면 부부가 될 사이에, 다음에 같이 밥을 먹자고? 게다가. 

“뭐야. 팀원들이 피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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