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58화
호북성을 떠나 운남성으로 가는 동안, 백서휘와 황천익은 습격을 많이 받았다.
습격자들의 소속은 다 달랐으나, 노리는 것은 지남침과 장보도로 같았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고 백서휘는 그때마다 칼춤을 춰야만 했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습격자들은 새벽에 구름이 달을 가리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르고 봤다.
경고나 요구 같은 건 없었다.
일단 죽이고 난 이후에 시체를 뒤져 가져가려는 거로 보였다.
이게 너무 괘씸했던 백서휘는 한 번에 다 죽일 수 있음에도 일일이 검을 휘둘러 죽였다.
“사, 살려……!”
“싫어.”
마지막 남은 놈까지 죽이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시체 틈바구니를 뒤져 지남침과 장보도를 찾아냈다.
“받아.”
전리품으로 얻은 지남침과 장보도를 황천익에게 던져주고는 노숙하기 전에 미리 봐뒀던 냇가로 갔다.
옷에 묻은 핏물을 씻어내고 있는데 야영지에서 빛이 번쩍거리는 게 보였다.
황천익도 한계까지 두 물건을 합치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얼굴에 묻은 핏물을 마저 닦아낸 백서휘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내 거랑 안내하는 곳이 같아?”
“그렇다네.”
“내 판단 나쁘지 않지?”
“괜찮은 판단이었네.”
“긴가민가했는데 이걸로 확실해졌어. 끝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끝으로 가는 길의 초입에는 지남침과 장보도를 뿌린 놈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날도 밝았으니 이제 다시 운남성을 향해 출발해 보자고.”
“그러지.”
백서휘와 황천익은 짐을 챙기고 야영한 흔적을 지운 후에 다시 운남성을 향해 떠났다.
* * *
운남성의 애뇌산(哀牢山)
태곳적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산으로 험악한 산세와 깊은 계곡, 하늘을 찌를 듯한 봉우리를 가진 곳이었다.
“산을 오르는 것부터 쉽게 가는 건 힘들어 보이네. 체력이 안 되는 인간들은 고생 좀 해야겠어.”
백서휘가 애뇌산의 형상을 보며 말했다.
“진짜 올라갈 건가?”
“왔으니 올라가 봐야지. 지남침과 장보도가 가리키는 곳을 확인해 볼 필요도 있고.”
“끄응.”
황천익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뭐야, 이제 와서 뭔가 마음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함정이 기다릴 걸 아는데도 간다는 게 조금 찜찜하군.”
“그래도 뭐가 있긴 하다는 거잖아?”
“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든다는 거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 어쩌면 이 함정을 판 놈들이 놓친 부분이 있어 진짜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음…… 모르겠군.”
황천익은 애뇌산에 진입하는 게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 그냥 호남성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아무리 봐도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이 시간에 암상에게서 영약을 사서 먹이는 편이 나을 듯하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자고?”
“알고서 함정에 들어가는 바보 같은 짓이란 생각이 드네.”
“내가 오면서 계속 말했잖아. 장보도랑 지남침 뿌린 놈들이 어떻게 함정을 팠는지 보고,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그게 내 의무라고.”
백서휘는 오면서 운남성에 왜 가야 하는지를 계속 이야기를 해줬다.
그걸 알기에 황천익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함정을 팠는지 보고 제거해야 한다? 그대도 지금 지남침과 장보도를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군, 그래. 이럴 거면 거래 조건을 변경하는 게 어떻겠나?”
“어떤 식으로?”
“그대나 나나 서로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툭 까놓고 말하겠네. 가짜일 경우 1년을 그대 밑에 있는다고 했었지?”
“그랬지.”
“그걸 3년으로 늘리는 대신 손자가 나을 때까지 영약을 사주게.”
“뭐?”
“의원 말로는 천년하수오를 한 개만 먹이면 사 할의 확률로, 두 개면 팔 할의 확률로, 세 개면 무조건 낫는다고 했네.”
“천년하수오 세 개면 얼만데?”
“여러 개를 사니 금은보 스물다섯 개정도 살 수 있을 거네.”
“……좋아, 스물다섯 개를 주겠어. 대신, 이 장보도 끝에서 무얼 얻든 그건 다 내 거야? 어차피 그쪽은 천년하수오를 먹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하겠네.”
“거래 성립됐으니 이제 가자.”
백서휘와 황천익이 바쁘게 최종 목적지로 가는 동안, 많은 사람이 애뇌산에 진입했다.
애뇌산에 사는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맹수들과 살기등등한 독사들을 죽이며 이동하기를 한 시진.
드디어 지남침과 장보도가 가리키는 장소 인근에 도착한 백서휘와 황천익이 주위를 경계하며 진입했다.
“아무도 없군.”
백서휘는 기감을 한계까지 넓혀봤지만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잔뜩 경계했던 조금 전의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냥 여기 계속 있어야 하나?”
“일단은 가리키는 곳이 여기니 계속 있는 게 좋을 것 같네.”
백서휘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황천익은 검을 빼 든 상태로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검은 왜 뽑아둔 거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들었네. 갑자기 습격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기감에 잡히는 거 하나도 없으니까 편히 있어. 누가 오면 내가 알려주면 되니까.”
“……그러지.”
이각에서 삼각 정도 지났을 때 백서휘의 기감에 다수의 무인이 다가오는 게 잡혔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무인들이 이리로 오고 있어.”
“우리랑 비교하면 수준이 어찌 되는가?”
“한 명은 나보단 훨씬 약하지만, 당신보다 강해. 나머지 다수는 거대방파의 무력대 수준인데, 어라? 조금 익숙한데? 이건…… 아! 사도련이군.”
“사도련?”
“나보다 약하지만 당신보다 강한 건 종리혁이고, 나머지는 종리혁을 따르는 일곱 문파로 보여.”
“하필 이럴 때 사파를 상대로 만나다니…….”
운남성으로 오는 동안 그들을 노린 무리는 사파뿐만이 아니라 정파인들도 많았는데, 황천익은 새삼스레 사파를 경계하고 봤다.
“내가 있으니 비열한 짓은 못할 거야. 걱정하지 마.”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도련의 련주에게는 안 될 것 같은데…….”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안 들은 거야? 종리혁은 나보다 약해. 그렇지 않나?”
그때였다.
종리혁이 백서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하하하! 여기서 백 관주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역시 무인은 무공을 탐할 수밖에 없는 게 운명인가…….”
“무공이 아니라 다른 걸 찾으러 왔는데.”
“다른 것?”
“그건 알 거 없고.”
그때였다.
사도련과 비슷한 규모의 사람이 이쪽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네. 종리혁! 거기 그러고 있지 말고 다른 곳에 가 있어! 다른 사람들 통행에 방해되잖아.”
“그러지.”
종리혁은 일곱 문파의 사람들과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올라온다는 다른 이를 기다렸다.
“이쪽도 익숙한데…… 아, 모용중광이군.”
“모용중광?”
종리혁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가 사라졌다.
잠시 후, 모용중광이 무림맹의 사신단 전원을 데리고 최종 목적지에 들어섰다.
“선객들이 있었을 줄이야…….”
“누구랑 다르게 잽싸고 머리도 좋아서 좀 빠르게 오게 됐네.”
“그런 싸구려 도발은 이제 좀 안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날 보면 꼭 하는구려.”
“싸구려 도발?!”
“그럼 아니오?”
“이놈이!”
“이놈, 저놈 하지 마시오. 듣는 놈 기분 나쁘니까.”
기분 나쁘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종리혁이 말을 내뱉었다.
“이놈!”
“이쯤에서 멈추지 않으면 나도 똑같이 할 거요. 경고했소.”
모용중광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자기는 ‘놈’이란 말을 듣기 싫은지 종리혁은 시비 거는 걸 멈추었다.
백서휘는 다 들리도록 혀를 차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이후로 구파일방의 문파와 그와 버금가는 사파 문파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최종 목적지가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는데도 지남침과 장보도를 뿌린 자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오네.”
그때였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자들이 이곳에 오려고 했다.
“미치기라도 한 건가?”
“뭘 말하는 겐가?”
“지금 들어서는 놈들.”
“도대체 누구길래…….”
“보기만 해도 알 거야. 마기가 아주 피부를 찌를 테니까.”
“마기라면…….”
오대마가의 일원들이 당당한 얼굴로 최종 목적지에 들어섰다.
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세 명의 노옹과 한 명의 중년 여자였다.
‘손가를 제외한 나머지 가문의 태상 가주들인가 보네.’
손운산이 자신에게 죽어서 한 명이 빈 모양이었다.
오대마가 놈들을 공격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백서휘의 기감에 또 사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제는 혈교의 잔당까지 와?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혈교의 잔당들은 오대마가의 옆자리에 서서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을 경계했다.
‘다 죽여야겠어.’
정파고 사파고 다들 아는 놈들인 데다 혈교와 마교의 무서움을 아는 자들이니, 자신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줄 거라 확신했다.
백서휘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들은 순간, 갑자기 애뇌산에 아주 큰 규모의 지진이 났다.
흔들림이 어찌나 강한지 이곳에서 가장 강한 백서휘조차도 중심을 잡지 못할 정도였다.
우우우우웅!
공기 중에 벌떼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면서 땅 밑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뭔가 시작되는 건가?’
팟!
빛이 사라지면서 그와 동시에 최종 목적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어딘가로 이동했다.
* * *
백서휘는 감았던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황천익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를 간 거야.’
일단 보이는 풍경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무릉도원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용암이 곳곳에 흐르고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걸 보면 여기가 바로 지옥이 아닌가 싶었다.
“여긴 또 어디지?”
수호문의 문주로서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구주팔황을 좁다고 돌아다녔다.
그 덕에 산세나 강이 흐르는 모양 등을 보면 대충 어느 성인지 알 수 있는데 이곳은 어딘지 감이 안 잡혔다.
“침착하자.”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이후에 있었던 일을 천천히 복기해봤다.
“혈교 놈들이 온 이후에 갑자기 지진이 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빛이 번쩍였어. 그다음에 이리로 온 걸 보면 어딘가로 이동하는 주술 혹은 진법에 당한 것 같긴 한데…….”
주술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워낙 술자를 상대하면서 당해본 경험이 많아 대강은 알았다.
“사람이 많아지니까 갑자기 이동했어. 음……. 아! 조건부 주술이군.”
지금의 판을 짠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봤다.
조건부로 받은 걸 보면 지금보다 인원이 적거나 많으면 곤란하단 뜻으로 봐야 했다.
그리고 갑자기 이동시킨 걸 보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준비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상황을 원하는 대로 이끌려면 준비가 다 되어있는 곳이어야 할 텐데. 여기가 그곳이라면 무슨 준비가 되어있단 거지?”
그때 백서휘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준비? 준비라고? 여기 설마 이공간인가?”
이공간의 술법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구축해 적을 압도할 수 있게 만드는 최고난도의 주술이었다.
“언제 어떤 때든 간에 주술사가 의지만 발휘하면 환경이 바뀌니까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지.”
손자병법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한 천시와 지리를 모두 조종할 수 있는 곳이 이공간이었다.
백서휘는 추측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증폭시켰다.
‘이질감이 느껴져! 중원이 아닌 것도 분명하고 여기가 이공간인 것도 맞아!’
백서휘는 이공간이란 걸 알게 되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독령! 독기가 감지되지는 않지?’
『감지되지 않습니다.』
‘공기 중에 독은 없고…….’
모든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이상이 있는 건 없었다.
그냥 풍경만 이렇지 진짜 지옥은 아닌 모양이었다.
‘가지고 왔던 물건들은…….’
진짜 천마의 무덤으로 향하게 해줄 지남침과 장보도는 품속에 잘 있는 반면, 이곳에 오게 만든 가짜 지남침이랑 장보도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묵룡갑을 챙겨 오는 건데…….’
어떤 위험이든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지만, 지옥 같은 곳에 떨어지니 조금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항상 후회만 하는군. 다음부터는 진짜 묵룡갑을 입고 다니든가 해야지.’
한숨을 내쉰 백서휘는 기감을 최대한계까지 넓혔다.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 보면 사람 비슷한 건 자신 말고는 없는 듯했다.
‘황천익을 찾는 걸 우선하되 술법을 펼친 주술사들도 찾아 이공간을 부숴야겠어.’
백서휘는 기감을 최대로 넓힌 상태에서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감에 사람이 걸리는 걸 발견했다.
익숙한 느낌이 조금도 안 드는 걸 보면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은형잠종술을 펼쳐야겠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넉살 좋게 다가갈 만큼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곳은 바깥과는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한 이공간 아닌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는 만큼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가자.’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쓴 채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