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31화 (131/138)

130회

chapter5아침에 눈을 뜨니 정원이가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이런 풍경이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매번 볼 때마다 설레는 이유는 정원이를 매번 볼 때마다 질릴 일이 없기 때문이며, 내 행복의 총량은 정원이로 인해 정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ts병에 걸린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외모가 아름답다고 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화려한 외양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은 그리 신기할 것도 없는 자연현상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런 자연의 섭리에 성대하게 낚인 사람이리라.

정원이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정원이를 보고 있지 못하면 불행하다. 내 인생에 모든 관심이 정원이에게 쏠려있었으며, 내 모든 가치관이 정원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이렇게 아침에 정원이가 내 품 안에서 편안하게 잔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원이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정원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홀리는 기분이 들었다. 정원이의 짙고 맑은 갈색빛의 눈동자도, 어제 그렇게나 괴롭혔던 빨간 입술도, 그 가운데서 중심을 지켜주고 있는 오뚝한 코도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은은하게 나는 프레지아 향이 가장 나를 미치게 했다.

정원이를 껴안은 채로 정원이의 머리에 얼굴을 가까이해서 향을 맡았다. 땀을 흘리지 않을 수도 없었는데, 정원이에겐 향긋한 프레지아 향이 났다. 새하얀 꽃과 같은 은은한 체향. 이 모든 것이 이젠 내 것이었다.

내가 정원이의 체향을 맡기 위해 들썩인 것이 정원이의 잠을 깨웠는지 정원이가 뒤척였다. 조심히 움직인다고 한 것인데, 평소에 깊게 잠드는 것과 달리 오늘은 이미 조금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원이가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정원이는 아침에 약하다. 눈을 뜬 것이 잠에서 깬 것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었다. 멍하게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안심하는 표정. 그리고 행복한 표정. 나는 정원이의 미소가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 얼굴을 보고 배꽃이 만개하는 것 같이 웃는 이 표정이 좋다. 나 역시 너와 닮은 미소를 지으며 네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일어났어?”

“으으응? 아직 조금.”

“응, 급하게 일어날 필요 없어.”

정원이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내 팔에 머리를 베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기 위해 정원이는 이렇게 다시금 눈을 감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물론 이러다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정하가 아침마다 정원이를 깨우기 힘들어하는 것이리라.

나는 정원이가 베지 않은 손으로 정원이의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내며 정원이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왔다. 정원이는 기분 좋게 내 손길을 받아들이며 이내 눈을 떴다. 행복한 미소가 귀에 걸려있었다.

“매일 이렇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헤헤.”

“나도.”

“뭐, 여보야는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잖아요.”

“아, 넌 내일부터 회사 나가지. 아, 부럽다.”

“뭐라도 좋으니 일하고 싶다고 한 게 일 년 겨우 될까 말까 하거든? 그리고.”

정원이가 자신의 배를 소중하게 쓸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포근한 미소였다.

“여보야가 먹여 살려야 되는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 헤헤.”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네.”

“파이팅.”

정원이가 두 손을 쥐고 작게 파이팅 자세를 쥐었다. 잠에서 덜 깨서 행동이 느렸기에 더욱더 귀여웠다. 참지 못하고 입술에 키스하려고 하자 정원이가 내 입을 검지로 막았다. 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말했다.

“어제 나한테 뭘 시켰는지 기억 안 나?”

“뭘 시켰냐니, 음. 아.”

“양치하고 올게용.”

“큭큭, 다녀와.”

정원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나도 같이 일어나 정원이를 받쳐줬다. 정원이는 어색해하면서도 내 손을 피하지 않고 잡았다. 화장실까지 데려가 주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정원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양치를 하며 말했다.

“허후 어허히 아흐허 아히햐?”

“뭐, 걱정이 왜 이렇게 많냐고?”

“어.”

“걱정이 적은 거보단 낫지 뭐.”

“훔.”

다시 정원이가 샤워실에 머리를 감췄다. 곧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정원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말했다.

“같이 샤워할래?”

“시간 별로 안 남았는데.”

“그러니까 같이 씻자는 거지.”

“그러니까 같이 씻지 말자는 건데.”

“그런가?”

정원이는 갸웃거리더니 곧 내 말의 의미를 알아챈 듯 음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유혹하듯이 달콤하게 말했다.

“어휴, 어제 그렇게 해줘도 모자랐어?”

그 말을 듣자마자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 틈새에 손을 넣어 문을 열었다. 덤덤하게 정원이를 내려다봤다. 정원이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표정을 살피다가, 고개를 아래위로 몇 번이고 움직이더니 나를 마주한 채로 어색하게 말했다.

“바, 방금 이 닦았는데.”

“후우. 얼른 씻고 나와.”

“삐, 삐진 거 아니지?”

“진짜로 삐졌으면 시간 연장했지. 아, 연장할까?”

“빨리 씻고 나올게!”

정원이가 후다닥 문을 닫았다. 하마터면 문틈에 손이 낄 뻔했다. 피식 웃으며 정원이가 씻기 전까지 이불을 덮고 기다렸다. 빨리 씻고 나온다는 말이 허투루 한 말은 아닌지 정원이가 곧 나왔다. 모락모락한 김이 나는 것이 표정도 풀어져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언제 챙기고 들어간 건지 가운을 입고 있었다.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게 역시 정원이는 아름다웠다.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더니 정원이가 새침한 얼굴로 화장실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가서 씻기나 해!”

“그럴 건데?”

“얼른!”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들어가서 서둘러 샤워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정원이는 이미 옷을 차려입은 후였다.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은 모습을 보니 새삼스레 우리가 어제 함께 밤을 보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자 정원이가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포옹을 했더니 정원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옷이나 빨리 갈아입어.”

“알았어, 여보야.”

“어우, 으.”

가까운 사이에 나누는 호칭에 약한 정원이는 내가 여보라고 부르자마자 얼굴이 달아올라서 하던 화장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신음을 내고는 뺨에 키스했다.

“이걸로 끝! 나가야 하니까 빨리 갈아입어요, 여보야!”

“그래.”

나 역시 이 정도에 만족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모텔을 나와서 잠시 양해를 구해 차를 두고 근처에 괜찮아 보이던 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곤 모텔에 돌아와 차에 탔다. 정원이에게 오늘 뭘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정원이에게 극적이었던 만큼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기용품 사는 거?”

“뭐 어떤 거?”

“우음. 옷이나, 유모차나 뭐 그런 거?”

“음, 결혼 준비부터 마치고 결혼식 한 다음에 사던가 하자.”

“하긴 그게 순서가 맞는 거 같긴 하네.”

정원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 사도 상관은 없었지만, 정원이가 피곤해 보여서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 정원이를 집으로 데려가자 정하가 있었다. 정하는 우리가 도착하자 얼굴을 찡그린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한테 들었는데 사고 쳤다며.”

“어.”

“물론 나도 등을 밀기도 했고, 그렇긴 한데. 하아, 조심 좀 하지.”

“그러게 말이다. 아, 나랑 정원이랑 결혼할 거야.”

“뭐? 진짜? 결혼한다고?”

“아, 그건 못 들었냐? 사고 쳤으면 책임져야지.”

“아니, 그건 맞는데. 허어.”

정하는 나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씩 웃었다.

“그럼 뭐 괜찮네.”

정하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나와 정원이를 이어주려던 목표가 달성됐으니 정하가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정하는 처음엔 나를 죽이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내 말을 듣고 어느새 싱글거렸다. 정하가 정원이를 흘끔 바라보자 정원이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내 등 뒤로 숨었다. 정하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오른다더니.”

“하, 하지 말라고.”

“흐즈 믈르그.”

정하가 내 등 뒤에 숨은 정원이에게 다가가 놀리면서 뺨을 잡고 흔들었다. 정원이는 그런 정하의 손에서 피하려고 버둥거리며 내 옷깃을 잡았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내버려 두고 싶지만 지금 정원이는 하나라도 조심해야 할 때였다. 정하의 손을 떼어내고 웃으며 말렸다.

“정원이 조심해야 할 때니까.”

“어휴, 어화둥둥 복덩이네. 알았어. 아, 맞다. 집 나가줄까?”

“음, 아니야. 한동안은 이렇게 지내자. 내가 정원이랑 살 집 천천히 구해볼게.”

“아, 맞다. 여기 내가 먼저 들어왔지?”

정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정원이와 나도 웃음보가 터졌다. 그날은 정원이가 한참이나 잠을 잤고, 내가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정하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쉬면서 보냈다.

월요일이 돼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정원이의 퇴사 처리였다. 정원이는 사직서를 냈고, 홍보팀장님만이 아쉬워했다. 정원이에게 들은 바로는 홍보팀장님은 정원이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혹시 주위에 도는 소문 때문에 퇴사하는 거라면 자신이 힘써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원이가 임신 때문에 회사를 다니기 힘들 거라고 말하자 웃으며 행운을 빌어줬다고 했다. 정원이의 회사에 대한 기억이 안 좋은 것으로만 남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 역시 내일과 모레 이틀 휴가를 썼다. 이유는 정원이와 함께 병원에도 가봐야 하고, 결혼 준비도 일단은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총무과장님께선 오히려 이번 년 끝나기 전에 제발 부탁이니 연차를 반이라도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연차의 반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정원이에게 신경 써줘야 할 날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또한 아버지와 상담을 하며 고소나 이런 여러 가지 기타 업무를 처리했다. 아버지께서도 정원이가 우리 집안에 일원이 돼서 그런 건지 굉장히 적극적이셨다. 아마 어머니보다 아버지께서 더 손주에게 물러지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편 정원이 핸드폰에 남아있는 연락처를 통해 국정원에도 연락을 넣었다. 대체 어쩌다 대중들이 알게 된 건지, 현재 추이는 어떤지 묻고 싶었다. 현재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 이번 달 건강검진을 미리 받고 싶기도 했다. 국정원에선 내일 찾아오겠다고 답했다.

화요일이 돼서 정하는 출근 하고 정원이와 둘이 정원이네 집에 남아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요즘은 잘 울리지 않는 초인종. 문을 열어보니 예의 인상이 흐릿한 그 사내가 서 있었다. 그 사내는 자신의 인상만큼이나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미리 펴놓은 상에 정원이가 일어나려 하자 내가 말리고 준비해놓은 차를 따라왔다. 차를 넘기자 사내는 한 입 후룩 마시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어디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럼 어쩌다 유출이 됐는지부터 듣고 싶은데요.”

“흠, 타당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말씀해드릴 수 없는 질문이군요.”

따지고 싶지만 따지지 않았다. 사실 말해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좋았다. 한숨을 내쉬고 다른 것을 질문했다.

“그럼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어떻습니까.”

“정부의 대처라고 한다면 아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음, 죄송합니다. 대답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대중들의 반응이라면 아시는 대로 조금 살벌합니다. 저희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내도 난처한 듯 말을 서서히 뭉갰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대답해줄 거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시원한 답변이 무엇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조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신변이 공개된 성별 변환자 들에 대해서 정부에서 하는 게 뭡니까?”

“음, 일단은 보호조치를 하고 있습니다만, 하아. 부끄럽군요. 사실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그게 대체!”

내 목소리가 높아지려고 하자 정원이가 내 손을 잡았다. 정원이를 바라보자 정원이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정원이의 손을 부여잡고 겨우 화를 참아냈다. 나보다 정원이가 더욱 화가 날 것이었다. 그런 정원이가 참는다면 내가 먼저 화를 낼 순 없었다. 다시 진정하고 표정을 굳힌 채로 입을 열었다.

“정원이가 임신했습니다.”

“오오, 그건 축하할 일이군요.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달엔 정기검진을 조금 이르게 받고 싶습니다. 임신 관련 검사도 포함해서요.”

“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예.”

사내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다정원씨가 임신을 했다면, 네. 성별 변환자 중 처음으로 임신을 하신 사례가 됩니다. 저희 쪽에서도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검사를 하신다면 저희 쪽에서도 좋지요. 신경을 더욱 쓰겠습니다.”

“말이 좀 이상한데요. 정원이랑 우리 아이를 모르모트처럼 여기시는 것 같이 들립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지금 대중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지게 되면서 신변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를 임신하셨으니, 저희 쪽에서 다정원씨의 안전에 한층 더 각별히 신경을 쓰겠다는 소리였습니다.”

“음, 그렇다면 뭐. 알겠습니다.”

내가 사내를 노려보자 사내는 난처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엔 미리 전달해 놓을 테니 편하실 때 가셔서 검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관련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주십시오.”

“네. 정부에서 이쪽에 대한 조치가 정해지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사내는 이전과는 달리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사내에게도 이 자리는 굉장히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사내가 떠나자 정원이가 책망하는 듯 내 팔을 약하게 때렸다.

“왜 이렇게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어.”

“너에 관한 얘긴데 계속 말을 돌리길래.”

“그래두.”

정원이의 얼굴이 흐려졌다. 내 행동의 무언가가 정원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위기도 쇄신할 겸 정원이의 어깨를 주물러줬다. 정원이도 이내 웃으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후 결혼 날짜를 잡고, 장소를 물색하는 등 계획을 짰다. 계획은 순탄하게 짜졌다. 마치 순풍을 받으며 목적지로 힘차게 나아가는 배처럼 모든 것이 순탄했다. 우리는 결혼할 것이고, 아이를 낳을 것이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세상의 시선은 상관없었다. 오로지 정원이와 나만이 행복하면 됐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 병원이었다.

“보호자 분 잠시만 들어오세요.”

“저만 들어갑니까?”

“예. 환자분은 검사 하나만 더 할게요.”

“네? 앗, 네.”

간호사가 우리를 따로 불렀다. 아쉬웠지만 정원이가 추가로 받는 검사에 대해 나에게 미리 설명할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원이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홀로 의사를 대면했다. 의사는 나를 바라보다가 안색이 변했다. 어두운 안색이었다. 의사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나는 저 표정을 알고 있다. 예전, 정원이와 나의 관계가 어긋날 때 자주 짓던 표정. 말을 꺼내고 싶지만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입안에서 말이 헛돌고 있는 그 표정. 불쾌한 표정이었다. 내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사그라졌다. 천천히 의자에 앉아서 의사를 가만히 바라봤다. 의사는 마침내 태도를 정한 모양이었다. 무표정하게 사실을 덤덤히 건네기 시작했다.

“환자분께는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그, 환자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불쾌한 얼굴로 다소 공격적으로 내뱉었다. 아까부터 계속 걸리던 말이었다. 간호사가 정원이를 부를 때부터 계속 얹히던 말이었다. 의사는 고개를 젓고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환자분께선 임신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복해서 찾아봤습니다만, 저희 검사 결과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초음파 사진은 깨끗했다. 그 안에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염증도, 상처도, 그리고 아이도. 무언가 존재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더듬거리며 사진을 만졌다. 만지고 만져도, 없었던 것이 생길 리는 없었다. 정원이를 찍은 초음파 사진은 깨끗했다.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후기]아픈 연참이 되겠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