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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91화 (191/202)

귀환무관 191화

“……지금 저쪽이랑 거래를 했단 거야?”

백서휘는 남만야수궁주를 쓱 한번 봤다가 다시 시선을 종리혁 쪽으로 옮겼다.

“거래라기보다는 고용이라고 봐야지. 쌀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를 돕기로 했으니까. 허허허!”

종리혁이 어울리지 않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거래든 고용이든 뭐든 좋아. 근데 확실하게 하자고.”

백서휘는 전음을 날린 후 종리혁과 눈을 맞추었다.

『쌀 있는 거 확실해? 사기 치는 거면 저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쌀이라면 남아도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메뚜기 떼를 비교적 빠르게 죽이긴 했지만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성마다 다르겠지만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려면 2년에서 3년은 걸릴 거라고 백서휘는 예상 중이었다.

그런데 쌀이 남아돈다니?

백서휘는 미심쩍은 눈으로 종리혁을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진짜 쌀이 남아돈다니까?”

“아니, 그쪽 걱정돼서 전음으로 대화를 나눈 건데, 그걸 육성으로 말하면 어떡해?”

“당당하니까 육성으로 말한 거다.”

종리혁은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남만야수궁주가 시선을 바둑판에서 두 사람 쪽으로 옮겼다.

“확실한가? 아군이 의심하는 걸 보니 거짓말 같은데?”

“자, 쌀이 남아도는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라. 전통적으로 우리 사도련은 장강 이남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장강 이남 지역은 기후가 따스하고 온화해서 3모작까지 가능한 곳이 있을 정도야.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느냐? 쌀이 소출되는 양이 다른 곳보다 훨씬 많단 뜻이다.”

“소출되는 양이 많아도 메뚜기 떼가 다 먹어 치웠으면…….”

“메뚜기 떼? 네가 말한 것처럼 다 먹어 치운 쪽도 분명 존재해서 농사를 망친 쪽도 많다. 근데 이 정도의 피해는 잘 버티기만 하면 복구하고도 남아. 거기다 창고에 ‘가득가득’ 비축된 쌀들을 생각하면 남만야수궁과 거래를 해도 큰 타격이 없다.”

종리혁은 ‘가득가득’이란 말에 힘을 주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메뚜기 떼를 부려서 농사를 망쳐놓고 쌀을 주겠다고 기만하는 쓰레기 같은 혼천회 놈들과 다르다. 인도적 차원에서 확실하게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쌀도 미리 주기로 했다.”

“쌀은 언제쯤 도착하게 되지?”

“총단에 전서응을 써서 전갈을 보냈으니 금방 준비해서 올 거다. 걱정하지 마라. 넌 바둑이나 두고 있으면 돼.”

“……믿겠다.”

“그래.”

생사결을 벌였던 상대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종리혁을 보며 백서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명분을 따지는 정파가 아니고 실리를 따지는 사파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대단하네. 괜히 사도련을 이끄는 자리에 오른 게 아니야.’

백서휘의 시선을 느낀 건지 종리혁이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헛기침이 그냥 헛기침이 아니었다.

“피가 나는데?”

“아직 내상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그렇다.”

“아니, 그러면 여기서 바둑 둘 게 아니라 들어가서 쉬어.”

“별거 아닌 일인데 쉴 순 없지.”

“헛기침했는데 피가 나는 게 어떻게 별 게 아니야.”

백서휘가 미친놈 보듯 종리혁을 바라봤다.

종리혁이 남만야수궁주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백서휘에게 전음을 날렸다.

『똑같이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저쪽은 멀쩡히 행동하고,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쉬면 나나 사도련을 얕잡아 볼 거다. 어쩌면 약속을 잊고 공격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이해하지 못할 말이 아니었기에 백서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쌀이 전달될 때까지는 한동안 이 상황이겠군.’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될 거라 생각하니 답답해졌다.

이 와중에도 부정력은 계속 쌓이고 있을 텐데 혼천회주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개방이고 하오문이고 다 열심히 찾고 있을 테니 기다리는 수밖에…….’

***

두 달이란 시간이 흘러, 남만야수궁 측에 사도련이 가져온 쌀이 전달되었다.

그날, 종리혁과 남만야수궁주의 바둑도 끝이 났다.

사도련의 무인들은 싸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좋아했지만 종리혁과 백서휘는 그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천막 안에 단출한 주안상을 마련하고 술을 마셨다.

종리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백서휘가 불쑥 물었다.

“무림맹이랑 광풍사와의 일전은 아직도 진행 중인가?”

“유격전 중이라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

종리혁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모용정광이 고생하는 건 좋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큰일이네. 모든 힘을 동원해서 혼천회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지금쯤이면 부정력을 많이 모았을 것 아냐.”

“쇠말뚝을 계속 제거했으니 쌓이는 속도가 줄긴 했을 거야.”

“지금쯤이면 8천 3백만까지는 모으지 않을까?”

종리혁은 그래도 조금 낙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보다는 더 모았을 거라 생각 중이야.”

“얼마나?”

“8천 9백 9십만쯤 되겠지.”

“그러면 지금 위험한 거 아니냐?”

“위험하지.”

“진짜 큰일이긴 하군.”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순식간에 음울해진 분위기.

둘은 대화 없이 서로 술을 따라주고 마시기만 반복했다.

그러다 백서휘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부정 타는 소리라 안 하려고 했는데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준비?”

“부정력을 다량으로 모을 만한 사건이 또 터질 때가 됐어.”

“진짜 부정 타는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해 봐. 그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 아니야. 쇠말뚝도 별로 없겠다. 북해빙궁은 절멸했고, 남만야수궁은 우리를 돕기로 했어. 그리고 광풍사도 지금이야 시간이 끌리고 있지만, 곧 잡힐 거 아니야.”

“그 정도야 나도 알고 있어. 지금 주요한 건 어떤 문제가 터지느냐겠지.”

“그놈들에게 걸린 조건을 생각하면 예측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조건?”

종리혁은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다가 탁자에 내려두었다.

“놈들이 여태까지 한 짓을 볼 때 이제는 성 하나나 두 개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중원 전역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을 터뜨릴 거야.”

“그렇겠지. 그나마 있는 부정력을 긁어모으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메뚜기 떼로 인한 충해는 벌어졌지만 해결됐고, 이질 역시 모기랑 파리를 죽였으니 마찬가지고…… 딱히 떠오르는 게 없…… 아! 지진이나 홍수를 일으키지 않을까?”

“중원 전역에?”

“그래, 중원 전역에.”

종리혁이 좀 전에 마시려다가 만 술을 마셨다.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충해랑 이질을 일으키려 할 때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그러면 난 모르겠어.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거든.”

“그놈들도 이제 그렇게 힘이 있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들이는 품에 비해 효과는 큰일을 저지를 텐데, 그럴 만한 일이 아직 있나? 음…… 만약 그런 일이 있는데 끝까지 안 저지른 거라면 ‘비장의 패’일 것 같은데…….”

백서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종리혁은 생각에 잠기는 그의 앞에 있는 술병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사도련의 무인이 천막 앞에서 소리쳤다.

“련주님! 급한 소식입니다.”

“급한 소식? 무슨 급한 소식? 무림맹에서 광풍사에 지기라도 했어?”

“그건 잘 모르겠고 하오문에서 련주님과 백 관주님에게 최대한 빠르게 전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서신을 줬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식이길래…… 일단 들어와 봐.”

사도련의 무인은 종리혁에게 공손하게 서신을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종리혁은 건네받은 서신을 읽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미친놈들!”

“왜 그래?”

“황위 계승권이 있는 모든 사람이 살(煞)을 맞아 죽고, 황제 폐하는 액받이 무녀가 대신 맞아서 살았지만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이거였구나.”

“뭐가?”

“들이는 품에 비해 효과가 큰일 말이야. 지진이나 홍수는 못 일으키지만, 그거랑 비슷한 효과를 낸 거잖아, 지금.”

“확실히 중원 전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로 이만한 일이 없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살을 안 날리다가 지금 날린 걸 보면 이놈들도 이게 ‘비장의 패’라고 생각한 게 분명해.”

“그 말은 지금 혼천회가 구석에 몰렸단 뜻 아니야?”

“둘 중 하나겠지. 진짜 구석에 몰렸거나, 부정력을 거의 다 모아서 한 번에 목표치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던가.”

“음…….”

“일단 나는 여길 떠나야겠어.”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 지금 떠나야지.”

백서휘는 장사에 들러 괴력난신의 서를 챙긴 후, 목인걸의 아들과 함께 북경으로 올라갔다.

***

“……여기가 북경입니까?”

“처음 와 봐?”

“처음입니다. 온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것도요.”

“이 정도면 적은 편이야.”

백서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예?”

목인걸의 아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원래는 이것보다 사람이 많아서 더 복잡해. 지금은 시국이 안 좋아서 이 정도인 거야.”

“아…….”

“구경 끝났으면 황가장부터 들르자.”

“북경에 있는 황가장이면…… 설마, 금와전장의 주인이 있는 그곳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헛!”

“놀라고 있을 시간 없어.”

“어, 어, 어?”

백서휘는 목인걸의 아들을 들고 전력으로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몇 장 가지 않았을 때 목인걸의 아들이 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사, 살려…… 멈춰…… 제발…… 차라리 그냥 책 속의 세계에 들어가 있을게요.”

“아! 확실히 그러면 자금성 담장을 넘는 것도 문제없겠네. 어떻게 황제를 만나야 하나 걱정했는데.”

“……화, 황제 폐하요?”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일단 들어가 있어.”

백서휘는 목인걸의 아들을 책 속의 세계에 집어놓고는 황가장을 향해 다시 달려갔다.

“정지! 황가장의 정문 앞에서는 신법을…….”

“나니까 어서 문 열어.”

백서휘의 얼굴을 알아본 위사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정문 개방! 빨리! 개방해!”

정문을 통과한 백서휘는 기감을 넓혀 황석준을 찾았다.

눈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황가장에 대해 잘 알기에 황석준이 어디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노인네가 쓰던 집무실에 있잖아?’

황일승이 진짜로 황석준에게 모든 걸 물려준 모양이었다.

백서휘는 속으로 놀라며 집무실로 직행했다.

집무실에 도착한 그는 종을 울린 후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종을 울리고 내 답을 기다려야…… 어라? 백서휘?”

“그래, 나다.”

“웬일로 북경을 왔냐? 아! 설마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 살 맞은 그 일 때문에 온 거야?”

“그래. 아무래도 그게 혼천회의 짓인 것 같거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정보 모아둔 거 있지?”

자금성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는 하오문보다는 금와전장에 많았다.

‘더 정확하기도 하고.’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황석준이 백서휘에게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이렇게 많아?”

“후계자고 뭐고 싹 다 죽었고 황제 폐하는 오늘내일하니까 많을 수밖에 없지. 누가 다음 대 황제가 될지 모르니까.”

“너도 이 정보들 봤지?”

“당연히 봤지.”

“그럼 질문 하나만 하자. 황제를 살리는 것과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는 것. 어떤 게 더 낫냐?”

황석준은 진심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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