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73화
제갈선우와 황천익은 신법을 펼쳐 객잔으로 향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상쩍은 놈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 있었던 거 확실합니까?”
“확실하네. 정 의심이 가면 점소이나 주인에게 저 자리에 있었던 이들에 관해 물어보게나.”
점소이가 제갈선우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숙박이랑 식사 중 어떤 걸 하실 겁니까요?”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환하게 웃음 짓던 점소이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렸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아무것도 모른다니?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죄, 죄송하지만 저는 강호의 일과는 연관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요.”
점소이는 무림인과 엮여 물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너도 장사에 살고 있으니 백 관주님에 대해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예.”
“이번 일은 백 관주님과 연관되어있는 일이야. 일이 잘못되면 백 관주님의 화가 어디로 갈지는…….”
점소이는 탁자를 닦던 행주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 일이 터졌을 때 도와주시겠다는 약조해주신다면 저도 대협께 협조하겠습니다요.”
“내 모든 걸 걸고 널 도와주겠다. 그러니 말해다오. 아까 저 자리에 있던 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한 사람만 알고 나머지는 모릅니다요.”
“한 사람? 누구?”
“날품팔이하는 장 씨란 성을 가진 아저씬데 저희 객잔에 외상값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입니다요.”
“어딜 가면 그자를 만날 수 있지?”
“시장에 가면 볼 수 있을 겁니다요.”
“대답해줘서 고맙다.”
제갈선우는 품속에서 돈을 조금 꺼내 점소이에게 건넸다.
“혹시 이걸 받으면 약조하신 게 사라진다거나…….”
“약조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그럼 이 돈은…….”
“고마워서 주는 수고비야.”
“가, 감사히 받겠습니다요.”
점소이가 허리를 꾸벅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제갈선우는 그를 뒤로하고 황천익과 함께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시장 상인들에게 수소문해 장 씨란 성을 가진 남자를 찾았다.
이 주변에서 유명한 자인지 장 씨의 위치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저 인간인가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장 씨는 가죽 가방을 멘 채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에 앉아서 싸구려 화주를 마시고 있었다.
제갈선우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척 걸어가다가 금나수를 써 그를 제압했다.
“아아아악!”
“날품팔이하는 장 씨 맞나?”
“마, 맞습니……. 끄아악!”
“내가 묻는 거에만 잘 대답해주면 풀어주지. 이해했어?”
“끄으으윽! 이, 이해했습니다.”
“아까 객잔에서 만난 사람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해.”
“아, 아까 사람을 많이 만나서 정확히 이름을……. 끅으으윽! 대셔야 말할 수 있습니다! 아악!”
“네게 어떤 일을 하면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하던 놈. 그놈에 대해 말하라고.”
“흑흑흑! 그, 그놈의 본명은 모르고 별호랑 하는 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정도만 압니다.”
고통이 심한지 장 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제갈선우는 금나수를 풀지 않았다.
“말해.”
“벼, 별호는 낭아도(狼牙刀), 염왕채를 두는 자고 흑흑흑! 일을 보는 곳은 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건물의 2층입니다.”
“이거 풀기 전에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거짓이면…….”
“그, 그럴 일 없습니다. 흑흑!”
제갈선우가 금나수를 풀어주자 장 씨가 정신없이 어딘가로 도망갔다.
장 씨가 메고 있던 가죽 가방에서 종이 뭉치가 떨어졌다.
그 종이에는 모든 일은 백서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백서휘를 원망하라고 적혀 있었다.
제갈선우는 황천익의 말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거지?”
종이에 적힌 내용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았다.
들켰을 때를 대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든 듯싶었다.
“일단은 계속 추적을 해봐야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제갈선우와 황천익은 장 씨가 알려준 건물 앞으로 갔다.
“올라가세나.”
“예.”
2층에서 일한다고 들었던 터라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문 앞까지 층계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안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돈이랑 장부를 줄 수 없다니!”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면서 안으로 진입할 최적기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나한테 줄 생각이 없었군.”
“그래.”
“이 개자식, 가만두지…….”
쾅!
황천익과 제갈선우는 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안에는 하얀 반가면을 쓴 남자와 낭아도로 추정되는 남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황천익은 고민하지 않고 하얀 반가면의 남자를 검사가 감긴 검으로 공격했다.
제갈선우는 낭아도를 제압한 후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다.
좌우 양쪽에서 갑작스럽게 전투가 벌어졌다.
왼쪽엔 황천익과 하얀 반가면의 남자가, 오른쪽엔 제갈선우와 낭아도가 싸웠다.
채채채채채챙!
검과 검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이런 상황이 깨진 건 하얀 반가면의 남자가 돌발행동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낭아도를 향해 독이 묻은 비수를 던졌다.
쐐애애액!
예상 못 했던 공격이기에 황천익과 제갈선우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런!”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비수는 낭아검의 왼쪽 가슴에 그대로 꽂혔다.
반가면을 쓴 자는 낭아검이 쓰러지는 걸 확인하고는 다급히 창문 밖으로 도망갔다.
황천익은 황급히 신법을 펼쳐 그를 뒤쫓아갔다.
타다다닥!
지붕 위의 기와를 밟으며 추적한 지 반각쯤 지났을 때 반가면을 쓴 자와 황천익은 광장에 이르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어 황천익은 뒤쫓기만 했다.
반가면을 쓴 자가 돌연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뭔가 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경계하고 있는데 반가면을 쓴 자가 땅바닥에 무언가를 던졌다.
암기인가 싶어 황천익은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김빠지는 소리가 나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광장을 가득 메웠다.
황천익은 기감을 발휘해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군. 주위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기감에 걸리지 않는다니?’
연기에 섞인 무언가가 기감을 방해해 반가면을 쓴 자가 사라진 방향을 알 수 없게 했다.
뒤늦게 검풍으로 연기를 날려 보내는 방법을 떠올렸지만, 이미 반가면을 쓴 자는 종적을 감춘 후였다.
황천익은 다시 낭아도와 제갈선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낭아도의 상태는 어떻소?”
“죽었습니다.”
“그 반가면을 쓴 자의 정체는 그럼 영영 모르겠구려.”
“짐작 가는 곳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곳’이라면 이 음모를 꾸민 자들이 단체란 거요?”
“예, 혼천회라는 단체에서 보낸 놈들일 겁니다. 그쪽에서 백 관주님 증오하거든요.”
“그곳이 했다는 걸 알아도 그 터진다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면 말짱 꽝 아니오?”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추측할 수 있는 건 백 관주님을 성토하게 될 만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뿐인데…….”
“다수가 피해를 보는 일들을 후보로 뽑아놓고 그것들 위주로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면 되지 않겠나.”
“저희가 관인이 아니라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일단 그 ‘일’이란 게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다면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막아낼 겁니다.”
제갈선우는 염원을 담아 말했다.
“묵으신다는 곳이 그 객잔 맞습니까?”
“그렇다네.”
“위험할 수도 있으니 기숙사 쪽으로 묵을 곳을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기숙사?”
“학무관의 관원들이나 사범들이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곳입니다. 아직 방이 많이 남아 있어서 황 대협이 묵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황천익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다.
‘나 같은 늙은이보다는 같은 또래랑 있는 게 손자에게도 더 좋겠지.’
황천익은 손자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그러는데 괜찮겠나?”
“부인분께서…….”
“아니, 손자랑 같이 왔네.”
“손자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지 않았다면 아주 좋은 선택일 겁니다. 관원들은 저도 보고 배운다는 생각이 가끔 들 정도로 괜찮은 아이들이거든요.”
“일단 손자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네.”
“기숙사에서 묵기로 결정을 내리셨다면 손자분과 함께 학무관으로 오셔서 저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겠네.”
황천익은 빠르게 객잔으로 돌아가 손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묵어도 괜찮겠느냐?”
“왜 다른 곳에 묵어요? 아까 창문으로 나간 일 때문인가요?”
“……은공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놈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는데 지금 이 객잔보다는 기숙사가 안전할 것 같아서 다른 곳에서 묵으려고 한다.”
“다른 객잔으로 가는 건가요?”
“아니, 학무관의 기숙사로 간다.”
“기숙사요?”
“들어보니 너랑 같은 또래도 많다는 것 같더구나.”
“또래라면…….”
손자는 기대하는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을 쉬는 게야?”
“그 또래란 애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학무관에 입관한 것도 아니고 잠깐 묵는 것이니 그쪽에서도 네게 별 감정이 없을 거다. 혹, 나중에 입학하게 되더라도 지금 미리 기숙사에 묵어보면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좋아요. 그 기숙사란 곳에 묵겠어요.”
황천익과 손자는 학무관의 기숙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라 그런 걸까.
아까 있었던 객잔보다 기숙사의 시설이 확실히 좋았다.
황천익은 옮기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짐을 풀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침상에 걸터앉아 있던 손자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창 쪽으로 걸어가는 게 황천익의 눈에 들어왔다.
‘부러울 테지…….’
아니나 다를까.
손자는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서글픔과 부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좋다. 이 안은 안전할 테니까.”
“……정말 그래도 돼요?”
“그래.”
손자는 허락은 받아놓고 정작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와 놀아본 적이 없으니 무서운 것이리라.
황천익은 보채거나 닦달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검을 천으로 닦으며 무심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손자가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간 순간, 황천익은 입꼬리가 찢어지도록 활짝 웃었다.
* * *
황천익의 손자가 용기를 낸 시각, 제갈선우는 오룡단을 모아놓고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관주님께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잊고 있었다. 모용 동생!”
“네.”
“부관주님을 이리로 모셔와.”
“제가요? 민이가 아니라요?”
“민이가 갈래?”
“네, 제가 갈게요.”
남궁민은 빠른 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하진에게 갔다.
정하진은 비상 상황이란 그의 말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오룡단이 모여있는 곳으로 왔다.
“무슨 일이길래 비상 상황이라고 한 것이오?”
“이야기하자면 깁니다만…….”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오.”
“알겠습니다.”
제갈선우는 황천익과 함께 겪은 일과 추측하는 바를 정하진에게 말해주었다.
“다수의 사람에게 어떠한 일이 생기고 그게 처남을 비난할 만한 명분이 된다면,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 아니겠소?”
“어?!”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들이 제갈선우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 가능성을 일일이 점검하다가 그는 최악으로 일이 전개되었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에겐 관주님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