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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79화 (179/202)

귀환무관 179화

백서휘와 벌레를 조종하는 충술사(蟲術師)들이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당기준’이 있었다.

당기준은 중년 남자의 피를 털어내기 위해 단검을 허공에 휘저었다.

충술사들이 그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빛에 녹아들어 사라진 후였다.

‘이것들 날 경계하고 있지 않잖아?’

당기준의 충격적인 등장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잊은 것 같았다.

기회다.

백서휘는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에게 검을 쏘아 보냈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검.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는 소리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평정을 회복한 그는 설칩의 쪽을 향해 숨을 ‘후’ 하고 내뱉었다.

그의 입에서 달큼한 향이 나와 공기와 뒤섞였다.

설칩의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하늘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인화성 물질 내뱉으려나 보군.’

아니나 다를까.

설칩의들이 한 마리도 예외 없이 인화성 물질을 내뱉기 시작했다.

폿폿폿폿폿!

인화성 물질이 검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검은 잽싸게 회피기동을 하여 인화성 물질을 모두 피해냈다.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때 갑자기 금사지주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뭐지?’

의문은 바로 풀렸다.

금사지주는 백서휘를 향해 거미줄을 끊어서 쏘아 보냈다.

검을 조종하는 걸 방해해 동료를 살리려는 의도인 듯싶었다.

“흥!”

백서휘는 코웃음을 치며 거미줄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설렁설렁 펼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풍에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끊어 쏜 거미줄은 장풍을 맞고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그는 동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혼자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 가운데,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가 움직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검의 비행 속도를 늦추고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를 지켜봤다.

설칩의는 보법을 밟아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의 보법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다는 것에 있었다.

‘벌레를 다루는 술법만 집중적으로 수련했나 보네.’

무림의 발을 들이밀었으면 보신경은 기본적으로 수련하는 게 맞았다.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죽는 거였다.

‘죽게 되더라도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기본기를 제대로 닦지 않은 건 본인이니까.’

백서휘는 검에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를 죽이라고 의념을 보냈다.

쐐애애액!

명령을 들은 검이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푸욱!

검첨이 배를 파고들어가며 작은 구멍을 냈다.

뒤이어 들어온 검신이 그 구멍을 키우려는데,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가 이를 악물고 검신을 붙잡았다.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찬사받아 마땅하지만 여긴 전장이었다.

‘그리고 저놈은 죽여야 할 적이기도 하지.’

백서휘는 끝장낼 생각으로 검을 회전시켰다.

팽이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검.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의 손이 회전하는 날에 의해 걸레짝이 되었다.

“크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가 괴성을 내질렀다.

‘더 빠르게!’

설칩의를 조종하는 자의 손은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 뼈밖에 남지 않았다.

카가가가각!

검은 그 뼈들마저 분쇄해 버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지이이잉!

검은 설칩의를 조종하는 가슴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사, 살아야 해. 여기서 개죽음당할 수는 없어.”

금사지주를 조종하는 자는 혼자 남게 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갔다.

‘저 할멈 역시 보신경 실력이 떨어지네.’

응룡비천신법을 전력으로 펼치지도 않았는데 금사지주를 조종하는 자를 금방 따라잡았다.

“사, 살려다오! 살려만 주면 뭐든 하겠다! 정말이야!”

“살릴 이유가 없어. 내가 원하는 걸 그쪽은 절대 할 수 없거든.”

백서휘는 금사지주를 조종하는 자에게 말하면서 슬쩍 오룡단을 봤다.

다행히 오룡단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싸우고 있었다.

“뭐, 뭐든 할 수 있단 말이다!”

“혼천회에 관한 정보를 말할 수 있어?”

“그건…….”

금사지주를 조종하는 자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혼천회에 적을 둔 다른 이들처럼 그녀도 금제에 걸린 게 분명했다.

“잘 가.”

백서휘는 금사지주를 조종하는 자에게 그녀의 동료와 똑같은 죽음을 안겨주었다.

“오룡단을 도우러 가볼…… 까?”

생각해보니 지금만큼 오룡단의 경험을 쌓기 좋은 때가 없는 것 같았다.

“무공은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었고, 죽자고 달려드는 적까지 있으니 완벽하네. 경지가 상승하는 놈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정말 위험할 때가 아니면 개입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룡단 쪽으로 걸어갔다.

세 발자국쯤 걸었을까?

기가 막힌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예 내가 사라지면 어떨까?’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오룡단은 제 능력을 십 할 발휘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이 없을 경우에는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목숨이 경각에 처할 때까지 몰아붙이면 뭐가 되도 되겠지.”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펼쳐서 전장에서 사라졌다.

그의 부재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전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던 제갈선우였다.

“어딜 가신 거지? 도망간 적을 쫓아가신 건가?”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던 터라 제갈선우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전투가 길어지니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월안을 써도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고 은근슬쩍 다른 단원에게 물어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아까부터 관주님이 보이지 않아. 다들 조심하면서 싸워.』

전음으로 다른 단원에게 경고하기 무섭게 혼천회 소속의 무사가 백서휘가 사라졌단 걸 알아차렸다.

“백서휘가 사라졌다!”

“뭐? 진짜? 와! 정말이네! 다들 마음 놓고 저놈들을 공격해. 돌격!”

“저놈 목은 내가 벤다!”

“그놈은 내가 먼저 찜했어!”

제갈선우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풀며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다들 가까이 있어서 집결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오룡단 집결!”

파지지직! 파지지직! 파지지직!

남궁혁이 전광을 여기저기서 일으키며 제갈선우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콰아앙!

황보정석은 드잡이질하던 적들을 밀쳐내고 다리로 폭류의 힘을 보냈다.

하늘 높이 도약한 그는 제갈선우 바로 옆에 착지했다.

“당 동생도 빨리…….”

“왔다.”

빛에 녹아들어 있던 당기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행진 개진!”

오룡단은 오각형의 꼭짓점 부분에 서서 적들을 노려봤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배우는 게 없으면 어떡하지?’

자신의 가족 때문만이 아니라 오룡단 본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만 했다.

‘빠르게 강해지는 데는 차력술만큼 좋은 수단이 없지.’

제물만 어떻게든 구해놓고 비장의 한수로 삼는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혼천회의 무인들이 파도처럼 사방에서 오룡단을 덮쳐왔다.

채채챙! 카캉! 쾅!

귀청을 때리는 소음이 끊이지 않고 달려왔다.

오룡단은 죽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백서휘가 이놈들 버리고 간 거 아니야?”

“이놈들보다 더 나은 놈들을 찾으러 갔을지도 몰라.”

혼천회의 무인들은 오룡단을 계속해서 도발했다.

“저놈들 이야기 듣고 오행진 벗어나면 죽게 되니까 조심해. 으윽! 제기랄!”

시간이 지날수록 오룡단의 몸에 자상과 절상이 늘어났다.

문제가 되는 건 육체가 아닌 정신이었다.

혼천회의 계속된 도발과 압박, 갑자기 사라진 백서휘는 오룡단을 구석까지 몰리게 만들었다.

“자라 같은 놈들아! 관주님은 반드시 오신다! 그때 도망 못 갔다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빨리 꺼져라!”

황보정석이 악에 받친 소리를 내며 대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지친 탓에 몸에 기운이 없어 더는 폭류의 힘도 모으지 못했다.

“쿨럭쿨럭! 우웩!”

옆에 있던 제갈선우가 내상을 입었는지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의 얼굴은 다 죽어가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형형했다.

“황보 동생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네! 너희들 관주님 오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거야? 어?”

다른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선우를 도왔다.

‘절대적인 믿음을 주는 건 좋긴 한데 나를 너무 의지하는 것 같은데…….’

자신을 욕하는 놈이 한 놈쯤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안 나오다니.

이 정도로 맹목적인 믿음을 보낼 줄은 몰랐기에 조금 충격이 컸다.

‘당기준이면 가능성이 있어.’

백서휘의 시선이 당기준을 향했다.

그 순간, 혼천회의 무인이 정면에서 검으로 당기준의 배를 찌르려고 했다.

“개 같은 인생! 끝까지 발악해 주마!”

그때 갑자기 날아든 공격에 혼천회의 무인이 죽어 버렸다.

“어?”

당기준은 공격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서휘가 기시를 미친 듯이 쏘고 있었다.

쐐애액! 쐐애액! 쐐애액! 쐐애액!

사방으로 퍼져나간 기시는 정확히 혼천회의 무인들만 노렸다.

“끄아아아악! 몸에 붙은 불 좀 꺼줘!”

“크어억! 내 팔에 감각이 없어!”

양기와 음기가 담긴 기시에 혼천회의 무인들이 죽어 나갔다.

“역시 관주님이야.”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을까요?”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합쳐져야만 가능한 일이겠지.”

오룡단은 넋을 놓고 혼천회의 무인들이 단체로 죽는 광경을 바라봤다.

“살아남은 적들은…… 없군. 다들 날 따라와.”

백서휘는 냉철한 얼굴로 혼천회의 근거지로 향했다.

오룡단은 서로를 부축하면서 그를 뒤 따라갔다.

“저기인가?”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이 엄청나게 많은 걸 보면 저곳이 근거지 맞는 것 같습니다.”

“무인들이 다 여기서 튀어나온 모양인가 보네.”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들어가서 정보가 될 만한 것들 챙겨올 테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쉬고 있어.”

“……네!”

오룡단이 쉬고 있는 동안. 백서휘는 어설프게 숨긴 금고에 있던 장부부터 낙서가 되어 있는 종이까지 정보가 될 수 있는 모든 걸 가지고 나왔다.

“자, 챙길 거 다 챙겼으니 돌아가자.”

* * *

백서휘는 오룡단과 함께 장사로 돌아왔다.

오룡단은 치료가 절실히 필요해서 먼저 의방으로 보냈다.

다친 곳이 하나도 없는 백서휘는 집과 하오문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하오문으로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화루에 도착하니 유소화가 백서휘를 반겨주었다.

“……그러니까 이 서류 뭉치들에서 쓸 만한 정보를 뽑아달라는 말씀이신 거죠?”

“그래.”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그러면 모아서 한꺼번에 주지 말고 뽑아내는 대로 하나씩 주도록 해.”

“원하는 조건은 그게 전부인가요? 기한이라거나…….”

“한 달 이내로 받았으면 해.”

“알겠어요. 한 달 이내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들을 뽑아내 볼게요.”

“고맙다.”

“뭘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저로서는 구하기 힘든 정보도 얻고…….”

“아무튼 고마워. 난 이만 가볼게.”

백서휘는 유소화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정보 분석을 의뢰한 지 보름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아침나절부터 유소화가 백서휘를 찾아왔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야? 그렇게 급한 정보야?”

“네.”

“줘봐.”

유소화가 백서휘에게 건넨 종이 뭉치의 첫 장에는 ‘군자검 백상훈’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군자검 백상훈?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왜 가져온 거야? 혼천회랑 연관된 정보가 아니잖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조사는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할 예정이었다.

“군자검 백상훈 대협의 죽음에 충왕문(蟲王門)이 관여한 것 같아요.”

“충왕문?”

“벌레를 조종하는 충술사들로 이루어진 문파인데 개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원인불명의 이유로 갑자기 멸문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혼천회에 적을 두고 있었네요.”

백서휘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몸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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