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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89화 (89/202)

귀환무관 89화

위급상황이란 생각이 들자마자 백서휘는 어검비행을 펼쳤다.

출입구가 점점 작아지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도착할 때가 되면 출입구의 크기가 통과하지 못할 만큼 작아질 것만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돼!’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지만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출입구는 점점 줄어들어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닫혀서 사라지려고 했다.

‘제발……!’

여의주를 들고 있는 손을 통해 백서휘의 강렬한 의념(意念)이 전해졌다.

여의주의 크기가 조금 작아지면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우웅!

잠시 후, 희끄무레하던 출입구가 뚜렷해지고 크기가 점점 커졌다.

더 놀라운 건 이공간에 대해 구성요소며 만드는 법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게 됐다는 거였다.

백서휘는 놀란 눈으로 여의주와 출입구를 번갈아 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시 출입구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궁금증을 가질 때가 아니라 이공간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였다.

백서휘는 황급히 출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그다음 천갱에 빨려 다니는 걸 방지하기 위해 출입구와 거리를 벌렸다.

슈우욱!

뭔가에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나며 이공간으로 가는 출입구와 그 근방에 있던 모든 게 사라졌다.

백서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죽는 줄 알았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린 여의주를 바라봤다.

여의주는 녹수정처럼 영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어떻게 출입구의 크기를 키운 거지?’

의문을 품기 무섭게 여의주로부터 답이 전해져 왔다.

이공간이 무너지고 출입구가 닫히는 건 술법을 유지할 힘이 공급되지 않아서였다.

술법을 유지할 힘만 주어진다면 술자가 죽더라도 이공간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내가 통과할 때까지 그 유지할 힘을 여의주가 주입했다는 건가.’

보면 볼수록 놀랍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른 건 못 하나?’

영성을 지닌 건지 여의주는 곧장 백서휘에게 뜻을 전해왔다.

품고 있는 기운이 소진될 때까지 여러 가지 술법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술법의 종류는 작은 불을 피우는 술법부터 호풍환우(呼風喚雨)의 술법까지 다양했다.

‘쓸 수 있는 무기가 다양해지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지.’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바로 먹어도 되려나?’

용의 심장을 먹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건 주위에 인적이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일반적인 길로 다닐 뿐 이곳으로는 오지 않았다.

‘먹자.’

백서휘는 용의 심장을 남김없이 씹어먹고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기 무섭게 용의 심장에서 발원한 기운이 온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미친 말처럼 날뛰는 기운을 어떻게든 제어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제발 좀 말을 들……. 크헉!’

불 위에 놓인 찻주전자처럼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참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졌다.

어찌나 뜨거운지 냉수를 한 번 먹게 해주면 전 재산을 내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운이 날뛰니 몸속에 흐르는 용의 피도 같이 날뛰기 시작했다.

용의 피는 집결 명령을 들은 병사들처럼 왼쪽 눈을 향해 치달렸다.

처음에 모인 열기가 적었을 때는 누군가가 왼쪽 눈알을 파내는 듯한 느낌에 그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졌고 나중에는 왼쪽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통증이 너무 커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시원하게 눈이라도 뜨면 괜찮아질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백서휘는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용의 피로 인해 그의 왼쪽 눈에 홍옥과 같은 빛이 어려 있다가 황금빛으로 바뀌는 걸 수십 차례 반복했다.

잠시지만 눈을 뜨니 조금 전보다 고통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 덕분에 저 멀리 날아갔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백서휘는 이를 악물고 눈을 다시 감았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내부를 진정시키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내 말을 들으라고!’

의념을 강력히 발휘하자 아주 잠깐이지만 기운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백서휘는 계속해서 기운에 의념을 보냈고, 이윽고 제어권을 완전히 가져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다른 영단을 먹을 때와 똑같았다.

기운을 전신에 돌리며 몸에 흡수시키도록 노력했다.

만 하루가 지났을 때 백서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왼쪽 눈은 아주 잠깐이지만 영롱한 황금빛을 띠었다.

“서안으로 가서 나머지 놈들도 족쳐야겠어.”

* * *

백서휘는 서안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개방의 섬서성 분타부터 찾았다.

“쌀을 많이 사는 문파를 알고 싶다고?”

“그래.”

“우리 무사님께서는 곡물 상인도 아닌데 그걸 왜 물어보실까?”

“내가 그걸 말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그쪽이 내 입장이 돼봐. 칼 찬 인간이 와서 대뜸 쌀을 많이 사는 문파랑 그 문파에 소속된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면 어떻겠어.”

“어떤 심정인지는 알겠어. 근데 돈 받았으면 농땡이 부리지 말고 그 값을 해야지.”

“알았다. 알았어. 가져오면 될 거 아니야.”

섬서성 분타주는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정리하러 떠났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그가 죽간을 들고 나타났다.

“자, 이거 받아.”

“이게 내가 물어본 그 정보 맞나?”

“섬서성에 있는 문파들이 사는 쌀의 양이랑 인원이 적혀 있는 정보니까 그쪽이 요구한 것과 부합하겠지, 뭐. 근데 뭐 때문에 이 정보를 찾는 건지는…….”

백서휘는 검을 뽑아 섬서성 분타주의 목에 겨누었다.

“적당히 하지?”

“아, 알았다고!”

백서휘는 가장 쌀을 많이 사는 문파부터 먼저 들렀다.

‘천극문(天極門)이라…….’

천극은 북극성을 뜻하는 말이고, 북극성은 천계(天界)의 제왕이었다.

3원 28수와 연관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다.

‘저 문파가 내가 찾는 곳이 맞는 것 같은데…….’

백서휘가 턱을 긁적거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때 스쳐 지나가는 사내가 그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내의 이름은 여토복.

현무 휘하의 7수이자, 명성교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자였다.

‘저놈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명성교에 대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간 적 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지금 산산이 조각나려 하고 있었다.

‘내 잘못일지라도 일단은 위에다가 보고를 해야 한다.’

흑주작의 힘을 쓴 축융을 패퇴시킬 정도면 무조건 사신(四神)과 동급의 고수가 있어야만 했다.

문제는 그 사신과 비슷하거나 더 강한 고수가 지금 교단 내에 한 사람뿐이 없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청룡의 좌를 맡은 구망은 장사로 떠나겠다는 말을 남긴 이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연락이 닿는 사신은 현무와 백호뿐인데 이들은 임무를 아주 멀리 나간 터라 오는 데 한 세월이 걸렸다.

‘역시 상제님밖에 없나.’

옥체에 생채기가 날까 걱정됐지만, 지금 백서휘를 상대할 만한 사람은 상제 말고는 없었다.

‘빨리 보고해야겠어.’

은밀히 명성교의 본단으로 돌아온 여토복은 백서휘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상제가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띠리링!

여토복이 밖에 놓아둔 종을 울렸다.

곧이어 문 너머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현명님 휘하의 여토복입니다. 급하게 보고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내게 급하게 보고 할 게 있다고? 음……. 좋다, 들어오거라.”

여토복은 뛰듯이 걸어와 상제 앞에 납작 엎드렸다.

“하려던 보고가 뭐지?”

“서안에 백서휘가 나타났습니다.”

“수호문의 문주 말이냐?”

“예, 거리에서 천극문을 유심히 관찰하는 걸 보면 저희가 어디에 숨었는지도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놈이 여길 어떻게 안 거지?”

백서휘의 습격이 거의 다다른 이 순간엔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상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지우고 여토복에게 물었다.

“그놈이 이곳에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느냐?”

“천극문을 알아낸 걸 보면 이곳을 알아차리는 것도 금방일 겁니다.”

“축융을 잡을 정도의 실력자라면 구망이나 현명, 욕수 셋 중의 하나가 나서야……. 이런, 세 사람 다 이곳에 없으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습니다.”

여토복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놈에게 내가 왜 상제인지 보여줘야겠다.”

상제는 옥좌에서 내려와 천극문이 이어지는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주변 공간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 * *

백서휘는 천극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가 천극문을 의심하는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3원 28수와 관계된 이름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쌀’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고수도 음식 없이는 살 수 없는 법이지.’

천극문은 빈민을 구호한다는 명목하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쌀을 매달 구입하고 있었다.

이 쌀이 진짜 빈민에게 다 돌아간다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잠입해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드디어, 출발하네.’

마냥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지루했던 참이었다.

지금이라도 출발하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뒤를 밟아볼까.’

천극문의 문도들이 수레를 이끌고 빈민가로 향했다.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펼친 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빈민가로 가는 건 맞네.’

얼마 지나지 않아 천극문도들이 서안의 외곽에 있는 빈민가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 건지 자연스럽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을 나눠줬다.

‘설마 이거로 끝인가?’

추가로 더 수레가 오거나 하지는 않는 걸 보면 쌀을 나눠주는 건 이게 끝인 모양이었다.

‘이놈들 진짜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이제껏 싸운 ‘3원 28수’와 관련된 단체가 아닐지라도 뒤가 구린 놈들인 건 분명했다.

이번 일로 백서휘는 천극문 안으로 잠입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찾던 곳이 맞았으면 좋겠군.’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써서 천극문의 식량 창고로 잠입했다.

그는 3원 28수와 관계된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비밀 문이나 통로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해 식량 창고를 뒤졌다.

‘찾았다!’

숨겨져 있던 문을 조심히 여니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백서휘는 소리 없이 그 계단을 내려갔다.

빛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어두컴컴한 통로가 나타났다.

백서휘는 그 통로의 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걷기 시작한 지 반각이 좀 넘게 지났을 때 유등이 걸려 있는 통로가 나왔다.

본격적으로 사람이 나올 만한 곳이라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적을 발견하면 바로 발검할 기세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가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걸 발견하게 됐다.

‘기도가 예사롭지 않아. 누구지?’

그때 상제가 감았던 두 눈을 부릅떴다.

번뜩이는 안광은 그의 경지가 낮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수호문의 문주 맞나?”

“맞다.”

“지금까지 봐온 중원의 무인 중 가장 강하군.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어.”

상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보람?”

“강자를 상대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상제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날 이길 자신이 있나 보네?”

“압도적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사지 중 하나를 내주면 이길 수 있겠지.”

백서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놈이 사지 중 하나를 잃는다면 자신은 무엇을 잃게 되겠는가?

‘목숨’이다.

백서휘가 긴장한 얼굴로 검병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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