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엥? 진짜 뭐지? 왜 전화가 안 되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그만 전화해라, 마스터. 핸드폰에서 불나겠다.”
리온이 혀를 끌끌 차며 차 뒤에서 과자를 와작와작 씹었다. 그에 최지혁은 똥 씹은 표정으로 빽 소리쳤다.
“감자칩 바닥에 흘리지 말라고 몇 번 말해!”
“에이, 마스터가 차 금방 바꾼다 했으니까 괜찮다. 지혁지혁.”
“저 빌어먹을 지혁지혁, 당장 똑바로 안 불러?”
“마스터! 또 인간 남자가 나 갈군다!”
나는 적절히 귀를 막았다. 분명 어제 싸늘한 분위기 풀풀 풍기면서 기어오르지 마라~ 너나 잘해라~ 이랬던 것 같은데 어째 달라진 게 없다. 또 싸운다, 또 싸워.
“그만 싸우고, 저기 자리 있네요. 저기 잠깐 세우죠?”
“저 개자식, 내가 언젠간…….”
“굳이 따로 다짐 안 해도 너는 맨날 몰래 네 방에서 갈구잖아!”
“……너? 새끼야, 방금 너라고 했냐?”
“그럼 널 너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뒤졌어.”
결국 나는 소리를 빽 지를 수밖에 없었다.
“둘 다 닥치고 주차하라고! 사고 나면 책임질 거야?”
“…….”
“…….”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고 있어. 뭐 해요? 빨리 차 대고 올라가자니까?”
***
“영업 안 해요.”
“…….”
최지혁과 나는 흥신소 대문 앞에 멍하니 서서 사무실 안쪽을 쳐다보았다.
흥신소 내부는 꼭 누군가 급습이라도 한 듯 난장판이었다.
온갖 공구가 바닥을 굴러다녔고, 우리 앞을 막은 딱 봐도 양아치같이 보이는 아저씨가 애써 사무실 안을 가리려 몸을 틀었다.
“영업 안 한다니까?”
나는 슬쩍 까치발을 들고 최지혁에게 속삭였다.
“뭐예요? 전에도 이랬어요? 이거 알고 있었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앞에 선 떡대를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박도경 과거 사정을 왜 알아야 하는데? 나도 몰라.”
그에 떡대가 흠칫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기야, 아무리 저놈이 덩치가 크다고 해도 키도 최지혁이 더 크고 예전보다 근육도 훨씬 붙어서 최지혁도 한 덩치 했다.
흥, 그리고 생긴 것도 최지혁이 더 무섭게 생겼다고.
“저기요, 아저씨. 여기 박도경 사장님 사무실 아닌가요?”
“……박도경? 크흠, 형님! 좀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떡대가 조금 당황한 듯 불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누군가를 불렀고, 그러자 방금 그 떡대보다 더 양아치같이 생긴 인간이 등장했다.
“뭐야?”
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굉장히 키가 작고 재수 없게 생긴 아저씨 하나가 최지혁을 위아래로 쳐다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쓱 돌렸다.
그에 나는 싱긋 웃어주었고, 내 옆에 있던 리온도 나와 함께 씩 웃어주었다.
“박도경이라는 분 찾으러 왔는데, 안 계시나요?”
“그 인간을 왜 찾는데?”
아니 근데 이 아저씨는 초면부터 반말이람. 나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아주 친절히 대답했다.
“박 사장님한테 문의드릴 게 있어서요.”
꼭 생쥐처럼 생긴 아저씨가 짜증 난다는 듯 피식 웃으며 내 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딴에는 다정한 척 말했다.
“아가씨, 여기까지 와줬는데 이거 안타까워서 어떡하나. 이제 그 아저씨가 사장 아닌데.”
“어디다가 손을 대, 개자식아.”
그리고 최지혁은 역시 참지 않고 내 뺨을 만지던 아재의 손목을 바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잡고는 그대로 꺾어 버렸다.
“악!”
당연히 그 이름 모를 양아치같이 생긴 아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양아치 아재 뒤에 있던 다른 떡대들이 최지혁에게로 달려들려고 했지만 리온이 더 빨랐다.
“에잇. 마스터는 내가 지킨다!”
리온은 양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힘껏 양쪽으로 달려오는 떡대들에게 꿀밤을 먹였다.
분명 내가 대화로 먼저 해결해 보고 안 되면 무력을 사용하자고 했지만 역시 내 의견은 둘 다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만.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나도 저 아저씨가 내 뺨 만진 게 매우 불쾌했으니 말이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박도경이 보냈냐? 박도경 끄나풀이야?”
아저씨는 최지혁의 발에 등허리를 밟힌 채로 끙끙대며 소리쳤고, 최지혁은 살벌한 어투로 꽤 친절하게 대답이라는 걸 해줬다.
“시끄럽고, 박도경 어딨어?”
“악! 이거 안 놔, 이 개자식아!”
“응. 못 놔, 개자식아.”
최지혁이 아재의 머리칼을 쥐고 확, 꺾어 직접 그를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아저씨는 꽤나 고통스러운지 한 마디도 못 하고 꺽꺽대며 당황스러운 눈으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박도경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안 그래도 너 때문에 기분 엿 같아졌으니까.”
나는 속으로 최지혁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역시 예의 밥 말아먹은 건 최지혁이 한 수 위인걸?
“윽,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악! 악!”
최지혁은 아저씨의 대답이 매우 불만족스러운지 잡고 있던 팔을 더 강하게 뒤로 꺾었다.
“그럼 네 머리에 피는 말랐냐? 직접 확인해주기 전에 빨리 말하라고. 박도경 그 아저씨 어딨는지.”
“으윽! 젠장! 이 거영 심부름센터는 내 거야!
뭔 센터? 나는 슬쩍 고개를 빼고 문 앞에 있는 상호명을 살폈다. 좀,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모양새 빠지는 대사였다. 겨우 심부름센터 가지고 자존심을 세우고 그래?
“어쩌라고.”
“박도경은 더 이상 거영의 사장이 아니, 악!”
최지혁은 닥치라는 듯 쥐고 있던 머리채를 확 놔버렸다. 그러자 양아치 아저씨는 보기 좋게 바닥에 코를 쾅! 찧을 수밖에 없었다.
“심부름센터 사장이 누군지 안 궁금하다고 몇 번 말해.”
“혀, 형님!”
리온에게 꿀밤 한 대씩 맞고 나가떨어져 있던 떡대들이 일어나 우물쭈물하며 손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말로는 안 되겠군.”
최지혁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지가 언제 말로 했다고. 웃겨.
“눈 감아.”
최지혁은 입고 있던 셔츠를 걷어 올리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리온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딱 해 주었다.
“오, 어제 드라마에서 본 대사다. 마스터.”
“…….”
***
“최지혁 최고.”
나는 최지혁에게 양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최지혁은 아주 조금 의기양양한 얼굴로 일렬로 줄 세워놓은 눈탱이 밤탱이가 된 깡패 조직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 박도경이라는 아저씨를 그쪽이 배신 때리고 다른 양아치 조직이랑 합세해서 그 아저씨 회사를 뺏었다?”
“아가씨, 양아치라니! 우리는 엄연한 사업가,”
“경찰 부를까요?”
“……크흠.”
최지혁이 짜증 난다는 듯 무릎을 꿇고 있는 양아치 대장 아저씨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손 똑바로 들어.”
“드, 들고 있습니다. 형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저 아저씨가 뭐라는 거야? 형님?
“헐, 뭐래.”
나는 내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기요, 아저씨. 스무 살이나 많은 인간한테 형님 소리 듣는 거 아주 기분 나쁜 거 알고 계시죠? 아, 소름 돋았어. 아, 맞다. 최지혁 씨는 형님 소리 좋아했었나……?”
내 말에 최지혁은 발끈하며 내게 빽 소리쳤다.
“무슨 내가 중2병인 줄 알아! 나도 싫어! 나도!”
“어우, 알았어요. 알았어. 누가 뭐래요?”
“방금 네가 뭐라고 했잖아!”
최지혁이 몸을 내 쪽으로 살짝 튼 채 씩씩거리더니 곧 우리 눈치를 보고 있던 양아치 한 명을 갈구며 말했다.
“니들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빨리빨리 내가 물어보는 거에 대답이나 하라고, 개자식들아.”
“그…… 도경 형님은 왜 찾으시는지.”
“덜 맞았네. 왜 토를 달지?”
“하하하하! 여, 연락처랑 주소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리온과 멀찍이서 최지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인성질 하면 최지혁이지.
그나마 요즘 들어 왜인지 모르게 과하게 순해진 것 같은데 저럴 거면 순한 척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나 때문인가도 싶다.
근데, 솔직히 최지혁도 내가 그동안 본인 지켜봐 온 거 알지 않나?
여태까지 쟤가 하는 인성질이란 인성질 다 본 거 알 텐데 이제 와서 왜 저러나 싶다.
기어코 최지혁은 양아치 깡패 무리를 달달달 볶아서 까불면 뒤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후에 양아치 대장이 적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했다.
“지금 당장 댁네로 갈 테니까 준비하도록.”
나는 황급히 최지혁에게서 전화기를 뺏어왔다.
“미쳤어요? 악당이야, 뭐야!”
“왜 그러는데?”
최지혁은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듯 인상만 팍 찌푸렸고, 나는 급히 리온의 옷자락을 붙들고 최지혁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그래 봤자 2미터지만 아무튼.
“여보세요? 혹시 박도경 씨 핸드폰 맞을까요?”
- “……뉘쇼?”
다행히 박도경 씨는 최지혁의 개똥 통화 매너에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신분 문제로 방문한 채유라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실까요?”
- “아, 그 각성자…… 학생들?”
대충 뉘앙스를 보니 나와 대화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최지혁의 옷자락을 덥석 붙잡고 사무실 밖으로 끌어당겼다. 물론 무릎을 꿇고 있는 흥신소 직원들에게 경고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살포시 스피커폰을 손으로 가리고 최지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눈에 띄면 죽여버릴 테니까 얌전히 찌그러져서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