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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1화 (11/138)

11회

chapter1치킨은 언제나 옳다. 그 중 다리는 더더욱 옳다. 치킨이 이 세상을 두 다리로 서셨으니 다리가 옳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돈 낸 사람도 옳다. 옳지 않은 건 이 상황뿐이다. 이 시대에 인권은 없다. 적어도 이 공간에선 사라졌다.

“내가 샀는데 왜 시발…….”

“아 꼬우시면 가위바위보 이겼어야지. 패배자가 말이 많네.”

2:1은 이길 수 없다. 다구리엔 장사가 없다는 건 대부분 들어맞는 말이다. 나는 다수의 폭력에 굴복하여 가위바위보를 했고 네 번째 다리는 정원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돈 낸 건 난데.

나는 부들거리면서 다 먹은 치킨을 치우고 상에 앉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정원이와 정하도 자리에 앉았다. 정원이가 내 얼굴을 보곤 말했다.

“그래서 니네 나한테 숨기는 게 뭐냐?”

“그렇게 티 났냐.”

“오냐, 이 형님이 너랑 알고 지낸지 몇 년째냐.”

“……그래.”

하긴 내가 정원이를 빼고 정하랑 둘이서 얘기를 하러 간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어지간하면 정원이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겠지. 나는 정하에게 눈짓했다. 정하는 눈가를 찡그렸다. 하긴 정원이에게 털어놓기로 한 것은 나였다. 정하는 어디까지나 조력자 역할이었다.

“니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갔을 때 얘기 정하한테 들었는데.”

“어, 마시러 갔었는데.”

정원이가 샐죽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가늘어진다.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정하에게 충분히 한 소리 들었는데 너까지 그런 소리를 할 거냐는 의미를 가진 일종의 공격신호였다. 나는 움찔했지만 말을 이었다.

“그 때 니가 모르는 일이 있었던 거 아냐?”

“뭔, 시발. 뭔 소리야?”

입을 열었지만 나올 말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말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모두 게워내고 나면 남는 것은 말뿐이었다. 그 말이 나올 때까지 한숨을 비워내면 결국 말은 나오게 되어있었다. 그 때 정하가 말했다.

“다정원 너 모텔 앞에 있었어.”

“뭐?”

“니 친구란 새끼들 몇 놈이 너 술 쳐마시고 뻗어있을 때 모텔로 끌고 가고 있었다고.”

정원이의 눈동자가 탁해졌다. 정하를 바라보고 입을 열려고 하다가 다시 입을 닫는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본다. 한참을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나는 정하에게 감사했다. 저 말을 내가 하려면 한참을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 뱉고 나서 후회했을 것이었다. 나는 정하에게 창피했다. 말해야 한다고 한 것은 나였다. 나는 그것을 정하에게 미룬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정원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여러 반응을 예상했다. 그 반응에 대한 반응을 생각했다. 생각을 하는 동안 누군가가 시간의 양 끝을 잡고 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원이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냥 내가 뻗어서 집에 보내기 힘드니까 재울라고 방 잡아 준 거겠지.”

정원이는 억지로 웃으면서 하이톤으로 말했다. 긍정적으로 말하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말했지만 자신도 믿기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내 안에 있는 한숨은 얼마나 내쉬어야 끝을 보일까.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이 나올 정도로는 충분히 비워졌다.

“너 보낼 거 같았으면 정하한테 전화했어도 됐잖아.”

“정하 번호를 몰랐겠지.”

“정하가 니네 술자리로 간 거 10시 남짓이야. 근데 이미 자리 떴었어.”

“2차 갈라는 거였겠지.”

“1차에서 너 꼴게 하고 말이냐?”

정원이의 웃음이 점점 사라졌다. 얼굴이 석고를 부은 것 같이 굳어진다. 점점 정원이의 표정이 옅어진다. 마침내 정원이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견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노려보는 것조차 아니었다. 지금 정원이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뭐냐고 시발새끼야!”

감정을 떠내던 정원이의 얼굴에 표정이 올라온다. 당황. 분노. 짜증. 후회. 빨갛고 검은 색깔이 정원이의 얼굴에 깃든다. 울긋불긋한 색채가 무채색을 가득 채운다. 정원이가 내 멱살을 잡는다. 나는 버틸 수 있었으나 그냥 하염없이 흔들렸다.

“그만해 언니!”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시발년아!”

정하가 말리려고 했지만 정원이는 그런 정하를 밀쳐냈다. 나는 정하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아. 끼어들지 마. 정원이는 단지 화내야 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생각했던 상황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아니지만 차선정도는 되는 상황이었다. 아아, 썩 나쁘지 않았다.

“뭐, 이 시발 개새끼야! 내가 그럼 시발 내 친구들한테 따먹힐 뻔했다. 이런 소릴 하고 싶은 거야, 시발새끼야?”

“니가 뭘 알아 시발새끼야! 니가 그 자리에 있었어? 시발 니가 그 새끼들을 알아? 모르잖아 시발새끼야!”

“내가 그럼 내 불알친구들이랑 술 쳐 마시면서까지 눈치 보면서 살아야 돼? 시발새끼야!”

“난 그 새끼들 믿는다고, 시발! 니가 뭔데 걔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시발새끼야!”

“나 남자야, 시발! 내가 계집애로 보이냐! 시발!”

“그리고 니가 뭔데 시발 정하한테 그딴 걸 물어봐! 니가 내 뭔데 시발새끼야! 뭔데 시발! 내가 거기서 따먹히면 뭐, 이 시발 니가 뭔데!”

“니가! 뭐! 왜! 시발!”

정원이는 어느 순간부터 멱살을 놓고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있었다. 퍽퍽. 두 손에는 힘이 가득했지만 별로 아프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아팠다. 정원이가 힘껏 치고 있는데도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아팠다. 정원이가 나를 때리면서 화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 와중에 정원이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아팠다. 그저 이 상황이 아팠다.

“아니야, 걔들이 그럴 리가 없단 말이야……. 내가 남자로 걔네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나 긴데. 겨우 하루 만에 그랬을 리가 있나. 걔들이 그럴 리가 없어.”

정원이는 홀린 듯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차선이 최악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내가 휴대폰을 뺏으려고 하자 정원이는 나를 세차게 밀었다. 나는 밀리지 않을 수 있었지만 버틸 수 없었다. 정원이가 나를 거절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어, 나야. 그 날 무슨 일 있었어.”

“어”

“어.”

“어……. 이 개 시발 새끼야!”

정원이가 핸드폰을 던졌다. 핸드폰에선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울리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만이 방을 울리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한 게 틀리길 바랐다. 정원이가 전화를 하는 순간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그냥 너 재우려고 데려갔지.’ 라는 투의 말이 나오기를 바랐다. 사실 20퍼센트 정도는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걱정한 것처럼, 정하가 느낀 것처럼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정원이의 표정이 계속 변하고 있었다. 정원이는 또 한 차례 망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음울하게 바라보다가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야. 나중에 나 한번 보자.”

[미아……, 너, 너 누구야!]

“닥치고 시발새끼야. 너네 좆방망이 다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아가리 싸물어. 시발새끼야.”

나는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휴대폰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정원이를 바라봤다. 정원이는 넋이 나간 것처럼 웃고 있었다. 울지 않고, 웃고 있었다.

“하, 하하. 하하하. 이 시발……. 흐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내가 다가가려고 하자 정원이는 움찔거리고는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에 멈췄다.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참는다. 나는 이 상황에 한숨조차 내쉬어선 안 된다. 나는 정하를 바라본다. 고개를 까딱인다. 정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하는 정원이에게 다가간다. 정원이는 정하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정하가 정원이를 끌어안자 그제서야 정원이는 울기 시작했다.

“시발, 시~발! 시발 개새끼들아! 난 남자야! 이 호로게이 새끼들아!”

정하는 정원이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정원이는 그저 울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한 소설이나 이야기였으면 내가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야기보다 잔인했다.

나는 그것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바라본다. 한참을 울던 정원이가 아랫배를 부여잡고 주저앉는다. 정하가 정원이를 따라 같이 주저앉았다. 정원이가 고개를 내린다. 정원이의 표정이 표백제를 넣은 듯이 무너져 내린다. 정하의 시선이 정원이의 시선을 따라간다. 정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정하는 정원이를 끌어안은 채로 나를 돌아본다. 그 순간 영화는 끝났다. 날 리가 없는 피비린내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한강휘! 당장 나가!”

나는 총을 맞은 것처럼 주춤거리다가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정하가 한 번 더 소리쳤다.

“나가라고, 빨리!”

나는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사자를 만났던 것을 떠올린다. 그때처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을 열고 도망갔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한참을 서있었다. 온 몸이 벌벌 떨린다.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자가 포효한다. 나는 그것이 하염없이 두려워서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 품에 안겼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었다. 안길 대상이 없었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나는 어른이었다. 정원이는 어른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풍경에서 정원이는 어린애처럼 안겨서, 울고불고, 하혈을 하며,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혼절했다. 정원이는 어른이었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하가 안아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원이는 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른이 된 정원이의 얼굴은 하얀, 너무도 하이얀 얼굴이었다. 그 하얀 얼굴만이 내 안에서 오버랩되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반복해서, 그 얼굴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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