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181화 (181/202)

귀환무관 181화

백서휘는 보름 넘게 가슴앓이했을 가족과 오룡단, 제자들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그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었다.

‘모두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했으니 이제 양고로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충왕문 놈들의 목을 베었으면 했다.

“난 이만 가볼게. 번잡스러우니까 나와서 배웅 같은 건 하지 말고 여기 있어.”

백서휘는 진운을 뒤로하고 기숙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때 진운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면서 백서휘를 불러세웠다.

“스승님.”

백서휘는 걸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게…….”

진운은 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니야?”

“……네, 그래서 스승님을 불렀어요.”

“그럼 할 말을 해야지.”

“괜한 짓을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무슨 문제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양고에 갔다 와서 이야기하는 거로 하자. 아까 이야기 들었으니 알겠지만 내가 지금 좀 바빠.”

“중요한 문제인데요.”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해 보라고 손짓했다.

바로 조금 전과 다르게 진운은 용기를 냈다.

“학무관에서 관원들을 가르치는 사범님 중에 스승님이랑 스승님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아주 강한 적의를 가진 사람이 있어요.”

“월봉은 이 바닥에서 제일 많이 주는 데 적의를 가진다고?”

“그런 수준의 적의가 아니에요.”

“그럼?”

“가끔 지나다니다 보면 저나 태평이, 강호형한테는 그래도 살심까지 품지는 않는데, 스승님의 가족분들이나 오룡단분들한테는…….”

“살심을 품는다고?”

백서휘가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네.”

“제 눈에만 보일 정도로 비밀스럽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요.”

“……그 자식 이름이 뭐야?”

백서휘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조 사범님이요.”

“그렇게 말하면 모르니까 이름이랑 뭘 가르치는지까지 다 말해줘.”

“이름은 ‘조서’고 권각술이랑 보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조서…… 아!”

백서휘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조서와의 첫 만남이 펼쳐졌다.

그때 그의 직감이 조서는 믿지 못할 놈이라고 경고했었다.

‘고용할 때 하오문과 개방이 교차검증했는데 특별한 무언가가 두 곳 모두에서 안 나온 게 이상하긴 했지. 근데 그놈은 도대체 나랑 가족들한테 왜 살심을 품는 거야? 내가 부모나 형제를 죽이기라도 했나?’

어쩌면 자신이 멸문시킨 문파에 소속됐었던 인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암중단체에서 보냈을…… 설마 혼천회 소속인가?’

조서가 혼천회에 적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 되는 게 많았다.

자리를 비웠단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공격이 들어온 거나, 군산에서 기다렸단 것처럼 튀어나와서 싸우러 나온 것도 다 조서의 짓으로 보였다.

‘양고로 가는 건 아주 좀만 미루자.’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고 양고로 가는 건 좋은 선택일 것 같지 않았다.

거기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조서에게 얘기를 듣고 혼천회에서 무인들을 보낼 가능성이 꽤 컸다.

“지금 나한테 한 이야기 아무한테도 한 적 없지?”

“네.”

“내가 그놈 잡아 족칠 때까지 그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마. 알았어?”

“절대 얘기 안 할게요.”

백서휘는 진운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오룡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사범 전용 휴게실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지.’

제법 빠르게 걸었던 터라 휴게실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백서휘는 휴게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잡담을 나누던 오룡단이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바, 바로 양고로 떠나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걸 좀 미루려고.”

백서휘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불태울 듯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오룡단은 그 분노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충왕문 놈들을 죽이러 가지 않고 이리 찾아온 연유가 궁금했다.

“왜 미루시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갈선우가 오룡단의 대표로 물었다.

“잠깐만.”

백서휘는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야기를 꺼내려면 진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데, 그러면 진운의 능력을 오룡단도 알게 된다.

‘내 멋대로 말할 수는 없어.’

백서휘는 진운의 눈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지금 돌아가면서 사범 일을 하고 있으니 알 것 같아 물을게. ‘조서’란 자에 대해서 알고 있어?”

“권각술이랑 보법 가르치는 사범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사범이 양고에 가는 걸 미루실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킨 겁니까?”

“비슷해.”

“어떤 문제인지 알려주시면 저희가 조치하겠습니다.”

“확실하진 않아. 근거도 없고. 그런데 그놈이 간자인 것 같아.”

“어느 쪽 간자를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관 쪽에서 심어놓은 겁니까? 아니면…….”

“혼천회.”

꽤 많이 드잡이질한 탓에 오룡단도 혼천회를 백서휘만큼 싫어했다.

제갈선우와 당기준을 제외한 모두가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왜 그러는 거지?”

숨을 들이켠 셋은 입술만 달싹거리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개도 푹 숙이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았다.

“말해.”

“……조서 앞에서 정보를 좀 흘린 게 있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떤 정보?”

“관주님이 장사에 떠나시면 돌아가면서 호위를 맡지 않습니까.”

황보정석이 백서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왜?”

“그 교대 근무를 언제 하느냐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걸려서 그렇습니다.”

“조금 전에 숨을 들이켠 놈들은 비슷한 짓을 했다고 보면 되는 거지?”

“예.”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개방과 하오문에서 인증을 해준 탓에 결격사유가 없다고 여겨서 조서 앞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웬만하면 혼내겠지만 이건 조서가 ‘잠입’을 너무 제대로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오룡단도 입을 가볍게 놀린 것에 대한 처벌을 받되 정상참작은 해주는 게 좋을 듯했다.

“오늘은 안 혼내고 넘어가는데 다음에도 이러면 진짜 호되게 혼날 줄 알아.”

“예!”

오룡단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남궁민이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왜?”

“그놈 안 잡으러 가나요?”

“너희들이 잡아서 데려오면 돼. 나는 좀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서.”

백서휘는 오룡단에게 조서를 데려올 것을 맡기고 자신은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오랜만이야.”

목인걸은 백서휘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왜 이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백서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혼천회 문제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학무관 일로 바빠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괜히 그때 일주일에 두 번 보여준다고 약속을 했나?’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방법은 서로에게 불편함만 주는 방법이니 다른 방법으로 바뀌야겠어.’

오룡단에게 괴력난신의 서를 맡기고 목인걸의 아들이 오갈 수 있게 하면 좋을 듯했다.

‘지금 생각한 개선사항을 말해주면 목인걸도 반응하겠지.’

백서휘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끌어보려 했지만, 목인걸은 그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일부러 약속을 안 지킨 건 아니야. 아들한테 들으면 알게 되겠지만 바빠서 어쩔 수가 없었어. 지금도 당신이랑 공조해서 일 하나 처리하면 바로 산서성으로 출발해야 돼.”

“……이곳에서 나가.”

“내가 지금 나가면 다시는 안 들어올지도 몰라. 그러면 그쪽 아들은…….”

“아들 가지고 협박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난 이제 네게 끌려다니지 않을 거야.”

백서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미안해.”

“꺼지라고 말하지 않았나? 차라리 아들을 안 만나고 너도 안 만나는 걸 택할 테니까 너도 어서 이곳에서 나가라.”

“이번엔 개선사항을 가지고 돌아왔어. 내가 없어도 그쪽이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흥!”

목인걸은 코웃음 치며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 부하들한테 괴력난신의 서를 맡겨서 내가 없어도 이곳을 오갈 수 있게 해줄 테니까 화 좀 풀어.”

백서휘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어쩔 수 없었다니까 진짜! 혼천회 놈들이 얼마나 독한지 너도 알 거 아니야. 그놈들 때문에 이번에 되게 고생했어. 그리고 조금 전에 말했던 산서성으로 간다는 일이랑 공조하자는 일 모두 혼천회 관련 일이야.”

“널 원망할 게 아니라 혼천회를 원망하라는 거냐?”

“그래. 그거야. 내가 잘못이 없단 건 아닌데 이렇게 된 건 다 혼천회 때문이야.”

“남 탓이 제법이구나. 진짜 바빴으면 조금 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부하에게 책을 맡겼으면 될 일이다.”

“진짜 정신이 없었어. 장사 곳곳에 벽력탄을 설치해놓고 터뜨리려고 하질 않나, 수원지에 독을 풀기도 하고, 가족들이 그놈들한테 습격도 당했다니까.”

목인걸은 상대가 한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주는 술법을 썼다.

“다시 한번 조금전에 했던 말들을 해보거라.”

“무슨 말?”

“여기오면서 했던 말들.”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를 풀겠다면…….”

“어서!”

목인걸은 백서휘가 했던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진짜 혼천회 때문이군.”

“그렇다니까.”

“……혼천회를 없애는 데 도움을 주면 아들을 여기 상주시켜 줄 수 있나?”

“해줄 수 있긴 한데 아들 쪽에서 싫어할 것 같은데.”

“왜지?”

“젊은 나이에 이곳에 갇혀 지내는 건 솔직히 좋지는 않지. 술법을 배우는 거야 그놈도 좋아하겠지만.”

“해 줄 수 있긴 한 거지?”

“그래.”

“이제부터 혼천회를 없애는 일에 전력을 다해 돕겠다.”

“고마워.”

“이번엔 약속 지켜라.”

“알았어.”

백서휘는 협조를 해주겠단 약속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오룡단이 축 늘어진 조서를 끌고 오고 있었다.

“이놈은 내가 데려갈 테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

“네.”

백서휘는 조서를 데리고 다시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혼천회 소속인가?”

“그런 것 같아.”

“내가 뭘 해주길 원하지?”

“일단 이놈한테 기밀을 발설하면 죽게 되는 주술이 걸려 있는지부터 확인해 줘.”

“그러지.”

목인걸이 진언을 외우면서 옥좌에서 내려오더니 조서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전에 데려온 자들과 같은 방식의 주술이 걸려 있다.”

“그럼 혼천회의 간자가 맞단 소리잖아? 제기랄! 이렇게 가까이에 잠입해있을 줄이야.”

진짜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조서를 잡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 일단은 캐낼 수 있는 것부터 다 캐내자.”

백서휘는 조서의 점혈된 혈도 모두를 해혈했다.

조서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가져가며 정신을 차렸다.

“끄응, 여긴…….”

“지옥이다.”

백서휘가 씨익 웃었다.

정신을 차린 조서가 상황 파악을 위해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그는 백서휘와 목인걸의 표정을 통해 간자란 사실을 들켰다는 걸 알아냈다.

이곳의 위치와 탈출 방법을 생각해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조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서 시간을 끌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지, 지옥이요? 관주님이 갑자기 왜 저를 이런 곳에 데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짝!

백서휘는 조서가 혀를 놀리는 걸 끝까지 듣지 않고 뺨을 때렸다.

“이제부터는 내가 질문하는 것에만 대답한다.”

“제,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여기가 관아도 아니고 저는 관주님에게 잘못을 한 적이…….”

짝짝!

백사휘는 이번엔 조서의 양쪽 뺨을 빠르게 때렸다.

“과, 관주님!”

“말귀 더럽게 못 알아먹네.”

백서휘는 혈도를 다시 점혈한 후 조서의 감각을 증폭시켰다.

그다음 성공률이 가장 높은 고문법인 분근착골을 조서에게 걸었다.

“크아아아아악! 사, 살려…… 사, 살려주십시오! 과, 관주님께 혀, 협조 하겠…… 끄아아악!”

“협조하겠다고?”

“커어어억! 네! 제, 제발! 이, 이걸 풀어…… 으헝헝!”

“첫 번째 질문으로 뭐가 좋을까?”

“자, 잘 모르겠습니다.”

백서휘의 ‘산서성 양고’라는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산서성 양고나…… 아! 실수할 뻔했군. 목인걸 이놈한테 걸린 주술이 발동하려고 하면 알려줘.”

“그러지.”

“자, 다시 해보자. 양고, 대동, 항산, 산음, 응현, 오태산 중에 혼천회의 지부가 있는 곳이 어디지?”

“그, 그건…….”

말하는 걸 망설이면서 머리를 굴리는 조서에게 백서휘는 다시 한번 분근착골을 걸었다.

“다, 다 말하겠습니다.”

“다음엔 더 강하게 펼칠 테니까 생각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예!”

“아까 한 질문에 대답해 봐.”

“야, 양고에 혼천회의 지부가 있습니다.”

“충왕문의 문주가 거기 있나?”

“추, 충왕문의 문주는 제가 알기로는 광서성에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광서성?”

“네, 과, 광서성의 빙상이란 곳에…….”

“확실해? 내가 알기로는 최근에 일이 벌어진 쪽은 양고던데?”

“거, 거기에 실험시설이 있어서 충왕문 사람들이 파견 나가 있습니다.”

“실험시설?”

“대규모 작전과 관련된…….”

“멈춰!”

뒤에 있던 목인걸이 다급한 목소리로 백서휘의 신문을 멈추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