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빌스펜서] 너 하나만을 위한 사랑-15화 (15/24)

15

높이 뜬 달빛으로 인해 온 세상이 크림 빛으로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창가에서 흘러

들어온 달빛이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그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침대머리 장식 쪽

으로 얼굴을 돌린 채 그의 목이 이상한 각도로 젖혀져 있었다.

그녀는 그가 불편하게 몸을 뒤척이는 소리를 한 시간 가량 듣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아래층

으로 내려왔으나 그는 자고 있었다. 규칙적인 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발이 좁은 침대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그녀는 문가에 서서 떨고 있었다.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그가 내

쫓으면 어떻게 하지?

굳게 쥔 주먹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가슴이 죄어 왔다.

어떻게 그를 깨우지? 그리고 뭐라고 말해야 돼? 그를 만지고 싶다고? 아니면 '더프레인 씨,

일어나서 나와 사랑을 나눠요?'라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가 만일 2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굴욕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그의 이름을 작게 속삭여 보았다. 입속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제, 제시?"

달빛에 싸인 제시의 몸을 향해 다시 불러 보았다.

"제시?"

그의 머리가 곧바로 들리더니 베개 위에 놓여졌다. 그녀는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 윤곽을 똑

똑히 볼 수 있었다. 수염이 더욱 검게 보였다.

"애비? 무슨 일이오?"

잠이 덜 깬 음성으로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 제시?"

갑자기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알았다. 그녀는 단단히 쥔 주먹을 뺨 위에 댄 채 서 있기만

했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는 무릎까지 내려간 시트를 위로 당기

며 일어나 앉았다. 한 쪽 다리가 침대 밖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왜 내려온 거요?"

"제발 묻지 말아요."

그녀가 애원했다.

그들 주위를 고요한 크림빛 밤이 뒤덮고 있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묻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녀는 말을 할 수 없는 듯 고개만 내젓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니,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애비, 2층으로 올라가요. 제발 가요. 당신은 지금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소. 당

신에게 샴페인을 권하는 게 아니었는데……."

"제시, 난 술취하지 않았어요. 난, 2층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건 당신 삶에는 필요치 않은 거요."

"어떤 삶요?"

그녀의 날카로운 물음이 날아왔다.

"자신을 존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의 삶 말이오. 난 그걸 파괴할 수 없소. 당신을 위

해서도."

"저도 내 삶이 파괴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경고했었죠. 리처

드 같은 남자는 그걸 부숴뜨릴 거라고 말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는 떠났어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게 이런 걸까, 생각도 했죠. 그리고 데이비드 멜처가 내 집에 들어왔

고, 나는 다시 희망을 가졌어요. 하지만……."

"애비, 이미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소. 당신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 미안하오."

"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했죠. 그는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내게 필

요한 건, 난……."

달빛 아래 서 있는 그녀는 마네킹 같았다.

"애비, 말하지 말아요. 당신의 전통적인 도덕 관념과 그것을 오랫동안 준수해 온 당신에게

난 경의를 표하고 있소. 난 지금 그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걸 원치 않소. 그러니 돌아가요.

내일이면 난 떠날 사람이오."

"나도 알고 있어요!"

절망적인 외침이었다.

"당신은 리처드가 나에게서 떠난 진짜 이유를 깨닫게 해준 사람이에요. 융통성이 없이 고리

타분하다고 비난한 사람도 당신이에요. 제시, 내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요. 이미 난 너

무 멀리 와 버렸어요. 당신이, 당신이 내 마지막 기회예요. 제시, 다른 여자들은 서른세 살

이 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난 지금 바라는 것뿐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

요."

허리 아래를 시트로 감으며 그가 펄쩍 뛰어올랐다.

"젠장, 이건 공평하지 않소! 난 당신 파트너로 적합하지 않단 말이오."

그는 시트를 질질 끌며 힘겹게 그녀 앞에 섰다.

"침대에 누워 한 시간 동안이나 생각한 거요. 당신이 백 퍼센트 옳았소. 난 일부러 당신을

자극했소.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당신의 답답할 정도로 올바른 사고 방식과 고지식한 도덕성

을 손상시키려고 했소. 당신이 조금이라도 굽혔다면, 그 두터운 벽을 깨뜨린 사람은 아마 내

가 되었을 거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그것을 깨뜨릴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도리어 나한테 대

항했소."

그랬다. 그래서 더욱 그를 위험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존심을 꿀꺽 삼키고 부자연스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면 절 이대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인가요?"

오, 세상에! 제발, 애비, 내 생전에 처음으로 고상하게 행동하는 거란 말이오!

"애비,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거요. 당신은 철도 캠프를 따라다니는 거리의 여자들과는

달라요."

"내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에 머무를 건가요?"

그녀의 나직한 애원이 그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애비."

그는 이성을 가다듬으며 그녀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당신은 결코 그런 여자가 될 수 없소. 그 차이를 모르고 있는 거요?"

그러나 그녀는 달빛 아래서 오돌오돌 떨며 그를 올려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처드를 증오했던 것처럼 나도 증오하게 될 거요. 나도 떠날 테니까. 애비, 내가 어떤 사

람인지 알고 있잖소."

그는 시트를 힘껏 움켜 잡았다.

"네, 제시 더프레인, 당신은 사진사이고 리얼리티를 주장하는 선각자예요. 그렇지만 지금 거

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구요."

그는 달리기를 막 마친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젠장, 당신 말이 맞소. 하지만 내 이성은, 날이 밝으면 당신이 날 증오하게 될 거라고 외치

고 있소."

"마음에 걸리나요?"

그녀가 대담하게 물었다.

"젠장, 그렇소. 게다가 난 우습게도 수줍은 학생처럼 시트를 거머쥐고 서서 논쟁을 벌이고

있잖소!"

"그렇지만 당신이 날 이대로 되돌려 보내도 내가 당신을 증오하리란 것도 알고 있잖아요."

은은한 달빛이 그들의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어디선가 향긋한 장미 향기가 났다. 그녀의 어

깨는 너무나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녀의 머리는 풀어져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명암이 뚜렷

한 그녀의 얼굴이 요정처럼 보였다.

"애비……."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였다.

"난 당신에게 적합한 남자가 아니오. 그 동안 수많은 여자를 겪어 보았소."

그러나 그의 결심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애비게일은 떨리는 걸음으로 한 걸음 그에게 다가

섰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람의 속삭임에 커튼이 대답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녀는

내일 데이비드 멜처가 이 마을에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려주면,

그녀는 순순히 2층으로 돌아갈까? 그럴 것이다. 갑자기 격렬하게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너무

나 그녀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멜처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

면 그녀는 평생 그를 증오할 것이다.

그녀는 바로 앞에 있었다. 수많은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그녀를 갖고 싶은 욕망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애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였다.

"무척 작군. 애비, 날 미워하지 말아요. 미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그의 거친 음성이 그녀의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두근두근 그녀의 맥박이 빨라졌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녀는 얼굴을 그의 단단한 어깨에 묻었다. 희미한 땀 냄새가 풍겼

다. 그녀는 주저하며 손을 들어 그의 몸을 쓰다듬었다. 단단하고 따스했다. 그는 거친 숨을

그녀의 귓가에 내뱉고 있었다. 부드럽고 짜릿한 전율을 일게 했던 정원에서의 키스가 생각났

다. 그녀는 입술을 그의 입가에 대며 속삭였다.

"제시, 아까처럼 키스해 줘요."

그의 손이 아프도록 파고들었다.

"오, 세상에, 애비……."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그는 시트를 내동댕이치고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그

녀의 머리카락에 묻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더 이상 그녀를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

었다.

그녀가 그의 입술에 관자놀이를 비볐다. 키스를 하고 싶다는 갈망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녀의 얼굴이 수줍게 서서히 들렸다.

"애비, 역시 안 되겠소."

그가 마지막으로 되풀이 말했다.

"한 번만요. 정원에서처럼…….

그녀가 속삭였다.

"오, 제시, 제발, 키스해 줘요."

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의 입술이 따스한 그녀의 입술로 내려왔다. 그의 입술이

닿자 그녀는 팔을 그의 목에 감고 두 손을 머리칼 속으로 찔러 넣었다. 그의 혀는 열기로 말

라있었지만, 촉촉한 그녀의 혀를 만나 금방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운 키스가 격정적으로 변하

며 그는 더욱 깊이 열정적으로 그녀의 혀를 탐했다. 그녀도 처음엔 소심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의 입술에 자극을 받아 점차 대담해졌다.

그는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며 더욱 깊이 그녀의 입 안을 핥고 빨았다. 마치 그녀를 먹어치우

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는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양 그녀의 입술과 뺨, 코, 눈썹, 귀, 목

등 얼굴전체를 입술로 핥고 깨물다가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도 그의 머리를 꼭 움

켜 쥔 채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그의 키스세례에 부지런히 응하고 있었다. 이윽고 키스를 마

친 그는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뜨거운 입김에 그녀도 함께 달아올

랐다.

"애비,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소."

마치 낯선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벌어진 입술이 떨리고 있

었다.

그녀의 몸이 단단하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애비는 너무 작아.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입술로 그녀의 뺨을 쓰다듬다가 다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스를 멈추지 않

은 채 그대로 그녀를 들어서 침대로 다가갔다. 그녀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최대한 부드럽고 멋지게, 그리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게 해주리라. 그는 오늘이 그녀에게 첫

경험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목을 감고 있는 그녀의 팔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가 알몸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 그의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가운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미끄러지듯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고 중얼거렸다.

"당신은 작고, 장미처럼 향기도 좋군."

그녀가 그의 관자놀이에 턱을 비벼 댔다. 그가 목에 혀를 대자 짜릿한 감각이 몸 속으로 퍼

져 갔다.

"애비, 이 가운을 벗겨도 되겠소?"

그가 그녀의 뺨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물었다.

"그렇게 해야 하나요?"

꿈결을 헤매는 듯한 음성이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네, 원해요."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전율이 그에게도 전해져 왔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묶고 있던 끈

을 찾아내 풀고는 가운을 발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키스를 하며 입 안에서 웅얼거리듯 말했다.

"애비, 처음처럼 떨리는군."

"좋아요, 저도 그래요."

둘은 서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뺨을 따라 올라간 그의 혀가 그녀의 귀를 물며 애무했다.

그는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리며 그녀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얇은 잠옷속으로 그녀의 살갗

이 느껴졌다.

"음, 옷이 내 손에 녹아들까봐 걱정되는군."

가슴이 그의 손 안에 들어가자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피부가 온통 욱신거렸다. 그의 다른

손은 그녀의 목 뒤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에게 내려왔다. 그러나 이번

키스는 살짝 스치듯 지나가는 부드러운 키스였다. 닿을 듯 말 듯한 그의 키스에 그녀의 솜털

들이 모두 일어섰다.

그의 부드러운 애무가 계속되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에 닿은 그녀의 유두가 단단하게 굳어졌

다. 그가 거칠게 가슴을 움켜 쥐자 흐느낌 비슷한 신음 소리가 그녀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 목 뒤를 누르고 있던 그의 손이 부드럽게 등을 매만지며 내려가는가 싶더니 그녀의 잠옷이

허리 아래까지 벗겨졌다. 다시 그가 컵 모양으로 그녀의 가슴을 감싸 쥐자, 그녀는 마술 같

은 그의 손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의 두 손은 그의 어깨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

는 온몸을 휘감고 도는 쾌감에 그대로 몸을 내맡겨 버렸다.

"오, 제시, 당신과 함께 나누었던 이 모든 것을 기억해 두겠어요. 교회에 있을 때 생각이 나

도 소중히 하나하나 떠올리겠어요."

그녀는 피부에 닿아 있는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는 몸 안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녀를 맛보고, 향기를 맡고, 그녀의 속삭임을 들

으며 온몸으로 그녀를 느끼고 싶었다.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는 애비게일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손가

락으로 척추를 쓸어 내려갔다.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에서 미끄러져 매끄러운 엉덩이로 내려

가자 그의 남성이 욕구로 단단히 일어섰다. 이제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가르쳐

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얼굴을 숙이고 그녀의 목과 어깨 위에 키스해 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훑고 있는

그의 수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뜨겁고 촉촉한 혀가 유두 근처를 배회하다가 결국 유두를

입안 가득 삼키고 말았다. 그의 어깨에 늘어져 있던 그녀의 팔이 허우적거리며 그의 머리를

움켜 잡았다. 그의 열정적인 애무에 그녀의 몸이 녹아들고 있었다. 그가 젖어 있는 유두를

놓고, 다른 쪽 가슴을 입 안에 머금었다. 그녀는 온몸을 떨며 두 팔로 힘껏 그의 머리를 감

싸 안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 아래로 내려가 힘껏 움켜 쥐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에

그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녀의 눈이 움찔거리더니 커졌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

습해 왔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애비, 괜찮아."

그가 허리를 휘감으며 그녀의 등과 어깨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그녀의 얼

굴을 내려다보았다.

"애비, 마음이 바뀐 거요?"

그가 허스키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녀는 커다랗고 불안정한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그의 손이 어깨를 어루만지다가 가슴 쪽으로 옮겨 갔다.

"음, 애비, 당신 살갗은 커스터드 푸딩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고, 달콤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혀로 그녀의 온몸을 핥으며 내려갔다. 그녀의 척추가 다시 팽

팽히 당겨졌다.

"애비,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의 손길이 다시 느껴지자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의 손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는 마치 촉촉히 윤기가 흐르는 새틴 같았다. 꼭 감고 있는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

고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그녀의 욕구도 최고조로 달구어져 있었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

려 눈을 가린 후 뜨겁고 절박한 호흡을 내뱉었다.

제시는 쾌감에 몸을 떨며 아치 형으로 몸을 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저절

로 웃음이 번졌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살짝 거두었다.

그녀가 동그랗게 놀란 눈을 뜨고, 미소짓고 있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시?"

욕망에 헐떡이고 있는 음성이었다.

"쉬이, 우리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오."

그의 무릎이 실크처럼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발이 그녀의 부드러운 종

아리를 쓸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아래에서도 갈구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를 볼 수 있

었다.

그는 그녀의 온몸을 태울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애비, 날 만져 봐요."

그가 용기를 불어 넣으며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한 것처럼 날 만져 봐요."

그는 그녀의 얼굴에 키스로 불자욱을 남기며 힘겹게 속삭였다. 그의 무릎이 그녀의 몸에 닿

아 있었다. 그가 애비의 가슴 아래 손을 갖다 댔다.

"애비, 이렇게 해봐요. 어떻소, 기분이 좋소?"

그녀가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남자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이런 걸 좋아한다오."

그녀는 큰마음 먹고 숨을 들이켰지만, 손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해봐! 해봐!

그러나 그녀는 자진해서 남자를 애무할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의 손길을 그가

좋아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뻗기가 두려웠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아직 그녀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한 번만 손을 뻗어 봐요. 그러면 당신도 알게 될 거요."

그가 다시 그녀를 자극했다. 그의 간청과 응원에 힘을 얻어 쭈뼛쭈뼛 손가락을 들어 그의 몸

에 대어 보았다. 생각보다 그의 몸은 무척 뜨거웠다!

그녀의 용기가 사그라들기 전에 그는 얼른 손을 잡아 자신의 배 위에 대었다.

"이렇게 말이오. 애비, 이렇게 만져 봐요."

그녀의 손에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 왔다. 그녀는 그의 요구대로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손

의 움직임에 따라 그의 근육들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애무가 그를 기쁘게 하고 있었

다. 그녀의 손길이 더욱 대담해지자 그가 고통스러운 듯 입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거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손을 거두었다.

"제시, 왜 그래요! 아픈 거예요?"

그가 그녀를 내리덮치며 다시 손을 잡아 자신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

"오, 세상에! 아니오, 날 상처 입힌 게 아니오. 마음껏 만져요. 자, 제발……."

그의 입술이 난폭하게 그녀의 입술을 짓눌렀다. 그의 혀와 엉덩이가 리드미컬하게 그녀를 공

격해 왔다. 따스한 손이 머뭇거림 없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33년 동안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왔던 그녀의 여성이 그의 키스만으로

풍부하게 흘러 넘치고 있었다.

몸 속에 있는 불덩이가 분출할 곳을 찾아 그녀의 온몸을 휘젓고 다녔다. 그가 뭔가를 중얼거

리며 그녀의 눈과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애비, 이리로 와요. 날으는 거요. 애비, 나랑 같이 날아요."

그녀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그

녀의 엉덩이가 갈구하듯 높이 치솟아올랐다.

아, 이런 것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강력한 힘과 환희가 느껴졌다.

제시, 오, 제시, 너무 좋아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엄마, 왜 이런 걸 멀리하라고 하셨나요?

그녀의 손톱이 그의 팔에 파고들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흐느낌 소리가 그녀의 목을 타고 넘

어왔다. 그의 몸이 온통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팽창된 그의 몸이 그녀의 몸을 여기저기 탐

사하다가 드디어 집을 발견했다. 그가 그녀의 좁은 어깨를 움켜 잡았다.

"애비, 내 사랑, 조금 아플 거요. 하지만 한 번뿐이오. 약속하리다."

뜨거운 무언가가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아픔을 느낀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그의 어깨를 밀

쳐내려 했다.

"힘을 빼요, 애비. 그러면 좀 나아질 거요. 싸우려고 하지 말아요."

그러나 그녀의 주먹이 그를 호되게 내리쳤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매트리스에 고정시켰다

"당신도 흡족한 기분을 느끼게 하려고 이러는 거요."

그는 계속 그녀를 어르며 몸을 그녀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흐느낌을 내

뱉었다. 그러자 그는 미안한 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황홀한 시간이 지나고 고통이 찾아왔다. 그녀의 어깨가 점차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그

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붙잡으며 그녀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섬세한 얇은 막이 찢겨지고,

쓰라린 아픔이 몸 속을 훑어 내렸다. 그녀는 팔 다리로 저항을 계속했지만, 그의 막강한 힘

에 의해 모두 차단되었다. 그녀가 저항의 몸부림을 칠 때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공

격적인 그의 몸짓은 그녀가 저항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이 고문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도 아직 덜 아문 상처 때문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녀가 너무

작은 데다 첫경험이었기 때문에 그의 육중한 체중을 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쾌감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고통도 배가되었다. 쾌감과 고통으로 거친 숨

을 내뱉으며 그의 몸이 한껏 굳어졌다. 이윽고 뜨겁고 하얀 불길이 로켓처럼 치솟는가 싶더

니 그가 커다란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건 충만된 감정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는 그녀의 허벅지에 한 쪽 다리를 올려놓은 채 옆으로 몸을 뉘었다.

그녀는 일순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미숙함이 무언가를 그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에

그녀가 좋았을 때만큼 그는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팔다리를 축 늘

어뜨린 채 누워만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용기가 부족해 일

을 그르친 것이다. 그가 도중에 그녀의 손을 자신의 몸에서 뿌리치지 않았던가. 그는 한 손

을 이마에 얹고 옆에 누워 있었다. 일이 끝나게 되어서 안도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몸을 굴려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를 만족시키는 단순한 행위조차 하

지 못하는 서른세 살의 멍청한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어디 가는 거요?"

"2층에요."

침대에 일어나 앉기가 무섭게 그의 팔이 그녀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오?"

"놔 줘요."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지 말하기 전에는 안 되오."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고, 꽉 다문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낙담과 분노, 그리고 죄

스러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더프레인 씨, 고마워요. 감동적인 연기였어요."

그녀의 말이 날카롭게 어둠을 갈랐다.

"뭐라고!"

그의 머리가 들려지고, 그녀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가해졌다.

"애비, 뭐가 잘못되었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거요?"

"오, 당신은 좋았어요. 나야말로 온통 실수투성이……."

그의 음성이 금새 부드러워졌다.

"애비, 당신은 처음이오. 천천히 배워 나가면 되는 거요. 괜찮아요."

그리고 그는 손을 거두고 말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러면서 괜찮다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달빛이 들어오고 있는 창문을 바라다보았다.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자신을 거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그에게 사정을 했는가. 다시 방에서 나가려고 몸

을 일으켰으나 이번에도 그의 손에 붙잡혀 침대에 눕고 말았다.

"가지 말아요! 이 상태로 당신을 보낼 순 없소. 당신이 왜 이렇게 톡톡 쏘는지 알아내기 전

까지 절대 놓아 주지 않겠소."

"톡톡 쏘지 않았어요."

"그러지 않았다고! 우린 잠시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지금 이런 순간에조차 말이

오!"

그녀는 울음이 새어 나가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우리 둘이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난 좋았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당신 불만은 뭐

요?"

"날 놔 줘요. 어쨌든 당신 혼자서만 했잖아요."

일어나려고 했지만, 단단한 팔이 그녀의 어깨를 누르고 있어 불가능했다.

"뭐라고! 나 혼자서!"

그녀의 말에 그는 화가 버럭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마치 내가 당신 의지에 반해 폭행이라도 한 것 같잖소!"

"그런 뜻이 아니에요. 단지 저는…… 제가 한 일이 없었다는 거예요."

"애비,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거친 말투가 사라졌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그런 일은 없소. 서로 같이 느끼는 법이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런 말 한 적 없소."

"내가 좀더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빙그르 흘러내렸다.

"이런, 젠장! 그건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오."

"거짓말할 생각 하지 말아요, 제시 더프레인!"

"애비게일 매켄지 양, 당신은 혼자서 오해하고 있는 거요! 젠장, 당신은 내 몸의 절반밖에

되지 않소. 그런데 내가 당신 위에 내 몸을 다 실으면 어떻게 되겠소?"

그녀가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곧 그의 손에 턱을 잡혀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애비,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요. 그리고 당신은 경험이 없었잖소. 게다가

난……. 내가 당신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걸 알고 있소. 하지만 여자들은 처음엔 항상 그런

거요. 당신의 아픔을 덜어 주려고 애쓰긴 했지만……."

"날 당신이 이 방에서 깨뜨린 수프 접시처럼 다루지 말아요!"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정말 모르겠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볼이 부어오르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나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당신이 좋았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아서요. 그뿐이에

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했다.

"애비, 다리 상처가 지독하게 아팠소. 그리고 당신이 상처를 입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젠장!"

그가 머리를 침대에 던지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배려였음을. 그녀는 몸을 일으켰

다. 그가 부드럽게 손을 잡았다.

"애비, 좀더 있어요."

나직했지만,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눈물을 닦았다. 그에게 미안

했다.

"시트를 주으려고요."

바닥에 떨어진 시트를 주워 그를 덮어 주고는, 그녀도 옆에 누웠다. 그가 몸을 돌려 그녀를

안았다.

"오늘 나는 숫총각 같았소. 당신이 날 밀어낼 때마다 내가 너무 빠른 건 아닐까, 아니면 너

무 느려서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따위의 걱정들로 머릿속이 혼

란스러웠다는 걸 알고 있소? 나를 휘감아 오던 당신의 손길을 내가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

소?"

그의 손이 그녀의 몸 위를 부드럽게 쓸고 있었다.

"가능한 한 당신에게 좋은 느낌이 들도록 해주고 싶었소.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여자는 아픔

때문에 즐길 생각을 못하는 법이오. 여자들은 누구나 처음엔 당신처럼 하나하나 의심하지.

애비, 날 봐요."

그녀는 제시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애비, 내가 뭘 잘못했소?"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장난치듯 시트 위를 오르내리던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 사이에 놓여

져 있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잘못은 제게 있어요. 내가 요란을 떨면서 두려워했어요. 결국

당신 마음을 아프게 했고요. 그리고……."

오, 전부 다요.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었다.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당신 때문에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좋은, 기분이 들었지만 당신은……."

"쉬이, 애비, 당신도 좋았소."

"아, 아니에요. 난 어린아이처럼 겁을 냈어요."

커다란 손이 그녀의 뺨을 덮었다.

"오, 애비, 당신은 처음이었잖소. 울지 말아요. 나도 정말 좋았소. 그런 생각은 이제 하지

말아요."

그는 오랫동안 그녀의 눈에 입을 맞췄다. 짠맛이 느껴졌다.

그는 참을성 있게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오, 제시, 오늘 밤이 기억 속에 남는 좋은 밤이 되길 바랐어요. 서로 싸우지도 않고…….

즐겁게요."

"쉬, 애비, 방법도 많고 시간도 아직 많아요."

"그럼, 보여 줘요, 제시. 네?"

이 밤을 이렇게 씁쓸하게 보낼 수는 없다는 듯이 그녀가 애타게 몰아 댔다. 그는 손의 움직

임을 멈추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당장은 안 되오. 애비, 남자에게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오. 내 다리도 휴식

이 필요하고. 하지만 잠시 후엔……. 괜찮소?"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성급하게 졸라 대는 그녀를 달래는 듯한 자상한 말투였다. 그가

다시 등을 대고 누웠다. 그녀는 천장을 보고 누워 오늘 밤 그가 가르쳐 준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그녀를 놀리고 조롱했지만, 지금 그녀가 그를 실망시켰는데도 부드럽고

친절한 말로 그녀를 다독거려주었다.

아, 내일 아침이 되면 그의 얼굴을 어떻게 대하지? 이 침대에서 깨어나 그의 얼굴을 보면 비

참했던 오늘 밤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이 방을 나가야 한다. 그녀는 자는 척 가만히 누워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그의 가슴 쪽

으로 바싹 끌어 안았다. 그녀의 머리가 그의 뺨에 닿아 있었다. 요람에 있는 듯, 편안해졌다

. 시간이 지나자 그의 손의 움직임도 둔화되었다. 뺨에 느껴지는 그의 넓은 가슴이 실크처럼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당장 이 방에서 나가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의 다른 손은 그녀의 엉덩이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의 숨결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렸

다. 그는 자상하고 사려 깊은 연인이었다. 따스한 그의 품에서 그녀의 눈꺼풀이 자꾸만 아래

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뭔가 따스한 것이 그의 손에 닿아 있었다.

힘겹게 눈을 뜨며 옆을 바라보았다.

애비!

장미꽃 봉오리처럼 새하얀 그녀의 가슴이 그의 손 아래 있었다. 그녀는 한 쪽 무릎을 세운

채 몸을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아름다운 엉덩이가 시트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운 아기 돼지 같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어젯밤에 그녀가 울던 생각이 나자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그녀가 깨

지 않도록 조심스레 팔을 빼고는 한동안 그녀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그만

발가락에 섬세한 발목, 쭉 뻗은 종아리…….

애비, 당신은 내 생명을 구해 주었소. 그런데 나는 당신을 울렸소. 게다가 난 이제 곧 떠나

야 하오.

창가가 희뿌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여자의 침대를 떠나면서 이런 공허한 느낌이 들기는 처

음이었다. 어젯밤의 즐거운 느낌을 떠올려도 왠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의 몸은 그녀

를 보는 것만으로도 팽팽하게 굳어졌다. 그는 그녀의 자그마한 어깨와 드러난 엉덩이 위에

살짝 키스를 했다. 그녀가 몸을 돌리며 무릎을 더 높이 잡아당겼다.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녀는 작고 섬세하고 순결했다. 그는 침대 아래로 가 혀로 부

드러운 그녀의 무릎 안쪽을 핥았다.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금방 폭발할 듯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소금기와 함께 장미 향이 느껴졌다.

그의 혀가 그녀의 다리 위를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검은 그의 머리칼이 그녀의 허벅지를

쓸고 있었다.

그는 마음껏 그녀의 내음을 맡으며 몸 곳곳에 키스했다. 팽팽한 엉덩이와 탄력 있는 허벅지,

종아리 등등. 그러나 단 한 곳은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할 생각이었

다.

그가 그녀의 발을 가볍게 물고 있을 때 그녀가 깨어났다. 애비게일이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

다보았다.

"제, 제시?"

잠에 잠긴 목소리로 그녀가 더듬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내리고 온몸을 쭉 뻗으며 기

지개를 켰다.

"당신이 날 깨웠군요."

"그렇소, 내 사랑."

그는 뜨겁고 강한 눈빛 속에 그녀를 가두며 속삭였다. 그의 눈이 그녀의 드러난 가슴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녀는 팔꿈치로 가슴을 가리며 허리를 약간 틀어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

의 따스한 손길이 등과 엉덩이를 지나 종아리에 느껴졌다. 짜릿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

갔다.

"지금은 내가 당신 몸을 탐구할 시간이오."

그의 타는 듯한 눈길과 부드러운 손길에 그녀의 몸이 다시 젖어들었다. 그의 혀가 그녀의 몸

위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굶주린 듯한 그의 시선이 몸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심장이 조

여드는 것을 느꼈다. 민감한 부분에 그의 혀가 닿을 때마다 그녀의 목에선 깊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 하나가 등뒤에서 배 쪽으로 원을 그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뺨이 베개 속에

깊이 파묻히고, 심장 고동 소리가 거칠어졌다. 그의 입술이 살갗을 스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애비. 애비. 애비."

부드러운 입술과 콧수염이 점점 더 집요하게 그녀를 갈구하고 있었다. 애비게일은 몸을 활처

럼 휘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 안았다.

"음, 애비, 당신은 너무나…… 작고 …… 아름다워. 쉬, 숨기지 말아요. 날 믿어요, 애비."

그는 그녀의 손을 입가에 가져가 이로 가볍게 씹었다.

"제시……."

거친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가 간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번에는 아프지 않을 거요, 애비. 약속하리다."

그의 혀가 온몸을 점거해 버리자 그녀는 저항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 뜨거운 열기로 그녀는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주위가 빙빙 돌고 어깨가 매트리스 속으로 파고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떠보

니 그도 그녀처럼 절정의 순간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팔을 들어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거친 음성으로 그녀의 귀에 사랑의 말을 속삭이며, 그녀를 강한 두 팔로 들어 올려 자

신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충돌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이 털로 뒤덮인 그의 가슴 위에서 흔들거렸다. 그녀도 소심함을 던져

버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고 호흡이 거칠게 들끓었다. 그의

머리가 베개밑에서 아치 형으로 젖혀지더니 두 눈을 꼭 감고 쾌감에 몸을 떨었다. 그녀가

조금전에 했던 그대로 그는 의지를 잃고 모든 것을 그녀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이거야. 이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랑을 나누는 거야.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의

행위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기쁨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목이 베개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절정에 도달하자

그는 뜻밖에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욕설 같기도 했다. 아니면 둘 다

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고 경쾌하게 몸을 움직였다. 쾌감

이 온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녀의 귓가에 껄껄거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나른한 환상적인 웃음소리였다.

그녀도 그 소리가 만족감에서 나오는 웃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도 저절로 커

다랗게 웃음짓고 있었다. 그에 대한 답례로 그녀는 천천히 온몸으로 깊숙이 그를 받아들였다

. 그는 나른한 두 팔로 그녀를 껴안으며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미소를 심었다. 그가 몸을 굴

려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오, 애비, 당신 최고야."

탄식 소리와 함께 쏟아진 그의 감탄이었다.

"당신 정말 죽여주는군."

그가 내뱉은 저속한 그 두 마디의 말이 무엇보다도 그녀를 즐겁게 했다. 그의 머리가 살짝

옆으로 꺾였다. 그의 손발도 기운이 빠진 듯 축 늘어졌다. 그의 눈은 평화롭게 감겨져 있었

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잠 속에 빠져든 그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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