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는 내부 온도 덕분에 이미 녹아 없어진 듯했다.
하긴, 딱 봐도 미로처럼 넓어 보이는 이 공간에서 성배를 찾기가 쉬울 리 없었다.
차라리 잘된 것 같다.
“이대로라면 성 자체가 다 타서 없어질 거야.”
“헐, 안 돼요!”
최지혁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소맷부리를 붙잡고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뭐가 안 되는데?”
“아이템 더 쓸어가야죠! 조금만 더 채우면 백만 원인데.”
“…….”
결국 우리는 기어코 백만 원을 채워서 성 밖으로 나왔다.
성은 이제 완전히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와, 이래서 돈이 진짜 무섭다. 방금까지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백만 원 채우니까 또 이젠 괜찮네요?”
성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최지혁은 내 말에 질색을 하며 소리쳤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성 꼬라지 안 보여?”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최지혁의 팔을 장난스레 툭툭 쳤다.
“에이. 그래도 무사히 잘 나왔잖아요. 최지혁 씨도 열심히 아이템 쓸어왔으면서 새삼.”
“맞아, 지혁지혁이 제일 흥분해서 집어오지 않았남?”
리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최지혁의 칼을 향해 걸어갔다.
이러다가 칼만 오지게 모으는 거 아닌가 싶다. 던전 밖으로 나가면 몇 개 가져다 팔든가 해야지.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칼을 품에 안으며 최지혁에게 장난치듯 말했다.
“이 칼이 네 것이냐, 아니면 이 칼이 네 것이냐?”
“칼이 아니라 검……. 지금 뭐 하는데? 됐고 빨리 내놔.”
당연히 최지혁은 유머감각이라고는 개미 똥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인상만 팍팍 쓰며 날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아, 빨리 맞장구 좀 쳐요. 사람이 왜 이렇게 건조해?”
내 말에 최지혁은 당황한 듯 로봇처럼 삐걱댔다. 그러면서 내 개소리에 답변할 말을 고르는 듯 순식간에 심각해졌다가 금방 원상태로 돌아가 빽 소리를 질렀다.
“둘 다 내 건데 뭘 또 골라!”
“어허, 욕심이 많은 자는 하나밖에 가져갈 수 없다.”
“빨리 해치우고 나가자며. 내놔, 채유라.”
“아니 무력으로 뺏지 마요! 반칙이야!”
최지혁은 내 장난이 못내 성가셨는지 와락 나를 덮치며 내가 안고 있는 칼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반칙은 무슨 반칙이야? 위험해, 빨리 내놔.”
“어차피 아군판정 나서 안 위험, 엄마!”
결국 최지혁이 내 허리를 꽉 붙들어 반쯤 넘어트리며 붙잡고 있던 칼을 갈취해갔다.
덕분에 나는 최지혁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순식간에 웃고 있던 입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
최지혁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내 허리를 붙잡은 채 아주 엷게 구겨진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가깝다.
환장하겠네.
“크흠, 알겠어요. 장난 안 칠 테니까 이거나 들어요.”
나는 급하게 최지혁의 칼을 건네주며 시선을 돌렸다.
진짜 진짜 쓸데없이 땀 흘리니까 평소보다 좀 더 잘생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소름이 순식간에 온몸에 우다다 돋는 기분이었다.
‘어우,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쳤어, 미쳤어.’
나는 정신줄을 똑바로 잡기로 다짐했다.
최지혁은 화면 속 인물이다.
진짜 사람이 아니다.
내 떡이 아니다……. 남의 떡이다!
어차피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 집에 가기로 결심했잖아?
과도하게 정 주면 안 된다.
나중에 헤어질 때 슬프면 어떡해.
그러니까, 저 얼굴에 홀리거나 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집에 가면 어제 보던 아이돌 영상이나 다시 봐야겠다. 잘생긴 얼굴에 면역을 좀 기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암암. 그렇고말고.
내가 황급히 앞으로 걸어가자 리온이 금세 내 옆으로 따라붙어 의미심장하게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둘이 사이좋은 이유가 있었네, 마스터?”
“뭐래. 이제 나갈 거니까 빨리 몬스터 잡을 준비나 해.”
“둘이 하는 짓이 똑같아, 마스터.”
나는 가만히 자리에 멈춰 서서 리온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 새빨갛고 탐스러운 주둥이를 잡아주었다.
“웁! 우웁!”
그리고 방긋 웃으며 뒤를 돌아 또 멍청하니 서 있는 최지혁에게 소리쳤다.
“뭐 해요? 안 와요!”
“……가.”
“빨리 와요!”
최지혁은 뚱한 얼굴로 내게 성큼 달려와 조금 머뭇거리며 내게 물었다.
“이제부터 뭘 어쩔 생각인데?”
“어쩌긴 뭘 어째요. 빨리 나머지 몬스터들 잡고 집 가야죠.”
***
“다 좋다 이거야.”
나는 최지혁의 중고차 조수석에서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이게 뭔지 파악이 안 돼요.”
[오너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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