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35화
백서휘는 실험실을 돌아다니며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파악했다.
기다란 탁자에는 갖가지 실험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책들이 빈틈없이 꽂혀 있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실험동물들과 조합할 준비를 다 끝내놓은 독극물이 있었다.
“저것들로 실험하면 되겠네.”
백서휘는 가장 개체 수가 많은 쥐를 먼저 실험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백서휘는 쥐의 꼬리를 집게손가락으로 잡아 빈 나무통에 넣었다.
쥐는 찍찍거리며 나무통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걸 깨닫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백서휘는 쥐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며 독경에 나왔던 내용을 떠올렸다.
‘독령!’
『예!』
‘이제부터 내력을 기독으로 변환하는 일을 할 거야. 잘할 수 있지?’
『잘할 수 있습니다!』
백서휘는 독경에서 읽었던 내용을 독령에게 들려주었다.
자기와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독령은 단번에 내력을 기독으로 변환하는 법을 바로 이해했다.
제대로 아는지 확인까지 한 백서휘는 조심스럽게 단전에 있는 내력 일부를 밀어 넣었다.
독령이 뜨끈해졌다가 차가워졌다가를 반복하더니 이내 기독을 내뱉었다.
신기한 건 기독이 단전에 있음에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자신의 내력을 재료로 삼아서 만든 거라 그런 것 같았다.
백서휘는 단전에 있는 기독을 끌어올려 장심을 통해 나무통에 밀어 넣었다.
기독이 스며들자마자 곧바로 쥐가 사망했다.
아무래도 작은 동물을 죽인 거라 독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감이 오질 않았다.
‘더 큰 동물을 해봐야겠어.’
철창에 있는 돼지에게 쥐를 죽였을 때와 똑같은 양의 기독을 깃들게 했다.
돼지는 기독이 스며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숨이 끊어졌다.
‘스며들기만 하면 다 죽으니까 살상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네.’
『사람 하나에서 둘을 죽이는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 무인? 무인이라면 어느 경지까지 죽일 수 있는데?’
이류 무인부터는 경지가 높아질수록 독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하고, 화경의 경지에 이르면 그것이 정점을 찍어 만독불침이 된다.
만약 지금의 기독으로 이류 무인을 죽일 수 있다면 괜찮은 무기가 생길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류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죽이는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든 중독될 수 있단 당진우의 말은 거짓이란 거네.’
직접 실험해 보지 못해서 몰랐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백서휘는 당진우가 거짓말을 해서 그런 거라고 여기기로 했다.
‘일단은 그렇다 치고…… 살상력을 강하게 하려면 농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실험할 동물이 마땅치 않네.’
백서휘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기독에 대한 시험을 중지하기로 했다.
‘이제 기운의 속성을 바꾸는 실험을 해볼까.’
사실 본신의 내력을 다른 속성을 가진 기운으로 변환하는 일은 지금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거였다.
만약 실험했을 때 독령을 통한 변환이 혼자 변환하는 것보다 효율이 높게 나온다면 자신이 쓸 수 있는 패가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패는 자신이 어떤 기술을 쓸지 모르게 해 상대를 헷갈리게 만든다.
‘촌각을 다투는 싸움에서 상대를 잠시라도 고민하게 만든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지.’
백서휘는 실험실을 나와 당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밖으로 나온 거였다.
‘기독으로 바꾸는 마지막 공정에서 속성을 가미하게 하면 돼. 알았어?’
『알겠습니다.』
‘내가 주는 내력을 오행 중 화기(火氣)로 바꿔봐.’
『예!』
백서휘는 가만히 서서 단전 내부의 변화를 관조하며 내력 일부를 독령에 밀어 넣었다.
좀 전에 기독을 만들었을 때와 다르게 독령이 계속 뜨거워졌다.
사고가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백서휘는 내력을 홀로 음기로 변환시킨 후 근처에 대기시켰다.
양기가 폭발하면 진압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독령이 화기를 내뱉었다.
그런데 그 양이 혼자서 열심히 변환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효율이 그리 높지 않네. 속성으로 변환하는 일은 포기하는 게 낫겠다.’
『기회를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기회를?’
『한때 독기에 둘러싸였을 때가 있어서 기독으로 변환하는 건 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건 그렇지 않아서 효율이 낮았다?’
『예.』
‘좋아, 몇 번 더 해보는데 그 전에 이것 좀 밖으로 내보내자.’
백서휘는 정확한 측정을 위해 단전에 남아 있는 화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됐다. 해봐.’
백서휘는 독령을 믿고 다시 한번 약간의 내력을 밀어 넣었다.
그는 독령의 공정이 이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 결과도 같으리라 예상했다.
‘어?’
예상과 다르게 변환된 화기의 양이 조금이지만 늘었다.
신기하단 생각에 백서휘는 화기를 내보내고 다시 한번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변환되는 화기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계속 시도를 하다 보면 일대일의 효율이 나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는 ‘한 번 더’란 말을 속으로 수백 번은 외쳤다.
그 덕분일까?
처음 시도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율이 높아져 이제는 일대일로 변환됐다.
‘다른 기운도 해보자. 이번엔 수기(水氣)!’
화기와 다르게 독령이 시리도록 차가워졌다.
백서휘는 이번엔 내력을 홀로 양기로 변환해 사고를 대비했다.
잠시 후, 독령이 수기를 내뱉었는데 처참할 정도로 양이 적었다.
‘이건 또 왜 이리 적어.’
『…… 익숙하지 않은 건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화기처럼 계속 연습을 해야 된단 소리네?’
『예.』
‘그러면 오늘은 이쯤에서 실험을 끝내자.’
백서휘는 평소에 수련을 열심히 해둬야겠다고 생각하며 땅바닥에 앉아 암경을 꼼꼼히 다시 봤다.
그러다 마지막 바로 이전 장에서 만천화우(滿天花雨)에 대한 글을 읽게 됐다.
‘당가 놈들이 만천화우를 썼던가?’
열심히 8대 암기를 쓰던 것만 기억이 나지 당가의 자랑이라던 만천화우를 본 기억은 없었다.
‘비장의 한 수라 아껴두다가 쓰지도 못 하고 내 손에 그냥 다 죽은 건가?’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중원에 ‘무공’이란 것이 태동한 이래 당가만큼 멍청한 집단이 없으리라.
‘이제 마지막 장이네.’
아까 봤을 때는 대충 보느라 암경의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지금 꼼꼼히 다시 읽어 보니 저자는 경(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손을 써서 날린다면 암기에 경을 실을 수 있어 공격력 면에서 더 유리하다?’
암기를 주 무기로 쓰지 않으니 이 개념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가늠이 안 됐다.
‘암경에서 얻을 건 암기의 특성 정도가 끝인가.’
방어하는 것도 적혀 있긴 했지만 신순이 있는 마당에 굳이 쉬운 길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없었다.
‘잠깐만, 신순?’
그때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내리치더니 독경에서 얻은 모든 것과 암경에서 얻은 모든 것이 합쳐졌다.
‘……기시에 속성을 깃들게 하고 경(勁)까지 가미할 수 있다면?’
더 적은 내력을 써서 투사체를 방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격 용도로 쓰는 것도 가능하리라 싶었다.
‘한번 시도해 보자. 독령! 기시를 발사하기 직전에 회전력을 가미해 봐!’
『예!』
‘시험할 상대가 아무것도 없어서 땅에 쏴야 되니까 기시는 장심을 통해 발사해.’
『알겠습니다.』
‘시작!’
평소와 똑같이 만들다가 마지막 발사하기 직전에 기시를 쥐어짜듯 비틀었다가 풀었다.
회전력이 담긴 기시 하나가 장심을 통해 빠져나와 땅을 때렸다.
쾅!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땅에 만들어졌다.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백서휘는 독령에게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시를 가장 강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독령이 기시를 만들어냈는데 그 위력이 말도 안 되게 강력했다.
‘여기에 경을 담는 게 가능하겠어?’
백서휘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독령이 이전보다 기시를 더 세게 쥐어짜듯 비틀며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흐앗!』
비틀었던 게 풀어지며 기시가 장심을 빠져나와 땅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직경 두 장에 깊이는 두 장을 조금 넘는 구멍이 땅에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기시가 아니라 신시(神矢)인데?’
백서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엔 기시에 속성을 깃들게 한 다음에 경까지 담아봐.’
독령이 낑낑거리며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속성 깃들게 하는 것 따로, 경을 담는 것 따로 하는 건 잘하지만 이상하게 둘을 동시에 하면 독령이 어려워했다.
숙련도가 아직 낮아 실패한 거라 생각한 백서휘는 장사에 돌아가면 바로 수련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기준한테 돈이든 비급이든 적당히 챙기고 장사로 돌아가자고 해야겠다.’
백서휘는 당가의 무인들과 싸웠던 곳으로 돌아왔다.
앉아서 오래된 비급을 보던 당기준이 벌떡 일어나 그를 맞았다.
“돈은 다 옮겼어?”
“금이랑 원보 위주로 옮겼습니다.”
“비급은?”
“관주님이 지시한 대로 제가 익힐 것만 따로 챙겼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장사로 출발해도 되겠네?”
백서휘가 밝은 목소리로 당기준에게 물었다.
“지금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날도 어두워졌고 관주님이 피곤하실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날 어두운 거야 조심하면 되는 거고 피곤한 건 왜? 아! 내가 당가 사람들이랑 싸워서?”
“예.”
“지칠 정도로 싸운 건 또 아니라서 가도 돼.”
당기준의 지친 모습이 백서휘의 눈에 들어왔다.
“피곤한 상태에서 마차를 모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면 내가 마차를 몰게.”
백서휘의 의지가 너무 강력해 보여 당기준으로서는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갈 준비를 하도록 하죠.”
백서휘와 당기준은 달이 뜰 무렵에 당가타를 떠나 장사로 향했다.
* * *
“웬일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왔구나.”
혼천회의 회주가 젊은 학사에게 그간 오지 않는 것에 관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부정력을 모으는 문제로 바빠서 회주님께 올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한 것이냐?”
“아직은 괜찮습니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구나.”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지금 같은 수준이 계속된다면 버틸 수 있겠지만 이것 이상은 제 능력상 힘들 것 같습니다.”
젊은 학사는 혼천회의 회주에게 솔직하게 자기 상태가 어떤지를 말했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지. 음? 그 종이는 무엇이냐?”
“오늘 이곳을 찾아온 이유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래.”
젊은 학사는 손에 들고 있던 홍보물을 혼천회의 회주에게 건넸다.
“학무관? 관원을 모집한다고? 이건 또 왜 가져온 것이냐? 글이랑 무공을 다시 배우라고?”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까?”
학사가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혼천회의 회주는 내키지 않는데도 다시 홍보물을 읽었다.
“호남성 장사? 설마 이거…….”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수호문의 당대 문주인 백서휘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음…….”
혼천회의 회주는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이곳에 공작할 수 있겠느냐?”
“낭인들과 명성교의 잔당들을 이용해 그 종이에 적힌 학무관이란 곳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 공작 계획을 허가할 테니 백서휘 그놈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어라!”
“그리하겠습니다.”
젊은 학사는 혼천회의 회주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 동굴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