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78화
백서휘는 가족들과 함께 두 번 절을 하는 것으로 어머니의 생신제를 마쳤다.
“음식 너무 많이 한 거 아니야?”
“일부러 많이 했어.”
“왜?”
“부모님에게 잘살고 있단 것도 보여주고, 개방 사람들한테 나눠주려고.”
“그놈들 신경 안 써줘도 돼.”
“그래도 사람 정이 있는데…….”
“진짜 신경 안 써도 되니까 다음부터는 우리가 먹을 만큼만 만들자.”
“알았어.”
백서휘는 가족과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마치고는 무관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무관은 다른 때와 다르게 유독 조용했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오늘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 탓이었다.
별일 없겠거니 생각하며 백서휘가 자리를 깔고 누웠다.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면서 진언을 외우라고 했지? 제한 시간은 처음엔 세 시진쯤이고…….’
백서휘는 상연하가 가르쳐준 진언을 정확한 발음으로 읊조렸다.
눈을 질끈 감은 그는 강세와 약세를 알맞게 주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엄마, 어머니, 설화란, 아빠, 아버지, 백상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 내가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 내가…….’
하단전에서 끌어올린 기를 상단전까지 이동한 후 알맞은 방법으로 기를 운용했다.
눈썹 사이에서 아주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온몸은 사시나무 떨리는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잠시 후, 귓가에 벌떼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며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거의 다 성공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들었기에 백서휘는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시간을 갖고 기다리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사라졌다.
‘됐다.’
백서휘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실종되기 직전까지 살았던 장원이 나타났다.
“아……!”
아직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는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백서휘는 가만히 서서 심호흡하며 감정을 추슬렀다.
“들어가자.”
대문을 두드리니 열대여섯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야! 왜 이제 와!”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
“너 때문에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어린 백은하의 말이 백서휘의 가슴에 쿡 하고 박혔다.
‘내가 사라지고 날 얼마나 걱정했을까.’
백서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빠랑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서 그래?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늦을 만한 이유를 내가 잘 말해뒀어. 아마 늦은 걸로 혼내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엄마 아빠가 걱정할 정도로 늦게 온 거니까 반성은 해야 돼. 알았어?”
“……고마워.”
“들어가자.”
“그래.”
백서휘는 어린 백은하와 함께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과 함께 있을 때 꿈꾸면서 그리워했던 물건들이 보였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뭐가 아무것도 아니니?”
설화란이 크고 맑은 두 눈으로 백서휘를 보며 물었다.
“엄마!”
백서휘는 눈물을 쏟아내며 설화란을 꽉 껴안았다.
“갑자기 왜 이래? 누가 때리기라도 했니? 아니면 혼나기라도 한 거야?”
설화란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껴안는 걸 그만두고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니?”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그래서 그런 거예요.”
“별일 아니란 거 맞지?”
“네.”
“그럼 식사하러 가자. 너희 아빠가 지금 목이 빠지도록 너를 기다리고 있거든.”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인 후 두 사람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백상훈이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누나 말로는 친구 집에서 공부하다 늦었다는데, 맞아?”
“네.”
“아무리 봐도 놀다온 것 같은데…….”
이런 일상적인 대화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백서휘의 눈에 뿌연 습막이 생기자 백상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휘야,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오늘의 일상이 궁금할 뿐이야.”
“……많은 일이 있었어요.”
“오! 그래? 궁금하구나. 여기 앉아서 아버지께 그 얘기를 해줄 수 있겠느냐?”
“처음에 한 일은 마교를 막는 일이었어요. 중원에 진출하기 위해 100년 동안 힘을 모았대요. 저는 그들을 저지하려고…….”
백서휘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을 때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다 말했다.
과장되고 허황되게 느낄 만한 이야기인데도 가족들은 진지한 얼굴로 듣고 진심이 담긴 반응을 해주었다.
“혼자서 힘들었겠어. 고생 많았다.”
“서휘 덕분에 이렇게 안전하게 지낸 거였구나. 우린 그것도 모르고 언제 오나, 언제 오나 이러고만 있었네.”
백서휘는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에 근원을 둔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들 식사 안 해요?”
어린 백은하의 말에 식사 중이었단 걸 깨닫고 다들 수저를 집었다.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음식 다 식을 것 같으니까 일단 다 먹고 얘기하자. 그래도 되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식사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왁자지껄 떠들다 보니 어둑어둑할 때 시작했던 식사가 깜깜해졌을 때 끝이 났다.
식사를 마친 백서휘와 백상훈은 함께 연무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남자 대 남자로 비무 해볼래?”
“백 번 싸우면 백 번 다 제가 이길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건 싸워봐야 아는 거지.”
“좋아요, 그럼 비무 해봐요.”
백서휘와 백상훈은 연무장 한 편에 마련된 목검을 손에 쥐었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네.”
먼저 공격한 건 백서휘였다.
아버지와 대련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기에 일부러 본 실력은 다하지 않았다.
“하앗!”
백상훈은 백서휘의 목검을 막기 위해 검을 내질렀다.
두 목검이 맞부딪히며 딱딱한 소리를 냈다.
백상훈은 뒷걸음질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힘이 많이 세졌구나. 이젠 이 아비도 쉽게 이기겠어.”
“다 컸으니까요.”
“나는 네가 너무 빨리 크지 않길 바랐다.”
“왜요?”
“그럼 이 아비랑 안 놀아줄 것 같았거든.”
백서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더 안 하고요?”
“더 하면 질 것 같으니 그만하자는 거다. 아버지는 네게 영원히 승자로 남고 싶거든.”
연무장에 목검을 내려두고 두 사람은 다시 집에 들어갔다.
“서휘야, 술은 먹을 줄 아느냐?”
“……네.”
“그럼 이 아버지랑 술이나 한잔하자꾸나.”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셨다.
“우리 서휘, 어디 한번 안아보자꾸나.”
“예?”
“아까 주안상을 내달라고 말했을 때 들었다. 엄마를 꽉 껴안고 놔주지를 않았다며.”
“아…….”
“자!”
백서휘는 잠깐 망설이다가 백상훈을 꽉 껴안았다.
“서휘야.”
“네?”
“더는 자책하며 살지 말 거라. 네 잘못이 아니니까.”
백서휘가 그러겠다고 대답하려는데 심상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잠시 후, 빙글빙글 돌다가 어딘가로 튕겨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란 백서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이 괜찮은지 살폈다.
다행히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백서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대답을 빨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진심으로 후회스럽지만 아주 아쉽지는 않았다.
다음에라도 심상세계에서 다시 보면 되는 거니까.
“신기했어.”
심상세계라고 해서 꿈이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현실감이란 면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가장 차이를 느낀 건 비무를 할 때였다.
딱 한 번, 검격을 교환한 거지만 실제 세상에서 싸울 때와 다른 게 없었다.
“심상세계 안에서 수련해도 좋을 것 같은데…….”
백서휘가 본격적으로 수련하면 연무장 바닥에 깔린 청강석을 다 부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부수고 다시 바닥에 깔면서 계속 돈을 낭비하느니 심상세계에서 수련을 하면 괜찮을 듯했다.
“다시 진언을 쓰려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동안 뭘 하지?”
다시 눕는 것보다는 밖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불을 개고 베개를 집어 들었다.
“……축축하네.”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백서휘는 다른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베갯잇을 갈았다.
“나가자.”
백서휘는 밖으로 나와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하오문의 호남성 지부로 향했다.
‘벌써 가을인가.’
땅에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의 마른 잎들이 땅에 떨어져 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았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왔군.’
백서휘는 멀리 보이는 도화루로 들어갔다.
익숙해진 건지 점소이는 예전처럼 그를 많이 어려워하지 않았다.
“지부장 있지?”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점소이는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바로 조금 전에 관주님께 사람을 보냈는데요.”
“나한테 보냈다고? 본 적이 없는데?”
“길이 엇갈린 건가? 아! 혹시 무관에서 오셨어요?”
“그런데?”
“사합원 쪽으로 보내서 두 사람의 길이 엇갈린 것 같네요.”
“근데 무슨 일로 나한테 사람을 보낸 건데?”
“왜 보낸 건지는 지부장님만 아십니다.”
“그래? 음…….”
백서휘는 밀실로 가 유소화를 만났다.
“나 찾았다며?”
“어? 어떻게 이렇게 일찍…….”
“별일 없나 싶어서 이리로 오던 중이었어.”
“아, 그래서 이렇게 빨리 오셨군요.”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야?”
“관주님 부하 중 하나를 공격할 거라는 첩보를 입수했어요.”
“나한테 부하가 있었나?”
“오대세가에서 온 사람들이요.”
“아, 걔네를 공격한다고? 누가?”
“흑뢰문에서 황보정석을 공격한다고 그랬어요.”
공격해오면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이미 대비를 다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황스럽거나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입수한 정보야?”
“제남에 있는 기루에서 흑뢰문의 간부가 술 취해서 황보정석을 잡으러 떠난다고 말했대요.”
“그냥 허풍 아니야?”
“마지막으로 전서응이 왔을 때 호북성이라고 했으니 곧 도착할 거예요.”
“그러면 준비할 수밖에 없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백서휘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주머니를 꺼냈다.
“다음에도 이런 정보 입수하면 연락해줘.”
“그럴게요.”
백서휘는 주머니에서 은자를 집어 유소화에게 건넸다.
“난 준비하러 가봐야겠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백서휘는 학무관 쪽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쟤네들 어딜 가는 거지?’
당기준과 황보정석이 학무관을 나와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밟아 그들에게 가까이 갔다.
“너희들 어디 가냐?”
“현상 수배범 잡으러 갑니다.”
“꽤 열심히 한다?”
“재미가 좀 붙었습니다.”
“현상금 때문이 아니고?”
“……맞습니다.”
“근데 그거 다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거야?”
“그, 그건…….”
황보정석은 도박장에 쓸 거란 말을 하지 못했다.
“죽을 맛이겠어? 돈은 있는데 도박은 못 하고, 일은 계속해야 하고, 어쩌다 한번 수배범 잡으러 도박장 가면 계속 생각나고…….”
“하, 한 번만 하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도박하고 싶어?”
“네.”
“그럼 너 나랑 일 하나만 같이 하자.”
백서휘가 한쪽 입꼬리를 부드럽게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