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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94)화 (194/234)

26. 전쟁 같은 황실 파티

나는 황실에서 주최한 귀환 파티의 파트너로 아버지를 지목했다.

아버지는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과거엔 내가 혼자 파티에 참석할지언정, 절대로 아버지와 파트너로 파티에 참석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망아지와 파티에 참석하는 날이 오다니, 감격스럽구나.”

아버지가 마차 안에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댔다. 맞은편에 앉은 이니스와 로즈메리가 그 모습을 질린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나는 그녀들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침에 황실에 먼저 입궁하셨어. 황후 폐하를 뵙고 오신다더군.”

이니스가 대답했다.

황후가 플로네 가문의 힘을 빌리고 싶어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그런 황후의 노력이 무색하게 과거의 마거릿이 에녹에게 반해버렸었지.

그래서 황후가 나를 싫어했다. 나만 없으면 플로네 가문이 제 편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에녹의 뒤꽁무니를 쫓는 내 행보에도 황후와 종종 티타임을 가지며 친분을 쌓았다고 들었으니까.

“어머니가 황후 폐하와 친분을 쌓아 오신 이유가 로드반을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건 알지?”

이니스의 말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호응했다.

“우린 계속해서 로하데 가문의 움직임을 의심해 왔단다. 로하데 후작과 황후, 교황.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세 조합의 움직임이 묘하게 비슷했거든.”

아버지의 말에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움직임이 비슷했다고요? 어떻게요?”

“셋 모두 신마전쟁을 지지했다. 로하데 후작과 교황은 그렇다 치지만 여기에 황후가 끼어 있다는 게 이상했지. 만약 각 세력을 대표하는 그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게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지 않으냐. 바이올렛은 그들의 연관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바이올렛은 어머니의 이름이다. 나는 그제야 손익계산이 빠른 어머니가 아직까지 황후와 친분을 쌓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던 중에 네가 실종이 됐는데, 우리도 그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어. 빌터하임 공작을 통해서 말이야.”

이니스가 아버지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겉으로 보기엔 아직까지는 황후와 어머니의 친분이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게 좋겠어.

황후 또한, 아마 그 점을 이용해 어머니에게서 뭔가를 캐내려고 하겠지만.

“그런데 파티에도 그 뱀을 데려갈 거야?”

이니스가 내 어깨 위에 고개를 괴고 있던 은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은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니스를 쳐다봤다.

“은지가 마력석을 먹을 거거든. 폐하께서 신수를 보고 싶으니 데려오라고 하신 것도 있고.”

“뭐?”

마력석 관련해서는 이니스와 아버지는 이미 들은 이야기라 덤덤했지만, 로즈메리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지를 쳐다봤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우리는 황궁 앞에 도착했다.

나는 조금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려왔다.

황궁 앞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남자가 서 있었다.

화려한 은발에 파티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마법사 로브가 눈에 띈다. 파티장에 맞는 예복은 아니었으나, 푸른빛 원단에 금박이 화려하게 박힌 로브가 대단히 멋이 있었다.

기다랗고 풍성한 속눈썹 아래 붉은 루비처럼 아름다운 눈동자가 드러났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보며 수군댈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이 내게 곧장 다가왔다.

“마거릿.”

나를 부른 카이든은 곧 아버지와 이니스, 그리고 로즈메리를 한 번씩 쳐다봤다.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던 그가 한 손을 가슴에 얹고 허리를 숙였다.

“다시 뵙습니다, 카이든 블레이크 로하데입니다.”

놀랍게도 카이든답지 않게 흠잡을 데 없는 정중함이다. 예법은 아예 모르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그도 귀족은 귀족이었던 모양이다.

카이든을 처음 보는 로즈메리가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봐요. 천사님 같아요.”

그 도도하고 새침한 로즈메리가 저렇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정도라니. 나는 다시금 카이든을 쳐다봤다.

카이든은 이번에도 그답지 않게 극히 우아한 태도로 로즈메리에게 대답했다.

“레이디의 아름다움에 비견할 정도는 아닙니다.”

……카이든이 저런 말을 한다고? 나는 믿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리다가 그에게 말했다.

“편지 못 받았어? 바로 받아볼 수 있도록 인편으로 부쳤는데. 오늘 내 파트너는 아버지야.”

내 말에 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와서는 카이든에게 눈치를 줬다.

“안타깝지만, 로드. 내 딸에게 허튼 수작 부릴 생각 말게. 오늘 우리 망나니는 내 파트너야.”

내 애칭은 망나니가 아니라 망아지 아니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두 단어가 그게 그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납득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에 잠시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피던 카이든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웃음 짓자 뺨에 매력적인 보조개가 쏙 들어갔고 그걸 본 로즈메리가 옆에서 또 한 번 감탄했다.

“이리 멋진 파트너가 옆에 있는데 제가 어찌 그 자리를 탐내겠습니까. 저는 그저 공작 각하의 훌륭함을 가까이서 본받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이번엔 내가 카이든의 언변에 감탄했다. 그에게 이런 면모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카이든은 생각보다 아부를 잘했다. 그것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카이든의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인품이 훌륭하군. 좋네. 옆에서 잘 따라오게나.”

카이든은 그런 식으로 어렵지 않게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아주 계략적이다. 나는 카이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니스와 로즈메리는 각기 파트너가 있다며 사라졌고 나는 아버지, 카이든과 함께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게 사람들의 찌를 듯한 시선이 우리에게로 쏟아졌다.

카이든이 지나가는 시종의 쟁반 위에서 포도주 잔을 가져와 나와 아버지에게 건넸다.

“그런데, 넌 진짜 파트너 안 데리고 왔어?”

내 물음에 그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아니면 아무도 필요 없어.”

“그래도 오늘 파티는 파트너가 필요한 파티라고 들었는데.”

황궁 파티엔 꼭 파트너와 함께 참석을 하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알아. 그래도 결례라고 욕먹는 게 낫지, 너 말고 다른 여자를 내가 파트너로 데려오겠어?”

“오. 자네 아주 훌륭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군.”

카이든이 준 포도주를 마시며 아버지가 그의 말에 내 대신 대답했다. 아버지는 카이든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각하께서 이처럼 아름다운 따님을 낳으신 탓입니다. 마거릿 같은 여성분을 두고 제가 어찌 다른 여자를 눈여겨보겠습니까.”

아버지가 기분 좋은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적응되지 않는 얼굴로 카이든을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저건 카이든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대답 없이 그를 올려다봤다. 그가 카이든인지 제나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카이든이 내게로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간질거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나 맞아. 이번엔 제대로 알아봤네.”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근처에 서서 다른 귀족과 안부 인사를 나누던 아버지가 놀라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웃어 보이고는 카이든, 아니 제나스를 다시 돌아봤다.

“너……!”

“우리 후손님한테 잠시 시간을 끌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뿐이야. 그것도 이제 끝난 모양이군.”

시간을 왜 끌어? 카이든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그러고 보니 간밤에 제나스가 텐타티오넴 어쩌구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끝으로 제나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찰나 붉게 빛나던 눈동자가 고요하게 가라앉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기이하다. 단지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뿐인데, 이제 다시 카이든처럼 보였다. 그가 피곤한 듯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카이든?”

“마거릿.”

잔뜩 잠긴 목소리는 묘하게 관능적이다. 그의 날렵한 눈썹이 잠시 찌푸려졌다. 카이든이 고단한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 사정이 있었어. 간밤에 제나스 XX가 네 방에 다녀갔다며?”

“아. 그렇지 않아도 말해주려고 했는데, 그 얘기를 제나스가 먼저 말했어?”

“아니. 하지만 내가 모를 수가 없지. 그의 영혼이 내게 ‘종속’되어 있는데.”

카이든이 성가시다는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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