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63화
“사제! 헉헉! 큰일 났네! 큰일 났어! 헉헉!”
화 속성 주술사가 호들갑을 떨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풀과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꾸부정하게 앉은 목 속성 주술사가 권태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자꾸 이렇게 찾아오면 내가 회주한테 말하겠다고 했죠?”
“헉헉헉! 진짜 큰일이 나서 그런 거니 헉헉! 내 말 좀 들어봐.”
“……이번만 특별히 봐 드릴 테니까 용건만 얼른 말하고 사형이 맡은 곳으로 돌아가세요.”
“내가 맡은 곳으로 헉헉! 돌아갈 수가 없어서 이리로 온 거야. 헉헉!”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헉헉! 설명하자면 헉헉! 길어서…….”
“헐떡거려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네요. 일단 숨 좀 돌리고 말해 봐요.”
“헉헉! 고맙다.”
화 속성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빠진 숨을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 안정된 것처럼 보이자 목 속성 주술사가 말해 보라는 의미로 손짓했다.
“백서휘에게 초고위계 술법을 몇 번이고 썼는데 처음 한 번 말고는 통하질 않았어.”
“술법이 통하지 않았다고요? 그것도 초고위계 술법이요? 말 같잖은 소리로 날 속이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지금 가세요.”
“이번엔 진짜라니까 그러네.”
화 속성 주술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때렸다.
“술법이 어떤 식으로 통하지 않는 겁니까? 방어가 단단해서? 아니면 회피를 잘해서?”
“둘 다 아니야.”
“역시 장난치러 온 게 맞았군요!”
“내 얘기 안 끝났어. 계속 들어봐. 그놈이 술법에 대고 검을 휘두르잖아? 그러면 술법 자체가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져 버려.”
“분해요?”
목 속성 주술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그놈이 어떻게 그랬는지는 몰라. 근데 그놈의 검이 술법을 향해서 검을 휘두르면 그 순간에 술법과 이어진 내 정신까지 베이는 느낌이 들더라고.”
목 속성 주술사는 화 속성 주술사의 눈동자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진실이다.’
화 속성 주술사는 나이를 항문으로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난을 많이 쳤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흔들림 없이 고요한 눈으로 목 속성 주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술법이 소멸된다는 거예요?”
“그래.”
“뭐 때문인지는 알지 못하고요?”
“응.”
“……제 술법이나 다른 사제들의 술법도 그렇게 될까요?”
“내가 그렇게 됐으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겠지. 아!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다른 사제들이랑 부하들도 이리로 불렀으면 해.”
“전부요?”
“그래, 전부.”
“왜요?”
“오행둔갑술(五行遁甲術)을 쓰는 것 말고는 그놈을 쓰러뜨릴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
“술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인 거죠?”
“그래, 오행둔갑술은 술법이면서 술법이 아니니까 그 자식도 베어 버리지는 못할 거야.”
“꼭 그래야 할까요?”
화 속성 주술사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이미 우리는 혼천회를 위해 많은 걸 희생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오행둔갑술을 더 쓰는 건…….”
“스승님의 원수를 갚는 일이야.”
목 속성 주술사가 입을 앙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게 그렇게 고민할 일이야?”
화 속성 주술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목 속성 주술사를 바라봤다.
“이미 우리는 혼천회를 위해 많은 걸 희생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그 오행둔갑술까지 쓰면, 우리는 진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네 생각은 반대라는 거냐?”
“예.”
“스승님의 원수는 안 갚겠다는 거네?”
“갚긴 하겠지만 오행둔갑술을 써서는 아니에요. 그냥 다 같이 힘을 합쳐서…….”
“그런 상대가 아니란 걸 알잖아. 지금 원수를 갚을 방법은 오행둔갑술밖에 없어.”
화 속성 주술사는 힘 있는 목소리로 목 속성 주술사를 설득했다.
“……이리로 불러서 오행둔갑술을 쓸지 안 쓸지 투표로 결정하죠.”
“좋아.”
목 속성 주술사는 커다란 나무 쪽으로 걸어가 옹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파스스! 파스스스! 파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커다란 나무의 가지가 규칙적으로 가지가 흔들렸다.
목 속성 주술사는 손을 다시 회수한 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 전했어?”
“급하다고 말했으니 빨리 올 거예요.”
목 속성 주술사의 말대로 금, 토, 수 속성의 주술사와 부하들은 숲에 엄청 빠르게 도착했다.
“무슨 일로 부른 거예요?”
수 속성의 주술사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물었다.
“위급 상황이라 불렀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위급 상황이란 거죠?”
“그래.”
“어떤 일이길래…….”
화 속성 주술사는 아까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반응은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목 속성 주술사가 보여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명의 주술사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화 속성 주술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말한다는 걸 깨닫고는 그제야 세 명의 주술사는 진실이란 걸 알아차렸다.
“남은 방법은 오행둔갑술 말고는 없는 겁니까?”
금 속성 주술사가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 선천진기 아끼려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백서휘에게 직접 당한 화 속성 주술사를 제외한 모두가 꺼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모였으니 투표합시다.”
목 속성 주술사가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했다.
“투표하기 전에 할 말이 있다.”
“뭔데요?”
“스승님이 수호문의 전대 문주에게 당했다는 걸 잊지 마라.”
화 속성 주술사의 말에 나머지 네 명의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투표 참여 인원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투표는 일찍 끝났다.
다섯 명 모두가 수호문에 복수해야겠다고 투표했다.
목 속성 주술사는 표가 갈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가는 걸 봤으니 백서휘가 온다면 이쪽으로 올 가능성이 커.”
“그럼 방어할 준비를 해놔야겠네요?”
“준비는 간단해. 부하들을 숲 곳곳에 나무로 변신시켜서 매복시키기만 하면 돼.”
“부하들만으로는 백서휘를 막지 못할 거예요.”
“이것 이상으로 뭘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나마 가능한 건 네가 나서서 목둔술로 괴롭히는 건데…….”
“그걸 제가 할게요.”
“위험해.”
“명령권자로서 할 만큼은 해봐야죠.”
“좋아, 그러면 어느 정도 돕다가 백서휘가 가까이 왔다 싶으면 우리 쪽에 합류해.”
“그다음엔 그러면…….”
“오행둔갑술을 써서 그놈을 죽여야지.”
화 속성 주술사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숲의 입구 쪽을 바라봤다.
“다들 준비하자.”
네 주술사가 오행둔갑술을 쓸 준비 하는 동안, 목 속성 주술사는 백서휘 일행을 기다렸다.
“왜 안 오는 거지?”
“이쯤에서 장난이라고 말하면 용서해 줄게요.”
네 주술사가 불 속성의 주술사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진실을 어서 말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장난 아니야.”
“그러면 왜 안 오는 건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정 못 믿겠으면 내 구역으로 부하든, 식신을 만들어서 보내던가 해.”
“알겠어요.”
목 속성의 주술사는 보송보송한 민들레 하나를 꺾고 눈을 감았다.
“옴 사랄 크레 보…….”
진언을 끝까지 외우자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더니 백서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찾았다.”
목 속성 주술사는 민들레 홀씨를 통해 백서휘를 관찰했다.
백서휘는 어검비행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정파와 사파 무인들을 찾아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왜 무인을 모으는 거지?”
목 속성 주술사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 생각했다.
“설마 단체로 몰려와서 우리를 어떻게 해볼 속셈인가?”
백서휘는 가장 고수로 보이는 둘을 데리고 어딘가로 떠났다.
지형의 생김새를 보니 용암지대에서 숲으로 오는 길이 분명했다.
‘단체로 오려던 건 아닌가 보군.’
목 속성 주술사가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백서휘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이 세 명이에요.”
“세 명? 두 명이 아니라?”
“예.”
화 속성 주술사가 침음성을 내뱉었다.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싸워야지.”
“사형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그대로 움직일게요.”
“그래.”
목 속성 주술사는 결의를 다진 눈빛으로 나무와 풀로 엮어 만든 의자에 앉았다.
* * *
‘기이하군.’
나무는 울창하고 풀은 우거졌는데 동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술법을 펼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간이라 그런 거겠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만 이런가 싶어 백서휘는 슬쩍 옆을 봤다.
모용중광과 종리혁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지 찜찜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풀이 빠른 속도로 자라나며 세 사람의 발을 묶어놓으려고 했다.
세 사람은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공격을 받자마자 백서히는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목 속성 주술사군. 거기다 술법 자체도 예전에 상대했던 청룡의 공격과 비슷해.’
청룡이나 상대 주술사나 오행 중 나무를 관장하는 게 같아서 비슷한 술법을 쓰는 것 같았다.
‘이런 단순한 술법은 이제 나한테 안 통하는데…….’
백서휘는 부분 용인화를 발동해 왼쪽 눈을 용안으로 바꾸었다.
왼눈이 완전히 홍옥빛으로 변하자 백서휘는 식물들을 ‘조종’하는 ‘주술의 구성요소’를 베었다.
단 한 수에 술법이 깨졌다.
백서휘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곳엔 주술의 구성요소가 없는지 살폈다.
‘이게 다 주술의 구성요소라고?’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에 주술의 구성요소가 거의 다 들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시켜야겠어.’
백서휘는 황급히 전음을 모용중광과 종리혁에게 보냈다.
『주위에 있는 나무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해.』
두 사람이 신뢰 어린 눈으로 백서휘를 보면 고개를 끄덕였다.
백서휘가 주술의 구성요소가 깃든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리려고 했다.
그 순간, 나무가 주술사들의 부하들로 변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백서휘 일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죽어!”
“싫어.”
백서휘는 적들의 목을 베면서 계속 주위를 살폈다.
언제 어디서 식물들이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슬쩍 두 사람의 행동을 보니 백서휘와 닮아 있었다.
“이러고 있지 말고 빠르게 이동하는 게 어떤가?”
“빠르게? 어떻게 빠르게?”
백서휘는 종리혁에게 되물으며 적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이놈들을 무시하고 가자는 거야?”
“그래.”
백서휘는 검을 회수한 후 광풍번천의 초식을 펼쳤다.
검이 닿는 범위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검에 죽었다.
“음……. 좋아, 그러지. 뭐.”
백서휘 일행은 주술사들의 부하를 무시하고 뛰기 시작했다.
술법으로 부하들을 돕고 있던 목 속성 주술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기랄! 지금 그놈들 이리로 오고 있어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뭘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빨리 오행둔갑술을 펼쳐요.”
모두가 눈을 감고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술사들의 몸이 발끝에서부터 자기들이 주관하는 속성으로 변해갔다.
잠시 후, 진언을 외우는 것이 끝나자 주술사들은 감았던 눈을 뜨고 눈빛을 교환했다.
“오늘 스승님의 원수를 갚는다!”
화염 인간과 물 인간, 나무 인간, 금속 인간, 흙 인간이 백서휘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건 또 뭐야!’
오행의 속성 그 자체로 몸이 변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형태의 술법이었다.
‘이번 싸움도 힘들어지겠군.’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