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라인강이 흐르는 어느 평화로운 숲 속 마을에 춤을 사랑하는 소녀가 살았다.
그녀의 이름은 지젤.
포도 수확이 한창이던 화창한 가을날, 지젤은 로이스라는 마을 청년과 봄볕 같은 사랑에 빠진다. 실은 그가 아리따운 그녀를 유혹하고자 신분을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진실은 가장 기쁜 순간, 가장 고통스럽게 찾아왔다. 수확제에서 축제의 여왕이 되자마자, 저를 어여삐 여긴 귀족 여인이 실은 연인의 약혼녀라는 충격적인 폭로와 함께.
정상에 오르자마자 바닥으로 추락한 불쌍한 지젤.
춤을 사랑하던 소녀는 모두의 앞에서 광기 어린 마지막 춤을 추고, 끝내 심장이 부서져 죽고 만다.
지젤.
낭만주의 발레의 정수. 그렇기에 발레리나라면 모두가 꿈꾸는 배역.
“지젤 역을 맡을 학생은…….”
어린 수아 또한 지젤이 되길 꿈꿨다.
“이본 마이어.”
그러나 스무 살의 수아는 지젤이 아니다. 학기마다 열리는 학교의 정기 공연에서조차.
클라이맥스라는 것이 침대 안에는 있어도 밖에서는 도통 없는 나라가 독일이라던가. 1등은 가장 마지막에 발표한다는 암묵적인 법칙을 무시한 교수가 정기 공연의 캐스트에서 주역부터 호명해버리자 강의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지젤로 뽑힌 이본을 제외하곤 모두가 김샌 표정으로 교수의 캐스트 발표를 멍하니 흘려들었다. 개중에는 불만에 찬 눈빛을 교수에게 노골적으로 보내는 치기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수아는 고개를 숙인 채 책상 위의 얼룩만 응시하며 교수와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작년의 소동 후로 수아는 제가 주역으로 뽑히리라는 기대를 접었다.
“다니엘라 요르다노바, 수아 정…….”
결국 수아에게 주어진 배역은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눈에 띄는 역할이라곤 없는 군무 무용수였다.
아무 배역도 받지 못한 것보다는 나아.
수아는 오늘도 자기 위로를 하며 연습실로 향했다.
공연 준비는 다음 학기에나 시작된다. 가볍게 몸을 풀기만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수아는 공연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동작 연습에 몰두했다.
학기 마지막 날이라 사람은 여느 때보다 적었다. 그마저도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슬슬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아.”
지젤 1막의 독무 동작을 점검하다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 사람은 진짜 지젤, 이본이었다.
“콩쿠르 준비하는 거야?”
엑스트라에 배정된 수아가 주인공의 독무를 연습할 이유가 없으니 넘겨짚어 묻는다. 씁쓸하게도 정확한 짐작이었다.
“우리, 클럽에 갈 건데 너도 갈래?”
방학의 시작을 기념하러 가자는 이본은 이미 레오타드에서 오프숄더 톱과 핫팬츠로 갈아입은 것도 모자라 화장까지 짙게 해 놀러 갈 만반의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아…….”
가고 싶은 마음이 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 건 고민이었다.
이번엔 무슨 핑계로 거절해야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수아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자 이본의 뒤에 모여 있던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아, 같이 가.”
“이런 날은 놀아야지.”
“지젤은 클럽에서도 출 수 있어.”
누군가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동기들이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지며 클럽 댄스를 추기 시작하고 가운데에 서 있던 아이 홀로 발끝을 들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비틀 몸을 흔드는 무리 속에서 홀로 우아하게 랑베르세(renversé) 동작을 펼치는 모습은 익살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대 아래에선 웃는 일이 없는 수아마저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나도 정말 가고 싶긴 한데…….”
한바탕 웃고서야 깨달았다. 이러면 거절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걸.
“곤란한 거라면 괜찮아.”
작년 가을학기부터 시작된 수아의 무차별적인 거절에 이골이 난 이본이 선수를 쳤다. 무엇, 아니, 누구 때문에 거절해야만 하는지 아는 것이다.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테니.
“고마워.”
알면서도 매번 물어봐주는 게 수아는 곤란하기보단 고마웠다. 교수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번번이 주역을 꿰차는 이본에게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본은 누구든 세심하게 배려하니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재밌게 놀아.”
“푹 쉬고 다음에 봐.”
“너도.”
밖으로 나가는 동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아의 말간 눈망울에 부러운 기색이 어른거렸다. 저 아이들의 자유만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저 중에는 다음 주에 수아와 같은 콩쿠르에 출전하는 아이도 있다. 연습을 하루 쉬어도, 몸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는 그 자신감이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이다.
탁, 문이 닫혔다.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사라진 연습실의 적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아의 발소리와 숨소리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글대는 저녁 햇살이 정통으로 쏟아져 들어와 토슈즈 밑에 선명한 오렌지빛 격자무늬를 그렸다. 에어컨 없는 연습실이 사우나처럼 느껴지자 연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아…….”
커다란 창을 활짝 열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몸이라 숨길로 쏟아져 들어오는 한여름의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구슬땀이 맺힌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수아는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미끄러지듯이 창틀 밑에 주저앉았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저녁 7시가 다가오는 시각이었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토슈즈를 벗었다. 하지만 집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얼얼한 발끝만 주물렀다. 쿨다운 스트레칭까지 끝내고도 엉덩이는 찬 바닥에 얼어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수아는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활짝 열린 창 밖에서 악기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수아가 다니는 대학은 음대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보통은 집중과 방음을 위해 창을 닫고 연습하는데, 음대생들도 더운 모양인지 오늘따라 소리가 선명했다.
저건 아마도 첼로. 저건 바이올린이겠지. 저건 클라리넷. 그럼 저건 뭘까.
음정도, 박자도 제멋대로. 모두가 따로 연주하는 저 불협화음이 수아에겐 편안하기만 했다. 실은 집 밖의 소음이란 하나같이 편안하기만 하다.
자연스레 졸음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어쩌면 영원히.
지이잉.
그러나 한순간의 평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핸드폰이 마룻바닥을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예상대로.
[엄마]
클럽에 가지 않는 이유, 그리고 집에도 가지 않는 이유.
엄마.
가장 포근해야 할 그 두 글자가 탁 트였던 숨통을 콱 틀어막는다.
연습 중이어서 못 본 척하면 답장이 늦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엄마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하아.”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아도 조금 전의 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피부 아래에서 개미 떼가 우글거리며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계속되자 수아는 결국 포기하고 폰을 다시 집었다.
[우리 딸, 언제 올 거야? 오는 길에 알디에서 생수 8리터짜리 좀 사 와. 프로스펙트에 안게보트 떴는데 아까 무거워서 못 샀어.]
전단에 할인 떴는데.
이렇게 한국어로 말하면 자연스럽고 간단할 것을 엄마는 굳이 독어를 섞어 어색하고 긴 말을 꾸며냈다.
[네.]
이제 갈 생각이라고 말하면 연습을 벌써 관두냐는 말이 돌아온다. 그래서 심부름에만 대답하고 폰을 치우려는데 미리 써두고 기다린 듯 새 메시지가 곧바로 나타났다.
[캐스팅은 안 나왔어?]
이래서 재빠르게 폰을 치우려 했었다.
이미 읽은 걸 엄마가 알 테니 수아는 재깍 대답했다.
[아직이에요.]
거짓으로.
[오늘이 학기 마지막 날이라며.]
[교수님이 바쁘셔서 나중에 정해지면 메일로 공지하신대요.]
엄마는 수아의 답을 읽고도 말이 없었다. 침묵에 안도하기는커녕 불안해진다. 의심으로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 표독하게 쏘아보는 두 눈. 그 모든 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했다.
설마 교수님 오피스에 전화를 거는 건 아니겠지? 번호를 엄마가 알던가? 아니야. 교수님은 퇴근하셨을 거야. 게다가 엄마는 독어도 못 하잖아.
엄지손톱이 부지불식간에 잇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거짓말인 걸 들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수아는 위험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 재롱 잔치에서도 수아가 주인공 역을 맡지 못하면 원장실을 뒤집어엎던 엄마였다. 그래도 설마 독일 대학의 교수실까지 뒤집어엎을까.
설마는 수아의 체면을 잡아먹었다.
올해 초였다. 봄 정기 공연의 캐스팅이 발표되었으나 명단에는 수아의 이름이 없었다. 그날 그대로 털어놓은 건 멍청한 짓이었다. 엄마는 한국에서 그랬듯이 명품을 몸에 휘감고 학교로 찾아왔다.
“교수실 어디야.”
말려도 소용이 없다는 건 열아홉 해 내내 체득했지만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여긴 이런 거 안 통해요.”
“여긴 사람 사는 데 아니야? 시끄럽고, 교수실 어디냐고 했어.”
수아가 눈물까지 내비치며 제발 이러지 말라 빌어도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부족해서 떨어진 거잖아요. 더 열심히 해서 다음 학기에는…….”
제 탓을 하는 순간 수아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돌변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을 부를 만한 일이 생길까 무서웠던 수아는 결국 엄마를 이끌고 교수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누울 관을 끌고 가는 참담하기 짝이 없는 기분. 그걸 낯선 땅에서까지 느끼게 될 줄이야.
“프라우(여성을 부를 때 붙이는 존칭. 영어의 Ms.에 해당.) 정, 무슨 일이죠?”
교수는 학부모가 미리 약속도 잡지 않고 들이닥쳐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엄마는 상대가 당혹스러워하든 말든 교수실에 당당히 앉아 수아에게 요구했었다.
“통역해.”
어리둥절해하는 교수에게 엄마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는 수아는 당장이라도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픈 심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뇌물이나 갑질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엄마도 눈치챘다. 그러나 사바사바나 떼쓰기는 통할 거란 어리석은 기대를 좀처럼 접지 못하고 수아가 제 입에 차마 올리고 싶지 않은 민망스러운 요구를 거듭 했다.
“알브레히트 알지 않냐고 물어봐. 독일 명품 브랜드니까 모를 리가 없잖아. 그 알브레히트가 네 스폰서라고 말해.”
“…….”
의미가 없는 어릴 적의 경력을 읊더니 급기야는 누구나 알 만한 후원자의 이름을 들먹이기까지.
“얼른.”
„Albrecht ist… der Sponsor meiner Tochter.“
교수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알브레히트의 오너가는 수아만 후원하지 않는다. 그 가문이 후원자인 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는 눈인 걸로 보아 교수는 엄마의 은근한 뉘앙스를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엄마가 몰상식한 요구를 하러 찾아왔다는 건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교수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가운데 수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려는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통역 사이사이 제 사과를 끼워 넣었다.
급조해낸 거짓말일 게 분명한 일정이 있다며 교수가 일어나고서야 엄마는 마지못해 무거운 엉덩이를 뗐다. 끝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교수실 밖으로 쫓겨나는 엄마에게 교수는 마지막 인내를 발휘한 듯 웃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
“학생이 부탁하러 온 적은 있어도 부모가 찾아온 적은 처음이네요.”
다 큰 자녀의 일에 부모가 관여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을, 엄마는 그 말을 수아에게 다른 학생만큼의 열의가 없다는 뜻으로 곡해했다.
“다른 애들은 가서 따진다는데 넌 왜 가만히 있었어? 등신이야? 어휴, 속 터져!”
어쩌면 교수에게서 당한 망신을 갚을 희생양이 필요해 수아 탓을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그다음 일어난 일을 떠올리면 머리가 찡하게 울린다.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캐스팅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번엔 캐스트에 들었지만 주인공도, 솔리스트도 아니란 걸로 사달이 날 것이다.
실은 가을에 학교 공연이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엄마가 홀로 알아냈다. 같은 과에 다니는 3학년 한국인 선배의 SNS를 멋대로 알아내서. 일면식도 없는 선배에게 무턱대고 ‘2학년 정수아 엄만데……’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내서 말이다.
수아는 엄마와의 채팅방에서 나와 새 메시지 알림이 뜬 다른 채팅방을 열었다. 3학년 선배의 이름 밑에 ‘응, 걱정 마’라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엄마에게서 혹시 또 연락이 오면 공연 캐스팅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고 말해달라는 수아의 부탁에 온 답이었다.
[언니, 진짜 고마워요 ㅠㅠ 그리고 너무너무 죄송해요.]
수아의 인사에 선배는 ‘아냐, 괜찮아’라는 대답과 오리가 엄지를 들며 윙크를 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상대의 가벼운 반응에도 수아의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솔직히 얼마나 성가실까. 기가 막히기도 할 거다.
수아는 한숨을 쉬며 화면 위에서 손가락을 놀렸다. 채팅방을 닫는 게 아니라 방에서 완전히 나왔다. 채팅 기록이 지워지도록.
누군가에게 말을 맞춰달라 부탁하는 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다. 그만큼 수아는 노련해졌지만 수치심 앞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부럽다.”
햇빛 속을 자유로이 부유하는 먼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수아의 입에서 오늘도 버릇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 홀로 유학 온 첫 1년은 수아도 저러했다.
그러나 작년 가을, 엄마가 독일까지 따라온 후 정수아는 저 먼지 한 톨만큼의 자유도 없는, 죄수였다.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엄마가 말한 염가 마트에 들렀다. 정수기처럼 레버가 달린 8L짜리 생수 통을 품에 안고 곧장 계산대로 향하던 수아의 걸음이 베이커리 코너 앞에서 멎었다.
시선은 조명을 환히 밝힌 아크릴 케이스 안의 크루아상에 있었다. 겹겹의 결이 바스러질 듯이 일어난 페이스트리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구워진 치즈가 소보로처럼 붙어 있기까지. 저 안에는 분명 두툼한 햄이 고소한 페이스트리에 말려 있을 것이다.
Schinken-Käse-Croissant(햄 치즈 크루아상)은 수아가 가장 좋아하는 빵이었지만 선뜻 집지 못했다.
79센트. 그러니까 고작 천 원.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건 아니다.
“도와줄까요?”
한참을 머뭇거리는 게 외국의 무인 베이커리 코너에서 어떻게 빵을 사야 하는지 모르는 여행객으로 보였던 걸까, 점원이 오더니 수아가 눈을 떼지 못하던 크루아상을 집게로 집어 종이봉투에 넣어주었다. 안고 있던 생수 통 위에 친절히 올려주기까지. 점원이 너무 뿌듯하게 웃는 바람에 거절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맛있게 먹어요.”
얼떨결에 결정 장애를 극복해버린 수아는 아크릴 케이스에서 나온 빵은 위생상 환불 불가라는, 제가 급조해낸 수칙을 핑계로 대며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자마자 조금 전 하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군것질한 거 어떻게 숨기지? 생수 가격은 엄마가 알 텐데.
은행 계좌에 찍힌 체크카드 사용액이 생수 가격과 차이가 나면 엄마의 의심이 시작될 것이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의심하는 당사자도 알지 못한다.
눈속임에 쓸 적당할 걸 찾아 계산대 옆 진열대를 훑었지만 젤리나 담배처럼 수아가 사서는 안 되는 물건뿐이었다. 잡지도 있지만 바코드 옆에 가격이 적혀 있어 탈락. 난감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수아의 낯빛이 밝아졌다.
이건 얼마인지 엄마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생수 통 앞에는 애먼 장미꽃 한 다발이 놓였다.
마트에서 나온 수아는 길가의 정류장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S반이 오길 기다리는 사이 길에 서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고소한 냄새를 맡자마자 잊고 있었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넘기고서야 아쉬워졌다. 오랜만에 먹는 빵인데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을걸. 고작 천 원짜리 마트 빵에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신세 정말 웃기지도 않네.
씁쓸하게 웃으며 입가와 옷에서 부스러기를 털었다. 빵 봉투를 마트 영수증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 마지막 증거까지 인멸한 수아는 때마침 도착한 전차에 올랐다.
회색 건물이 줄지어 지나가던 전차 밖의 풍경이 머지않아 변했다. 눈앞이 탁 트이며 나타난 건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는 강이었다.
서머타임 탓에 독일의 여름은 밤 9시가 넘어서야 해가 진다. 지금은 9시가 되기 15분 전. 노을로 물든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잔디밭 여기저기에 누워 일과 후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엄마는 이곳 사람들의 자유를 동경한다. 자신이 동경하는 모든 것을 딸이 대신 이뤄주는 게 도리라고 믿는 사람이지만 유일하게 딸에게 허락하지 않는 게 바로 자유였다.
우연히 문화센터에서 발레 수업을 들었던 일곱 살 이후로.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발레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당시엔 행운이었다.
배운 지 반년 만에 콩쿠르를 휩쓸고 다녔을 뿐 아니라 발레 신동 소리를 들으며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상 사이트에서 발레를 검색하면 아직도 수아의 어릴 적 모습이 나온다. 이 아이는 어떻게 컸냐고 궁금해하는 댓글이 아직도 심심치 않게 달릴 정도였다.
초등학교 땐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립 예술영재교육원에 들어가 국내의 이름난 교수들에게서 차세대 프리마 발레리나 감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몸 관리만 잘하면 되겠다는 조건과 함께.
그 말은 어쩌면 수아에게 닥칠 불운을 미리 예언한 건지도 모르겠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몸의 변화 탓에 수아는 신동 열에 아홉이 마주한다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그렇게 청소년기에 접어들고부터 행운은 불운이 되었다.
아동기의 콩쿠르 입상은 의미가 없다. 진짜는 청소년기부터였다. 그래서 엄마는 수아가 전 세계 발레 스타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제 실력을 증명할 순간만 기다려왔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
수아가 로잔 콩쿠르에 입상해 오디션 없이 영국 로열 발레 스쿨에 입학한다는, 엄마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정기 입학 오디션을 봤지만 실력이 안 되는 건 수아의 눈에도 보였으니 낙방은 당연했다.
그쯤에서 수아는 발레를 관두고자 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난한 집의 장녀가 으레 그렇듯, 남동생들과 차별당하며 하고 싶은 걸 포기하도록 강요받아온 엄마에겐 발레도 그중 하나였다.
부자와 결혼해서 딸은 하고 싶은 것을 다 시키며 한을 푸는 게 꿈이었다던가. ‘하고 싶은 것’의 주체를 생략해서 말했지만, 딸이 아닌 자신인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안다. 엄마에게 딸은 자신의 꿈을 이뤄주는 매체일 뿐이었다.
그 꿈의 첫 절반은 그 부자, 즉 수아의 아빠와 엄마가 중학교 때 이혼하며 못 이룬 꿈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꿈의 나머지 절반을 더더욱 악착스레 붙들며 놓지 못했다.
멀쩡히 다니던 예고를 자퇴시키더니 검정고시를 보게 했다. 그와 동시에 유학 준비가 시작됐다.
“우리 딸은 국내에서 썩히기 아까운 재원이잖아.”
엄마는 어릴 때부터 어울렸던 ‘발레 맘’들에게 했던 말을 그즈음부터는 수아에게 했다. 전에 없던 절박한 목소리로. 국내 대학에 가면 창피해서 콱 죽어버릴 거라는 닦달까지 덧붙이며.
그 시절 수아의 삶은 형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옥살이였다. 검정고시 준비부터 어학 공부,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도 이어지는 춤 연습까지. 숨 쉴 틈 없는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엄마의 짜증을 받아내야 했다.
수아가 잘나갈 적에 엄마가 한 짓이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시작한 때였다. 엄마가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아이들의 엄마들에게서 ‘위로’ 문자가 왔다거나, 친한 아줌마가 그즈음 모임에 나가지 않던 엄마에게 누가 어떤 험담을 했는지를 전해주어 엄마의 속을 더 뒤집어놓았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수아에게 가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학교를 관둔 후 친구를 만나는 건 물론,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것조차 금지당했으니 수아의 하소연은 갈 곳이 없었다. 과도한 식사 제한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자해까지 겹치며 수아의 머리숱은 급격히 줄어갔다.
그 지경이 되자 수아도 내키지 않던 유학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유학만이 엄마에게서 벗어날 유일한 해방구로 보였으니까. 학원 선생님에게서 악에 받친 사람 같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땐 정말 악에 받쳤었다.
유학에 실패해서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단 생각까지 했었으니.
그렇게 한 번 만에 검정고시를 통과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빠 소식을 들었다. 자살했다는 소식을.
수아는 그제야 아빠의 회사가 부도난 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사촌에게서 들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어? 끝까지 저 편한 짓만 골라 하지. 하나밖에 없는 딸년 돈줄 노릇도 제대로 못 하는 등신.”
그날 엄마는 욕설을 퍼부으며 수아를 장례식장이 아닌 발레 학원으로 보냈었다.
수아의 비싼 공부에 돈을 대어주던 사람이 사라졌지만 발레를 관두진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재원 교수님이 연결해주었던 후원자, 알브레히트가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당시의 후원금만으론 학비와 체류비가 막대하게 드는 해외 발레 아카데미는 무리였다. 엄마는 유학을 빌미로 후원금을 더 늘려달라고 부탁할까 생각도 했다지만 그러다 슬럼프인 것을 빌미로 있던 후원마저 끊길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고 푸념했었다.
결국 대학 학비를 받지 않는 독일로 방향을 선회했다. 운 좋게 만하임에 있는 이름난 대학에 한 번에 합격해 홀로 유학 오며 수아의 감옥 속 죄수 신세는 끝났었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수아는 라인강을 건너 이웃 도시로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차에서 내렸다. 땅거미가 지는 길을 따라 걷는 걸음이 터덜터덜 무거운 건 품에 안은 생수의 무게 탓만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주변의 건물들보다 확연히 낡은 건물의 초인종을 누르자 곧 삑 소리와 함께 때 낀 나무문이 열렸다. 지은 지 오래된 이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이 무더운 날에 3층까지 생수를 안고 계단을 오르려니 절반 즈음부턴 뼈밖에 없는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 딸 왔어?”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환히 웃는 엄마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을 즈음엔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다. 수아는 생수 통을 싱크대 옆에 올려놓자마자 선풍기 앞으로 향했다.
“전기세 많이 나와.”
수아가 선풍기를 켜기 무섭게 엄마가 득달같이 쫓아와 꺼버렸다. 엄마가 거실 창가로 향하자 수아는 선풍기 모터에 손을 올려보았다. 낮 동안 줄곧 틀어두었는지 뜨끈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엄마가 여름 동안만이라도 에어컨이 있는 한국 집으로 가길 바랐었다. 그러나 엄마는 독일 아파트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완벽한 동상이몽이었다.
실외기가 있는 에어컨을 거의 쓰지 않는 곳인데 집주인이 벽에 구멍을 뚫게 해줄 리가 있을까. 엄마는 집주인을 욕하며 작은 이동식 에어컨을 고육지책으로 사 오더니 미터기가 팽팽 돌아가는 꼴을 보곤 닷새 만에 환불해버렸다. 그러곤 택한 게 선풍기였다.
여긴 한여름엔 기온이 40도까지도 오르는 곳이다. 고작 선풍기가 에어컨에 익숙한 엄마의 성에 찰 리 없었다. 엄마가 쪄 죽겠다고 불평할 때마다 수아는 그럼 한국으로 가라는 말을 하고픈 걸 꾹 참았다.
“창문 열면 되지.”
엄마가 창문 손잡이를 비틀었다. 전 세입자가 붙였던 테이프의 끈끈이가 때처럼 덕지덕지 붙은 창문이 끼익, 앓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허름한 주방 분리형 원룸의 월세가 한 달에 한국 돈으로 120만 원이다. 당연히 공과금과 관리비는 따로였다.
같은 돈이면 학교에서 더 가깝고 엘리베이터도 있으며 방음과 단열까지 잘되는 신식 아파트로 갈 수도 있다. 엄마가 오기 전 수아가 살던 곳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나을 게 하나 없는 이 아파트에 사는 건 오로지 저 창문 때문이었다.
활짝 열린 창 밖에서 노을빛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이 아파트에서는 강과 그 너머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였다. 비싼 월세는 저 풍경 값이다.
엄마는 틈틈이 창 밖의 풍경을 찍어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자랑했다. 물론, 낡은 티가 나는 아파트 내부는 찍은 적 없었다. 지인들은 수아와 엄마가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호화롭게 사는 줄 알고 있을 테니.
“장학금만 주는 게 아니라 라인강 변에 있는 아파트까지 주면서 오라고 하잖아.”
고작 독일로 유학 가는 게 창피했던 걸까? 대학 합격 턱을 쏜다는 말에 모인 발레 맘들에게 엄마는 독일에 있는 후원자가 오라 해서 유학을 간다는 거짓말을 했었다. 거짓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년 후 어학 비자를 받아 독일로 무턱대고 쫓아왔을 땐 수아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해서 후원자가 초청한 것이라고 했으니까.
“이젠 바람이 부네. 아깐 안 불더니.”
이 또한 거짓말이다. 창문 앞에 선 엄마의 머리카락은 조금도 나부끼지 않았다. 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잠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샤워나 해야겠다.
선풍기 앞에서 일어서는 찰나, 쇼퍼백에 꽂혀 있던 장미꽃 다발이 툭 떨어졌다.
“어머나. 웬 꽃이야. 누가 줬어?”
“아뇨. 예뻐서…….”
꽃을 집어 드는 순간에는 활짝 폈던 엄마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수아는 연기를 해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엄마, 꽃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샀어요.”
다소 무뚝뚝하게, 멋쩍고 열없는 미소를 곁들여. 활짝 웃을수록 이건 어설픈 연기가 된다.
“딸이란 게 살가운 데도 없고 센스도 없고…….”
수아의 대답을 들은 엄마의 얼굴이 폈지만 못마땅한 기색이 모두 걷히진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꽃을 좋아하니까요’라고 해주면 덧나니?”
꽃다발에서 촌스러운 비닐 포장을 벗겨내는 손짓이 신경질적이다. 쇼퍼백을 멘 수아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말할 걸 그랬나? 점수를 딸 수 있었겠지.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꽃을 좋아하니까요.
발레리나는 연기자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랑하는 연기는 필수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척하는 건 쉬웠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연기는 자신이 없었다.
과한 아부는 의심으로 이어진다는 걸 수아는 체득한 지 오래였다. 엄마의 얼굴에 의심의 기미는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 연기는 훌륭했다.
최고점이 높지만 위험한 연기, 그리고 최고점은 낮지만 안전한 연기. 수아는 후자를 택하는 편이었다.
“우리 딸이 사줬다고 자랑해야지.”
“씻고 올게요.”
엄마가 주방으로 향하자 수아는 침실로 몸을 돌렸다. 꽃을 산 이유를 들킬까 여전히 조마조마했다. 엄마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면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약하게 속삭인다.
실토해. 큰일 나기 전에 실토해. 그게 네가 살 길이야.
혹은 자진해서 죽는 길이거나.
머릿속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체하며 침실로 겨우 한 걸음을 뗐을 때였다.
“저녁은 먹었어?”
수아의 뒷덜미에 소름이 반사적으로 돋아 올랐다.
“아뇨.”
“이리 와봐.”
머뭇거림은 곧 실토다. 싱크대 앞에 서서 손을 까딱이는 엄마에게로 순순히 다가가 섰다.
“이번에도 되너 사 먹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기회 줄 때 솔직하게 말해.”
‘이번에도’라니 억울하다. 엄마 몰래 되너 케밥을 먹은 건 작년 가을 딱 한 번뿐이었다. 그것도 동기가 제 것을 사는 김에 사다주는 바람에 거절할 수 없어 먹은 것뿐이다. 물론, 엄마가 온 후 맛도 볼 수 없었던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되어 좋았다고 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날 후로 수아는 케밥을 입에도 대지 못하게 됐다.
“안 먹었어요.”
식단 검사, 혹은 감시에 이골이 난 수아의 대답에는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아, 해봐.”
입을 벌렸다. 눈 밑에서 엄마가 코를 킁킁대는 소리가 들린다. 수아는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게 엄마의 의심에 더 불을 지폈을 것이다.
“후, 불어.”
조금 전보다 사나운 목소리였다. 엄마는 음주 측정을 하는 경찰처럼 굴며 되너 케밥에 들어가는 양파나 소스 냄새가 나는지 한참을 맡아보고서야 수아를 놓아주었다.
“가서 씻어.”
수아가 말을 어기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침실로 향하는 수아의 뒤에서 꽃병을 찾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이었다.
가방을 침실에 놓고 욕실로 간 수아는 티셔츠와 레깅스를 벗어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속옷만 남자 근육과 뼈가 전부인 몸이 드러났다.
체중 관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말랐지만 살에 대한 엄마의 집착은 2차 성징이 시작된 후로 나날이 심해지기만 했다. 그러니까 나날이 커지는 가슴만큼 말이다.
작은 머리. 단아한 미인형의 얼굴. 167cm인 키. 좁고 각진 어깨. 긴 팔다리와 가녀린 몸 선. 거기다 고(아치)가 예쁜 발등까지. 타고난 신체 조건의 대부분이 이상적인 발레리나의 그림에 완벽히 맞아떨어졌지만 단 한 가지만은 동떨어져 있었다.
E컵인 가슴.
가벼운 몸과 균형 감각이 생명이며 육감적이기보다는 우아해야 하는 발레리나에게 큰 가슴은 사형 선고와 같았다.
발레리나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체중 관리와 과중한 운동에 시달리므로 사춘기가 와도 가슴이 크게 발육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그 드문 일이 수아에게는 일어났다. 이건 유전이었으니까.
지금의 엄마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살이 쪘지만 수아가 어릴 땐 빼빼 말랐었다. 그때에도 엄마의 가슴은 유난히 컸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엄마의 자랑이었던 몸매가 오늘날의 수아에겐 흠이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수아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건 8할이 가슴 때문이었다. 나머지 2할도 가슴 탓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때부터 엄마는 더욱 혹독해졌다. 금세 배가 꺼져버리는 샐러드만 먹거나 굶은 채로 뛰는데 동작에 힘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밥 대신 욕을 먹으며 하는 발레가 좋을 리도 없었다.
한창 날고 기던 시절엔 수아도 제가 발레를 하고 싶은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아니다. 그저 관심받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관심도, 실력도 사라진 전공을 붙잡고 있는 건 마른 목에 먹고 싶지도 않은 거친 빵을 꾸역꾸역 욱여넣는 것과 같다. 항상 속이 쓰리고 명치에서는 불편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밴드가 유난히 굵은 스포츠 브라를 벗으면서 명치를 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지만 해방감은 들지 않았다. 해방은 아직 멀었으니까.
수아의 가슴에는 굵고 두꺼운 살색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다.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다는 스포츠 브라를 사도 수아의 가슴에는 제 기능을 못 했다. 살이 마냥 말랑하지 않고 단단한 편이라 그런지 브라로는 아무리 눌러도 납작하게 퍼지지 않았다. 움직일 때 살이 위아래로 출렁이는 걸 잡아주지도 못했다.
춤출 때마다 레오타드 속에서 적나라하게 흔들리는 가슴으로 청중의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지면 가슴을 가리며 구석으로 숨고 싶어진다. 남들 앞에서 벌거벗고 선 듯한 수치심에 시달리다 제 기량을 다 뽐내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고육지책으로 택한 게 스포츠 테이프였다. 보통은 운동할 때 부상을 예방하려고 관절이나 인대에 감는 테이프를 수아는 가슴에 감았다. 그것도 칭칭, 덕지덕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불편하고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테이핑을 하고부터는 가슴이 거슬리는 일이 줄어든 건 물론, 어깨와 허리 통증도 적어져서 수아는 테이핑을 거르지 않게 되었다.
테이프를 붙인 채로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는 사이 흠뻑 젖은 테이프가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아는 느슨해진 테이프를 떼어내고 몸을 마저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던 수아의 시선이 거울 속, 제 모양으로 돌아온 가슴에 머물렀다. 비쩍 마른 몸에 가슴 두 쪽만 공처럼 매달린 꼴은 육감적이긴커녕 해괴하다. 괴물 같았다.
종일 짓눌려 있던 살은 분홍빛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제 몸인데도 안쓰럽기보단 미워 보인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난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엄마가 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볼 때마다 이게 모든 불행의 원흉 같았으니.
엄마는 툭하면 가슴을 손으로 쿡쿡 찌르며 수아를 젖소라고 불렀다. 집인데도 스포츠 브라를 껴입는 건 그 때문이었다.
“이 망할 젖탱이. 떼러 가야지.”
엄마는 성장이 멈추면 수아를 수술대에 눕힐 생각이었다.
축소 수술이라니 무섭고 싫다. 그런 극약 처방까지 감수할 만한 열정이 발레에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즈음이 되면 이미 프리마 발레리나 자리에서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내려와 있을 것이다.
수술하기 싫다는 말을 몇 번 입 밖에 냈었지만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 그때마다 뒤따라 이젠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사실 이미 엄마 손에 성형외과로 여러 번 끌려갔었다. 다들 성장기라 아직 수술을 해주지 않겠다고 해서 얼마나 안도했던지 모른다. 키의 성장은 2년 전부터 멈추었는데 가슴은 아직도 크기를 부풀려갔다.
성장이 멈추지 않는 게 잘된 일인지 못 된 일인지.
한숨을 쉬자 기껏 닦은 거울에 김이 서렸다.
옷을 입고 머리까지 말리고 나갔더니 엄마는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쇼퍼백 안에 있던 수아의 폰이었다. 수아는 못 본 척했다.
중2 때였을 것이다. 엄마가 제 폰을 자꾸만 들여다보는 게 싫어 샤워할 때 욕실로 가져갔었다. 그랬다가 남자가 생겼냐는 말을 들었다. 분명 처음은 웃자고 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어린 년이 발랑 까져서. 어떤 새끼한테 알몸 찍어서 보냈어? 그 새끼랑 떡도 쳤어? 나가, 이년아! 길바닥에서 몸이나 팔아 먹고살아!”
그 후로 수아는 엄마가 제 폰을 뒤져보아도 아무 말 하지 않게 되었다.
“아, 졸려.”
방학이 막 시작된 참이지만 그렇다고 일상이 달라질 건 없다.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연습실로 갈 테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수아.”
도망치듯이 일찍 자러 들어가려던 수아를 엄마가 불렀다.
“자기 전에 하우스가베 좀 해줘봐.”
엄마가 가리키는 식탁 반대편에는 어학원에서 쓰는 독어 교재가 놓여 있었다. 독일어로 숙제는 하우스아우프가베(Hausaufgabe)다. 하우스가베가 아니라.
엄마는 한인 교회를 다니며 교포나 주재원 부인들과 어울리더니 한국말에 독어를 섞는 그들의 말버릇을 옮아 왔다. 옮았다기보다는 따라 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게 꽤나 근사해 보였던 걸까, 한국 지인들과 통화할 때에도 섞어 쓰곤 “어머, 내 정신 좀 봐. 독어가 입에 붙어버렸어.”라며 멋쩍은 투로 말을 고치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입꼬리는 불룩한 뺨을 파고들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정작 엄마가 할 줄 아는 독일 말은 당케, 츄스 같은 간단한 인사뿐이다. 독어 수업을 9개월째 듣고 있으면서도 엄마의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숙제를 모조리 수아가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밥을 다 까먹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엄마는 수아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을 덧붙이더니 숙제를 하는 그녀의 앞에 작은 그릇 하나와 포크를 놓았다. 그릇 안에는 한입 크기로 썬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가 드레싱 없이 뒤섞여 있었다.
“먹으면서 해.”
엄마는 손수 수아의 손에 포크를 쥐여주기까지 했다. 수아가 싱거운 카프레제를 먹으며 숙제를 하는 사이, 엄마는 교회에서 만난 분에게서 선물받았다는 와인을 따라 오더니 식탁에 그릇 여러 개를 늘어놓고 정성스레 포장하기 시작했다.
“이거 어때? 동독산 츠비벨무스터래.”
“예쁘네요.”
엄마가 마냥 놀러 온 건 아니었다. 부잣집 사모님이던 시절에 수집하던 안목으로 그릇을 떼어 한국에 팔아 후원금으로는 다 감당이 안 되는 생활비를 충당하려 했다. 그러나 경쟁자가 워낙에 많으니 엄마의 새 사업은 영 시원치 않았다.
한숨을 쉬며 와인을 마시던 엄마가 수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느닷없는 소리를 했다.
“우리 딸. 나한텐 너밖에 없어. 알지?”
이 말을 할 땐 분명 따뜻한 눈이었다.
“근데 기왕 살 거면 꽃집에서 사지 왜 마트 장미를 샀어? 하여튼 센스 없어서는.”
그러나 식탁 가운데의 유리잔에 꽂힌 싸구려 장미에 시선이 닿자 싸늘하게 돌변했다. 자랑하려고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꽃이 아무리 봐도 싸 보여서 포기했다는 푸념을 듣고 있자니 입안의 토마토가 피처럼 비렸다.
“그 아줌마가 엄마한테 남자 소개시켜준댔잖아. 독일 남자로. 근데 어떤 인간인 줄 알아?”
엄마의 푸념은 다행히 곧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할배야, 할배. 예순 넘은.”
엄마의 나이는 마흔넷이었다.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까지 얕잡아 봐?”
수아의 눈은 엄마의 손에 들린 와인 잔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붉은 액체에 초조히 머물렀다. 엄마는 술이 들어가면 더더욱 종잡을 수 없어진다.
“응? 수아야, 말해봐. 엄마가 예순 넘은 할아버지한테 팔려 가야 할 정도로 늙어 보여? 응? 엄마가 그렇게 후져?”
“아뇨. 전혀요. 그분이 너무했네요. 근데, 어쩌면 그분은 엄마가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서 돈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주려던 게 아닐까요? 그 나이 차는 진짜 심했지만…….”
수아는 다른 사람의 편을 드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다가 물었다.
“……엄청난 부자라면서요?”
경제적으로 안락했던 시절의 엄마는 지금처럼 변덕은 심해도 지금보다 훨씬 너그러웠다. 그 시절이 그리웠던 수아는 차라리 엄마가 부자랑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그러나 엄마는 까다롭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큰 집 있고 자기 회사 있으면 뭐 해. 그리고 난 이제 네 애비처럼 사업하는 남자라면 치가 떨려, 아주.”
사업하는 남자가 싫은 건 아닐 거다. 그저 아빠를 욕할 기회를 포착했을 뿐이지.
“쌍팔년도도 아니고. 누구를 선진국 영주권에 환장한 후진국 노처녀로 아나.”
엄마는 지인을 헐뜯으며 독일 영주권 따위 필요 없다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체류권이 불안정한 걸 불평하기 시작했다.
“아우, 정말 확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어학 비자는 공짜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불시에 관청에서 찾아와 출석 확인을 한단다. 그래서 엄마는 매일같이 불평하면서도 학원에 꾸역꾸역 나가야 했다.
“귀찮게.”
구시렁대며 엄마는 바닥까지 비운 와인 잔을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군소리 없이 엄마의 숙제를 하는 수아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너도 귀찮지?”
이건 함정이다. 엄마가 귀찮냐는 물음일 테니.
“…….”
아니라고 대답하면 간단할 것 같지만 전혀. 엄마는 귀찮지 않아요,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엄마는 질문을 바꿔버릴 것이다.
난 숙제가 귀찮냐는 말이었는데, 설마 수아는 엄마가 귀찮았어?
아무 주어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해도 그 순간 질문은 바뀐다.
숙제가 귀찮지 않아? 하긴 우리 딸한테 이 정도는 껌이니까.
수아의 사면이 모두 벽에 막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딸이 독어를 배운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꽤 잘한다는 건 엄마에게 겉으론 자랑이나 속으로는 아니었다. 저 속에서 용이 되지 못한 뱀의 묵은 질시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숙제 안 귀찮아요. 나도 독어 공부해야 하고…….”
어느 함정이 더 얕을지 가늠하던 수아는 후자를 택했다. 엄마에겐 수아가 마침내 꼬투리를 잡을 만한 대답을 했다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공부도 안 하고.”
“바쁘잖아요.”
“온 지 1년이 다 됐는데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그래서 차라리 다행이다.
수아는 엄마가 독어를 영영 하지 못하길 바랐다. 그럼 교수실에서 망신을 당한 후로 수아가 통역에 편리한 거짓을 섞기 시작했단 걸 평생 알아채지 못할 테니.
“우리 수아는 엄마가 부끄럽지?”
“아…….”
아니라는 그 짧은 한마디가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였다.
“아니지. 말을 잘못했나?”
엄마가 식탁 위로 몸을 기울였다. 한층 가까워진 눈은 겉보기엔 부드러웠으나 수아는 해부용 메스가 제 살로 파고드는 듯한 날카로움에 식탁 아래에 숨겨진 발끝을 움츠렸다.
“부담스럽지?”
생글생글 웃는다. 휘어진 눈매 사이의 눈빛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느껴졌다.
“엄마가 독일까지 따라오는 바람에 수아는 자유롭게 놀지도, 먹지도, 친구를 사귀지도, 남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안 그래?”
해부란 결코 틀린 표현이 아니다. 엄마의 눈이 수아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았으니.
수아는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엄마가 없으면…….”
엄마만 없으면 난 자유로울 텐데. 그녀는 마른침과 함께 속내를 삼키고 말을 이었다.
“누가 나를 챙겨주겠어요.”
난 맹하고 칠칠치 못하니까. 발레만 하느라 세상 물정을 몰라서 혼자 세상에 뚝 떨어지면 험한 일이나 당하다 비참하게 죽고 말 테니까. 그러니까 난 엄마가 필요해요.
엄마가 제게 하곤 하는 말을 수아는 그대로 읊었다. 생기가 없는 멍한 눈으로.
“그래, 알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엄마도 너 얼른 독립시키고 엄마 인생 살고 싶어.”
“……알아요.”
수아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덧붙였다.
“안 귀찮아요. 부끄럽지도, 부담스럽지도 않고.”
입매를 슬쩍 올렸더니 엄마의 눈에 애틋한 기색이 차올랐다. 좀처럼 보기 힘든 감정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건가.
“그래, 엄마가 옆에 있어서 좋지?”
“네.”
오늘 밤도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 줄로만 알았지만 잠든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수아는 별안간 머리채를 잡히며 침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이년아, 나 몰래 뭐 처먹었어?”
이번 주 마트 전단에 눈가림용으로 사 온 장미 한 다발의 가격이 특가라며 나와 있었을 줄이야.
은행 계좌에 찍힌 체크카드 결제액과 금액이 맞지 않은 걸 두고 한밤중에 난폭한 추궁이 시작됐다.
“크루아상 하나 사 먹었어요. 정말 그게 다예요.”
빠르게 실토하고 사과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잘못했어요, 악!”
그렇다고 엄마의 손이 멈춘다는 뜻은 아니었다.
퍽, 두꺼운 손바닥으로 머리를 때리는 소리가 거친 욕설과 번갈아가며 좁은 방을 울렸다.
“애미는 씨발, 니년 발레 시킨다고 이 더운 데서 고생하는데 딸년이라는 게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이나 찌워? 이따위로 처먹고 다니니까 미련하게 가슴이 처나오지!”
술에 취한 엄마는 평소보다 과격했다. 멍이나 상처가 생겨도 남의 눈에 절대 띄지 않고 운동하는 데 지장이 없는 곳만 때리는데 오늘은 보이는 대로 손바닥을 날리고 발로 걷어찼다.
“헉!”
가슴을 발로 차이는 순간 숨이 콱 막히고 눈앞이 번쩍 점멸했다. 화끈거리는 뺨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
바닥으로 쓰러지자마자 수아는 아픔이 잦아들 새도 없이 머리채를 잡혀 무릎 꿇어야 했다. 고개가 뒤로 꺾이며 억지로 마주한 눈에서 광기가 번뜩였다. 엄마의 이런 모습은 수아만이 알 것이다.
엄마가 중고등학교 때 좀 놀았다는 말, 어릴 적엔 말 그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았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의 비열하게 뒤틀린 미소에 중학교 때 일진의 얼굴이 겹쳐지는 지금은 그 뜻이 아니란 걸 안다.
“장미는 눈가림으로 샀어? 응?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힌 년.”
그렇지만 들켰으니 머리 나쁜 년이란 욕설이 이어졌다.
“거짓말 처하는 것도 딱 제 애비야, 아주.”
“엄마, 제발 조용히…….”
“이 썅년이 어디서 어른한테 닥치래?”
“그게 아니라 옆집에서 호, 혹시 경찰 부르면…….”
“씨발, 부르라고 해! 경찰 불러서 니 애미가 고작 빵 쪼가리 가지고 때린다고 신고해! 깜빵에 처넣으라 이거야!”
엄마에게 수아가 저지른 잘못의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잘못의 여부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속에 쌓여 곪아가는 고름을 터트릴 계기가 필요할 뿐. 그 악취 나는 고름의 수챗구멍에는 이름이 있었다.
“정수아.”
“흡…….”
“똑바로 앉아, 이년아. 턱 나가기 싫으면 이 꽉 물어.”
“헉!”
힘을 있는 대로 실은 손바닥에 후려갈겨진 머리가 찡하게 울린다.
“씨발, 못돼 처먹은 년이 번번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이 또한 수아가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저는 지젤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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