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 승리의 축배를 그대에게
테바로스 군이 완전히 철수한 후, 카이로스의 모든 군대는 무사히 에토르로 입성하였다.
이기긴 틀렸던 전투에서 승리한 덕분인지, 평소의 승전보다도 더 크게 군사들은 환호했다.
매 전투 때마다 포상이 후하기로 유명한 에단의 명성답게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생해 준 군사들을 위해 그는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러니 모든 건배사들의 끝은 에단과 로엘에 대한 찬양일 수밖에.
“다들 신 났네요.”
연회장으로부터의 소리가 에토르의 최상층, 에단이 머무는 방까지 들려왔다.
전투를 마무리하며, 여타 보고를 듣느라 그는 이제야 씻고 나올 수 있었다. 미리 그의 침실에 들어와 있었던 그녀는 수건을 들고 자연스럽게 그를 맞았다.
“계속 나랑 말 안 할 거예요.”
그러함에도, 그는 그녀에게 제대로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보자마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품에 안을 때는 언제고, 지금은 마치 그녀가 없는 사람인 양 눈도 제대로 맞추려 들지 않았다.
“폐하.”
그래서 결국 참다못해 그녀가 먼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씻고 나온 직후라 아직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고, 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로엘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무슨 마음인지 알고 있다. 어떤 생각인지도 알고 있다.
그는 그저 그녀를 너무 걱정했을 뿐이다.
“정말. 감기 걸린다고요.”
걱정한 만큼 미안하고, 그 상황에 화가 나고. 그렇게 홀로 감정을 삭였겠지.
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하며.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들고 있던 마른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닦았다. 키 차이가 많이도 나 그의 머리에 손이 닿는 거 자체가 버거웠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열심히 그의 황금빛 머리칼을 닦아 주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리 작고. 이리 가녀린데.
도대체 무얼 믿고 이 여자는 그리 용감한 걸까.
“옷 좀 제대로 입고 나오시라니까요. 은근히 이상한 고집 있다니까? 당신이 아프면 몇 명이 피곤해지는 줄 알기나 해요?”
도톰하고 작은 입으로 재잘재잘 잘도 말하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의 종달새.
“황제시면 좀 더 자신의 몸을 돌보시라고요.”
이리 잔소리를 해도, 그를 서운하게 만드는 아픈 말을 해도 듣기 싫은 적이 없다.
그저 이 목소리가 좋았다. 무슨 말을 하든 그에게는 예쁘기만 한 속삭임이었으니까.
“정말. 듣고 있는 거 맞아요?”
그래서 늘 불안하다.
이 작고 사랑스런 새가 언젠가는 훨훨 그의 곁을 떠나 날아가 버릴까 봐.
“듣고 있어.”
그의 단단한 팔이 드디어 그녀의 가는 허리를 안아 당겼다.
겨우 들은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작은 한숨을 삼켰다.
“이제야 목소리 듣네.”
그녀 역시 자연히 몸에서 힘을 빼고 그의 목에 손을 둘렀다.
그리고 똑바로 아름다운 황금의 눈동자을 마주했다.
“보고 싶었어요.”
저 멀리, 언덕 위에서 처음 그를 보았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말.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에단.”
피바다 속에서 홀로 빛나던, 위태로운 그 순간에도 아름답던 이 남자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좀 더 세게 그를 안았다.
그 역시 더 이상 망설임 없이 그녀를 세게 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보고 싶었어.”
그녀의 향기가 코 안에 가득 차고, 그녀의 온기가 그의 식은 몸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쿵쿵쿵. 맨가슴에 느껴지는 그녀의 심장 소리와 목덜미에 느껴지는 숨결.
그녀가 그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안도시켰다.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그는 가볍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자연스럽게 침대로 가 그녀를 내려 두면서, 에단은 그녀의 위로 올라섰다.
로엘 역시 자신을 덮는 그의 그림자에 살짝 얼굴 붉히며 손을 올려 그의 목을 당겼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으응.”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익숙한 뜨거움이 번져 갔다.
그녀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 그는 폭풍처럼 그녀의 안을 헤집어 놓았고. 그녀는 그의 뜨거움에 취해 갔다.
이리 서로에게 닿는 것이 얼마 만인가.
“하아. 에단.”
“부족해.”
그 떨어진 시간만큼의 보충이 필요하다.
그 인내의 시간만큼의 보상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부족해.”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리고,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뺨을 감쌌다.
열기에 흐려진 시야 너머로, 그녀만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속에 그답지 않은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아아. 그는 정말로 두려웠나 보다.
“나도 부족해요.”
그녀는 그를 좀 더 당겨 먼저 그의 입술을 찾았다. 고른 치아를 간질이며 들어오는 그녀를 그는 한달음에 더 깊이 밀고 들어왔다. 서로의 혀가 휘감겨지며 꾹꾹 참아 왔던 욕망이 폭발하듯 두 사람은 서로를 찾고 또 찾았다.
“로엘.”
그의 맨가슴에 닿은 그녀의 가슴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그녀의 향기는 더더욱 진해졌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얇은 나이트가운을 끌어 내렸다. 아플 정도로 부푼 가슴을 움켜쥐며 그는 정점을 머금었다.
“으음.”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며 그녀는 살짝 몸을 비틀었다. 이미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파악한 이 위대한 황제께서는 여느 밤처럼 그녀를 하나하나 정복해 나갔다.
목덜미. 쇄골. 가슴. 배. 허벅지.
어느 곳 하나 남김없이 그는 그녀의 온몸에 키스를 퍼부었다. 집요하리만치 흔적을 남기는 그는 마치 정복한 영토에 깃발을 꽂는 거 같았다.
“하아. 에……에단.”
“로엘.”
하나하나. 깨질 듯한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애가 탔다.
그가 그녀의 몸에 어지럽게 걸려 있던 모든 옷들을 전부 끌어 내리자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더 진해졌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긴장이 더 되는 거 같았다.
“언제 씻은 거야.”
“당신이 오기 전에.”
“기다린 거네. 여러 의미로.”
“……짓궂게 굴지 말아요. 여러 의미로, 미칠 거 같으니까.”
그는 피식 웃었다. 이제야 조금 평소의 그들로 돌아온 거 같다.
그는 허리춤에 걸린 수건을 끌어 내리고 그녀에게 몸을 겹쳤다.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그의 일부는 불처럼 뜨거웠다.
“너무 부끄러워하시는데. 아카시스.”
“아시면 그만 좀 놀리시죠? 분위기가 깨잖…… 응!”
예고도 없이 그의 굵은 손가락이 먼저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침대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소년 같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는 기어코 그녀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했다.
그로 인해 이미 충분히 기대감에 차오른 그녀의 샘은 그의 익숙한 손길에 바로 반응하였다. 내벽을 긁으며 자극하는 손가락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안에서 불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아. 에단. 이제…… 읏!”
“귀여워.”
그를 원해 하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열기에 흐려진 눈동자. 오로지 그 때문에 흘리는 눈물. 그리고 그를 찾는 새된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이성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아아!”
그래서 그 역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그녀의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거대한 그가 끝까지 들어오자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저절로 몸이 꺾였다. 얼얼하고 뻐근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찾아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짜릿하게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언제나처럼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하아. 로엘.”
그 역시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오랜만에 들어간 그녀의 안은 그를 놔주지 않았고, 그 내벽의 주름 하나하나마저도 고스란히 느껴져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성난 짐승처럼 그녀를 밀어붙였다.
“아윽! 아! 아!”
시트를 움켜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의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도 밀려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끝까지 그에게 매달리며 그를 위해 몸을 열었다. 규칙적인 마찰음이 그녀의 신음 소리와 함께 방 안을 가득 메우고 두 사람의 열기도 더해 갔다.
“아. 아. 에단. 아!”
“로……엘!”
어떻게 이리 좋을 수가 있을까.
기대하고 예상했던 뜨거움이 그녀의 안에 가득 차고 그녀는 잘게 몸을 떨었다. 파도처럼 밀고 온 쾌감에 눈앞이 잠시 하얘졌지만, 이내 곧 미소 짓는 황금의 그가 그녀의 머리칼을 쓸었다.
“머리가 이상해질 것만 같아.”
에단은 가볍게 그녀의 상체를 세워 그의 위에 앉히고는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으응.”
수십 번 해도 부족한 키스를 계속하며, 그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어 자세를 잡았다. 그가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건지, 그녀가 스스로 움직이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아. 로엘. 너무…… 좋아.”
그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땀에 젖은 그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그녀 역시 그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이 위대한 황제께서 이런 얼굴을 한다는 거.
세상에 그녀밖에 모른다.
“사랑해요. 내가 감당이 안 될 만큼 당신을 사랑해.”
이 미소 역시 그녀밖에 모르겠지.
“나도 사랑해.”
이 속삭임 역시 오로지 그녀만이 들을 수 있다.
그녀는 그의 위에서 흔들리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이리 감사하다니. 정말 얼마나 그를 사랑해 버린 걸까.
“사랑해. 로엘.”
또다시 함께 찾아온 뜨거움과 함께 두 사람은 다시금 입을 맞추었다.
이 밤.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있는 이 밤이 끝나지 않길 바랐다.
***
“피해 상황은.”
“에토르 전투의 선봉에 섰던 2부대가 거의 전멸했습니다. 다행히 폐하께서 빠른 판단을 하시어, 이 정도에 그쳤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1부대는 물론, 합류하려던 3부대까지 휘말렸을지 모릅니다.”
쓰라리기도 한 패배 결과를 버리는 조금도 거르지 않고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고했다.
피해 상황을 적은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며 데릭의 표정이 구겨졌다.
다 이긴 원정이 한순간에 어그러졌다.
“마지막 희생이 커서 그렇지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얻은 것이 더 많은 원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카이로스 국경 지대의 성들과 에단 황제가 하루아침에 수복시켜 버린 소삼국을 제외하고 나서라도 동쪽으로 3개. 남동쪽으로 6개의 성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에토르 전투의 피해를 감안하고 나서라도, 경제적으로는 훨씬 소득이 많은 셈이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나마 조금 낙관적인 평가에, 데릭은 바로 차갑게 대꾸했다.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거. 영토가 많이 넓어진 거. 마지막 카이로스전에서의 패배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다 완벽한 승리였다는 거.
그래. 그 모든 것을 그가 알고, 데릭이 알며, 테바로스가 전체가 다 안다.
그래서 그들이 눈물의 퇴군을 하여 돌아왔을 때도 분명 백성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열렬히 환호하며 맞이했다.
그러함에도 데릭은 웃지 못했다. 군사들 역시 기쁨보다는 분함이 더 컸다.
그만큼, 이번 카이로스전에서의 패배는 쓰라리고도 쓰라렸다.
중요한 건 수많은 북방에서의 승리가 아닌 단 한 번의 중부에게서의 패배.
이건 테바로스뿐 아닌 북방 전체에 대한 경고다.
“감히 넘보지 말라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카이로스의 경고.”
마치 중부는 북방과 격이 다르다는 듯이. 마치 아직 너희는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란 듯이.
그렇게 보란 듯 카이로스는 불리한 전투를 완벽히 이겼다.
그렇게 하늘 높이 치솟던 테바로스의 자신감을 단번에 짓밟았다.
그러니 분할 수밖에.
데릭의 눈에 핏대가 섰다.
“……모두에게 확실하게 전해진 셈이죠. 그것도 승리의 여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미신까지 붙어서.”
버리는 로엘을 회상하며 말했다. 태양을 등지고 나타난, 소문이 무성하던, 바로 그 붉은 머리의 공주님.
카이로스의 백성들만큼 테바로스의 백성들도 그 모습에 전율을 느꼈을 거다.
여신의 강림과도 같았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벌써부터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과장에 과장이 더해져서요. 처음부터 승리의 여신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제이드 네아레스의 딸로 태어난 거다. 그런데 그걸 토르티아가 멍청하게 쫓아냈고, 그걸 카이로스의 황제가 얻었다. 그래서 절대, 카이로스를 이길 수 없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미신으로요.”
너무도 예상이 되는 시나리오.
이걸 로엘은 노렸던 걸까. 아니면 그녀를 프란시아로 세운 에단이 노렸을까.
둘 다 아니라면, 도대체 카이로스는 얼마나 운이 좋은 건가.
데릭은 헛웃음이 나왔다.
“토르티아 내에서도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엄한 싸움에 끼어들어서 그렇게 많이 죽었으니.”
거기에 마지막은 다른 누구도 아닌 로엘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테바로스보다 더 시끄러울지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왕의 무능과 사치에 질린 토르티아인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사무치게 제이드를 그리워하는 토르티아인들에게 이건 아주 배 아프고도 분개할 일이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버리는 나지막이 물었다.
즉위 이후, 아니 그 전부터 정말 한 번의 쉼 없이 달려온 데릭이 처음으로 고꾸라진 것이 바로 에토르 전투. 그것도 하필이면 데릭이 가장 신경 쓰는 그 황금의 황제에게 졌다.
“폐하. 본디 승리보다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패배는 뼈 아팠지만, 분명 생각할 것이 많은 전투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직은 이르다는 거요.”
버리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진지했다. 똑바로 황제의 눈을 바라보며 올리는 충언이자 직언. 끊임없이 에단을 쫓았던, 치기 어린 데릭의 집착에 충신으로서 측근으로서 일침을 가할 때가 왔다.
“이번에 카이로스 국경 전투를 준비하며, 저는 솔직히 자신 있었습니다. 모든 계획이 완벽했고 군사들의 사기도 충만했으며 심지어 군대의 규모와 실력도 고루 갖추어졌습니다. 날씨까지 도와줘서 정말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이건 분명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있다고 그리 믿었습니다.”
어찌 버리뿐일까. 아마 테바로스 전군이 그러했을 거다.
그렇게 자신 있게 시엘을 점령하고, 그렇게 당당히 에토르로 갔다.
에토르의 성에 테바로스의 국기를 꽂았을 때 얼마나 환호하였던가.
“그러함에도. 그렇게 모든 조건이 완벽하였음에도. 그렇게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우리는 졌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절히 패배하였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겼고 그들은 질 수 없는 전쟁을 졌다.
“잊고 있었던 현실을, 외면했던 사실을 제대로 직면한 기분이었습니다. 너무도 허탈하게 회군하면서. 폐하. 나의 주군이시여.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아직 우리는 카이로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군대의 수준이 달랐다. 무기의 질이 달랐다.
거기에 괴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루카스 세버에, 제이드 네아레스를 연상케 하는 이반 황자까지.
그리고 그 모두를 가진, 그들보다 대단한 황제 에단.
어떻게 감히 상대가 될까.
그 압도적 숫자에서도, 그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밀리지 않았고 결국 승리까지 쟁취하였다.
만일 그 붉은 머리에 공주가 군대를 이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니. 그저 죽어 가는 생명이 더 많아졌을 뿐 결국엔 승리는 카이로스의 것이었을 거다.
“폐하는 잠시 숨을 고르셔야 합니다. 그렇게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데릭은 묵묵히 버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무리 측근이라 하더라도 꽤나 건방진, 그만큼 데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그런 말들이다.
그러함에도 데릭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는 건 그 모든 말들이 구구절절 옳기 때문.
정확히 데릭이 느낀 것들이다.
“에단 황제는 즉위 전부터 유명하였지요. 어린 나이에 출정만 하면 승전보를 울렸으니까요. 그런 그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한 일은 황궁에 눌러앉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데릭도 잘 알고 있다.
그 잘나가던 혈기 왕성한 황제께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즉위 이후 내실 정비에 힘썼다.
갑작스런 황제의 서거에도 카이로스 황실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 어린 에단이 버티고 서서 모두의 기강을 다잡았기 때문.
그때 에단이 정비하고 개혁하던 카이로스의 제도는 현 카이로스 제국의 초석이 되었다.
“효율적인 세금 관리. 체계적인 군사 훈련. 통일된 교육 시스템까지. 에단 황제의 개혁은 가히 획기적이였죠. 헛된 투자가 없으니 돌아오는 것은 크고, 그 돌아오는 것들을 또다시 투자로 돌리니 더 카이로스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나왔다.
국정이 안정되니 백성들이 배불렀고, 백성들이 배부르니 나라가 부유했으며, 나라가 부유하니 전쟁은 이길 수밖에 없었다.
“테바로스는 카이로스와 달라.”
“예. 압니다.”
버리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바로스는 다르다는 그 말이 마음을 후벼 팠다.
데릭이 그걸 몰라서 안 했을까. 알아도 못 한 거다.
그러기엔 데릭은 형제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했으며,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 했고, 강탈하다시피 황권을 차지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귀족들을 경계하고 내실을 다질, 그럴 시기가 어디 있었겠는가.
말 그대로 피바람 불기 바빴다.
“폐하는 이미 충분히, 너무도 훌륭히 달려오셨습니다. 이제는 한숨 돌리셔도 돼요.”
데릭은 앉은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댔다. 그리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쉬어 갈 때란 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앞이 아닌 옆을 볼 때.
그렇게 내 사람을 돌보고 내 백성을 배불리 할 때.
“그래.”
1년 내내 전쟁 중인 테바로스에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소리인가.
“모두가 지칠 때도 되었지.”
그러나 테바로스라고 하여, 못 할 것은 또 무언가.
데릭은 좀 더 편히 의자에 기대며 잠시 눈을 감았다.
“다 함께 쉬자.”
오랜만에 돌아온 황궁. 반겨 주는 이는 없어도, 함께하는 이들은 많다.
쉰 지가 너무 오래되어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으나, 쉬어 가야 할 때임을 알기에 데릭은 이 역시 열심히 해 보려 한다.
“……웃기게도 이 순간에 떠오르네.”
왠지 그를 가장 잘 쉬게 해 줄 같은 그 여자.
그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소녀.
“버리. 정말 그 여자는 안 되는 건가.”
“절대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아들은 버리는 칼같이 잘랐다.
표정까지 잔뜩 찡그리며 반대하는 그의 단호한 모습에 오히려 데릭은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어쩌나.
그는 계속, 이리 욕심이 나는데.
'황자님.'
이리 계속해서 그 붉은 머리의 소녀가 생각이 나는데.
“큰일이네.”
데릭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댔다.
정말 애먼 욕심이 날 것 같다.
***
“하아. 타르타니의 공기.”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 홀로 성루에 오른 로엘은 양팔을 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찬 새벽 공기가 단번에 멍하던 정신을 깨우고, 기분 좋은 숲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질였다.
“오랜만이지?'
그런 그녀의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엘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은 채, 슬쩍 이반을 돌아보더니 다시 타르타니로 시선을 돌렸다.
“응. 오랜만이야.”
성루에 팔을 기댄 채 멀리 타르타니를 보는 그녀는 옅게 미소 지었다.
덤덤히 말하고 있었으나 그 붉은 눈동자에는 참 많은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이반은 자연히 그녀의 옆에 서 함께 타르타니를 보았다.
“그리웠겠네.”
“그리웠지.”
그녀는 쉽게 인정했다. 그다지 부인할 이유가 없었다.
타르타니는 아픈 기억보단 즐거운 기억이 더 많았으므로.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녀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이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반 역시, 그 편안한 미소에 따라 미소 지었다.
“마찬가지지.”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를 덮어 주며 답했다.
슬슬 겨울바람이 불어오려 하는데,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얇은 숄만으로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로엘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였으나, 이내 그 외투를 여몄다.
에단을 닮은 이반의 향기가 느껴졌다.
“많이 그립지,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 버리고 싶을 만큼.”
이반은 성루에 팔꿈치를 기대며 말했다. 막 동이 터 오르며 여명의 색깔이 아름답게 숲을 물들여 가고, 그녀의 붉은 머리도 새벽바람에 흩날렸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여기에 있네.”
씁쓸함과 그리움이 섞인 이반의 목소리도 바람에 흩어졌다.
로엘은 그런 이반의 옆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그가 편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직도. 에토르의 성루에서 북을 바라보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에단 덕분이겠지.
로엘 역시 이반의 옆에서, 아름다운 그녀의 고향 숲을 바라보았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울 듯하면서도, 절대 다다를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졌다.
국경이란, 그런 거니까.
“후회해?”
“하지.”
이반의 답은 언제나 그렇듯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을 거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못 하는 거지.”
“안 하는 거야. 할 수 있을지라도, 네 선택은 같았을 테니까.”
정면을 바라보던 로엘의 시선이 이반을 향했다. 그러자 이반 역시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그런 로엘을 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올곧은 눈동자. 이 붉은 눈동자는 참 한결같다.
“맞아.”
처음 어린 그가 어린 그녀를 만났을 때도.
함께 타르타니 깊숙한 곳에서 검을 잡았을 때도.
어느 날 갑자기 형수로 나타난 그때에도.
그리고 이리, 카이로스의 성에서 함께 타르타니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도.
“나의 선택은 같아. 그리고 똑같이 후회하겠지.”
한결같이, 그에게는 한없이 예쁘다.
“나는. 너는. 그렇게 우리는. 에단에게 진 거야.”
우선순위는 항상 에단일 테니.
정말 그 누가 그를 이길까.
“그러네. 그 시절의 네아는 보지도 못했던 카이로스의 황제에게 져 버렸네.”
로엘은 덤덤히 말했다.
아주 잠시, 너무 힘들었을 그 시절. 이반을 기다리던 자신이 떠올랐다.
“내가 진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오지 않은 이유가 에단 카이로스라면, 그렇게 기다리지 않을 텐데, 그렇게 실망하고 절망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도 제법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그 시절의 이반에게.”
“지금도 중요해.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이반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 역시 언제나의 이반처럼 차분히 그녀에게 전해졌다.
그녀를 곧게 바라보는 그를 마주하는 순간 로엘은 깨달았다.
“네아.”
이반은 이제 마음을 정리하였구나.
“여전히 나는 너를 사랑해.”
그렇게 그의 자리에 머무르기로 하였구나.
“그리고 그만큼 내 형제를 사랑하지.”
로엘은, 자신을 보며 진심으로 미소 짓는 그에게 똑같이 미소 지었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불편하고 씁쓸하고 마음 아픈 결론이지만, 그게 이반의 결정이라면. 그게 곧 에단의 결정이라면 로엘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랑하는 내 형제를 지키듯, 그렇게 사랑하는 너를 지킬게. 오래된 친구로서. 하나뿐인 사부의 영애로서. 이 나라, 카이로스의 아카시스로서.”
이반은 로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로엘 역시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반은 가볍게 그 손등에 키스했다.
그 어린 날처럼.
‘지켜 줄게. 공주님.’
‘나는 내가 지켜, 바보야.’
참 오래된 추억들이 멋대로 떠올라 버렸다.
로엘에게도. 그리고 이반에게도.
“그렇게 네 곁에 있을게. 네아.”
네아라는 이반만의 애칭.
솔직히 싫지 않았다. 이반에게 로엘이라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그만큼 어린 날의 그녀가 이반에게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란 걸 이반은 알까.
“잘 부탁해, 이반.”
떠오르는 타르타니의 태양 아래.
카이로스의 토르티아의 중간, 그 어디쯤에서.
그 풋풋한 첫사랑이 드디어 진짜 끝나려나 보다.
***
에단이 황궁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소문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의 위대한 황제께서는 승리를 쟁취하셨으며, 겁 없는 북방의 사람들을 혼쭐내셨고, 그렇게 국경을 지키셨다고.
“거기에 로엘 님 소문이 빠질 순 없죠.”
“어쩌면 폐하 소식보다 더 열광하고 있을걸요? 지금 로엘 님은 거의 신이 되어 계시던데.”
북방이야 시기 어린 마음에 안 좋은 소문도 과장되어 나오기 했지만 카이로스는 오로지 좋은 찬양의 말들로 가득했다.
“프란시아의 재림이라는 건 아예 기정사실화되었다고요. 아니 심지어 우리 프래카 애들도 그걸 믿는다니까?”
루카스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기껏 지들 손으로 죽어라 싸워 놓고 나서는 이게 다 프란시아님의 덕분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 답답하면서도 웃겼다.
“참 이게. 뭐라 해야 하나. 백성들이 기본적으로 믿기 시작하니까, 진짜 저도 막 헷갈릴려고 해요. 진짜 로엘 님이 알고 보면 여신이고 그런…….”
“너까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역시나 바로 한심하다는 아론의 핀잔이 날아왔다.
아론은 잠시 나가 있는 동안 많이도 쌓인 서류를 들추며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몰브가의 뒤처리를 하는 것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이 상황에서 로엘 마마에 대한 소문까지 더해져서 더욱 나라가 뒤숭숭해졌다.
“그 바보 같은 소문 덕분에 로엘 님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고.”
“그야 그렇겠지.”
솔직히 로엘에 대한 백성들의 민심은 반반이었다.
에단 황제의 총애를 받는 북방의 공주님이라. 이국의 공주님인 것도 거슬리는데, 심지어 그들이 무시하는 북으로부터 왔으니 달갑지 않아 하는 민심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데, 그 불편해하던 소리가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그거 하나는 좋은 일입니다. 폐하께서 로엘 마마를 칼라리엔으로 염두에 두신다면요.”
아론의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제롬은 물론, 에단 역시 제법 놀란 얼굴로 아론을 보았다.
로엘을 가장 대놓고 반대했던 이.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리 단번에 아직 에단도 꺼내지 않은 황후 자리를 먼저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오올? 아론?”
루카스마저 아주 흥미롭다는 듯 아론을 보았다.
그 모든 시선들이 마치 그를 가장 못된 로엘의 시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아 아론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든 칼라리엔 자리를 비워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폐하께서 로엘 마마 이외의 분을 들이시지도 않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하루 빨리, 조속히, 그분을 칼라리엔에 어울리게 만들어야지요.”
“그건 아론 경 말씀이 맞습니다. 정말 로엘 마마를 황후로 옹립하실 거라면, 설득해야 할 일들이 꽤 있습니다. 그 예상되는, 격한 반대들을 타개할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폐하가 자기 여자를 황후로 삼겠다는데, 감히 누가 토를 달아?”
“그만큼 칼라리엔 자리가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루카스의 철없는 말에 제롬은 차분히 답했다.
“칼라리엔은 황제 폐하와 나란히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카이로스의 국모이십니다. 폐하의 모든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칼라리엔은 당연히 이 카이로스의 황제 폐하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지요. 그러니 단순히 폐하의 마음을 얹었다는 이유만으로 칼라리엔이 되실 수는 없습니다.”
얼마큼 황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얼마큼 황실 내부를 다스려 안녕을 이룰 것인지.
얼마큼 이 나라를 사랑하는지. 얼마큼 백성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지.
그렇게 폐하와 함께 이 나라를 통치해 갈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따지고 또 따져야 오를 수 있는 그런 자리다.
“다행히 이번 로엘 마마의 프란시아로서의 활약은 백성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 두었지요. 원로회 내부에서도, 몰브의 반란을 단번에 해결한 로엘 마마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키햐. 그럼 소문이 아주 잘 났네.”
아무 생각 없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루카스의 순수한 말에 에단은 작은 실소를 뱉었다.
이렇게까지 로엘에게 유리한 소문이라니. 뻔하지 않은가.
“일부러 노리고 냈을 테니 당연히 그러겠지.”
에단은 단번에 그 소문의 본거지를 알 거 같았다.
“이렇게 단시간 내에, 이리 자세히 퍼졌다면 뭐. 거의 확실하죠.”
아론 역시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 능구렁이 같은 자들이라고.
조용히 숨 죽이며 살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야망이 남아 있었나 보다.
“켈트가 제대로 한 건 했네요.”
이 소문을 보고받는 순간 떠오른 건 한 사람.
바로 수아 켈트.
에단은 피식 웃었다.
그와 그녀가 모두 황궁에 없는 사이. 꽤나 앙큼한 짓을 했다.
“로엘 마마의 시녀. 딜리아 마테를 이용했겠군요.”
“그러겠지. 마테 일가라면 얼마든지 반나절 안에 황궁 전체에 소문을 퍼트릴 수 있을 테니.”
로엘이 에토르에 켈트와 칼슨을 데리고 나타났을 때. 에단은 알아챘다.
이미 저 두 가문은 그녀의 편에 섰다는 것을.
그 ‘편’이라는 것이 결국 그녀를 ‘황후’로 만들겠다는 충성 맹세임을 그녀는 알기나 한 걸까.
그걸 알고 노린 걸까.
“그럴 리가.”
그게 그런 의미였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을 거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상상되어 에단은 속으로 웃었다.
“켈트에게 빚을 졌군.”
아마 그녀보다 수아 켈트가 더 염원할 거다.
그녀의 칼라리엔 즉위를.
에단은 한숨을 내쉬었다. 칼라리엔에 욕심 없는 그녀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기뻐해야 하는 건지 그도 생각이 많았다.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황제 폐하!”
에단이 이제 그만 다시 일을 하러 서류를 들려는 찰나. 갑자기 밖에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종장 제롬은 인상을 찌푸렸다. 폐하께서 중진회의 중이신데 이런 무례가 있나.
“무엄하다. 시종은 폐하께 예를 갖추어라.”
“죄, 죄송합니다. 시종 토래스. 하늘 같으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제롬의 불호령에 바로 시종의 이마가 땅에까지 닿았다.
별로 관심 없는 그는 시종의 예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다지 시종이 다급하게 가져온 전보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말하라.”
그래서 심드렁하게, 얼른 치워 버리려 하는데 그 시종장이 뛰어온 이유가 있었다.
“지금 테바로스에서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에단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테바로스?”
“네. 근데 그것이…… 전부 아카시스 로엘 마마의 생일 선물로 보내진 것입니다.”
아주아주, 충분했다.
테바로스와의 전쟁이 끝나고 몰브를 정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카이로스의 황궁이 시끄러워지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