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55화
“그리고 동시에 이놈들의 스승이기도 하지.”
백서휘는 금태평과 진운을 손가락으로 한 번씩 가리켰다.
“스승이라면서 어찌 제자를 위험에 빠뜨리는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 후에 기어오르는 놈만 자식으로 키운다더군. 그래서 나도 한번 그래본 거야. 이놈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가혹한 상황에 내모는 건 너무 과하다네.”
“당신처럼 강호에 오래 있던 사람이면 알 거 아니야. 검이 늙고 어린 걸 가리지 않고 날아든다는 걸.”
“그렇긴 하지만…….”
“눈먼 검에 맞고 죽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단련해야 돼.”
“그래도 그렇지 이건…….”
“이건 당신과 나의 방식이 다른 거니까 더 참견하고 싶으면 돈을 주고 참견하도록 해.”
“그건 힘들 것 같네.”
탐전검이 별호값을 톡톡히 하려는지 정색하며 대답했다.
“돈이 아니라 다른 것도 받긴 해.”
“다른 것이라면?”
“이를테면 당신이 가진 지남침이랑 장보도를…….”
백서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탐전검은 검을 다시 곧추세우고 거리를 벌렸다.
“내 말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꼭 강도가 된 것 같잖아.”
“무장 강도 아닌가?”
“나는 당신이 가진 것과 내 것을 비교하고 싶었을 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내게도 당신이랑 똑같은 물건이 있단 소리야.”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줄 지남침과 장보도가 또 있을 리가…….”
“당신 것과 비슷하지만 달라. 내가 가진 건 천마의 보물이 잠든 곳으로 안내해 준다고 그랬거든.”
“천마? 팔대마가 중 하나인 진가의 가주를 말하는 건가?”
강호의 무인 중 팔대마가에 대해 모르는 이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눈앞에 노고수는 식견이 꽤 깊었다.
“아니, 만마의 조종이라 불리는 그 천마.”
“……믿기 힘든 이야기군.”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테니까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백서휘는 양손에 진운과 금태평을 한 명씩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고용인이 아니라 백은하가 마당을 쓸고 있었다.
“누나!”
“뭐야! 애들은 왜 이래? 때렸어?”
“내가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나도 사람 봐가면서 때리는 편이니까.”
“그럼 왜 그런 건데?”
“자세한 건 이야기하기 힘들고 일단 얘네들 좀 맡아줘.”
백서휘는 백은하에게 금태평과 진운을 떠넘겼다.
“무슨 일 있어?”
“갔다 와서 얘기해 줄게.”
백서휘는 방에서 지남침과 장보도를 찾아서 품에 넣고는 다시 도화루로 응룡비천신법을 펼쳐 달려갔다.
‘어디 다른 데 가지 말고 도화루에 붙어 있어라…….’
전력으로 신법을 펼친 덕에 도화루엔 금방 도착했다.
“탐전…… 이건 또 왜 이래.”
도화루의 모습은 떠나기 전이랑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외벽에 구멍이 커다랗게 뚫린 상태였고, 내부의 탁자며 의자들은 제대로 서 있는 게 없었다.
자신이 집에 갔다가 오는 그 잠깐 사이에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탐전검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기감을 최대한으로 넓혔다.
백서휘를 중심축 삼아 퍼져나간 기감은 금방 탐전검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냈다.
‘싸우고 있다. 상대는 누구지?’
탐전검이 상대하는 적의 기운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디서 느낀 건지 기억을 더듬는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소화?’
탐전검이야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니 어떻게 되건 상관없지만 유소화는 아니었다.
유소화는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조력자 중 하나였다.
‘죽으면 곤란해져. 무조건 구해내야 해.’
백서휘는 유소화에게 별일 없길 기도하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탁!
가볍게 지붕 위에 올라선 그는 두 사람이 싸우는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데다 지붕을 타고 이동했기에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카카카카캉!
유소화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적색빛이 감도는 쌍장을 힘껏 내질렀다.
탐전검은 맞대응할 것처럼 검을 내밀다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탐전검 황천익 대협! 이만 멈추세요!”
“그럴 순 없으니 낭자가 포기하게나.”
유소화에게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는 경지면서 도망을 가는 황천익이 백서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이건 탐전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운 일이었다.
별호에 지명이 붙는 자들은 대체로 그 지역에서 몇 안 되는 강자였다.
사천사흉 역시 그중 하나로 점창파의 장로 중 둘을 죽인 일이 있었다.
거기다 그 원한을 갚기 위해 파견된 무림맹의 척살단까지 잡아내면서 그들은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런데 백서휘는 그렇게 강한 자들의 머리통을 코 파는 것보다 쉽게 터뜨려 버렸다.
규격 외의 고수와는 아예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탐전검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그는 백서휘가 가진 지남침과 장보도가 어떤지 궁금한데도 일단 도주부터 감행하고 봤다.
“지남침과 장보도에 대해 알려주시면 돈을 드릴게요.”
유소화가 큰소리로 외치자 이제껏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황천익이 처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탐전검이란 별호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얼마를 줄 건가?”
“일단 멈추셔야 협상을 하죠!”
“날 바보로 아는군. 그 중원 제일 교육기관의 관주라던 자가 올 시간을 벌려고 지금 이러는 거 아닌가.”
“그분이 하오문의 귀빈인 건 맞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대협의 정보가 필요해요. 지금 중원 전체가 그 지남침과 장보도로 난리라고요!”
“정말로 협상하길 원한다면 얼마를 줄지부터 제시하시게.”
그때였다.
저 멀리서 질풍처럼 달려온 백서휘가 유소화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출발도 늦고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황천익과의 거리를 좁혔다.
“멈춰!”
화들짝 놀란 황천익이 속도를 높이자 백서휘도 더 빠르게 응룡비천신법을 전개했다.
“진정으로 내가 멈추길 바란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지남침과 장보도가 지닌 가치만큼의 돈을 제시하게나.”
일이 글렀다는 걸 진작 깨달은 황천익은 투자한 시간과 돈을 건지기 위해 조건을 내걸었다.
“음…….”
솔직한 심정으로 얼마나 제시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백서휘는 머리를 빠른 속도로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려는 것도 아니고 비교만 하고 돌려줄 거니 비싸게 쳐줄 필요 없었다.
거기다 유소화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지남침과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희소성이 떨어지니 비싼 값을 치를 이유가 없어. 그리고…….’
황천익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돌 자신이 강했다.
마음먹고 어검술을 쓴다면 황천익을 찢어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려주면 적당한 선에서 멈추겠지.’
계산을 끝낸 백서휘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은자 열 냥.”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로 안내해 줄 지남침과 장보도를 고작 은자 열 냥에 사겠다는 건가? 미쳤군!”
“지금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인데 일단 내게도 지남침과 장보도가 있어.”
백서휘는 지남침과 장보도를 꺼내 황천익에게 보여준 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중원 전역에서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지남침과 장보도가 여러 개란 뜻이니 다른 지역으로 가서 뺏어도 무방해.”
“그래도 필요한 건 사실이지 않은가.”
가치가 실시간으로 계속 절하되니 떨떠름한 감정이 황천익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왔다.
“더 중요한 걸 알려줄까?”
백서휘의 검집에 있던 검이 저절로 빠져나와 황천익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쐐애애애액!
뒤쪽에서 파공음이 들리자 황천익이 고개를 돌렸다.
“헛!”
“이렇게 어검술을 발휘해서 당신 죽이고 품속을 뒤져가는 것도 가능하고. 이렇게…….”
백서휘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지더니, 황천익의 바로 옆에서 나타났다.
“직접 손을 써서 때려죽이는 것도 가능하지.”
더 나아가면 위험하단 걸 본능적으로 느낀 황천익은 신법을 펼쳐 달리는 걸 멈추었다.
“내놔.”
백서휘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황천익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당신 것과 내 것이 뭐가 다른지 비교하고 싶을 뿐이야.”
“그 말은…….”
“비교가 끝나면 돌려주지. 이거 받아.”
백서휘는 은자 열 냥을 꺼내 황천익에게 던져주었다.
황천익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남침과 장보도를 그에게 내밀었다.
‘지남침부터 비교해 보자.’
지남침의 생김새는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둘 사이에는 다른 점이 꽤 있었다.
일단 담겨 있는 술법의 존재감이 자신이 가진 지남침이 더 컸고, 황천익의 지남침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은 술법이 담겨 있었다.
“어라?”
백서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가지고 있던 황천익의 지남침을 다시 돌려주었다.
“움직이지 말아봐.”
백서휘가 황천익을 중심축으로 삼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침은 백서휘가 있는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황천익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왜 그대를?”
“확실하진 않은데 내가 지남침과 장보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백서휘는 황천익의 장보도와 자신의 장보도를 비교했다.
황천익의 장보도에는 초록색 점과 빨간색 점이 붙어 있는 모양이 그려져 있다면, 자신의 장보도는 아무것도 그려진 게 없었다.
“이 점의 정체는 뭐지?”
“조금 전에 지남침이 그대를 가리킨 걸 보면 장보도에는 그대의 위치가 나오는 것 같소.”
“이거 원래 이랬나?”
“그랬던 것 같소.”
“확실하게 말해 봐.”
“……원래 이랬던 거 맞소.”
“당신이 장사에 온 건 이것들을 따라서 온 건가?”
“그렇소.”
백서휘가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내가 가진 게 진품인 것 같아.’
담겨 있는 주술의 수준이나 존재감도 비교가 안 되게 높을뿐더러, 황천익의 지남침은 과업이 있는 곳을 가리키지도 않았다.
‘중원 전역이 난리라는 걸 보면 탐전검이 가진 거랑 똑같은 게 수십, 수백 장이 뿌려져 있다고 봐야 돼,’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중원 전역을 혼란에 몰아넣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떤 암중단체가 벌이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가진 장보도랑 지남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거로 보였다.
그러니 복제품을 만들어 중원 전역에 뿌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게 중요한데…… 이건 딱 답이 나와 있네.’
자신이 아는 암중단체 중에 중원 전역에 힘을 떨칠 만큼 규모가 크고, 모든 사람이 혼란하길 원하는 곳은 ‘혼천회’ 말고는 없었다.
‘정보가 더 필요해.’
백서휘는 유소화와 함께 하오문의 밀실로 향했다.
유소화는 자기를 찾을 줄 알았다는 듯 미리 정리한 정보를 백서휘에게 주었다.
‘중원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소규모 교전은 팔 할 이상이 지남침과 장보도의 쟁탈전일 정도로 많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보던 백서휘는 지남침과 장보도에 대한 소문에서 잠시 멈추었다.
“하나같이 다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잖아?”
풍뢰권호(風雷拳豪), 오행마존(五行魔尊) 같은 전대의 천하제일인의 비급이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공청석유나 천년설삼이 있다는 이야기, 신장(神匠)이 만든 신병이기(神兵利器)가 모여 있다는 이야기, 유령신투가 죽기 전까지 모아놓은 재물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간절한 사람일수록 속는 사람이 많겠어.”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일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짐부터 싸야겠군.”
제자로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돼서 떠난다는 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밀실이 있는 건물을 나오니 하오문도 중 하나가 황천익이 도화루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날 왜 기다린 거지?’
백서휘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도화루로 들어갔다.
백서휘의 행보를 아주 먼 거리에서 지켜보던 조서는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걸 느꼈다.
“드디어 보고할 거리가 생겼군.”
조사는 진언을 외우며 허공에 나무 조각을 던졌다.
일반적인 매보다 더 큰 매가 갑자기 나타났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조서는 자그마한 종이에 쌀알처럼 작은 글자를 적었다.
‘미끼를 문 물고기 중 하나인 탐전검 황천익과 만남…… 작전이 진행되는 곳으로 떠날 수도 있으니 준비 바람.’
끈이 달리고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에 정보를 기입한 종이를 넣었다.
그다음 매의 다리에 가죽 주머니를 묶었다.
“가라.”
조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날아가는 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