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99화 (99/202)

귀환무관 99화

불사림주가 집중한 얼굴로 술법의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그를 향해 검을 쏘아 보낸 후 주위에 있는 야차들에게 난화만천수를 펼쳤다.

퍼버버버벅!

손에 담긴 힘이 워낙 대단해 야차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여유가 생기자 백서휘는 바로 불사림주 쪽을 봤다.

불사림주는 배에 검이 꽂힌 상태로 진언을 외우고 있었다.

‘저 회복력의 근원을 알아내야 하는데…….’

백서휘를 아랫입술을 깨물며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탁!

스스로 날아온 검이 손에 잡히자 백서휘는 광풍번천의 초식을 펼쳤다.

스가가가가각!

검이 닿는 범위에 있는 모든 야차의 몸이 갈려 나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백서휘의 주변 공간들이 일그러졌다.

‘상제의 수법과 유사하다.’

아니나 다를까.

일렁거리던 공간에서 쇠사슬들이 튀어나왔다.

촤르르르륵!

백서휘는 검을 휘둘러 일일이 쇠사슬들을 쳐냈다.

‘묵직하군.’

쇠사슬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대단했다.

용의 피를 먹어 근력이 강해지지 않았다면 상대하기 벅찼을 정도였다.

‘수법만이 아니라 상제의 검과 위력이 비슷해. 우습게 보면 안 되겠어.’

백서휘는 불사림주에 대한 경계 수준을 올렸다.

휘이이잉!

찬바람이 불어오니 분쇄되어 죽었던 야차들의 시체가 되살아났다.

백서휘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검병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몇 번이고 죽어서일까?

다시 살아난 야차들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그들에게서 전해진 감정을 느낀 불사림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차는 죄인들을 처벌하는 존재라 그 어떤 극악무도한 자에게도 겁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백서휘를 상대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야차들을 도와야 한다.’

지금 가능한 최선의 수는 술법을 계속 이어 펼치는 것이었다.

불사림주는 눈을 감고 빠른 속도로 진언을 외웠다.

백서휘는 야차들을 죽이고 쇠사슬을 쳐내면서도 틈틈이 불사림주를 살폈다.

불사림주는 눈을 감은 채 진언을 외우고 있었다.

곧이어 그의 양손에 불길한 느낌을 주는 보랏빛 기운이 어렸다.

술법이 완성되어 갈수록 보랏빛 기운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옴 다냐타 아미다바야 사바하!”

술법이 완성되자마자 불사림주는 양손을 쭉 내뻗었다.

보랏빛 기운이 그의 손을 떠나 빠르게 날아갔다.

백서휘는 야차들을 일 수에 죽이고는 그대로 보랏빛 기운에 검을 휘둘렀다.

검날에 닿기 직전, 보랏빛 기운이 두 개로 나뉘었다.

‘뭐, 뭐야!’

보랏빛 기운은 양쪽에서 백서휘를 노렸다.

왼쪽에서 날아오는 건 구천현현보를 밟아 피했지만, 오른쪽에서 오는 건 미처 피하지 못했다.

“으하하하! 이 결전의 승자는 내가 되겠구나!”

“승자는 네가 아니라…… 크윽! 이건 또 무슨…….”

공격을 허용한 오른쪽 어깨를 중심으로 지독한 통증이 퍼져 나갔다.

백서휘는 어금니를 악물며 불사림주를 노려봤다.

“편안히 죽고 싶다면 지금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에 절규하느라 입을 열 수조차 없을 테니까.”

“끄윽! 이따위 통증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

“하하하하! 인간이 규환지옥(叫喚地獄)의 힘을 견딘다고? 그게 되면 나 스스로 천령개를 돌로 내려쳐 죽겠다.”

규환지옥의 힘과 끓어오르는 분노가 백서휘 몸속에 흐르는 용의 피를 자극했다.

한순간에 용의 피가 왼쪽 눈에 쏠리며 불에 타오르는 듯한 통증을 백서휘가 느끼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눈까지 아프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기랄!’

백서휘는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야차들이 더는 되살아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이제 믿을 것은 지금까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아갈 길을 알려주던 왼쪽 눈뿐.

이번 역시 그러리라 믿으며 백서휘는 홍옥빛을 띤 왼쪽 눈을 억지로 떴다.

‘저건……!’

히죽거리며 이쪽을 보는 불사림주의 삼단전과 혈도에 반짝거리는 선이 있었다.

그 반짝거리는 선은 땅 깊숙한 곳까지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보자마자 어떤 식으로 불사림주가 재생력을 얻었는지 감이 왔다.

려강의 인간들에서 뽑은 정기를 땅 속에 있는 결정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쓴 것 같았다.

‘저 선을 끊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 땅 속에 있는 결정을 부숴야겠어.’

백서휘는 안전을 위해 어검비행을 펼쳐 하늘로 올라갔다.

그다음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강환을 계속 날렸다.

‘가, 강환?’

강환이 자기를 노리는 줄 안 불사림주는 방어 술법을 있는 대로 펼쳤다.

그런데 강환이 계속 땅을 향하자 그도 백서휘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차렸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처음부터 이러지 않은 걸 보면 주술사들이 불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은 의문을 접어두고 결정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떠올릴 때였다.

‘일단은 방어 술법으로 계속 버텨보자.’

시간은 불사림주의 편이었다.

백서휘의 내공은 곧 바닥을 드러나게 될 터였다.

거기다 규환지옥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부짖을 테니 급한 것 없었다.

불사림주는 끝없이 차오르는 정기를 믿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반 시진이 흘렀을 때, 백서휘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불사림주는 결정에 저장된 정기 덕분에 가진 내력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계속 내력을 써도 티가 안 났다.

그에 반해 자신은 가진 내공에 한계가 있다 보니 손해가 좀 있었다.

이것도 내공이 정순해져 한 줌씩만 가져다 써서 이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조금 전의 자신 같은 짓을 했거나 이전의 경지에 자신이 계속 머물렀다면 진작 지쳐서 불사림주에게 죽었을 거다.

‘눈도 원래대로 돌아왔군. 다른 방법을 찾아야…… 아니다. 일단은 위치를 알고 있으니 계속 결정을 노리는 게 낫겠어.’

결정이 있는 곳은 방어 술법으로 인해 파내지 못했지만, 그 주위는 많이 팠다.

계속 깎아 들어가면 언젠가는 결정도 모습을 드러낼 거라 백서휘는 믿었다.

콰콰콰쾅!

시간이 지날수록 불사림주의 표정이 구겨졌다.

‘왜 저놈은 쓰러지지 않는 거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든, 기절하든 해야 했다.

그런데 백서휘는 꿋꿋하게 버티며 강환을 미친 듯이 쏘는 중이었다.

‘계속 이러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자칫 잘못해서 집중력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술법에 실패할 테고, 그러면 백서휘의 검에 목이 달아날 수 있었다.

불사림주는 집중력이 남아 있을 때 비장의 수단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비장의 수단을 쓰면 무간지옥 가장 깊숙한 곳에서 영겁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지만 그건 죽었을 때의 일이었다.

다시 한번 신선이 되는 술법에 도전해 ‘영생’을 살게 된다면 대가 따윈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이 도박이 성공하길 빌어야겠군.’

마음을 가다듬은 불사림주는 방어 술법을 유지하면서 다른 진언을 외웠다.

려강과 그 근방의 기운이 미친년 널뛰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반은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갈라졌고, 바람은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술법을 펼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막아야 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려고 한다는 걸 백서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위험하단 생각에 그는 어검비행을 펼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야차들과 목내이로 변한 려강 사람들의 사체가 한데 뒤섞여 뭉쳤다.

‘도대체 무슨 술법을 쓰려는 거지?’

그때 사체 뭉치에 머리와 팔다리를 닮은 것이 생겼다.

지켜보고 있던 백서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사체 뭉치는 삼십 장(약 90m)이 넘는 키에 인간 형태를 가진 괴물이 되어버렸다.

사체 뭉치 괴물은 땅에 아주 깊게 손을 쑤셔 넣어 결정을 빼내고는 불사림주와 함께 몸속에 집어넣었다.

사체 뭉치 괴물과 불사림주, 정기가 담긴 결정이 한 몸이 된 것이다.

미친놈!

불사림주가 상식을 뛰어넘는 또라이인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롸라라락!

사체 뭉치 괴물은 괴성을 내지른 후 공중에 떠 있는 백서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다!

몸집이 커서 움직임이 둔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체 뭉치 괴물은 생각보다 훨씬 재빠르고 날쌨다.

백서휘는 격통을 참으며 어검비행으로 날아다녔다.

‘제기랄! 술자를 죽여야 술법이 풀릴 텐데 이래서는…….’

방법은 사체 뭉치 괴물을 쓰러뜨리고, 결정을 부순 후에, 불사림주의 목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공격을 피하며 계속 방법을 궁리해 봤지만, 답이 안 나왔다.

아무래도 사체 뭉치 괴물을 죽인단 전제 조건부터 글러먹은 것 같았다.

‘일단 강환부터 날려보자.’

허공에 멈춘 백서휘가 강환을 만들어 사체 뭉치 괴물에게 날렸다.

콰아아앙!

강환이 작렬하며 사체 뭉치 괴물의 몸을 이루는 시체들을 소멸시켰다.

크워어!

사체 뭉치 괴물이 울부짖자 주변에 있던 다른 시체들이 날아와 몸에 붙었다.

그러더니 언제 타격을 입었냐는 듯 몸을 재구성했다.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크어억!’

견디기 힘든 격통이 백서휘의 온몸을 잠식해 갔다.

그때 회복이 끝난 사체 뭉치 괴물이 그에게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피해야 돼!’

평소라면 심즉동 경지의 고수답게 바로 반응해 피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공격을 피하겠단 의지는 품었지만, 고통에 몸이 뒤틀리는 바람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체 뭉치 괴물에게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야바위로 고수란 이름을 따낸 게 아닌 백서휘는 검으로 사체 뭉치 괴물의 공격을 막았다.

콰아아앙!

피해야 하는 공격을 막는 바람에 입은 타격이 무척 컸다.

백서휘의 입에서 나온 검붉은 피가 입에서 턱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데 내상까지 크게 입으니 제대로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자세를 제대로 못 잡으면 죽는다.’

백서휘는 필사의 의지로 자세를 바로잡고는 흐릿한 눈으로 사체 뭉치 괴물을 응시했다.

『포기해라.』

머릿속에 불사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져!”

『여기서 포기하면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겠다.』

수련할 때나 스승을 보조했을 때, 수호문주가 되어 중원을 수호했을 때 등등.

백서휘에겐 생사의 갈림길이 아주 많이 있었다.

‘그때 포기했다면 여기가 아니라 저승에 있었겠지.’

그는 애초에 포기란 선택지를 고른 적이 없다.

그건 그가 살아온 삶 동안 항상 그래왔던 바였다.

그렇기에 불사림주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포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되지도 않는 수작 부리지 말고 덤벼! 이 새끼야!”

백서휘는 사체 뭉치 괴물의 정면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사체 뭉치 괴물이 조금 전처럼 주먹을 내뻗었다.

백서휘는 방향을 확 틀어 그 공격을 피하고는 거대한 검강이 휘감긴 검을 휘둘렀다.

‘광풍번천!’

사체 뭉치 괴물을 반드시 분쇄해 내겠단 의지로 그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크워어어억!

사체 뭉치 괴물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한 백서휘는 검에 공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포도처럼 동글동글한 검환 수십 개가 검신을 에워쌌다.

“천강무극(天罡無極)!!!”

백서휘는 검환 모두를 사체 뭉치 괴물에게 쏘아 보냈다.

검환들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고속으로 날아갔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밝은 섬광이 터졌다.

크워어어억!

사체 뭉치 괴물이 속살을 드러낸 채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에 있는 죄인들처럼 고통에 절규했다.

‘결정이 보인다!’

백서휘는 지체하지 않고 강환을 만들어 쏘아 보냈다.

쩌저적!

결정은 깨진 거울처럼 갈라지더니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동력을 공급하는 결정이 사라지자 괴물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불사림주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백서휘를 올려다봤다.

“사, 살려주면 영생불사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겠다.”

“증명해 봐.”

“즈, 증명?”

“진짜 영생불사할 수 있다면 내 검에 죽지 않겠지.”

“아, 아직 비법을 완전히…… 컥!”

백서휘는 불사림주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는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후드득 소리가 나며 그의 검에 묻어 있던 붉은 피가 땅에 떨어졌다.

“영생불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백서휘는 다친 몸을 이끌고 대리 쪽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