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회
chapter5아버지께서 오늘은 정원이와 함께 밖에서 자고 오라고 하셨다. 이유는 여럿 있었으나 중요한 것을 추리자면, 임신 초기 불안정한 시기에 정원이를 잘 챙겨줘야 한다는 점, 정원이의 오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어머니께서 불편해하시니 집에서 정원이를 재우기는 어렵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나 역시 정원이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여서 승낙하고 집을 나섰다. 오히려 이참에 장기적으로 집을 나갈지를 물어봤다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됐으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꾸중만 들었다.
차에 타서 정원이를 바라보자 아직도 눈가가 붉은 기운이 남아있었고, 조금 부어있었다. 나오기 직전까지 얼음을 비닐과 수건에 싸서 냉찜질을 해줬는데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저런 모습도 귀여우니 나야 좋았지만, 정원이는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하기야 정원이가 하루 종일 긴장하고, 울고, 감정을 소모하고, 심지어 애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진이 빠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차에 앉아 출발하기 전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역시 이 말을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고했어.”
“웅.”
정원이가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이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뭔가 후련해 보이는 미소이기도 했다. 나는 정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원이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서 쓰다듬는 맛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한 올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쓸렸다. 정원이는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정원이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봤다. 아직 안색이 좋지 않았던 정원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정원이가 입을 떼기 전에 내가 먼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배고프다!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나네!”
“어, 어?”
“아까 나도 쫄아가지고 밥을 못 먹어서! 아이고! 부끄러워라!”
“하, 너.”
내가 정원이가 놀라지 않을 만큼 적당히 큰 소리로 외치자 정원이가 피식 웃더니 내 손을 제 뺨에 댔다. 그리고는 웃으며 내 손으로 제 뺨을 쓸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우리 자기 스윗하기도 하지.”
“어? 뭐가?”
“됐어. 괜찮아.”
정원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내 손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웃는 것이 대처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정원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아이가 먹고 싶다고 보채는 걸지도 모르는걸. 부끄러울 일도 아니긴 하네.”
“음, 그래, 뭐.”
“아, 정하한테 전화해야겠다. 솔직히 너까지 우리 집에서 자기엔 우리 집이 좀 좁아.”
“아, 오케이. 그럼 적당히 괜찮은 고깃집으로 갈까?”
“음, 어차피 술은 안 마실 거니까, 괜찮으려나. 아, 너 혹시 술 마시고 싶어?”
“아니. 오늘은 절대 안 마셔.”
“왜?”
오늘은 너만을 신경 쓰고 싶으니까. 말을 꺼내려고 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냥 이 감정이 전해지기만을 바랐지만, 동시에 무엇이라 정하고 맺어내기엔 썩 부끄러웠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무뚝뚝하게 말을 흘렸다.
“그 정도는 알아서 눈치 좀 채라.”
“어, 음. 헤헤.”
정원이는 장난스럽게 웃던 조금 전과는 달리 행복한 듯 헤실헤실 웃었다. 내 의도를 뒤늦게 알아채고 이 상황을 넘겨보려는 속셈이었지만, 결국 나도 저 미소엔 이길 수가 없으니 정원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셈이었다.
정원이가 정하에게 오늘 못 들어간다고 전화하는 동안 나는 매일 가던 고깃집으로 향했다. 정원이가 전화를 끊은 것과 고깃집에 도착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차에서 내리고 서둘러 정원이 쪽의 차 문을 열어주며 정원이의 손을 잡아줬다.
“에이, 너무 극성이다.”
“공주님처럼 안아 달라고?”
“아, 아니! 손잡고 제 발로 갈게요. 에스코트 감사합니다아.”
정원이가 얌전히 손을 잡고 나왔다. 차 문을 닫고 고깃집에 들어갔다. 고깃집에서도 최대한 편한 자리를 찾아서 정원이를 먼저 앉혔다. 매번 우리를 맞이하던 알바가 우리를 보며 웃었다.
“완전히 여자 친구분한테 잡혀 사시네요, 이제.”
“네. 제가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죠.”
“뭐래, 내가 더 좋아하거든?”
“아하하, 주문은요?”
알바가 바로 말을 돌렸다. 방금 한 말을 떠올려보니 알바가 속으로 우리 욕을 안 하면 다행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곤 삼겹살 3인분과 제로콜라를 두 개 시켰다. 정원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이, 너도 이제 킹갓엠퍼러 제로콜라님의 맛을 알게 된 거냐?”
“아니. 지금도 싫어하는데?”
“근데 왜 먹는데.”
“니가 좋아하니까.”
“……딸꾹.”
내 대답을 듣자 정원이의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딸꾹질을 자주 하는 애가 아닌데, 오늘따라 너무 울어서 횡격막이 약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울면 횡격막이 약해지던가? 이유야 뭐든 상관없었다. 사실 이유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더니 얼굴이 더 빨개진다.
나는 딸꾹질을 하는 정원이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 다시 내쉬었다. 그저 그것을 반복했다. 정원이는 딸꾹질을 하면서 나를 바라보더니, 나를 따라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후우, 딸꾹, 후우, 딸꾹. 야, 이거, 딸꾹, 효과 있는 거 맞아? 딸꾹.”
“아니 그렇다고 내가 널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없잖냐.”
“그렇긴 한데, 딸꾹.”
곧 고기와 제로콜라가 왔다. 정원이는 제로콜라를 까서 바로 마시더니 시원하게 외쳤다.
“캬아. 끝내준다!”
“어, 너 딸꾹질 멈췄다.”
“어? 그러네? 역시 제로콜라가 최고인 거 같아!”
“퍽이나.”
나는 그런 정원이를 비웃으며 고기를 구웠다. 정원이는 그런 나를 보며 투덜거리며 상 세팅을 하려고 했다. 보통 이럴 때 정원이가 젓가락이나 이런 걸 세팅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정원이의 손등을 아주 약하게 때리며 말렸다.
“어허.”
“아니, 이 정도는 할 수도 있지.”
“어허.”
“겨우 이런 거 가지구.”
“괜히 어? 나한테 젓가락 넘겨주다가 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에휴. 예, 예. 웅애. 정원이는 아가야, 아가는 지켜 조야 대.”
“뭔 이상한 드립을 또 배워왔네.”
정원이와 그렇게 잡담을 나누면서도 고기를 올리자마자 바로 젓가락과 숟가락, 앞 접시 등을 빠르게 세팅했다. 그 모습을 보던 정원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나 너랑 결혼하길 잘한 것 같아.”
“뭐, 말 자체는 듣기 좋은데. 하필 지금?”
“그래두. 솔직히 이제 너랑 고기 안 먹으면 뭐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 어린왕자의 여우가 된 기분이야.”
“그래, 넌 나한테 길들여졌다. 그러니까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이렇게 살아. 다 내가 할 테니까.”
“우와아. 한 번 더 반해버릴지도.”
“시즌 몇 번째 반하는 거야?”
정원이는 그렇게 눈을 빛내며 과장되게 나를 띄워줬다. 나 역시 속셈을 알면서도 어울려주며 즐겁게 웃었다. 어느새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정원이에게 넘겨줬다. 정원이는 그걸 상추와 깻잎에 싸서 구워진 마늘까지 담아서 꼭꼭 싸더니 내게 입 앞에 내밀었다. 내가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정원이가 입을 열었다.
“아앙.”
“아, 아앙.”
“헤헤. 맛있어?”
달다. 고기가 달다. 정원이가, 그 정원이가 고기 첫 점을 나한테 싸서 주다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손으론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정원이는 내 격렬한 반응을 보더니,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하니까, 지금까지 안 해준 게 미안해지잖아.”
우물우물
꿀꺽
“앞으로 더 해주면 되지.”
입안에 있던 쌈을 잘 구워진 마늘 한 조각까지 모두 꼭꼭 씹어 삼키고는 대답했다. 그러자 정원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 니 말이 맞아. 응, 앞으로 많이 해줄게.”
“흐흐.”
“와, 방금 웃은 건 좀 변태 같았어.”
정원이가 질색하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헛기침을 한 번하고 다시 정원이에게 고기를 넘겨줬다. 정원이는 부지런히 챙겨 먹으면서도 한 번씩 내게 쌈을 싸서 먹여줬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편의점에서 후식으로 먹을 달달한 것을 사러 들어갔다. 편의점에 들어가며 정원이가 나를 바라보며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오, 오늘은 안 되니까.”
“알아. 안 살 거고, 안 할 거야.”
아무리 나라도 임신했다는 애랑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의심을 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눈을 가늘게 하고 째려봤더니, 정원이가 고개를 홱 돌리고 모른 척을 했다. 그리곤 달콤한 초콜릿이나 짭짤한 과자, 그리고 그놈에 제로콜라를 바구니에 담으며 내 눈빛을 계속 피했다.
정원이는 한 아름 군것질거리를 담아서 카운터에 놓고 나서야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정원이가 내 팔을 잡더니 어린아이처럼 내 팔을 흔들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아잉, 오빠야, 왜 그래애.”
“오빠를 믿지 않은 정원이한테 줄 카드는 없는데.”
“에이, 정원이는 오빠만 믿지, 헤헤.”
또, 또 저 웃음. 강아지가 며칠 못 본 제 주인 보는 것 같은 저 웃음만 보면 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버텨보려고 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 카드를 넘겼다. 정원이는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비닐봉지에 군것질거리를 담았다. 그래놓고 결국 드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렇다고 임산부한테 무거운 걸 들라고 할 수도 없으니 이것 역시 별수 없었다.
차에 사 온 것을 던져놓고 근처에 괜찮은 모텔이 없나 찾았다. 그런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 근방이 딱히 번화가인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모텔이 많아야 할 지역도 아니었기에 모텔 자체가 없었다. 모텔이 있는 것도 그나마 신촌과 우리 동네의 사이였는데, 거기에 갈 바엔 차라리 신촌을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차를 몰아 연인이 같이 갈 만한 곳으로 검색한 모텔로 몰았다.
도착하니 과연 분위기가 연인이 올 만한 곳이었다. 방을 하나 잡고 정원이와 들어가니 아무리 봐도 그런 분위기였다. 어차피 할 수도 없는데 괜히 이런 곳을 찾았나 했는데 정원이가 내 손을 잡으며 꼼지락거렸다.
“오늘 안 한다며.”
“어, 음. 응. 안 할 거야.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솔직히 못 하잖아.”
“우음. 그건 글치.”
정원이가 애틋한 얼굴로 자신의 배를 쓸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의도한 행동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다짐을 다질 수 있었다. 안정기에 가면 다시 할 수 있다고 듣기도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보자. 정원이는 꼼지락거리다가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럼 샤워라두 같이 할래?”
“하아.”
“시, 싫어?”
“당연히 좋지, 좋은데.”
정원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원이도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손가락을 꼬물거리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얘가 여자랑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가. 남자의 인내심을 극한까지 테스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건 정원이의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어서였다. 생각해보니 같이 샤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더 말을 잇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이는 새빨개진 얼굴로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그러다 내가 먼저 옷을 대충 벗어 던지자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가, 갑자기 빨개 벗고 그래!”
“뭐? 뭔 소리야. 어차피 옷 벗고 같이 들어갈 건데.”
“그, 그래도!”
“아니, 정원씨, 아니 여보야. 너 지금 임신했어요. 황새가 애를 물어준 것도 아닌데, 어?”
정원이가 옷을 벗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입을 부르르 떨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눈이 조금 무섭다.
“바, 방금 뭐라고?”
“뭐, 어차피 옷 벗을 거라고? 아니면, 황새 얘기?”
“아니 그 가운데!”
“어? 아, 여보야? 우리 결혼할 거잖아. 근데 그게 왜?”
“흐아악! 여보야! 여보야! 그래, 우리 결혼할 거지? 여보양!”
정원이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나를 끌어안고는 미친 듯이 얼굴을 비볐다. 그 열렬한 반응에 뭔가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다가 저번에도 정원이가 내게 ‘자기야.’라는 호칭을 듣고 이런 식으로 격렬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결론적으로 정원이는 이런 호칭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한 큰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여보야 한번 말해주는 게 힘든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좋아하면 못 해줄 것도 없었다. 최대한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정원이가 좋아하는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정원이를 불렀다.
“여보야, 우리 여보 그렇게 여보란 소리가 듣고 싶었어? 얼마든지 불러주지, 뭐. 여보야, 여보야. 사랑해, 여보야.”
“허으윽, 그만, 그만해. 나 못 참을 것 같단 말이야.”
“뭘 못 참는데, 여보야? 우리 여보하고 싶은 대로 다 해.”
“흐이잉, 사랑해, 여보야. 진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래, 나도 사랑해, 여보야.”
여보라는 호칭이 정원이의 무슨 스위치를 올렸는지 몰라도 정원이는 한참을 그렇게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폭주를 했다. 옷을 먼저 벗은 나야 좀 쌀쌀했지만, 정원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한참을 부드럽게 여보야라고 속삭이며, 정원이가 벗다 만 옷을 한 꺼풀씩 벗겼다. 그게 정원이에게도 좋은 자극이 됐는지 정원이는 귀여운 신음을 내면서도 내게 더 안겼고, 결과적으로 나는 더욱 인내심을 수련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게 정원이의 옷을 벗기자마자 바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담고 들어왔다. 내가 추운 거야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정원이가 추운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욕조에 들어가려니 욕조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아서 정원이를 다리 사이에 두고 안고 있는 모습이 됐다. 정원이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뭔가 안심된다. 나 역시 너한테 이렇게 등 뒤에서 안기는 게 제일 좋을지두.”
“나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아니야.”
“그럼?”
“마주 보고 안는 게 더 좋더라. 이러고 있으면 니 얼굴을 못 봐서 아쉬워.”
“힝, 여보양.”
정원이가 고개를 돌리며 내 볼에 키스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 역시 아마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원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다시 입술을 맞추고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마에 입술을 맞추자 정원이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키슈 안 해조요?”
“그럼 내가 못 참아.”
“읏.”
정원이 역시 느껴지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몸을 맞대고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할 것이었다. 정원이는 귀 끝까지 빨개져서 제 무릎 사이에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꼭 끌어안고 따뜻함을 즐겼다. 서서히 차오르는 물이 따뜻해서 몸이 풀렸고, 정원이가 따뜻해서 마음이 풀렸다. 정원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개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키스 한 번 해주면 여보야가 원하는 거 해줄게요.”
“어? 뭐?”
“그, 아가야한테 위험하지 않은 거면 다 해줄 수 있어요.”
“어, 어, 너, 어.”
내가 제대로 말을 못 잇고 버벅거리자 정원이가 뒤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평소와도 같이 내가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미소였지만, 조금 느낌이 달랐다. 평소의 미소는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면, 이 미소는 조금 야했다. 아니, 매우 야했다.
툭. 인내심이 끊기는 소리가 났다.
“니가 먼저 시작한 거다?”
“네에, 여보.”
오늘은 정원이에게 너무 아픈 날이었다.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긴장했고, 너무 많이 힘들었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인정받고 수용이 됐지만, 그전까지 정원이는 많이 고생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정원이는 임산부였다. 내가 정원이를 위해서 뭐든지 해줘야 할 시기였다. 그러니까 정원이에겐 상을 줘야 했다. 정원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줘야 했다. 어,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정원이를 위한 것이다. 우리 정원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작품후기]원랜 오늘 마지막 스토리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강휘랑 정원이가 서로 좋아 죽겠다고 안달을 내니 어쩔 수가 없네요. 달달한 보너스 화라고 생각해주세요.
이러나 저러나 이번 주 안엔 완결이 날 예정입니다. 좀 더 달달한 걸 쓰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합니다만, 제 안에서 이야기가 끝을 맺어서, 그걸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요. 하하.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가져 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