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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88화 (188/202)

귀환무관 188화

부정력 문제는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최우선순위로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래서 열 일 제쳐두고 움직였는데 그 바람에 벌레 문제를 신경 쓰지 못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메뚜기 떼와 관련된 문제는 목인걸이 아들을 시켜 오룡단에 해결법을 전했다는 것이었다.

제갈선우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림맹과 사도련에 격문을 띄워 도움을 요청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두 단체는 술자들을 고용해서 막대를 만들었고, 그 막대를 이용해 메뚜기 떼를 강과 바다로 유도했다.

맹목적으로 막대를 따라가던 메뚜기 떼는 강과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 아닌 자살을 하였다.

‘이제 파리와 모기가 역병을 못 퍼뜨리게 막기만 하면 되는데…….’

백서휘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냥 나서기엔 걸리는 점이 있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자신만 이렇게 고생하는 건 너무 불합리한 것 같았다.

무인이 자신 혼자만이라면 기꺼이 지금의 고생을 감내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 중원에 있는 무인이 자신 혼자뿐이던가?

아니다.

중원에는 만 단위 이상의 무인이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뭘 하기에 자신 혼자 뼈 빠지는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단 생각만 들었다.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변혁’이 필요했다.

‘모든 문제를 무인들이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문제 일부를 맡기는 건 가능할 거야.’

이번 작전만 해도 시설을 지키는 무인이 당연히 있겠지만 파리나 모기를 없애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게 어렵다면 그냥 칼 물고 죽어 버리는 편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되겠지.’

불합리와 불공평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나서기 꺼려지는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 거대전갈과 싸우면서 자신이 절대적인 강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안위를 확보하고 주윤문을 확실하게 죽이려면 수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주윤문이 거대전갈의 껍질처럼 단단하게 해주는 외공을 익혔다면 강기가 안 통할 수도 있어. 그놈에게 죽지 않으려면 강기보다 더 강력한 걸 익혀야 돼. 문제는 시간인데…….’

주윤문이 부정력을 다 모으기 전에 강기보다 더 강력한 걸 깨우치지 못하면 힘들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오룡단한테 이야기를 전하는 대로 바로 수련에 들어가야겠다.’

백서휘는 방을 나와 오룡단의 휴게실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오룡단은 휴게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다들 모였으니 그냥 빠르게 공지 사항을 전달하겠다.”

“예!”

“무림맹이랑 사도련에 격문 한 번 더 띄워서 내가 알려준 목표물을 제거하라고 해.”

“위치와 목표물을 말씀해 주십시오.”

“정확한 위치는 몰라. 내가 아는 건 하북성, 사천성, 광서성, 절강성에 파리와 모기를 키우는 곳이 있다는 거야.”

“파리와 모기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제갈선우가 되물었다.

“그래, 파리와 모기.”

“무림맹이랑 사도련에서 어이없어할 겁니다.”

“파리와 모기를 못 잡으면 중원 인구의 절반이 역병과 기아로 죽을지도 몰라.”

백서휘가 과장해서 말하니 오룡단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파리와 모기가 역병을 퍼뜨리기라도 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들이 메뚜기 떼처럼 움직이기라도 하면…….”

“중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을지도 모르지.”

백서휘가 한 번 더 과장해서 말하니 오룡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려줄 테니까 받아 적고 그 내용 그대로 무림맹이랑 사도련에 격문 띄워.”

“예!”

“먼저 파리는 사람이나 돼지, 소의 배설물에…….”

오룡단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역겨움을 참아내지 못했다.

“설명 끝났으니 나는 이만 가볼게. 격문 꼭 띄워.”

“네.”

백서휘는 휴게실을 나가려다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격문 띄운 다음에 제갈선우랑 남궁민이 무림맹으로 가고, 나머지는 사도련으로 가서 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해.”

“감시요?”

“미덥지 못한 놈들이잖아.”

혹시 몰라서 감시역으로 오룡단까지 보내면 모용중광과 종리혁이 허튼짓은 하지 않으리라.

‘그래도 무인이라면 무인인 놈들이니 밥값은 하겠지.’

역병이 퍼지면 자신이 아니라 무림맹과 사도련 탓이라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백서휘는 침상 위에 누워 진언에 강세와 약세를 주면서 정확한 발음으로 읊조렸다.

“옴 라 메인 사락…….”

수련에 최적화된 세계를 구축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를 운용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미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눈을 뜨니 상상했던 그대로의 심상세계에 있었다.

‘의념을 단련하는 게 맞겠지?’

막상 수련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니, 잘못된 길을 걷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백서휘는 무공을 처음 배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떠올려봤다.

그냥 단련만 할 경우엔 기술적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벽을 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념을 단련해 무공의 완성도를 전반적으로 높이면서 다음 경지로 갈 화두를 강구해야겠어.”

어떤 식으로 가야 할지 대충 방향을 잡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할 시간이었다.

백서휘는 손 위에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강환을 만들었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강환을 하나 만드는 것조차도 되게 어려웠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를 만드는 걸 넘어서 수십여 개를 만드는 데다, 크기도 압축에 압축을 거듭해 포도알 만하게 줄일 수 있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처음 현경의 경지에 올랐을 때랑 비교하면…… 와! 나 진짜 크게 성장했구나!”

남들이 5년, 10년이 걸릴 일을 1년 도 되지 않아 해낸 걸 보면 자신의 재능은 ‘무림 제일’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부터가 갈림길이네.”

양과 질의 문제였다.

강환을 여러 개를 만들어서 수련하면 숙련도가 늘긴 하지만 완성도는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하나만 만들어서 우직하게 수련하면 숙련도는 적게 늘지만, 완성도가 높아진다.

“나보다 고수일지도 모르는 놈을 상대하는 일일 테니 우직하게 수련해서 질을 높이는 편이 낫겠지.”

백서휘는 하나의 강환에 ‘압축하겠다’라는 의념을 강하게 보냈다.

주먹만 했던 강환의 크기가 빠르게 작아졌다.

강기를 뿜는 게 한계인 모용정광과 종리혁이 지금의 모습을 봤다면 놀라서 자빠졌을 터였다.

『좀 줄어들어라!』

숨까지 참아가면서 의념을 강력하게 보냈지만, 강환은 포도알 크기에서 줄지 않았다.

“작아지라니까!”

답답한 마음에 의념을 보내면서 말까지 해버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포도알보다 아주 조금 더 작아졌다.

겨자씨라는 목표 크기에 도달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백서휘의 눈에 희망이 보였다.

‘한번 계속해 보자!’

* * *

“회, 회주님!”

군사가 혼천회 회주의 전용 연무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에 서려 있는 다급함이 명상 중이던 주윤문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황제가 부정력을 모으는 쇠말뚝을 대장간에 가져오면 돈을 지급하겠다는 황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양민들이 눈이 벌게져서 쇠말뚝을 찾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냐?”

“사, 사실입니다.”

주윤문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놈이 어떻게 알고 이러는 건지는 아느냐?”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괜한 질문을 했구나.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할 놈은 한 놈뿐이지 않으냐.”

“백서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놈.”

주윤문이 온몸에서 유형화된 살기를 뿜어내며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무공이라고는 일초반식도 모르는 군사는 짧게 말하고는 졸도하고 말았다.

아직 들을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던 주윤문은 그의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으윽! 여긴?”

“제거된 쇠말뚝의 개수는?”

“쇠말뚝이라면 무엇을 말씀하…… 아!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니 얼른 정신 차리고 제거된 쇠말뚝의 개수나 말해라.”

“지금은 1할 5푼 정도 제거됐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석 달 안으로 최소 7할에서 8할까지 쇠말뚝이 제거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희는 ‘승천 의식’을 한없이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제거를 막을 방법은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쇠말뚝이 다 사라지기 전에 부정력을 목표치까지 모아야겠구나.”

“그게 최선이긴 할 겁니다.”

군사는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가용 병력이 얼마나 되지?”

“백서휘와의 일전이 계속되면서 많은 이들이 죽어 저희 직속 고수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우리 밑으로 들어온 것들한테 병력을 빌리면?”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도 힘듭니다.”

“왜지?”

“조금 전에 말했던 고수의 수가 적어지면서 통제력이 약해진 것도 있고, 밑으로 들어온 이들이 많아지면서 함부로 고수들을 파견하라는 명령을 내기 곤란해졌습니다.”

“머리가 많아지니 생각이 많아진 건가?”

“예.”

주윤문이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거기다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가 두 개 생겼습니다. 일단, 하나는 회주님께서 회를 조직할 때 수호문을 멸문시키자는 명분을 대서 사람을 모으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지금 당대 수호문주인 백서휘와의 일전에서 매번 패배하는 바람에 밑의 것들에게 면이 서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 수호문이 아니라 중원에 공작하는 것도 안 좋게 보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가 부정력을 모으는 이유를 알게 된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나중에 중원에 돌아갔을 때를 생각하는가 보지?”

“……그게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백서휘에게 반격하는 시늉조차 할 방도도 없다는 건가?”

“밑으로 들어온 놈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대가를 제공하고 힘을 빌리면, 쇠말뚝이 전부 제거되기 전에 꽤 많은 양의 부정력을 모으는 게 가능합니다.”

군사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수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다른 이들한테 대가를 제공한다? 설마 새외무림 놈들에게 힘을 빌리자는 것이냐?”

“지금은 그것 말고는 방도가 없습니다.”

“잠시 생각 좀 해보겠다.”

주윤문은 내뱉은 말과 다르게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어떤 방법을 말씀하시는 건지…….”

“우리에게 ‘비장의 패’가 있지 않으냐!”

“아! 확실히 비장의 패라면 우리에게 부정력을 많이 모을 수 있게 해줄 겁니다.”

“좋다, 두 작전을 동시에 진행하라.”

“시간 차를 좀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새외무림이 물러날 때쯤에 비장의 패를 까면 면면부절(綿綿不絕)이라는 말에 담긴 뜻처럼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겁니다.”

“그 조언이 마지막 조언이 되겠구나.”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내게 할 말은 더 없느냐?”

“없습니다.”

“정말로?”

“안타깝구나. 솔직하게 용서해달라고 말하면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

“충술사들을 동원한 작전을 진행할 때 네가 말했잖으냐. 목을 걸겠다고. 실패했으니 목을 잘라야지.”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윤문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검을 휘둘러 군사의 목을 잘라 버렸다.

서걱!

“솔직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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