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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00화 (100/202)

귀환무관 100화

려강을 떠난 날로부터 하루가 지났을 때 정말 지독하게 몸이 아팠다.

불사림주가 펼친 술법의 힘이 아직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둘째 날에는 천의일기공과 용의 피가 합쳐지며 상승효과가 나타나 빠르게 몸이 좋아졌다.

마지막 날 대리에 도착했을 때, 백서휘의 몸은 완벽히 회복되었다.

‘이놈들은 어디 묵고 있으려나?’

그때 익숙한 기운을 가진 자가 그의 기감에 갈렸다.

‘남궁민?’

남궁민은 쪼그려 앉아서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백서휘를 발견하고는 진심으로 반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날 기다린 건가?’

가족들 말고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남궁민을 보며 백서휘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관주님!”

“다른 놈들은 어디 있지?”

“한 명은 객잔에 있고 나머지 세 명은 다른 문들에 있어요.”

“어느 객잔에 있는데?”

“객잔 거리 초입에 있는 다향객잔이요.”

“나는 다향객잔이란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른 문들에 있다는 나머지 놈들 다 데려와.”

“네!”

거리 초입에 있다는 확실한 설명 덕분에 헤매지 않고 다향객잔을 찾을 수 있었다.

백서휘는 주렴을 헤치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제갈선우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

“……과, 관주님, 살아계셨군요!”

“왜 이렇게 크게 기뻐해? 설마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야?”

“무사 생환하셔서 기뻐하는 겁니다. 다들 걱정을 무척 많이 했으니까요.”

“거짓말.”

백서휘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제갈선우를 바라봤다.

“이런 거로 거짓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긴 한데 조금…….”

팔짱을 낀 백서휘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비죽거렸다.

“뭐, 좋아. 다들 걱정했다고 치고 이제 더 중요한 건으로 넘어가자고.”

“중요한 일이라면…….”

“돌아가는 일 말이야.”

“제갈세가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니, 받아야 할 건 다 받아서 그쪽에 들를 이유는 없어. 그냥 장사에 도착하는 대로 서신 한 장 정도만 보내놓으면 될 거야.”

순간 제갈선우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아직 가문에 감정이 남아 있나 보군”

“거의 평생을 그곳에서 보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감정은 빨리 추스르는 게 좋을 거야. 나를 위해서든, 너를 위해서든.”

“……알겠습니다.”

때마침 나머지 오룡단원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몇 번 함께한 전투로 전우애 비슷한 것이 생겼기에 그들은 진심으로 백서휘를 반겼다.

“집으로 돌아가자.”

백서휘와 오룡단은 짐을 챙겨 호남성 장사를 향해 바쁘게 말을 몰았다.

* * *

백서휘와 오룡단은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장사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확실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쉴 만큼 쉬었겠지.’

백서휘는 바로 오룡단을 연무장에 집합시켰다.

“오늘 너희들을 집합시킨 건 누군가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백서휘의 말을 듣자마자 제갈선우가 오룡단의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전음을 보냈다.

『잘못한 사람 있으면 지금 나한테 말해. 그래야 내가 책임지고 보호해줄 수 있어.』

『난 잘못을 저지른 적 없다.』

당기준은 짧게 말하고는 눈을 완전히 감아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조금도 신경 쓰기 싫은 모양이었다.

제갈선우가 볼 때도 당기준은 몰래 했으면 몰래 했지 들킬 만한 사고를 치는 인간이 아니었다.

『황보 동생도 잘못한 거 있으면 말해보지, 그래?』

『황보 동생‘도?’ 제갈 형에게 뭔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있어?』

『당기준이 제일 먼저 이야기했어.』

제갈선우는 당기준이 한 말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황보정석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그걸 고백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데?』

『황보 동생부터 말해.』

『난 잘못한 거 없어. 도박장 안 가기로 한 약속도 계속 지키고 있고, 장사의 현상수배범을 잡으라는 명령도 쉬면서 계속 수행 중이었다고.』

『진짜 잘못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없는데 목격한 건 하나 있어.』

『뭘 목격했는데?』

『며칠 전에 남궁민이랑 모용진이 드잡이질하는 걸 봤어. 그거 때문에 지금 이러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때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던 남궁민이 제갈선우에게 전음을 넣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어떤 잘못?』

『모용 형이랑 싸웠는데요.』

『무슨 문제로?』

『모용 형이 자꾸 놀리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가서…….』

『모용진이 잘못했단 거지?』

『네.』

제갈선우가 슬쩍 모용진을 봤다.

모용진은 얼굴에 철판이 깔렸는지 아주 대범하게 서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놈치고는 너무나 당당한 태도였다.

제갈선우는 그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모용진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계속 지켜만 보고 있던 백서휘가 질문을 던졌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해봐. 맞히면 벌칙 한 번 면제해 줄게.”

제갈선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모용진과 남궁민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모용진이 남궁민을 괴롭힌 것 때문에 부르신 거 아닙니까?”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인데?”

“저, 저는 남궁민을 괴롭힌 적이…….”

백서휘의 매서운 눈이 모용진에게로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모용진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있어요.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조용.”

순시간에 장내가 고요해졌다.

“모용진에 대한 처벌은 일단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겠다. 지금은 내가 던진 질문에 집중해. 답이 뭔지 알면 바로바로 손을 들고.”

오룡단은 돌아가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말했지만 정답을 맞힌 자는 나오지 않았다.

“집합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너희들이 약자이고 죄인이기 때문이다.”

“약자이고 죄인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되묻는 모용진을 보며 백서휘는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왜 끼어드는 거지? 아직 내 말 다 안 끝났는데?”

“그,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그만…….”

백서휘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뽑아 모용진의 목에 겨누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용서를……!”

“보이나? 이래서 너희들이 약자고 죄인이라는 거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저항할 수 없고, 상대를 징치할 수 없지. 오히려 반대로 강자에게 당할 뿐이야. 약한 건 ‘죄’거든. 당장 수주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 봐. 내가 때맞춰 안 왔으면 너희들은 죽었을 거야.”

“약자와 죄인을 그만두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서휘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거 아니겠어? 강자가 되면 돼.”

“그럼 그 강해지는 법을 제게 알려주십시오.”

“안 그래도 그러려고 불렀어. 너희들이 싸우는 거 보면서 무척 답답했었거든.”

“정말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시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수주에서 약하면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황보정석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어떤 식으로 가르쳐 주실 건지…….”

“지옥 훈련.”

“지, 지옥 훈련이라면 악록산의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겨우 그걸로 지옥 훈련이라고 하면 안 되지.”

“그, 그러면…….”

“이번에 지옥의 힘이란 걸 한번 겪어 보니까 과거의 내가 너무 자비로웠더라고. 그래서 훈련의 강도와 난도를 그때보다 더 올릴 생각이야.”

“거기서 난도를 더 올리면 저희는 훈련을 받다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걱정 마, 안 죽으니까.”

백서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악록산을 향해 출발!”

“예?”

“출발!”

눈치 빠른 제갈선우가 먼저 악록산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오룡단 중 그나마 보신경 수준이 훌륭한 남궁민과 사태를 주시하던 당기준이 뒤를 이었다.

황보정석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모용진이 뛰는 걸 보고는 그제야 악록산을 향해 출발했다.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을 펼쳐서 오룡단을 뒤따라갔다.

‘이걸 실패하지는 않겠지.’

지금 오룡단이 하는 것보다 최소 서른 배는 더 심한 수련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탓에 오룡단을 빡세게 굴린다는 것에 죄책감이 조금도 없었다.

장사에서 출발한 지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백서휘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도대체 모용진 이놈은 가문에서 무공을 어떻게 배운 거야?’

경공조차 제대로 못 하는 ‘무인’이 존재한다는 게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용진은 성장시키려면 아무래도 기초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일단은 확인했으니 남궁민으로 넘어가자. 남궁민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역시 남궁혁의 존재인데…….’

남궁‘혁’은 남궁민의 다른 인격으로, 겁쟁이인 그를 대신해서 싸우는 ‘검’ 같은 존재였다.

과감하고 공격적이라 운만 따라주면 더 강한 무인을 잡는 것도 가능하지만, 잘 안 되면 남궁혁의 성격만큼 위험한 게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싸워야 하는지를 인이 박이게 가르치면 남궁혁도 변하겠지.’

다음으로 맞춤 교육 과정을 생각할 사람은 제갈선우였다.

사실 그가 제일 애매했다.

머리는 좋지만 그걸 받쳐줄 육체가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뭔가를 가르치더라도 큰 효과는 보지 못하리라 예상됐다.

‘제갈선우도 기초 훈련을 시키는 수밖에 없겠어. 나머지는 황보정석이랑 당기준만 남았나?’

황보정석은 흑뢰문과의 싸움으로 인해 동체 시력과 반응 속도가 크게 늘어 방어나 회피에 능했다.

공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공격과 관련된 능력과 기술을 키워주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당기준이었다.

독령의 존재도 존재고, 용독술과 암기술이 일천하다 보니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같이 연구하는 수밖에 없겠어.’

각각의 교육 과정에 대한 생각을 끝마쳤을 때, 백서휘와 오룡단은 악록산 입구에 도착했다.

“다 도착했으니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지옥 훈련이 진행될지 알려주는 시간을 가지겠다.”

“헉! 헉! 헉!”

“모용진!”

“네?”

“너는 제대로 달리는 법부터 배운다.”

“경공을 배우는 겁니까?”

“아니, 경공을 너무 못해서 달리기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그 위의 단계는 꿈도 꾸지 마라. 다음은…….”

백서휘는 악록산으로 오면서 오룡단을 보며 했던 생각들을 당기준을 제외한 모두에게 가감 없이 풀어냈다.

“약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네!”

“일각 동안 휴식을 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겠다.”

“……관주님, 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당기준이 조용히 손을 들고 물었다.

“너는 나랑 따로 이야기 좀 하자.”

백서휘와 당기준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이쯤이면 얘기해도 되겠네.”

“무슨 얘기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지…….”

“네 단전에 있는 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놈이라면?”

당기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뭉쳐진 독기 말이야. 영성을 가진.”

“……제게 그런 게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자강시들에게 밀려서 너를 비롯해 모두가 죽을 뻔한 날 기억하지?”

“예.”

“그때 네가 입은 내상이 얼마나 심한지 알기 위해 완맥을 잡았는데 그때 네 단전에 독령이 있다는 걸 알게 됐지.”

“음…… 어떻게 아셨는지는 알겠습니다. 독령을 어쩌시려고 이러는 겁니까?”

“연구를 해서 그놈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이용이요?”

“그래, 이용.”

“완맥을 잡아봤으니 아시겠지만 독령이 폭주하기라도 하면 자강시에 전멸했던 수주보다 더한 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당기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다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뭐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그놈을 한번 면밀히 살피고 싶으니까 완맥이나 내밀어봐. 그때는 치료하는 게 바빠서 못 봤거든.”

“알겠습니다.”

당기준은 가부좌를 틀고 완맥을 백서휘에게 내주었다.

“시작한다?”

“네.”

백서휘는 완맥을 통해 내공을 당기준의 몸에 주입했다.

추궁과혈을 하면서 느꼈던 다른 놈들의 혈맥보다 당기준의 것이 더 크고, 단단하고, 질겼다.

‘이쪽으로 가면…….’

백서휘의 내공은 한참을 이동한 끝에 단전에 똬리를 튼 독령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독령은 겨울을 만난 곰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깨워야 하나?’

위험하더라도 반응을 유도해야만 독령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많이 모이면 제어해서 이용할 방법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어.’

백서휘의 진기가 조심스럽게 자극하자 잠에서 깨어난 독령이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상대의 기운이란 걸 알아차린 독령은 가진 몸의 일부를 떼어내어 백서휘의 내공 쪽으로 정찰대를 보냈다.

‘영성을 지녀서 그런가? 되게 똑똑하네.’

사람처럼 능동적이고 지능적이었다.

‘내 내공도 영성이 생기면 다른 상대랑 싸울 때 편할 것 같은데…….’

지금은 상황에 부닥쳐 의지를 가지는 즉시 몸과 기운이 같이 움직였다.

이것이 ‘심즉동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의 전투 과정이었다.

‘내공이 영성을 가지게 된다면 의지를 가지는 시간조차 아낄 수 있겠지.’

생각할 시간이 적어지면 더 빨리 상대에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내공에 영성을 부여하겠어.’

백서휘의 눈빛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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