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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52화 (52/202)

귀환무관 52화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한 칼에 죽는 걸 봤기 때문일까?

당두는 화만 낼 뿐 덤벼들지는 않았다.

백서휘가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로 입을 열었다.

“동창과 천지회가 어쩌다 이런 관계가 됐는지 말해주면 살려주지.”

당두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꼴을 보기 싫었던 백서휘는 바로 협박부터 했다.

“시간을 오래 줄 수 없으니까 살고 싶으면 당장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정말 말하면 살려줄 건가요?”

“그렇다니까.”

“약속 꼭 지켜요.”

“그러지.”

“보기만 해도 짖던 개새끼들이라고 했었죠? 그 말이 맞아요. 동창과 천지회는 단체가 세워진 취지가 완전히 달라 양립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 한쪽은 황제 폐하를 지키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황좌를 전복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려는 입장이었으니까.”

“두 단체가 음지에서 서로를 노리며 싸우고 있을 때, 갑자기 수호문의 문주가 등장했어요. 수호문의 문주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알고 있으니까 설명 계속해.”

백서휘는 하던 말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수호문의 문주는 천지회를 이 잡듯이 잡아 없앴죠. 동창 내부에서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며 좋아했어요. 그때쯤에 황제 폐하께서 무림인들을 억압할 방법을 찾아내라고 금의위와 저희 동창에 칙명을 내리셨어요.”

“갑자기 그런 칙명을 내리시지는 않았을 텐데?”

“무림인들로 인해 무고한 양민의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상소가 여러 번 올라왔거든요.”

“그래서 그 무림인을 억압할 방법으로 선택한 게 천지회의 힘을 빌리는 거였다?”

“천지회의 위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수호문 문주에게 모두 제거된 데다 손쉽게 초인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지회 놈들의 힘을 빌리는 건…….”

“그 힘이 통제 아래 있으니까 괜찮아요.”

당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통제 아래 있다고? 당두 정도 됐으면 알잖아. 천지회 놈들이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조금 전에 말했잖아요. 그 미친놈들 수호문 문주에게 다 쓸려나갔다고. 지금 남은 건 이족과 사람 결합 간에 미친 노인네뿐이에요. 그나마도 연구 기록이 없어서 상급은 시도조차 못 하고 있고요.”

“기록이 있었다면 상급도 시도했겠네?”

“당연히 시도해야죠.”

백서휘는 지끈거려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연구 시설은 여기 하나뿐인가?”

“……거래 대상은 동창과 천지회가 어쩌다 이런 관계가 됐는지뿐이잖아요?”

“못 말해주겠다, 이거야?”

백서휘는 쥐고 있는 검에 진기를 잔뜩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날에 검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거, 검강…….”

“좋게 말할 때 여기 말고 연구 시설이 더 있는지 말해.”

“시설은 여기 하나뿐이에요.”

“여길 부숴버리고 아까 도망간 늙은이만 죽이면 다시는 동창 쪽에서 이런 연구를 못 하겠네?”

“그, 그렇겠죠?”

“답변 고맙다.”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빠르게 밟아나갔다.

갑자기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당두가 소리쳤다.

“사, 살려준다고 했잖아요!”

“그래, 살려는 준다니까.”

백서휘가 검을 빠르게 휘둘러 당두의 팔다리를 잘라버렸다.

당두는 갓 잡은 생선처럼 몸을 버둥거렸다.

“끄으으윽!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서도 널…….”

푸욱!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어 당두의 가슴을 꿰뚫었다.

당두는 조금 버둥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게. 왜 입을 놀려. 가만히 있었으면 반 각쯤 더 살았을 텐데…….”

백서휘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연구 시설을 모두 부숴버렸다.

“이동해볼까.”

실험에 쓸 거지들을 가둬놓은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에는 거지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많이도 잡아놨군.’

동창과 천지회의 행동력에 감탄하는데 거지들이 쇠창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구걸하러 오지 않겠습니다. 제발 좀 여기서 내보내 주십시오!”

“앞으로는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겠습니다!”

귀가 따가웠던 백서휘가 인상을 찡그렸다.

“조용!”

“제발 살려…….”

“풀어줄 테니까 조용히 하라고!”

“저, 정말입니까?”

“조용히 하라고 했지?”

입을 틀어막고 좋아하는 거지 중에 이족과 하나가 된 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원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이족으로 변한 놈들은 어떡하지?’

지금이야 결합한 지 얼마 안 돼서 괜찮은 거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인간을 먹잇감으로 보게 된다.

그때 가서 뭐 빠지게 뒷수습하느니 지금 처리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았다.

‘안타깝지만 절대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는 죽이는 게 맞아.’

백서휘는 검강이 일렁이는 검으로 쇠창살들을 잘랐다.

멀쩡한 거지들이 조심스럽게 감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족과 결합한 거지들은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안 나올 거야?”

백서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족으로 결합한 자들은 밖으로 나왔다.

“다 밖으로 나왔지?”

“네.”

“혹시 모르니까 확인들 해봐.”

거지들이 감옥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여긴 없습니다.”

“여기도 없어요.”

“그럼 가도 되겠네. 아! 가기 전에 확인 좀 하자. 여기 있는 놈들한테 실험당한 사람 손 들어.”

다들 눈치만 보면서 머뭇거렸다.

그때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손을 들며 물었다.

“실험이 뭡니까?”

“너는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

“새벽에 잡혀 왔습니다.”

“그럼 옆으로 빠져.”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옆으로 물러나며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렇게 협조를 안 하면 치료를 할 수가 없는데…….”

사실 치료 방법 따윈 없었다.

결합한 사실을 숨기는 자들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치, 치료할 수 있는 겁니까?”

“넌 멀쩡하니까 치료 안 받아도 되잖아.”

“아, 아닙니다. 저도 그 실험이란 걸 받았습니다.”

“이놈 말고 또 없는 거지? 그럼…….”

“저도 받았습니다.”

“저도.”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를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백서휘는 쥐고 있던 검을 힘껏 던졌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검은 실험을 받은 모든 이들을 산산 조각냈다.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줌을 지렸다.

“기분 더럽군.”

본체가 죽었는데도 이족의 팔과 다리는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백서휘는 발뒤축으로 꿈틀거리는 이족의 팔다리를 힘껏 밟아 비볐다.

그다음 화골산을 뿌려 깔끔하게 뒤처리했다.

“야.”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질겁했다.

“너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아니지?”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날 따라와.”

백서휘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놓고는 연구원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는 거리를 두고 그를 천천히 따라갔다.

‘먹물 놈들 지금쯤 사다리 잘린 걸 보고 당황하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연구원들은 퇴로가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중이었다.

백서휘가 등장하자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 살려주시오. 살려만 준다면 내 연구 기록을 모두 드리겠소.”

연구책임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늙은이가 한 제안 말고 더 좋은 제안이 있다. 손!”

백서휘가 씨익 웃으며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연구책임자보다 더 좋은 제안을 했다.

그때였다.

보다 못한 연구책임자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목을 꼿꼿이 세웠다.

“나를 살려주면 이놈들이 제안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주겠소.”

“어떤 거?”

“천지회의 모든 것.”

“그렇게 말하면 뭐가 뭔지 모르잖아. 정확히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연구책임자는 품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이것의 이름은 괴력난신의 서. 천지회의 회주에게 대대로 전해져 오는 책이오.”

“회주에게 내려오는 책이라 가치가 있다는 건가?”

“회주의 말에 따르면 이족에 관한 모든 것이 이 책에 적혀 있다고 했소.”

“그런 게 적혀 있는데 왜 상급 이족과의 결합은 시도조차 못 한 거지?”

“주인 된 자만 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오.”

“네가 주인인가?”

연구책임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인은 여전히 회주요.”

“회주는 수호문 문주한테 죽은 거로 아는데?”

“이 책 안에 회주의 혼이 봉인되어 있소. 그 혼을 소멸시켜야만 이 책을 읽을 수 있소이다.”

“너는 그 이전 회주를 소멸시키지 못한 거야?”

“무공을 어느 정도 익혀야만 가능한데 나는 일 초, 반 식도 모르오. 그래서 가지고만 있었소.”

“좋아, 당신만 살려주도록 하지.”

검이 저 스스로 검집을 빠져나오더니, 연구원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연구원들의 몸을 꿰뚫고, 목을 베며 사지를 잘라냈다.

그동안 연구책임자는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손에 꽉 쥔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다 끝났어. 책 가져 와.”

눈을 살며시 뜬 연구책임자는 바닥에 만들어진 피바다를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건너왔다.

허공에 떠 있는 검이 그의 뒤를 아주 은밀하게 쫓아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연구책임자는 황급히 책을 백서휘에게 건넸다.

“여, 여기 있소.”

“고마워.”

백서휘는 웃으며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허공을 떠다니는 검이 연구책임자의 등을 뒤에서 찔렀다.

푸욱!

“끄으윽! 살려준다고 했잖소!”

“난 너희 같은 놈들이랑 한 약속은 안 지켜.”

“하늘이 용서치 않을…….”

“멍청한 놈, 하늘이 너희를 용서치 않으려고 날 보낸 거야.”

백서휘는 연구책임자의 시체에 침을 뱉은 후 뒤를 돌아봤다.

뒤엔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공황 상태에 빠진 상태로 서 있었다.

“양손으로 칼자루 잡아.”

“히이익!”

“칼자루 잡으라고!”

백서휘가 소리치자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땟국물로 인해 검게 변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대답해. 여기서 계속 살 거야?”

“히끅! 아, 아니요.”

“그럼 어리바리하게 굴지 마.”

“아, 알겠습니다.”

“칼자루 잡아.”

“네.”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가 허공에 둥둥 뜬 검의 자루 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꽉 잡고 있어.”

백서휘는 검을 위로 날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즉시 반응한 검은 추종향 냄새가 나는 거지와 함께 5장(약 15m) 위에 있는 창고를 향해 날아갔다.

“으아아아악!”

그때였다.

갑자기 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이 떨어졌다.

의심 가는 게 있었던 백서휘는 빠르게 옆으로 피했다.

“오줌 같은데…….”

슬쩍 물이 떨어진 곳에 가보니 허연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줌 맞네.”

오줌에 맞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휙 하고 뛰어올라 창고에 착지했다.

‘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기감을 넓혀 봤다.

장원 안에 있던 모든 무사가 창고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하 시설에서 있던 소동이 전해진 모양이네.’

자신에겐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지만, 등 뒤에 있는 이에게는 다를 수 있었다

“내가 부를 때까지 여기 가만히 있어.”

넋이 나간 거지가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백서휘는 문밖으로 검을 쏘아 보낸 후 밖으로 나갔다.

‘자, 놀아보자!’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다니며 무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무사들의 대장이 검기가 일렁이는 검으로 맞서 싸우려 했다.

백서휘는 피식 웃으며 심령(心靈)으로 연결된 검에 진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검신에 푸른빛을 띤 검강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대장의 두 눈동자에 지독한 절망이 서렸다.

“대체 당신은 누구이길래 우리에게 이러는 것이오!”

백서휘는 검을 조종하는 걸 잠시 멈추었다.

“억울해하니까 꼭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당신이 먼저 장원에 침입했잖소!”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잖아. 그래놓고 억울한 척을 해?”

“……지하에 비밀 시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진심으로 몰랐소.”

“몰랐는데 포위는 어떻게 했대?”

“지하에서 우리에게 위급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구리관이 있소. 그 구리관을 통해 침입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모인 거요.”

“그래도 그놈들과 동류란 건 달라지지 않아. 그리고 칼밥 먹었으면 이렇게 될 걸 각오했어야지?”

대장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닫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고는 장원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다들 도망가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무사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갔다.

백서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검을 조종했다.

검이 다시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도망치는 무사들을 모두 추살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대장이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

스각!

무사의 목이 땅에 떨어지자 몸도 같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와.”

백서휘는 밖으로 나온 거지를 데리고 개방의 북경 분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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