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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56화 (156/202)

귀환무관 156화

황천익은 난장판이 된 도화루에서 술을 홀로 마시고 있었다.

백서휘는 의자를 가져와 그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왜 날 기다린 거지?”

“……부탁이 있어서 기다렸네.”

“부탁? 그런 걸 할 만큼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그대 말이 맞네.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지. 그럼에도 그대에게 부탁을 하려고 하네.”

황천익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부탁 거절하지. 바빠서 이만.”

백서휘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화루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거기 서보게! 부탁을 들어주면 내 목숨을 그대에게 주겠네.”

황천익이 도화루가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목숨?”

“노부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종복이 되어 그대를 주인으로 모시겠네. 그러니 제발 좀 부탁을 들어주게.”

백서휘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건 황천익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느냐였다.

무공을 익힌 자들은 병이나 사고만 아니면 양민보다 오래 산다.

황천익은 초절정 경지에 오른 고강한 고수이니 무공을 모르는 양민과 비교하면 훨씬 오래 살게 될 터였다.

백서휘는 앞으로 남은 그의 수명을 최소 5년 이상이라고 보고 있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황천익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게 큰 이득이었다.

‘일단 무슨 부탁인지 들어나 보자.’

백서휘는 다시 탁자 쪽으로 걸어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의자에 착석했다.

“부탁이 뭔지 한번 말해 봐. 생각 정도는 해볼 테니까.”

“……내 지남침과 장보도를 사주게.”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 그게 천마의 무덤이나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 하는 말이네.”

말이 지남침과 장보도를 파는 것이지 자기의 목숨값을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얼마에 팔 건지나 말해 봐.”

“노부 목숨의 값어치만큼만 주면 된다네.”

“그냥 정확한 액수를 말해. 원하는 액수가 있을 거 아니야.”

황천익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탐전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인간이 바로 말하지 못하는 금액이면…….’

말도 안 되는 고액일 거라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유소화가 헐레벌떡 도화루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어깨엔 하오문 문주의 전용 전서응이 앉아 있었다.

“과, 관주님.”

“아줌마가 뭘 보낸 모양이군.”

“맞아요. 새로운…….”

유소화는 황천익을 보더니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저 노인네가 들으면 안 되는 정보라도 있나 보네.”

지나친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경험이 많은 노인이니 독순술 같은 걸 배웠을 수도 있었다.

입 모양으로 전음의 내용을 파악할 가능성이 다분하니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밖으로 가자.”

백서휘와 유소화는 도화루 뒤편에 있는 공터로 갔다.

“무슨 정보야?”

“정보를 알려드리기 전에 할 말이 있어요.”

“뭔데?”

“스승님이 이번 정보는 그냥 알려드리지 말고 돈을 받으라고 하셨어요.”

“얼마나?”

“금원보 열 개요.”

“이따가 전장에서 찾아다 줄게.”

유소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백서휘에게 전음을 날렸다.

『지급으로 온 정보인데, 지남침과 장보도를 다른 지남침과 장보도랑 겹치면 하나로 합쳐진대요. 그리고 그렇게 합쳐지면 탐지 능력이 급상승하고요.』

『탐지 능력? 더 먼 곳에서 두 물건의 소유자가 어딨는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야?』

『네.』

『몇 개까지 합칠 수 있는데?』

『그건 아직 몰라요.』

『그러면 한계까지 합쳐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네?』

『저희 쪽에서는 소문이 무성한 곳 중 하나로 안내해 주지 않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어요.』

『소문이 무성한 곳?』

『천마의 무덤이나 무릉도원 이런 곳이요.』

『그것들 말고는 내가 더 알아야 하는 건 없는 거지?』

『네, 정보는 지금까지 말한 게 끝이에요.』

『정보 전해 줘서 고맙다. 탐전검이랑 이야기를 좀 해본 후에 돈을 줄게.』

백서휘는 다시 도화루 안으로 들어갔다.

황천익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이 밖에 있는 동안 얼마를 받을지 정한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 얼마야?”

백서휘는 말을 하면서 다시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금원보 열 개를 받았으면 하네만…….”

“뭐 때문에 그런 고액이 필요한 거지?”

“얼마 전, 무릉도원이 실존하고 그곳으로 안내해 줄 지남침과 장보도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네.”

“겨우 그걸 믿고 수라장에 뛰어든 건가?”

“처음에는 믿지 않았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소문에 살이 붙어가면서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지. 물론, 이때도 움직이지 않았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 수는 없었으니까.”

일이 터질 때부터 움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백서휘는 황천익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 손자가 이불을 입에 물고 신음하는 걸 보게 됐네. 내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모양인데,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더군.”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물어도 되나?”

“구양절맥일세.”

조카가 구양절맥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백서휘를 덮쳤다.

‘남 같지 않군.’

백서휘는 황천익의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했다.

“계속 약을 먹이고 막힌 것이 단단하지 않아 지학이란 나이까지 살 수 있었지만 여기서 더 사는 건…….”

황천익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뒤를 흐렸다.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입을 열기 힘든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그러다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는지 황천익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유일한 희망은 천도(天桃)뿐이란 생각이 들어 쟁탈전에 발을 들이밀었고, 가짜인 걸 깨달은 지금은 이렇게 술이나 홀짝이는 신세가 됐지.”

정보를 듣지 못한 황천익은 지남침과 장보도가 완전히 거짓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금원보 열 개인 거지?”

“암상이 내게 제시한 금액이네. 음기가 담긴 영약을 얻고 싶으면 금원보 열 개를 가져오라고 했지.”

“음…….”

백서휘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좀 전에 얻은 정보를 알려줄까?’

황천익에게서 꼭 지남침과 장보도를 사지 않아도 됐다.

가짜 지남침과 가짜 장보도는 황천익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놈을 죽여 구하면 됐다.

‘물건을 겹치면 탐지 능력이 늘어나고, 한계까지 겹쳐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무조건 소문이 나게 되어 있어.’

나지 않으면 혼천회에서 의도적으로라도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그래야만 무인들이 서로를 죽이는 일이 계속될 테니까.

결정을 내린 백서휘는 황천익과 눈을 맞추었다.

“금원보보다 더 가치 있는 걸 줄게.”

“야명주나 묘안석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럼 설마 영약을?”

“그것도 아니야. 내가 그쪽에게 줄 건 정보야. 그쪽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값질 거야.”

황천익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돈이라네.”

“돈이 아니라 희망이 필요한 것 아니었나?”

“희망?”

“지남침은 지남침끼리, 장보도는 장보도끼리 겹쳐놓으면 하나로 합쳐지면서 탐지 능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고 하더군.”

“정말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하는가?”

“희망 맞지. 한계까지 겹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거든. 하오문 쪽에서는 특정 장소로 향하는 길이 나타나게 될 거라고 추측하더군.”

“특정 장소라면 설마…….”

황천익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무릉도원일 수도 있고, 천마의 무덤일 수도 있고, 신장이 만든 검의 안식처일 수도 있지. 뭐, 이건 희망적인 이야기고 최악의 경우엔 끝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어. 근데 이 정도면 희망을 마음속에 품어볼 만하잖아. 안 그래?”

“이 정보의 대가로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네.”

“아까 말했던 대로 목숨으로 가자고. 대신 남은 생애 평생이 아니라 10년? 아니,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으니……. 5년 어때?”

“끝에 갔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게 무릉도원이 맞다면 5년을 자네 밑에서 있겠네. 그런데 만약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1년만 머물겠어.”

황천익이 제시한 조건은 합리적인 면이 있어 양심에 찔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지금부터 시간을 끊는 것으로 할 건가? 아니면 일이 모두 끝난 후에?”

황천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끝나고 해야지. 지금 시작하면 그쪽이 크게 손해 보게 될 거야.”

“손해?”

“내가 여기서 내 가족들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하면 그 말 들을 거야?”

“듣기야 하겠……. 그대 말이 맞네. 손해가 많이 크군. 일이 끝나면 서로의 합의하에 시작하도록 하지.”

“좋아.”

“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것이네만, 노부와 따로 다닐 생각인가?”

황천익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서휘는 그와 비교하는 게 비교할 정도로 강한 고수였다.

그런 고수와 함께라면 안전하기도 하고 지남침과 장보도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불감청고소원이네.’

진짜와 가짜의 가진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물건의 다른 소유자를 만날 때까지는 동행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땅한 이유를 댈 수 없어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질문을 해주다니.

백서휘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떨어지면 서로 엇갈릴 수도 있고 하니까 일이 끝날 때까지는 같이 다니자고.”

“고맙네.”

“민망하니까 인사는 거기까지만 해.”

“그러지.”

“짐 챙겨 올 테니까 여기 있어.”

백서휘는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백은하에게 어떤 식을 아이들을 수련시켜야 하는지 적어주었다.

“빨리 돌아와야 돼!”

“알았어.”

백은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백서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공이 강한 만큼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고수들도 강했기에 이렇게 어딘가로 떠나면 괜히 걱정됐다.

“제발 별일 없어야 하는데…….”

한참을 쳐다보던 백은하가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멀리서 한 남자가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은하는 남자가 입은 옷을 보게 됐다.

“저건 사범용 관복인데? 아! 이번에 새로 온 사범 중의 하나인가 보네. 이름이 뭐였더라…….”

신영(身影)이 눈에 익지 않아 알아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 조서! 조서였어. 그런데 무슨 일로 이리로 오는 거지?”

백은하가 방문 이유를 추측하는 사이, 조서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그녀 앞에 섰다.

“조 사범님 맞죠?”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 오신 거예요?”

“관주님 계십니까?”

“없어요.”

“어디로 갔다거나 언제 돌아오시는지는 모르시는 거죠?”

“당분간 보기 힘들 거예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관주님과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요.”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 알려주시면 제가 따로 적어놓을게요.”

“관주님에게만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라 방문 이유를 말씀드리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조 사범님만 왔다가 갔다고 할게요.”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가로 돌아온 조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진언을 외운 그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매의 시선으로 백서휘와 황천익을 바라봤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거지? 음……. 호북성 방향이군.’

백서휘를 상대한 이래 처음으로 착착 계획이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수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조서는 세필을 꺼내 작은 종이에 호북성 방향으로 백서휘와 황천익이 떠났다는 소식을 혼천회에 알렸다.

‘떠나야겠어.’

어차피 떠날 생각으로 잠입했기에 조서는 가진 짐이 별로 없었다.

그는 안가에 있는 흔적을 모두 지운 후, 봇짐 같은 걸 메고 장사를 빠져나가 호북성 쪽으로 향했다.

‘본회에서 준비한 선물이 맘에 들기를 바란다.’

조서는 백서휘가 지나간 방향을 살기 어린 눈동자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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