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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19화 (119/202)

귀환무관 119화

백서휘는 달리는 마차 천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말들이 땅을 박찰 때마다 구름의 모양이 확확 달라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렇게 여유롭게 삶을 즐기던 날이 얼마나 있었는지 떠올려 봤다.

스승의 손에 잡혀 있을 때나 수호문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는 몇 번 없었던 반면, 장사로 돌아온 이후에는 종종 있었다.

잘 돌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좀 더 무리해서 일찍 돌아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아니야. 이것보다 빨리 올 수는 없었어.’

역대 수호문주 중에서 자기 삶을 살았던 사람은 손에 꼽았다.

스승마저도 일평생을 노력했지만 자기 삶을 살지 못했다.

‘나는 달라.’

스승의 전성기보다 더 강해진 자신이라면 수호문주와 백서휘로서의 삶을 양립할 수 있으리라.

그때였다.

푸른색 옷을 입은 무사가 관도 중앙으로 걸어오더니 소리쳤다.

“정지!”

“관주님, 어떻게 할까요?”

마부 역할을 맡은 남궁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멈춘다. 당가 쪽에도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

“네!”

백서휘 일행의 마차와 당가의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잠시 후 완전히 멈췄다.

“잠시 검문 좀 하겠습니다.”

백서휘가 마차 천장에서 땅으로 뛰어내렸다.

“보아하니 관군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관도에서 검문을 해도 되는 건가?”

“마두를 쫓고 있어서 그러니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무사의 말은 정중하게 했지만, 어조와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거야 그쪽 사정이지.”

“마차에 마두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협조해 주시는 편이 그쪽과 일행분들의 신상에 이로울 겁니다.”

“지금 협박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푸른 옷을 입은 무사가 휘파람을 불자 관도 밖에 숨어 있던 이들이 걸어 나왔다.

숨어 있던 이들도 관도에 있던 자처럼 똑같이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며 검문을 담당한 자의 뒤에 서서 이쪽을 노려봤다.

‘무력시위를 하겠다?’

그때 당가의 마차에서 당진우가 걸어 나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마두를 쫓고 있다면서 이쪽을 검문하겠다는데?”

“저희를 말입니까?”

“그래.”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당진우가 푸른 옷을 입은 무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쪽 소속이 혹시 사신단(四神團) 맞습니까?”

“예, 무림맹 사신단 휘하의 청룡단……. 이런, 당가분이셨군요.”

청룡단원은 뒤늦게 녹의에 수놓아진 ‘당(唐)’이란 글자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림맹으로 바쁘게 가봐야 해서 그러는데 검문을 생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청룡단원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였다.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서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색 연기가 치솟아 하늘로 올라갔다.

뒤에 서 있던 이 중 하나가 그걸 보고 소리쳤다.

“조장님! 신호탄입니다!”

“어디?”

“저깁니다!”

청룡단이 황급히 다른 곳으로 떠났다.

백서휘는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다시 마차의 천장 위에 올랐다.

“출발!”

두 대의 마차는 다시 무한을 목표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반 시진이 조금 안 되게 달렸을까?

백서휘와 남궁민은 하얀 옷을 입은 무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곳은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돌아가시오!”

하얀 옷을 입은 무사 중 하나가 이쪽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관주님, 어떻게 할까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돌아가자. 당가 쪽에도 그렇게 전해.”

“네!”

백서휘 일행과 당가는 마차를 멈춘 후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관도 밖에서 온몸에 피칠갑을 한 마두가 튀어나왔다.

“마두다! 마두가 나타났다!”

“모두 공격!”

마두는 적수공권(赤手空拳)임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하얀 옷을 입은 무사들을 죽여 나갔다.

‘저놈 무공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자마자 바로 답이 나왔다.

십대마가 중 멸문하지 않은 다섯 곳.

그중에서도 손가의 무공과 같았다.

‘이놈은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내가 십대마가의 반절을 멸문시킨 걸 보고 겁먹어서 숨어 사는 것 아니었나?’

이유야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저놈이 남은 오대마가 중 손가의 사람이라면 개입할 이유가 충분했다.

백서휘는 마차 천장에서 폴짝 뛰어내려서는 하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땅을 박차며 내는 소리를 들은 건지 마두가 이쪽을 바라봤다.

멀찍이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마두의 얼굴이 무척 젊었다.

나이를 확실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약관쯤 되어 보였다.

‘젊은 놈이 저리 강하다는 건 손가의 직계 자손이면서도 중요 인물이라는 건데……. 설마, 손가의 소가주인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대어에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흐앗!”

마두가 하늘을 부술 듯한 기세로 주먹을 내뻗었다.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밟아 그의 뒤로 스르륵 돌아갔다.

마두는 주먹에 아무런 감촉이 없다는 사실에 이상함을 느꼈다.

“파천권마(破天拳魔) 손운산이랑은 어떤 사이지?”

뒤에서 느껴지는 말소리에 마두가 홱 하고 몸을 돌렸지만,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답 안 해줄 건가?”

“조손 관계다.”

마두는 말을 하면서 다시 몸을 회전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등 뒤에 백서휘가 서 있었다.

“조손 관계라…….”

“조부님을 어떻게 아는 건지 말해.”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는 걸 본 적 있으니까 알지.”

“조부님이 도망을 갔다고? 중원 놈들은 도발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도발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너무 어려서 옛날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하나만 더 묻지. 가문의 어른들이 중원에 가면 누군가를 조심하라고 일러주지 않던?”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

떠오르는 말이 있긴 한지 마두가 표정을 굳혔다.

“네가 그 수호문의 문주란 놈이냐?”

“교육을 받긴 했나 보네.”

“잔말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네가 그 수호문의 문주란 놈이냐?”

“그래, 내가 수호문의 당대 문주 백서휘다. 이제 ‘좆됐다’는 생각이 들지?”

마두는 별다른 대꾸 없이 양쪽 주먹을 눈높이에 올렸다.

“오!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던 누구랑은 다르게 용감한 선택을 했네. 이러면 상을 안 줄 수가 없지. 무슨 상이냐면…….”

백서휘가 일순간 사라졌다가 마두의 뒤에서 나타났다.

“제사상이야”

마두는 당황하지 않고 곧장 오른쪽 팔꿈치를 뒤로 날렸다.

탁!

백서휘가 손으로 마두의 오른쪽 팔뚝을 잡았다.

마두는 오른쪽 팔뚝을 빼내고 황급히 다른 곳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그렇겐 안 되지.”

백서휘는 잡고 있던 마두의 팔뚝을 자기 쪽으로 확 잡아당기면서 발뒤꿈치를 툭 찼다.

마두가 균형을 잃고 땅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청룡단이 관도 밖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이전보다 수도 적었고 크고 작은 상처도 하나둘씩 달고 있었다.

“마두다! 마두가 저기 있다!”

백서휘는 청룡단을 슬쩍 한번 보고는 쓰러진 마두의 가슴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소협! 소협의 발밑에 있는 그자는 우리가 쫓던 마두 놈입니다.”

“그래서?”

“그자를 저희에게 넘기시면 무림맹 차원에서 소협에게 사례는 반드시 할 겁니다.”

청룡단원은 당가를 신경 쓰는지 제법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놈을 넘기라고?”

“예!”

“음…….”

마두가 벗어나려고 뒤집힌 바퀴벌레처럼 발버둥 쳤다.

백서휘는 마두를 발등으로 올려 쳐서 띄운 후 팔꿈치로 내려찍었다.

“크억!”

마두는 피를 분수처럼 토해내며 다시 땅에 떨어졌다.

백서휘는 조금 전과 똑같이 마두의 가슴 위에 발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가해지는 압력이 어마어마해 마두는 조금도 움직이지를 못했다

“안 넘길래.”

“넘기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왜 내가 내 힘을 써서 잡은 걸 넘겨야 하는 거지?”

“저희가 상처를 입혀서 소협이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저놈 몸에 묻은 피는 다…….”

“이놈 피가 아니라 너희들 피겠지.”

“소협의 뒤에 있는 당가를 믿고 그러시는 거면 실수하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어. 내가 당가보다 더 대단한 존재거든. 안 그래?”

“저희 가문보다 대단한 존재 맞습니다.”

뒤에서 걸어오던 당진우가 아주 흔쾌히 인정하자 청룡단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진짜로 그 마두를 넘기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알아볼 거 다 알아보고도 이놈이 살아 있다면 그때 넘겨줄게.”

청룡단원이 당진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십익(十翼)은 이번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맘대로 하십시오.”

당진우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을 떠난다.”

청룡단과 하얀 옷을 입은 자들이 부상자를 챙겨서 다른 곳으로 갔다.

백서휘는 발밑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마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손운산을 끌어내려면 이놈이 죽는 쪽이 나을까? 아니면 살아 있는 쪽이 나을까?’

남에게서 받은 은혜는 깊어도 갚지 않으면서 원한은 얕더라도 백배 천배로 갚아야 한다는 게 손가의 신조였다.

그런 신조를 지닌 놈을 끌어내려면 인질로 잡는 것보다는 죽이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을 증폭시킨 상태에서 분근착골을 하면 되겠지.’

백서휘는 마두를 강제로 앉힌 후에 감각을 증폭시키는 약을 꺼내 먹였다.

“이, 이게 무슨…….”

백서휘는 마두의 완맥을 짚고 진기가 몸에 어떻게 흐르는지 살폈다.

‘마인(魔人) 맞군.’

마인은 일반적인 무인과 반대로 진기가 흐르기 때문에 분근착골을 할 때는 순(順)의 성질을 가진 진기를 흘려 넣어야 했다.

백서휘는 마두의 혈도와 혈맥에 순의 성질이 담긴 진기를 주입했다.

마두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진기의 움직임이 빠르게 멎어갔다.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고 순방향으로 진기가 흐르는 순간, 마두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악!”

백서휘는 순의 성질을 가진 진기를 회수하고, 역의 성질을 가진 진기를 넣었다.

마두는 조금 전과 다르게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안 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조금 전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마두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름.”

“소, 손태호.”

“가문 내에서 맡은 직책 같은 게 있나?”

“소, 소가주입니다.”

백서휘는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이 기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간다. 강호엔 왜 출도한 거야? 너희들 숨어 지내는 거 아니었어?”

“그건…….”

마두가 대답을 바로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고통을 좀 더 줬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일찍 풀어줬다. 자, 다시 간다!”

백서휘는 다시 순의 성질을 가진 기운을 손태호의 혈도와 혈맥에 흐르게 했다.

“으아아아아악! 마, 말하겠습니다. 말하게 해주세요. 끄아악! 제발…….”

“아니야, 아직 너는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어.”

“끄아아아악! 살려, 살려주세요!”

“이번엔 제대로 대답할 거지?”

“예!”

백서휘는 다시 역의 성질의 진기가 혈도와 혈맥에 흐르게 만든 후 질문을 던졌다.

“계속 숨어 지내지 않고 중원으로 들어온 이유가 뭐야?”

“천마의 유물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천마? 십대마가의 수좌에 있던 그 진가의 보물을 말하는 거야?”

“……십대마가가 성립되기 훨씬 이전 시기에 있었던 천마의 유물을 말하는 겁니다.”

십대마가가 성립되기 훨씬 이전의 시기라면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쉬던 시대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그 당시의 천마는 십대마가 중 진가의 가주에게 허락된 직책이 아니라, 만마(萬魔)의 조종(祖宗)이며 하늘이 정한 질서를 깨부수는 혼돈의 존재였다.

그런 천마가 남긴 유물이라니, 백서휘로서는 군침이 안 돌 수가 없었다.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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