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88화 (88/202)

귀환무관 88화

백서휘는 언제라도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호흡과 감각을 점검했다.

다행히 모든 게 정상이었다.

이제 이공간에 대해 파악할 시간이었다.

‘온통 나무와 풀뿐이라 정보를 얻을 만한 게 없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공격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의문은 생각보다 금방 풀렸다.

갑자기 주변의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나무들에 눈, 코, 입이 생기며 괴성을 질렀다.

‘겨우 이게 전부인가?’

그때 나무들이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동작을 보면 진짜 사람 같아서 목인(木人)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목인이 뿌리를 발처럼 사용해 직립보행을 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목인이 이쪽으로 오는 걸 보면 목표는 아무래도 자신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목인들이 가지를 채찍처럼 휘둘러 공격했다.

쐐애애액!

‘공격에 시간차가 있군.’

구천현현보를 쓰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는 몸을 젖히고 한 발자국씩 이동하는 것만으로 목인들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다시 한번 기운이 휘몰아쳤다.

‘이번에도 목인인가? 그렇다면 실망인데?’

구망은 백서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기운은 나무들이 아니라 지천에 깔려 있는 풀들에 작용했다.

풀들은 순식간에 자라나 백서휘의 팔과 다리를 묶어버리려고 했다.

완전히 구속되기 전에 몸을 빼면서 생각에 잠겼다.

지금 구망은 정확히 자신이 있는 곳에 술법을 펼치고 있었다.

근처에 있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이 근처에 있다.’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밟으며 눈에 힘을 주고 주위를 훑어봤다.

고위계의 은신술을 펼치고 있는 건지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은 주변을 정리하는 게 좋겠어.’

백서휘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광풍번천 초식을 펼쳤다.

검에서 일어난 광풍이 주위에 있는 나무와 풀들을 분쇄했다.

만족스럽게 결과를 바라보고 있는데 떡잎이 곳곳에서 흙을 뚫고 나왔다.

그 떡잎들은 빠르게 자라나더니 풀로, 나무로 변했다.

‘주변을 정리하는 건 답이 될 수 없겠어.’

주변에 있던 목인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을 펼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가는 곳마다 풀이 자라나서 몸을 구속하고, 나무는 목인이 되어 그를 공격했다.

‘저건…….’

그때 백서휘의 눈에 숲을 빠져나가는 길이 보였다.

그 길의 끝에는 널따란 개활지가 기다렸다.

‘어차피 여기 계속 있어도 구망은 못 찾아. 밖으로 나가서 변수를 만들어보자.’

개활지로 나가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어 봤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냥 비를 내리려고 이렇게 환경을 조성한 건 아닐 텐데…….’

우르릉!

천둥소리를 들은 후에야 구망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벼락으로 공격하려는 거군.’

우르릉!

천둥소리가 있고 곧바로 벼락이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자신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피하는 건 쉬웠다.

‘계속 이래서는 답이 없는데…….’

구망과 부하 셋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숲에도 없고 개활지에도 없으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땅으로 꺼진 건지 하늘로 솟은 건지 도통 감이 안 왔다.

‘잠깐! 땅이랑 하늘?’

백서휘는 기감을 넓히는 게 아니라 최대한으로 높였다.

구망과 부하 셋이 하늘에 숨어서 술법을 펼치는 모습이 기감에 잡혔다.

자신이 그들을 찾아낸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백서휘는 기회를 보다가 어검비행으로 곧장 날아갔다.

구망과 부하 셋은 기겁을 하며 공간을 접어 멀리 도망갔다.

“놓칠 것 같으냐!”

백서휘가 으르렁거리며 말하고는 구망과 부하 셋을 최고 속도로 쫓아갔다.

그는 조금만 더 가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시(雷矢)!”

구망의 부하 셋이 뇌기(雷氣)가 담긴 화살을 쏘아 보냈다.

‘잡혀……. 헛!’

백서휘는 황급히 고도를 높여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구망과 부하 셋과의 거리가 다시 멀어졌다.

구망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언을 외우면서 수인을 맺는 게 보였다.

“옴 바사라 하 라이 텐…….”

예지에 가까운 직감이 술법을 완성시키는 걸 방해하라고 속삭였다.

직감을 존중하는 백서휘는 검을 잡지 않은 손으로 격공장을 수십 번 날렸다.

퍽!

수박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부하 셋 중 하나의 머리가 터져 죽었다.

‘운이 좋군.’

백서휘는 나머지 부하 둘을 비웃었다.

격분한 나머지 부하 둘은 힘을 합쳐 술법을 펼쳤다.

기운이 모이는 수준이 이전의 뇌시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았다.

부하 둘 사이에 뇌기가 점점 뭉치더니 그 크기가 점점 커졌다.

이전이 화살이었다면 지금은 노포(弩砲)로 날리는 거대한 창과 크기가 비슷했다.

격공장을 계속 날려 방해했지만, 부하 둘은 꿋꿋이 술법을 완성했다.

“뇌창(雷槍)!”

대형선의 돛대처럼 커다란 벼락의 창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감히 날 뭐로 보고…….”

백서휘는 검강이 휘감긴 검으로 뇌창을 자르고 부하 둘을 바라봤다.

공격하기 위해 날아가는데 부하 둘이 그를 바라보며 여한이 없는 듯 웃었다.

‘열심히 펼친 술법이 무용지물이 됐는데도 웃는다고?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쿠오오오!

이제껏 본 적 없는 규모로 기운이 휘몰아치면서 구망의 몸에서 상서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위력이 강한 술법이라고 판단한 백서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우드드득!

소름 돋는 소리가 나며 구망의 몸이 뱀처럼 길어지고 웬만한 궁궐보다 커졌다.

이마에서는 사슴과 같은 모양의 뿔이 솟았고, 얼굴은 낙타처럼 길어졌다.

손발은 어느새 독수리의 발처럼 바뀌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오른손에 여의주 같은 것이 하나 쥐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용으로 둔갑? 제기랄! 지금이라도 막아야 돼. 완전히 둔갑한 이후에는 늦어.’

구망을 공격하기 위해 날아가는데 뇌시 두 발이 날아왔다.

백서휘는 회피 기동해 뇌시를 피해내고 부하 둘의 목을 베어버렸다.

크워어어!

그때 구망이 있던 곳에서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완전히 용으로 변한 구망이 아가리를 벌린 채 이리로 날아오고 있었다.

머리를 계속 굴려봐도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백서휘가 생각하기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셋, 둘, 하나, 지금!’

백서휘는 구망이 물어버리기 직전에 손에서 검을 놓아버렸다.

구망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깨물고는 식감이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서휘는 땅을 향해 빠르게 추락하며 손을 위로 뻗었다.

그의 검이 신속하게 날아와 다시 주인에게 돌아왔다.

크르르릉!

구망은 검이 날아가는 걸 보고 백서휘가 피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가만두지 않겠다!”

구망이 눈이 돌아가서 다시 백서휘를 쫓기 시작했다.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서휘는 구망에게 금방 따라잡혔다.

그때 커다란 숲이 백서휘의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나무가 우거져 있어 구망의 큰 몸으로는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널 잡아 죽여 축융과 내 부하의 원수를 갚겠다!”

말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구망이 바로 뒤에 있었다.

백서휘는 조금 전에 계획했던 것처럼 바로 숲으로 날아갔다.

구망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를 뒤쫓아갔다가 낭패를 겪었다.

햇빛이 못 들어올 정도로 빽빽하게 자란 나무가 그의 비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놈! 잔꾀를 부리다니!”

백서휘는 나무에 가려 안 보일 정도로 멀어진 후 은형잠종술을 펼쳤다.

아무리 찾아도 그가 보이질 않자 구망은 진노했다.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며 죽게 해주마!”

구망의 오른손에 들린 여의주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숲과 동일한 범위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개활지에서 봤던 것처럼 벼락을 머금고 있었다.

우르르릉!

천둥소리가 나자마자 하늘에서 벼락이 미친 듯이 내리쳤다.

‘얻어걸리길 바라고 이러는 건가?’

의문이 들었을 때 숲 곳곳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백서휘는 구망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아차렸다.

‘이 숲을 싹 다 불태울 셈인가 본데…….’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서 그런지 가만히 있는데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조금이라도 전술적 이득을 보려면 그냥 나가서는 안 돼.’

화염이 바로 근방까지 모든 걸 태울 기세로 밀려들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숨 쉬는 일이 어려워졌다.

그때 공중에 있는 구망이 몸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말고는 기회가 없어.’

백서휘는 최고 속도로 날아가 구망의 뒤를 노렸다.

그다음 아는 초식 중 가장 빠른 초식을 구망의 꼬리에 펼쳤다.

‘경천신뢰!’

스가가각!

구망의 꼬리가 반쯤 썰리다가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썰리다 만 단면에서 피가 계속 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크워어어어!

구망이 하늘을 쳐다보며 목이 터지라 울부짖었다.

백서휘는 그에게서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용도 상처를 입는구나.’

비록 강기가 담긴 검으로 자르긴 했지만 구망도 살이 썰리고 피를 흘렸다.

사람들이 떠받드는 신수라고 해서 안 죽는 게 아니었다.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죽여주마.’

아직 숲에는 멀쩡히 남은 곳이 몇 군데 존재했다.

백서휘는 최고 속도로 날아가 그런 곳에 숨었다.

고통을 힘겹게 이겨낸 구망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를 찾았다.

‘이제야 날 찾는다고?’

고통을 이렇게 늦게 이겨낼 줄은 몰랐다.

주술사라 날붙이에 상처 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큰 걸 노리기보다는 자잘하게 상처를 여러 번 입히는 쪽으로 구망을 공략해야겠어.’

백서휘는 숲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번 뒤를 노려 꼬리를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한 구망이 공중에서 둥둥 떠다닌 채 나려타곤(懶驢打滾)을 했다.

용이 공중에서 게으른 나귀처럼 굴러다니는 건 백서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구망이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할 만큼 위협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백서휘!”

“이크!”

백서휘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구망의 오른손에 들린 여의주가 다시 작아지면서 빛을 발했다.

파지지직!

뇌창 수십 개가 백서휘를 향해 날아갔다.

백서휘는 검에 휘감긴 강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는 팽이처럼 회전했다.

뇌창이 그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걸 빤히 보고 있는데도 구망은 계속해서 뇌창을 만들어 던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뇌룡(雷龍)!”

뇌기로 이루어진 용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맞서 싸우면 손해일 것 같은데…….’

계속 회피 기동했지만 벽력신룡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백서휘는 검에 진기를 힘차게 밀어 넣었다.

진기가 정순해진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강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흐아앗!”

백서휘가 기합을 외치며 강환을 쏘아 보냈다.

콰앙!

둘의 위력이 엇비슷한지 뇌룡과 강환은 중간에서 맞부딪히더니 공멸해버렸다.

백서휘는 기다렸다는 듯이 구망을 향해 날아갔다.

이렇게 자신감 있게 나서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조금 전의 뇌룡은 현경의 경지에 오른 뒤에나 쓸 수 있는 강환과 엇비슷한 위력을 냈다.

이러한 초고위계 술법은 펼쳤을 때 주술사는 꽤 긴 시간 동안 힘의 공백을 가지게 된다.

용인 만큼 인간일 때보다 그 시간은 적겠지만 구망에게도 힘의 공백이 찾아온다는 게 중요했다.

‘지금 치명상을 입혀야 돼.’

백서휘의 생각을 눈치챈 구망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쫓기던 자가 쫓는 자가 되고, 쫓는 자가 쫓기는 자가 되었다.

‘느려졌군.’

백서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용으로 둔갑한 데다 뇌룡이라는 초고위계 술법을 써서 기력이 달리는 모양이었다.

백서휘는 쫓아가면서 강환을 십수 개를 만들어 빠르게 쏘아 보냈다.

구망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비행 속도를 더 줄여보려는 속셈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구망은 회피 기동을 끝내고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병신!’

백서휘는 강기가 휘감긴 검을 구망의 척추 부분을 강하게 찔렀다.

크아악!

“아프지? 더 아프게 해줄게!”

검을 쑤셔 넣은 상태에서 백서휘는 검에 휘감긴 강기의 크기를 키웠다.

크아아아아아악!

구망을 이등분해버리려는데 갑자기 몸 곳곳에서 푸른 뇌기가 감돌았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감전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백서휘는 검에서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날렸다.

파지지지직!

엄청난 양의 뇌기가 구망의 온몸에 감돌았다.

‘죽을 뻔했네.’

백서휘가 땅으로 추락하며 검에 손을 뻗었다.

‘어라?’

검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와야 하는데 움직이질 않았다.

심령으로 명령을 계속해서 내렸는데도 그랬다.

왜 이러나 싶어서 검이 있는 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구망이 근육과 살로 검이 날아가지 못하게 꽉 붙잡고 있었다.

‘멍청한 놈. 그러면 내가 못 뽑을 줄 아나.’

백서휘는 구망을 비웃으며 심령으로 연결된 검에 진기를 보내 강기를 만들었다.

몸을 이등분할 수는 없겠지만, 더 크게 구멍을 낼 수는 있었다.

검에서 솟아오른 검강은 점점 커지더니 구망의 복부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구망은 멍청한 짓을 하다가 아까보다 더 중상을 입었다.

지면에 가까워졌을 때쯤 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하늘로 쭉 뻗은 백서휘의 손에 들어왔다.

‘됐다.’

백서휘는 검을 붙잡고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구망이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충혈된 눈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이미 치명상을 입혀서 그런지 그가 아주 만만해 보였다.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죽여주마!”

“그 몸으로는 이제 뭐든 힘들 텐데? 그냥 항복하는 게 어때?”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내가 질 것 같으냐?”

“주작 밑에 있던 익화사란 애가 그렇게 자신하다 나한테 죽었어.”

크라라!

구망의 오른손에 있는 여의주가 매우 작아지면서 빛을 강렬하게 내뿜었다.

‘또 뭔 짓을 하려는 거지?’

백서휘는 술법이 완성되는 걸 막기 위해 거리를 좁혔다.

이전보다 거대해진 뇌창 수십 개가 그를 향해 날아갔다.

구망은 아까처럼 뇌룡을 쓰려는 것 같았다.

백서휘는 똑같은 기술을 고집하는 구망을 속으로 비웃으면서 회피 기동으로 뇌창을 피했다.

‘꼭 뇌룡을 기다릴 필요는 없지.’

백서휘는 검에 강환들을 맺히게 한 후 구망에게 쏴버렸다.

‘어라? 뇌룡이 아닌가?’

아까 자신을 떼어놓을 때처럼 구망의 온몸에 푸른 뇌기가 감돌았다.

‘저놈도 곧 죽겠군. 이공간을 빠져나갈 준비를……. 뭐야! 왜 안 죽어?’

강환은 분명 구망의 몸에 닿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백서휘는 왜 이런 건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구망만 바라봤다.

그때였다.

온몸이 뇌기(雷氣)로 변화한 구망이 천둥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근데 그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랐다.

‘치명상을 입은 놈이 이런 속도를 낸다고?’

백서휘는 신들린 솜씨로 회피 기동을 했지만, 속도에서 완전히 밀렸다.

‘제기랄! 이러다 완전히 따라잡히겠는데…….’

예감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완전히 따라잡은 구망이 커다란 입으로 백서휘를 깨물었다.

벼락을 맞은 것과 비슷한 충격과 고통이 그를 덮쳤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물렸을 때 이미 죽었을 테지만, 백서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오는 뇌전을 이를 악물고 견뎌내며 구망에게 일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크아악! 어차피 구망한테 물려 있는 상태라 땅에 안 떨어져.’

백서휘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정신을 집중하기 힘들다 보니 검이 추락하다가 멈추고 추락하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끄으으윽! 제발 좀 돼라!’

강력한 의지는 땅에 닿기 직전의 검을 멈추게 하였다.

‘공격해!’

검이 빠르게 하늘로 솟아올라서는 구망의 가슴을 꿰뚫었다.

크어억!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공격에 심각한 격통을 느낀 구망은 여의주와 백서휘를 놓치고 말았다.

‘……됐다.’

백서휘는 멀어져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들며 손을 뻗었다.

가슴에 박힌 검이 그의 손으로 다시 돌아갔다.

‘작전상 후퇴다.’

온몸에 천의일기공을 돌리며 구망에게서 멀어졌다.

그때 백서휘의 눈에 땅으로 추락하는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여의주잖아?’

이전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졌지만, 여의주가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든 백서휘는 위쪽을 올려다봤다.

겨우 고통을 이겨낸 구망이 다급한 얼굴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뇌전화된 덕분에 그의 비행 속도는 송골매보다 훨씬 더 빨랐다.

‘무조건 내가 먼저 잡아야 돼.’

백서휘는 여의주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빠르게……. 됐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구망보다 빠르게 여의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오며 가며 주워들은 이야기와 싸우면서 느낀 건 구망이 펼치는 술법의 근원이 여의주란 것이었다.

이제 여의주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으니, 구망은 술법을 펼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뇌전화됐던 구망의 몸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놔라!”

“싫은데?”

백서휘는 비행 속도를 올려 구망과 더 거리를 벌렸다.

뒤에서 따라와야 할 구망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뭔가 이상해서 뒤로 고개를 돌려보니 구망이 땅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여의주가 없으니 비행술도 못 펼치는구나!’

백서휘는 지렁이랑 다를 바 없어진 구망을 비웃으며 고도를 높였다.

잠시 후, 구망의 거체가 완전히 지면에 맞닿았다.

굉음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백서휘는 하늘에서 오연한 눈으로 밑을 내려다봤다.

다른 동물이면 이미 죽었을 텐데 그래도 용이라고 구망은 생명줄이 붙어 있었다.

완전히 죽일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데 구망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 아래에 있는 비늘을 뜯어냈다.

‘지금 이놈들 본거지로 바로 가면 개죽음 당할지도 모르니까 용의 심장이랑 피로 몸을 좀 치료하든가 해야겠다.’

용의 심장과 피는 천고의 영약이나 다름없는 만큼 현경의 경지인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되리라.

‘혹시 모르니까 한 번에 목을 쳐서 죽여야지.’

땅에 착지한 백서휘는 휘파람을 불며 구망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구망에게서 사이하고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최후의 발악을 하려는 건가?’

하늘에서 추락했을 때 구망은 이미 죽었다고 봐야 했다.

그런 놈이 최후의 발악을 해봐야 억지로 힘을 내 한두 번 공격하고 끝일 게 분명했다.

백서휘는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검병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기다렸다는 듯 구망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 이놈아!’

심즉동의 경지에 오른 백서휘에게 기습 공격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공격하겠단 생각과 행동, 기운의 움직임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백서휘는 기다란 검강이 깃든 검으로 구망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까 검으로 뚫어 놓은 가슴에 기어서 들어갔다.

‘의외로 심장이 작구나.’

사람 머리통보다 조금 큰 심장이 천천히 멎어갔다.

백서휘는 그 심장을 잘라내고 몸에서 나오는 피를 흡입했다.

바로바로 몸으로 흡수되다 보니 배가 부르지도 않았다.

‘와!’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체적으로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감전된 몸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근력과 체력이 좋아졌다.

백서휘는 시험 삼아 내공을 쓰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뭔가를 때려 보지 않아 정확한 위력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웬만한 절정고수는 내공 없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면 다 마셔야겠는데?’

가족들 줄 소량의 피를 호리병에 넣은 이후에 구망의 피를 모두 빨아먹었다.

‘좋군.’

웃는 얼굴로 여의주와 심장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이공간이 무너지는 와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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