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92화
“……맥이 뛰지 않아 해부하여 확인해보니 심장이 뛰질 않았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겁니까?”
제갈진천이 우리에 갇힌 제갈세가의 무사를 가리켰다.
제갈세가의 무사는 사지가 부러지고 배 속의 내장이 다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알아낸 건 죽었는데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 하나뿐입니까?”
“머리에 이놈을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추정은 하고 있습니다.”
“추정이라면 확실하진 않다는 거군요.”
“여기서 뭔가를 더 알아내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실험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실험체를 더 구하려면 무사들을 파견해야 합니다.”
“실험체만이 아니라 융중산과 양양으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무사들을 파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천약당의 의견입니까?”
“예.”
“지낭당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들은 정보로만 판단하자면 저희도 천약당과 의견이 같습니다.”
“원로원 분들도 같습니까?”
원로원의 수장이 뒤쪽을 보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고 있던 제갈중헌이 매서운 눈으로 제갈진천을 보며 물었다.
“진천이 너의 생각은 어떠냐?”
“조사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사단이면 무사들만 파견하는 게 아니구나.”
“예.”
“파견한다면 그 구성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제가 결정권자라면 삼십 명 이상의 무사들과 천약당의 당주님과 보조할 의원 둘에서 셋, 지낭당의 지자 셋, 원로원에서 한 명을 파견할 겁니다.”
“너무 과한 것 같은데?”
“절대 과하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다?”
“저는 지금 잠시만이라도 가문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회의실에 모인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제갈중헌이 책상을 내리쳐 큰 소리를 내 소란스러운 장내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느냐?”
“수주는 여기서 사흘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수주에 지금 말 그대로 ‘괴질’이 퍼져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병이 퍼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병이 나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저희도 그 괴질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제갈진천이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네가 말하는 것은 다 ‘가정’이다. 네가 말한 것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래도 가문을 옮겨야 한다고 보느냐?”
“예.”
“음…….”
제갈진천은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반의반각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두 눈이 떠졌다.
“가문을 위해 더 과하게 조사단을 편성하자꾸나.”
“‘더 과하게’라면……?”
“백 관주에게 돈을 주고 조사단에 들어와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
“돈을 얼마나 줄 건데?”
제갈중헌은 옆에서 백서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지만 짐짓 괜찮은 척했다.
“그건 지낭당과 원로원과 협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말고 의뢰나 공짜로 받아주지 그래.”
백서휘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의뢰라면……?”
“누나 부부랑 내가 살 집을 설계해주면 돼. 되도록 이곳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대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얼이 빠진 얼굴로 백서휘가 문을 열고 나가는 걸 바라봤다.
“오룡단에게 준비하라고 해야겠군.”
백서휘는 오룡단이 기다리는 접객당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위급상황이란 걸 다들 인지한 탓인지 조사단은 빠르게 구성되었다.
“수주로 이동한다!”
“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한 끝에 조사단은 사흘거리에 있는 수주를 이틀 만에 도착했다.
“의원들과 지자들을 보호하면서 조심스럽게 수주에 진입한다.”
우보의 명령에 제갈세가의 인원들이 빠르게 진형을 구성하고 수주로 들어갔다.
백서휘와 오룡단은 그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고요하군.’
도시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이 집에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다들 괴질을 피해 아예 다른 곳으로 도망간 듯싶었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아직 거동이 불편한 자들은 수주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은 관아로 간다.”
아직 행정력이 살아 있다면 조사단의 일이 조금 더 편해진다.
그렇기에 우보는 관아로 먼저 가자고 한 것이었다.
‘제갈중헌이나 제갈진천의 지시가 있었겠지.’
백서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오감을 증폭시키고 기감을 최대한으로 넓혔다.
괴질에 걸린 자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전투 준비!”
백서휘의 외침에 제갈세가의 용호단(龍虎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만 깜빡거렸다.
“전투 준비!”
우보가 눈치껏 복명복창을 하자 그제야 용호단이 전투를 준비했다.
“오고 있는 놈들의 수가 많다! 저 건물을 등진 채로 진법을 구성해!”
“용호단! 다들 저분이 하신 말씀 그대로를 행해라!”
“용호진(龍虎陳)을 펼쳐라!”
용호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진법을 만들었다.
“우리는 오행진을 만든다!”
오룡단은 제갈선우의 지시를 따라 오행진을 구성하고 적들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괴질에 걸린 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룡단 마저 불신 어린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그때 저 멀리서 괴질에 걸린 자들이 달려왔다.
‘이, 이 거리에서 저들이 온다는 걸 알아차리다니……!’
우보와 용호단이 괴질에 걸린 자들이 온다는 걸 진작에 눈치챈 백서휘를 괴물 보듯 바라봤다.
“다들 앞에 안 보고 뭐 하는 거야!”
백서휘가 앞으로 검을 쏘아 보내며 소리치자 우보와 용호단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전방을 바라봤다.
“크아아아악!”
“케에엑!”
“크워어억!”
전방에는 괴질에 걸린 자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규모는 못 해도 수백은 넘어 보였다.
쐐애애액!
백서휘의 검이 괴질에 걸린 자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입혔는데도 괴질에 걸린 자들은 살아 움직였다.
‘이미 죽었기 때문인가?’
백서휘가 완전한 죽음을 어떻게 하면 선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괴질에 걸린 자들과 용호단이 맞부딪쳤다.
“부운경룡(浮雲驚龍)!”
용호단은 진법의 힘으로 강화된 검을 자유분방하게 휘둘렀다.
사람의 몸을 자를 때 나는 절삭음이 이쪽저쪽에서 들려왔다.
두려움에 몸을 떠는 의원들과 지자들과 다르게 전위에 선 무사들은 괴질에 걸린 자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괴질에 걸린 자들이 상처를 입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거리를 좁혀왔다.
조사단 모두의 머리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이 전위에 선 무사들을 물었다.
“크억! 이런 개 같은!”
“끄아아악!”
“용호단! 호거용반(虎踞龍盤)의 식(式)을 펼친다!”
용호단주가 황급히 진법을 방어 형식으로 바꿨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백서휘는 방심해서 일을 그르친 용호단을 보며 속으로 욕을 지껄이고는 괴질에 걸린 자들에게 강환을 날렸다.
콰아앙!
섬광과 함께 작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충격파와 먼지가 조사단을 덮치자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으어억!”
“뭐, 뭐야!”
잠시 후, 먼지가 사라지고 조사단이 전방을 바라봤다.
괴질에 걸린 자들과 주변에 있던 건물이 사라지고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길 중심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뿐이었다.
다들 몸을 덜덜 떨며 백서휘를 괴물 보듯 바라봤다.
가까운 오룡단 마저 그럴 정도였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동해. 이제부터 멍청히 구는 놈들은 목을 베어버릴 거야. 알았어?”
“네.”
“부상자들을 치료한 후 다시 관아로 출발한다.”
“네!”
오십 명의 무사 중에서 중상을 입은 자가 셋, 경상을 입은 자가 둘 나왔다.
괴질에 걸린 자들이 무공을 쓰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큰 피해를 본 것이었다.
조금 전의 전투를 복기하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 용호단의 단주는 얼굴을 굳혔다.
“치료 다 끝났습니다!”
“관아로 출발해.”
“네!”
조사단은 주위를 경계하며 수주의 관청으로 향했다.
‘너무 전파가 빨라.’
조사단이 조직되고 수주까지 온 시간을 생각하면 괴질이 발병하고 전파된 기간은 일주일이 안 됐다.
성도인 무한만 못해서 그렇지 수주 역시 큰 도시였다.
그렇게 큰 곳이 일주일 만에 유령 도시가 됐다는 건 괴질의 전파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증거였다.
‘자연적으로 생긴 괴질이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누군가 어떠한 목적을 품고 만든 괴질이라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계속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관청이 괴질에 걸린 자들에게 습격받고 있습니다!”
조사단의 모두가 백서휘의 입을 바라봤다.
“다들 전투 준비! 관청에 있는 자들을 구한다!”
스릉!
용호단의 모두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까처럼 멍청한 짓 하지 마라!”
“네!”
“가자!”
“용호단! 호거용반(虎踞龍盤)의 식(式)을 계속 유지하면서 싸운다!”
조사단이 용호진의 방어 형식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전진했다.
괴질에 걸린 자들은 감각이 예민한지 금방 그들이 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온다!”
백서휘는 검을 날리지 않고 검기만 쏘아 보냈다.
괴질에 걸린 자들은 몸이 반으로 잘렸는데도 죽지 않고 이쪽으로 기어 왔다.
‘지독한 놈들.’
백서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쿠아아악!”
“쿠우으윽!”
용호단과 괴질에 걸린 자들이 맞부딪쳤다.
마음가짐을 달리해서일까?
이전과 다르게 상처를 입는 자들이 나오지 않았다.
용호단은 침착하게 괴질에 걸린 자들을 베어나갔다.
문제는 괴질에 걸린 자들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란 것에 있었다.
베고 또 베는데도 완전히 죽지 않고 계속 덤벼들었다.
용호단의 체력이 조금씩 빠져갈 무렵, 조사단의 중심에 있던 천약당의 당주가 용기를 쥐어 짜내어 소리쳤다.
“다들 머리를 노리십시오! 그래야 완전히 죽을 겁니다!”
천약당주의 외침을 들은 무사들이 괴질에 걸린 자의 목을 베고 머리를 부숴버렸다.
그제야 괴질에 걸린 자들은 움직이는 걸 멈추었다.
‘별 피해 없이 막을 것 같네.’
괜히 용호단이 제갈세가 최강의 전력이 아니었다.
마음가짐을 바꾸고 정보가 주어지니 그들은 괴질에 걸린 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부운경룡(浮雲驚龍)!”
용호단의 단주가 소리치자 다들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자유분방하게 검을 휘둘렀다.
‘관청을 구하러 가도 되겠군.’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을 펼쳐 관청으로 달려갔다.
관청에는 일반 양민들과 군졸들이 힘겹게 괴질에 걸린 자와 싸우고 있었다.
‘관의 협조를 원활하게 받으려면 기선 제압을 하는 게 낫겠지.’
백서휘는 괴질에 걸린 자들을 향해 강환 다발을 발사했다.
섬광과 함께 관청 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놈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관청에 있는 이들이 신적 존재를 보듯 백서휘를 바라봤다.
그중 유일한 관리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소리쳤다.
“황제 폐하께서 저희를 버리시지 않았군요. 흑흑흑!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미안한데 나는 관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야.”
“그, 그럼 어디서 온 누구신지……?”
“호남성 장사에 있는 자하무관.”
백서휘가 가슴을 앞으로 내세우며 당당하게 소속을 밝혔다.
그의 가슴엔 자하무관이라고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