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145)

“나가, 최지혁.”

나는 최지혁의 등을 있는 힘껏 밀었다. 당연히 최지혁은 나갈 수 없다고 뻐팅기고 있었다.

“나가라니까?”

“그러니까 쟤를 뭘 믿고 너랑 두냐고!”

환장하겠네. 최지혁은 나보다 더 불안한 얼굴로 덜덜 떨며 내 허리를 붙잡았다.

그러다가 주르륵 미끄러져서 내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유라야. 나 이상한 거 안 할 테니까 있게 해 주면 안 돼? 유라야…….”

“아니 얘가 왜 이래. 최지혁, 안 일어나? 잠깐 얘기만 한다니까? 응?”

꼭 핀트가 나간 사람 같았다. 지성준도 최지혁의 저런 모습은 처음 봤는지 당황하고 있었고, 나는 지성준의 시선을 피해 최지혁을 데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잠깐만 얘기하고 올게. 응? 내가 개인적으로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

대충 최지혁의 뺨을 쓸어주며 그를 달래듯 말하자 최지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나 아무도 못 믿어, 채유라. 내가 할게. 내가 하면 되는 거잖아. 응? 유라야. 하고 싶은 게 뭔데? 내가 해 볼게. 유라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얘를 어떡하면 좋지.

여태까지 내색 안 하는 줄 알았더니 잠깐 떨어져 있겠다는 발언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

표정에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 최지혁도 사람인데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진짜 잠깐만이야. 5분. 아니, 1분만 이야기할게. 최지혁. 괜찮아. 에르켈이랑 리온도 있잖아.”

최지혁이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깐만 나가 있자.”

“…….”

최지혁은 내 말에 결국 안쓰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하고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야, 내가 미쳤다고 네 여친 잡아먹겠냐? 적당히 하고 좀 꺼지지?”

“…….”

지성준이 장난스레 농담을 던졌지만,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홱, 문을 닫아버렸다.

“저 개싸가지.”

지성준은 이를 악물고 최지혁이 나간 문을 가리키며 어이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저 자식이 왜 좋은 거냐?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여자들이 좋아할 성격 절대 아니지 않아?”

“쟤를 좋아하든 말든 내 마음이거든요.”

내 말에 지성준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부탁할 게 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건가?

나는 괜히 슬쩍 시선을 피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화두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왜, 뭔데 뜸을 들여. 불안하게.”

“저기요. 지성준 씨.”

“왜.”

결국 조금 망설이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최지혁이랑 친한 거 맞죠?”

그에 지성준이 정곡이라도 찔린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맞는 것 같았다. 친한 거.

“있잖아요.”

“……뭐.”

“내가 당신 성좌 떼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하면 안 돼요?”

내 말에 지성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거나, 여기서 사라지면.”

내 말에 지성준이 당황하며 빠르게 말했다.

“야, 최지혁 여자친구. 너 그거 부탁하지 마. 뭔데 불길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일단 말했다.

“최지혁 좀 챙겨주면 안 돼요?”

“…….”

“그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만약에. 만약에라도 그렇게 되면 좀 부탁할게요.”

지성준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티격태격해도, 좀 친해 보여서…….”

막상 말하니까 괜히 코끝이 시큰거렸다. 최지혁은 나보고 집에 가라고 했으니까.

내가 싫다고 해도 보낼 것만 같았다.

그게 맞으니까. 그게 현명한 선택이니까.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야, 왜 울어.”

“안 우는데요.”

큰일 났다. 최지혁은 상당히 귀신같은 면이 있어서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텐데.

“아씨, 뭐 그딴 걸 부탁해. 찝찝하게.”

“빨리 한다고 해요.”

“아니, 그걸! 아오! 진짜 너네 둘이 나 곤란하게 하려고 작정했냐? 감정에 호소하지 말라고!”

지성준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내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방방 날뛰는 지성준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안 해줄 거예요?”

내 말에 지성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시뻘게진 얼굴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딴 거 말고 다른 거 말해. 내가 네 남친처럼 모럴이 아주 없지는 않으니까 다른 거 말하라고.”

다행이었다. 둘이 정말 친한 게 맞잖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긋 웃었다.

“됐어요. 그거면 돼요. 당신 성좌나 부르죠. 계약 끊게. 최지혁 몰래 해야 하는 거 알죠? 또 기절하면 난리 나니까.”

“……다시 한번 당부하는데 나 조건 그걸로 안 받는다고. 다시 생각해.”

“그럼 그건 나중에 또 얘기해요.”

***

당연히 지성준과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최지혁은 내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내 눈가를 확인하며 지성준을 노려보려고 하길래 그의 양 뺨을 잡고 내게 고정시켰다.

“최지혁. 나 고기 먹고 싶어.”

“응.”

내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순종적으로 변해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돈 주고 고용한 용병들 같았다.

“지성준 씨, 그럼 나중에 봐요.”

“예…….”

지성준은 여전히 소름끼친다는 듯 빠르게 병실에서 도망가 버렸다.

최지혁은 빠르게 고기와 불판 같은 걸 시키고 내게 말했다.

“일단 회사 사람들은 못 봐. 민간인들이라 접촉하는 순간 문제 생길 거고, 국가에서 보호조치 취했대.”

“준우네 교수님한테는 감사하다고 했어요?”

“응. 너 잘 때 강준우랑 얘기했어. 잘 전해주겠대.”

최지혁이 애가 타는 사람처럼 내 손을 잡고 꼼지락대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살던 집으로 가기는 상당히 곤란한 상태였기 때문에 준우네 학교 병원 특실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 다른 단체들이 차마 병원은 건드리지 못해 이곳이 그나마 안전한 편이었다.

준우는 우리가 없는 1년 새에 꽤 많은 것을 해 놓았다.

최지혁이 알던 것처럼 국내 최고의 힐러로 성장한 것이다. 우리 없이.

뭐, 그럴 것 같았다. 준우는 워낙 똑똑했으니까 말이다.

그 덕에 병원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기도 하고.

“그런데 최지혁.”

“응.”

“저번에 네가 나 보내준다고 했잖아.”

나는 최지혁의 무릎에 앉으며 물었다.

“누가 날 찾으러 온다는 거야?”

그리고는 최지혁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최지혁은 당황한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 내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나도 잘 몰라.”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람.

“아마…….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어 하는 존재들 아닐까. 내가 다 어그러트려 놨으니까.”

“뭔 소리야?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그 엘드리치지. 다 그놈 계획이라며. 같이 영상 봤잖아.”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정색하며 말하니 최지혁이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그 계획을 완성시킨 게 나잖아.”

“얼씨구.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알지?”

“응. 알았어…….”

나는 최지혁의 턱을 잡고 날 똑바로 쳐다보게 만들었다.

최지혁은 당연히 제가 또 뭘 잘못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냥 웃어주며 최지혁의 입술에 입을 쪽 맞춰주었다.

“그런데 여기 갇혀있으니까 너무 답답하지 않아? 준우한테 말해볼까? 잠깐만 병원 앞 카페라도 다녀오면 안 되냐고?”

내 말에 최지혁이 망설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최지혁도 좀 답답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 영화 보고 싶다.”

나는 최지혁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로 핸드폰을 이리저리 눌러보았다.

아무래도 빨리 에그로스와 서번트 계약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핸드폰에서 더 이상의 단서는 찾을 수 없었으니까.

리온과 에르켈이 말할 수 있는 정보는 여전히 한정되어 있었다.

“바다도 보고 싶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최지혁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직 못 해본 게 너무 많은데,

처음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거 단 한 가지도 못 해봤다.

분명 최지혁도 좋아할 것 같은데.

나는 최지혁을 꼭 껴안았다.

걱정됐다.

얘는 나를 보내버리고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걸까?

“최지혁.”

“응.”

“만약에, 나 안 간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내 물음에 최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안 돼.”

“여기 있으면 나까지 위험해지니까?”

최지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끝까지 살아남는다며. 그러면 나도 지켜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부모님한테 가야지. 걱정하시잖아.”

최지혁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려왔다.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너는?”

“……나는 괜찮아.”

안 괜찮아 보였다.

“정말?”

“……응.”

나는 최지혁의 손에 살포시 깍지를 껴봤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만약에, 최지혁이 나랑 같이, 내 세상으로 갈 수 있다면.

나는 다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난 최지혁이 좋으니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최지혁이 좋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놓을 수가 없었다.

왜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내가 책임질 테니 같이 가자고 하고 싶지만 나는 내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도, 최지혁을 내 곁으로 끌어당기는 법도 몰랐다.

나는 아는 게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희망고문이 얼마나 잔인하고 힘든지 알고 있으니까.

“최지혁. 우리 공원이라도 갈까?”

“……공원?”

“아, 좀 그런가.”

아쉬웠다. 곧, 돌아가야 한다면,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야 할까?

마지막인데.

“……가고…… 싶어?”

최지혁이 망설이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고, 나는 철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최지혁은 내가 말하는 건 웬만하면 다 해주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알았어. 가자.”

그게 잘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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