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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27화 (127/202)

귀환무관 127화

백서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는 종리혁에게 다가갔다.

“잠깐 공력이 돌아왔나 확인 좀 할게.”

종리혁은 제정신이라면 절대 내주지 않을 완맥을 쉽게 내주었다.

백서휘는 그의 완맥에 진기를 조심스럽게 불어넣어 단전을 살폈다.

흩어진 공력이 다시 돌아왔는지 빈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백서휘는 흘려 넣었던 진기를 다시 회수하며 종리혁의 완맥을 놓아주었다.

“공력도 돌아왔는데 이제 뒷수습 좀 하지?”

종리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백서휘는 그의 귀에 대고 말을 하였다.

“별것도 아닌 일로 계속 그렇게 실혼인(失魂人)처럼 행동할 거야?”

“이게 어떻게 별것도 아닌 일이야!”

“걔가 살면서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연이는 내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사람이 어떻게 살면서 거짓말을 안 해. 선의로든, 악의로든 사람은 거짓말을 다 하게 되어 있어.”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내겐 한 적 없다.”

종리혁은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종리연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네.”

“연이가 왜 그런 건지 알 것 같다고?”

“그래, 지금 그쪽이 말하는 태도 보니까 딱 답이 나와. 내 딸은 착해. 나를 여태 실망시킨 적 없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내 딸은 효녀야. 내 말은 무조건 듣지. 이런 말 혹은 생각들, 당신한테 익숙하지 않아?”

종리혁이 떨리는 눈동자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당신의 폭압적인 믿음 때문에 종리연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왜냐? 자기를 절대적으로 믿는 아버지를 실망시키기 싫으니까. 아마 이번에 일어난 일도 당신 강요 때문일걸?”

종리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혼자서 생각해 볼 시간을 줄 테니까 좀 추스르고 나와.”

백서휘는 오룡단과 무림맹 측 인물들과 함께 밖에서 종리혁이 나오길 기다렸다.

일각이 조금 안 됐을 때, 종리혁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잠깐 사이에 그의 이마 주름이 두어 개는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뒷수습한 다음에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이만 가보마.”

“이 판국에 우리가 계속 여기 머무를 수도 없으니 우리는 일월객잔에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그리로 사람을 보내.”

“알았다.”

백서휘는 일월객잔까지 무림맹 측 인원들과 오룡단을 인솔했다.

“공력 돌아올 때까지는 다들 붙어 있는다.”

제갈진천과 제갈선우, 당진우와 당기준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공력이 먼저 돌아왔다고 싫어하던 놈을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예!”

백서휘가 복면인을 학살하는 걸 봤기에 다들 명령을 어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니 사람들의 흩어졌던 공력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경지가 높은 순부터 복구된 터라 누가 제일 강한지 다들 알게 되었다.

“저, 저 공력 돌아왔어요.”

가장 약한 모용진을 마지막으로 모두의 흩어졌던 공력이 돌아왔다.

“그럼 공터로 가서 무공 제대로 펼쳐지나 확인해.”

“네!”

모용진이 객잔 뒤편에 있는 공터로 뛰어갔다.

* * *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사도련에서는 기별이 없었다.

추종호의 뜻을 따랐던 문파가 너무 많아서 그들의 처우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마냥 기다리고만 있기엔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쩌지?’

팔짱을 끼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백서휘는 해야겠다는 마음만 먹고 처리하지 않은 일 중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하오문에 들러야겠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추적하는 것과 실마리가 있는 상태에서 사람을 추적하는 건 차이가 컸다.

‘손운산의 용모파기를 알려줬으니 지금쯤이면 위치 파악이 다 끝났겠지.’

백서휘는 일월객잔을 나와 하오문의 강서성 지부로 향했다.

객잔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하오문의 강서성 지부까지 가는 건 금방이었다.

하오문도에게 암구호를 대고 밀실에 가니 강서성 지부장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군요!”

“왔으니까 모아놓은 정보나 얼른 줘.”

“알겠습니다.”

강서성 지부장은 두루마리를 여러 개 가져왔다.

그중엔 초상화가 그려진 것도 있었고, 마지막 목격 지점과 예상 출몰 지점이 어딘지 적힌 것도 있었다.

‘사흘 전에 강서성의 여강(余江)에서 목격됐다고?’

여강은 남창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였다.

손운산이 전력으로 신법을 펼쳤다면 지금쯤 남창에 들어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조심해야겠어.’

백서휘는 밖으로 나와 객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기감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다.

감지 범위가 점점 커지면서 수많은 사람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가깝게는 강아지와 뛰어노는 꼬마부터 시작해서 멀리는 파천권마 손운산까지.

“……!”

어쩐지 있을 것 같더라니.

백서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객잔을 들어갔다.

저번과 다르게 남궁민 혼자서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사도련에서 연락 안 왔지?”

“왔어요.”

“왔다고? 언제?”

“일각 전쯤에 와서 관주님 오면 사도련으로 와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바로 와달라고 한 거지?”

“네.”

“가봐야겠네.”

백서휘는 객잔을 나와 사도련으로 직행했다.

기감을 최대 범위로 넓혀 살피니 손운산은 여전히 자신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공격하려고 이러는 거지? 그냥 내가 먼저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계속 모르는 척해?’

사도련에 다다를 때까지 고민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나저나 종리혁은 뭐 때문에 나를 부른 거지?’

종전 협정 때문에 불렀다면 모든 인원을 다 불렀을 거다.

근데 자신만 따로 부른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일단 들어가고 보자.’

사도련 안으로 들어가니 손운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는 사도련의 입구가 잘 보이면서 숨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이쪽을 향해 종리혁의 부하가 헐레벌떡 뛰어와 길안내를 했다.

아무 말없이 그를 따라가니 종리혁의 집무실이 나왔다.

“일주일 만에 보는 건가?”

“그래.”

“좀 더 반기면 안 되나? 그래도 일주일 만에 만난 건데?”

“우리가 오랜만에 봤다고 서로를 반길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냉정한 녀석.”

“잡담은 이쯤에서 끝내자고. 서로 바쁜 사람이잖아.”

“그러지.”

“뭐 때문에 나를 부른 거야? 나만 부른 걸 보면 종전 협정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 있어서 너를 찾았다.”

“종리연과 관련된 일을 상담하려는 거면 사람 잘못 찾았어.”

“연이와 관련된 일이 아니야.”

“그럼?”

“추종호와 뜻을 같이한 문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부 죽이면 사도련이 사라지게 되고, 살리면 내 친위 세력 중의 반이 이탈하게 돼.”

확실히 어려운 문제였다.

종리혁이 일주일 동안 번민할 만했다.

그가 종리혁의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 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사안이었다.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야겠다.’

힘의 균형도 그렇고 사파라고 해서 무작정 다 죽일 녀석들만 있는 건 아니니 사도련이 존재해 주는 편이 사파인들을 통제하기 훨씬 좋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을 조금만 줄 수 있을까?”

“얼마든지 주지.”

백서휘는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 이러면 되겠네. 그냥 부련주 문파만 본보기로 다 죽이고 나머지 문파는 놔두면 되지.”

“나도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야.”

“생각만 하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기라도 한 거야?”

“처벌이 약하다는 말이나 내가 무르다는 말이 나오게 될 거다.”

“그까짓 말들은…….”

“사파는 얕잡아 보이면 끝이야.”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누가 얕잡아 봐.”

“앞에선 설설 기어도 뒤에선 다를 수 있지. 지금은 죽은 추종호처럼.”

“음……. 그러면 그 살려둘 문파에도 제재를 가하는 건 어때? 너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이득을 볼 수 있게 해주면 되잖아.”

“어떻게?”

“추종호와 뜻을 같이한 문파에서 돈을 거둬서 그 돈을 친위 세력들이 나눠 가지게 하든가.”

백서휘의 제안을 잠시 고민하던 종리혁은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은 생각이군. 그렇게 해야겠어.”

“고민은 이게 전부인가?”

“연이에 대한…….”

“그건 빼고.”

“그렇다면 없다.”

“그럼 이제 답을 줄 때가 됐네.”

“답?”

“종전 협정 언제 할 거야?”

“내일 하도록 하지.”

“조건은 같아?”

종리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진짜 그런 양심 없는 짓을 하면 내 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더 받으려는 게 아니다. 안 받으려고 한다.”

“진짜 괜찮겠어?”

“네게 목숨값을 빚졌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좋아, 그러면 내일 아무 조건 없이 종전 협정을 맺는 거다?”

“그래.”

다음 날.

종리혁과 백서휘는 아무런 조건이 적이지 않은 종전 협정서에 동시에 인장을 찍었다.

“바로 장사로 돌아갈 건가?”

“그래야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종리연이랑 관련된 거지?”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

“부담스럽지 않은 거라면 들어줄 용의가 있어.”

“연이에게 이 서신만 전해주면 된다.”

“그게 끝이야?”

“그래.”

“그럼 줘. 종리연한테 전해줄게.”

백서휘는 종리혁에게 받은 서신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부탁은 더 없는 거지?”

종리혁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가볼게. 인연이 되면 또 보자고.”

“잘 가라.”

사도련을 빠져나온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쪽 인물들은 마차를 타고 남창을 벗어났다.

그제야 백서휘는 잠시 잊고 있던 누군가의 존재를 떠올렸다.

공격할 때가 된…….

쾅!

제일 앞서가던 마차가 부서지면서 무림맹 측 인물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백서휘는 오룡단에게 조용히 마차에서 내려서 다른 곳에 가 있으란 명령을 내렸다.

그다음 마차 지붕에서 내려오면서 온몸에 감각을 증폭시켰다.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안대로 가리지 않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선물은 잘 받았나?”

“선물?”

“선물이랑 서신을 받고 감동해서 이렇게 날 죽이러 온 거 아니었어?”

손운산은 백서휘가 말한 선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백서휘!”

“뭐 그렇게 힘을 줘서 부르나. 그냥 나처럼 손운산, 이렇게 부르면 되지.”

“네 목을 잘라서 손자의 영전에 바치겠다.”

“맨손으로는 어렵지. 손태호도 그래서 죽은 거고.”

“이놈! 죽여주마!”

조롱을 견디다 못한 손운산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공중에 있으니 피하기 쉽지 않겠지. 경천신뢰!’

백서휘는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번개같이 빠르게 휘둘렀다.

손운산은 공중에서 크게 회전하며 발뒤꿈치로 검을 내리찍었다.

쾅!

손이 아려올 정도로 손운산의 공격이 강하다는 사실에 백서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더 싸워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손운산은 화경과 현경 사이의 애매한 경지인 것 같았다.

눈먼 칼에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백서휘는 검에 의념과 진기를 함께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강이 더욱 단단해지고 예리해졌다.

그때였다.

무언가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나 마나 손운산의 공격일 터.

백서휘는 한계까지 끌어올린 감각으로 어떤 방향에서 공격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정확히 감지했다.

콰콰쾅!

간을 보려는 왼쪽 주먹을 연속해서 경천신뢰를 펼쳐 막아내고.

카앙!

진짜 공격인 오른쪽 주먹을 발지의천의 초식으로 올려 친다.

순간 손운산의 상체를 가로막는 모든 게 사라졌다.

이제 내 차례야.

백서휘는 기다렸다는 듯 일검관천의 초식을 날렸다.

쐐애애액!

그의 검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며 손운산의 심장을 노렸다.

위기일발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손운산은 방어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뭐지? 함정인가?’

양손이 공격과 방어를 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다.

‘검을 회수할까? 아니면 계속 공격할까?’

불안했던 백서휘는 찰나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같은 기회는 웬만해선 오지 않아. 그리고 내겐 독령이 있어!’

예상치 못한 반격이 있더라도 독령의 ‘신순’이면 능히 방어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백서휘는 검을 회수하지 않고 오히려 더 힘차게 내뻗었다.

“죽어라!”

그때 손운산의 입가에 그림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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