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131화 (131/202)

귀환무관 131화

백서휘는 남궁유운과 함께 도박장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쥔 패 하나에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찾았다.’

구양진이 술을 연거푸 마시며 골패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역팔자로 치켜 올라간 그의 눈썹을 보니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패가 좋게 바뀌기라도 하나?”

“뭐요?”

“당신이 패 바꿔야 할 시간에 자꾸 그렇게 들여다봐서 자꾸 흐름이 끊기잖아.”

“내가 흐름을 뭘 얼마나 끊었다고 이러는 거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 한번 봐봐.”

같은 탁자에 앉은 사람들이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구양진을 봤다.

구양진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칼 한번 휘두르면 죽을 자들이 주제도 모르고 고압적인 태도로 구니 손이 근질거렸다.

저도 모르게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그제야 소지한 무기는 도박장 직원에게 맡기고 들어왔다는 게 떠올랐다.

문제는 이러한 구양진의 행동을 탁자 주위에 앉은 인간들이 모두 지켜봤다는 것에 있었다.

“조금 전에 칼질하려고 한 거지?”

“이야, 무서운 사람이네.”

“아무한테나 칼 휘두르는 버릇을 고쳐주지. 얘들아!”

다른 탁자에 있던 인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구양진을 둘러쌌다.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다른 도박꾼들이 밖으로 나갔다.

도움받기 글렀단 생각에 주위를 보며 퇴로를 찾았다.

그때 둘러싼 사람 중 몇몇 이들이 숨겨둔 무기를 꺼내 드는 게 구양진의 눈에 들어왔다.

실수했다는 생각이 구양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도박장 직원을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려는데 익숙한 음성이 장내를 갈랐다.

“그쯤 하지 그래?”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넌 또…… 헉!”

백서휘와 축융이 치렀던 전투를 목격한 몇몇 이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데다 백서휘의 얼굴을 모르기까지 한 자들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죄,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설마 저자한테 쫄은…….”

“닥치고 따라와!”

구양진을 둘러싼 모든 인원이 도박장을 빠져나갔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단 생각에 구양진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몇 대 맞을래?”

“예?”

“몇 대 맞을 거냐고.”

“다, 다섯 대 맞겠습니다.”

“그렇게 맞으면 반성이 되겠어?”

구양진은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입을 오물거렸다.

“아! 참고로 말하는데 난 도박장 출입하는 걸 나쁘게 보지 않아. 돈을 어떻게 쓰든 그건 자유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말이야…… 근무 시간에 도박장을 찾는 건 선을 너무 많이 넘었어. 그치?”

“……죄, 죄송합니다.”

“뭐, 네 입장에선 학무관은 열릴 기미도 없는데 계속 대기만 한다는 게 아까울 수 있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거니까.”

“아, 아닙니다. 저, 절대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면 왜 도박장을 오는 건데?”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자 구양진은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그러고 있지 말고 엎드려뻗쳐를 해.”

“네.”

구양진은 엎드려뻗쳐를 한 채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한 달 동안 학사 일정부터 교육 과목, 목표 같은 것들을 재정립할 거니까 너는 어떡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관원을 가르칠지 고민해. 알았어?”

“네.”

“자, 이제 몇 대 맞을지 말해 봐.”

“열 대 맞겠습니다.”

“좋아.”

빡!

“으아아악!”

“하나!”

.

.

.

빡!

“끄윽!”

“여덟!”

그때 무기를 든 장정들이 도박장 안으로 들어왔다.

“저놈…… 헉! 이 멍청한 놈! 저분 하오문에서 귀빈 대접받는 분인 거 몰라?”

“귀빈이라니 그게 무슨…… 어라? 다들 어디 갔지?”

도박장 직원이 헤집고 나오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서휘는 조직원들과 직원을 무시하고 구양진의 엉덩이에 두 대를 마저 때렸다.

“일어나.”

“네!”

구양진이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만지니 끈적한 액체가 느껴졌다.

피라는 걸 직감한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때린 게 불만인가 보네?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

“부, 불만 없습니다.”

“그 말 믿겠어.”

백서휘는 짧게 말하고는 다시 뒤를 돌아 도박장을 빠져나갔다.

남궁유운과 구양진이 뒤를 따라가려고 하자 그는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상을 주러 가야 할 시간이군.’

백서휘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종리연이 관원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곳이었다.

“자기 공격 범위와 상대 공격 범위를 계속 생각하면서 싸워야 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니?”

“아니요!”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장난을 치는 게 화날 법한 데도 종리연은 웃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뎅뎅뎅!

밖에서 종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바로 자세를 잡고 입을 닫았다.

‘종례 빨리하려고 저러나 보네.’

백서휘가 팔짱을 낀 채로 피식 웃다가 종리연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내일은 체험 학습 하러 갈 거니까 관복 말고 더러워져도 되는 옷으로 입고 와!”

“네!”

백서휘가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걸 지켜봤다.

‘내 돈줄들!’

종리연이 조용히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리려 했다.

그 순간, 백서휘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깜짝이야!”

“놀랄 것도 많네.”

“그렇게 갑자기 몸을 돌면 누구라도 놀라요!”

“그런가?”

“그래요!”

“뭐, 그렇다고 치지.”

백서휘는 팔짱을 풀고 종리연을 바라봤다.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열심히 가르친다고 다른 사람들이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

“학부모들이요?”

“뭐, 비슷해.”

“그 말을 전해 주러 오신 거예요?”

“아니.”

“그럼 뭐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첫 번째 이유는 조금 전에 말했듯 칭찬하는 말이 하도 많아서 어떤가 한번 보려고 온 거고, 두 번째 이유는 상을 주기 위해서지.”

“상이요?”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봐. 들어줄 수 있다면 들어줄 테니까.”

“……월봉을 좀 올릴 수 있을까요?”

“얼마나?”

종리연이 눈을 감고 용기를 내자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꽤 웃겨 백서휘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두 배! 두 배로 올려주세요!”

종리연은 일단 크게 질러놓고 진짜 원하는 금액으로 줄이려고 했다.

‘얘 월봉이 얼마였더라?’

두 배가 되도 얼마 안 된다는 걸 생각해낸 백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두 배로 올려주지.”

“안 되면 지금 월봉의 오 할을 더…… 어? 정말요!”

“그래, 정말이야.”

“와!”

백서휘는 신나서 폴짝폴짝 뒤는 종리연을 응시하다 품속에서 서신을 하나 꺼냈다.

“세 번째 이유는 이거 때문이야.”

“이게 뭔데요?”

“널 걱정하는 누군가가 보낸 편지야.”

“관주님이에요?”

“그럴 리가.”

“그럼 누구지? 혹시 그 사람의 부탁을 받고…….”

“그 사람? 그 사람 누구?”

“남궁유운 공자요.”

“아! 걔는 절대 아니야.”

“당장 열어봐도 되죠?”

“그건 네 자유지.”

“그럼 볼게요.”

종리연은 첫 문장의 필체를 보고 바로 누가 보냈는지 알아차렸다.

“이거 아버지가 보낸 거예요?”

“응.”

종리연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서신에 적힌 내용을 집중해서 읽어나갔다.

‘백서휘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며 더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압박을 줘서 미안하다는 말이 함께 적혀 있었다.

“……말을 듣고 깨달았다?”

종리연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거짓말의 내용을 백서휘도 알게 됐을 거라 생각하니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했던 거짓말 중에 연심(戀心)이 진하게 섞인 내용까지 있어서 더욱 민망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서신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반응만 보자는 생각으로 그녀는 잠깐 고개를 치켜올렸다.

그러다 백서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왜 나를 봐? 편지에 나랑 관련된 내용도 적혀 있어? 그 거짓말이랑…….”

백서휘가 확인사살을 하자 종리연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망갔다.

“없으면 없다고 말하면 되지. 도망까지 가야 하나.”

백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취죽교로 향했다.

문제 있는 두 놈의 정신 교육과 종리연을 칭찬하는 일까지 모두 마쳤으니, 이제 남은 일을 마저 할 때였다.

“주위에 있는 성들에 홍보물 뿌리고, 소문을 내는 건 하오문보다는 개방 쪽에 부탁하는 게 낫겠지.”

사실 가장 좋은 건 둘 다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안 하는 건 하오문에게도 따로 부탁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은 개방에 먼저 들렀다가 가야겠다.”

백서휘는 오랜만에 취죽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걸은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을 금방 할 수 있었다.

“배, 백 관주님이 오셨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나겁개가 헐레벌떡 옷을 갖춰 입고 움막 밖으로 뛰어나왔다.

“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소?”

“그때 한 말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아서 왔어.”

“미, 미안하오. 그때의 나는 내가 봐도 이상했소. 회까닥해서 그런 것이니 용서 좀 해주시오.”

“미안하면 내 부탁 좀 들어줘.”

나겁개가 개방도가 된 건 옛날 옛적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쌓인 경험은 그에게 백서휘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나겁개는 속으로 욕을 하며 울상을 지었다.

“요, 요즘 밑에 놈들이 상태가 안 좋아서 대규모로 동원되는 일은 힘드오.”

“저번 공사처럼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일은 아니야.”

“어, 어떤 일이길래…….”

“석 달 후에 학무관을 개관한다는 내용의 홍보물을 뿌리고 팻말을 들고 다니면서 관원 모집하는 걸 도와줘야겠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하, 할 수 있긴 한데…….”

“몇 번 해본 일이니 익숙하니까 잘할 거야. 그렇지?”

“이, 익숙하니 잘하긴 하겠지만 만두만으로는 힘드오.”

나겁개는 용기를 내어 지난날에 잘못을 지적했다.

“이번엔 대가를 충분히 줄 거니까 주변 성들에 있는 분타랑도 연계할 준비를 해.”

“주변 성들이라면…….”

“호북성, 강서성, 광동성, 광서성, 귀주성 말이야.”

“시도는 해보겠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마시오.”

“왜?”

“그쪽의 거지들은 당신과 일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말도 제대로 안 들을 거요.”

“흠, 그럼 후개를 통해서 명령을 내리면?”

“후, 후개와 친하시오?”

“친하진 않지만 내 말은 잘 들을 거야.”

나겁개는 후개도 백서휘에게 당했다는 걸 눈치껏 알아차렸다.

“후, 후개를 통해서 명령을 내리면 우리처럼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은 잘 듣긴 할 거요.”

“후개한테 내가 하라고 했다고 말하고 협조받아서 주변 성들에 학무관을 홍보해.”

“아, 알겠소.”

“자.”

백서휘는 은자가 묵직하게 들어 있는 주머니를 나겁개에게 건넸다.

“이건…….”

“의뢰비랑 저번에 안 준 돈 같이 담았어.”

“저, 정말이오?”

“정말이니까 받은 만큼 열심히 일하는 게 좋을 거야.”

백서휘의 말이 믿기지 않았던 나겁개는 돈의 액수를 슬쩍 확인했다.

그가 평생을 거지 생활하며 받은 돈 중에 가장 많았다.

“소처럼 일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겁개는 저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를 애써 참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럼 난 간다.”

백서휘는 바로 하오문의 밀실로 직행했다.

유소화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를 맞아주며 물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셨어요?”

“꽤 어려울 수 있는 의뢰를 좀 하려고 왔어.”

“어떤 의뢰죠?”

“장사로 들어오는 무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 줘.”

“모든 무인을요?”

“일단은.”

“‘꽤’가 아니라 아주 난도가 높은 의뢰인데요?”

“늘 하던 일이잖아?”

“모든 무인을 다 확인하지는 않아요. 특이점이 있는 사람들만 보죠. 주의해야 할 인물이거나 무림맹 혹은 사도련에 수배 중이라거나…….”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지. 학무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모든 무인을 예의주시해 줘.”

“어떤 행동을 취하면 모를까. 그냥 봐서는 학무관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잖아요.”

“학무관에 대해서 수소문하거나 정보를 알아보는 자들 위주로 알아보면 돼.”

“학무관은 언제 여실 건데요?”

“석 달 후에 열 거야.”

“그러면 관심을 가질 자들이 너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해야 돼.”

“이유가 있나요?”

“날 노리는 자가 있거든.”

혼천회처럼 자신을 노리는 자들에게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없었다.

백서휘는 업보가 나쁜 쪽으로 돌아올 거라 확신했다.

“제게 바라는 건 그러면…….”

“나에 관해서 묻거나 학무관에 관해 묻는 자들에 대한 놈들을 특정해서 나한테 알려주기만 하면 돼.”

“아! 확실히 그러면 모든 무인을 조사하는 게 아니니 범위를 좁힐 수 있겠네요.”

“그래.”

“혹시 이것 말고 더 부탁하실 일은 더 없나요?”

“얼마 후면 사천으로 가는데 그쪽에 특이사항은 없나? 동남동녀가 실종된다든가, 목내이가 발견되는 일이 잦다든가.”

“갑자기 그런 일은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평범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꼭 그 주변에 일이 터지거든.”

돌이켜보면 암중단체가 일을 벌일 때는 웬만하면 전조 현상이 있었다.

혈교 때는 고수들의 시체가 사라졌고, 포달랍궁 때는 동남동녀가 납치당했으며, 천지회 때는 사람이 아닌 것들을 목격한 일이 많이 나왔다.

이러한 전조 현상을 미리 알아낸다면 큰 사고가 일어나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딱히 그런 일은…… 아! 이것도 특이사항인지는 모르겠는데 당가가 금속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어요. 외부에 나갔던 무인들도 다들 불러들이고 있고요.”

“왜?”

“사천의 패권을 잡는 게 당가의 숙원인데 이번에 그 숙원을 이루려나 봐요.”

“잠깐만, 숙원?”

백서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