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51화
개방을 이용해 천지회를 찾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내 존재를 눈치챈 건가?’
천지회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걸린 걸 또 걸리면 사람이 아니지.’
어떤 방법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북경 분타주가 장원의 대문을 지나쳐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사, 사라졌습니다요!”
“뭐가?”
“추종향을 묻혔던 거지 중 하나가 사라졌단 말입니다요!”
“정말이냐?”
백서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정말입니다요.”
“진짜 그놈들이 납치한 거 맞아? 어디 딴 데 간 거 아니야?”
“북경 거리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못 찾았습니다요.”
“어딘가에 갇혀 있을 수 있단 거네?”
“가능성이 있습니다요.”
“한 번 걸린 방법에 또 걸리다니! 사람이 아닌 새끼들이었구나! 하하!”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별말 아니야. 그보다 너 냄새 잘 맡냐?”
“잘 맡으면 이 꼴로 살지 않았을 겁니다요.”
“그래, 그렇지. 냄새를 잘 맡으면 몸에서 음식 썩는 냄새가 나는데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헤헤.”
북경 분타주는 바보처럼 웃었다.
“자, 찾으러 가보자.”
백서휘는 거지들의 겨드랑이에 묻혔던 약과 다른 약을 꺼내 코 밑에 발랐다.
“저도 바르면 안 됩니까요?”
“손가락 대.”
북경 분타주의 검지에 한 방울을 떨어뜨려 주었다.
그러자 북경 분타주는 좋다고 코 밑에 약을 발랐다.
“으으으윽! 이 암내 같은 걸 따라가면 되는 겁니까요?”
“그래, 내가 앞장설 테니까 조용히 따라와. 뭔가를 발견해도 육성으로 말하지 말고 그냥 전음을 보내.”
“알겠습니다요.”
“가자.”
백서휘는 북경 분타주와 함께 사라진 거지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추적했다.
한참 동안 냄새를 따라가던 그들이 걸음을 멈춘 건 자금성(紫禁城)에서 거리가 좀 있는 장원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인 것 같…….”
『전음으로 하라고 했지?』
북경 분타주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누구냐!”
백서휘는 입 모양으로만 욕을 말하며 은형잠종술로 몸을 숨겼다.
북경 분타주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번을 서는 무사 둘과 맞닥뜨리게 됐다.
“밥 좀 주시면 안 되겠수?”
“여긴 너 같은 거지들이 함부로 올 곳이 아니다.”
“여기가 황제 폐하가 사는 자금성이라도 되우?”
“썩 꺼지라니까!”
“밥 한술 주면 꺼지겠수!”
상대적으로 늙은 무사가 젊은 무사에게 눈짓했다.
젊은 무사는 한숨을 푹 쉬더니 밥 한 주걱을 가지고 나왔다.
“이거 받고 썩 꺼지거라.”
“감사합니다. 무사님들 삼 대가 복 받을 것입니다요.”
“어서 꺼지라니까!”
북경 분타주가 무사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장원에서 멀어졌다.
“휴~ 죽다 살아날 뻔했네.”
『그대로 북경 분타로 돌아가.』
그래도 눈치가 있는지 북경 분타주는 백서휘를 찾는 시늉은 하지 않았다.
『썩 꺼져!』
백서휘의 일갈에 북경 분타주가 후다닥 집으로 돌아갔다.
‘까딱 잘못했다가 걸릴 뻔했네.’
식은땀을 쓸어내리며 장원 쪽을 바라봤다.
두 명의 무사가 거지 욕을 하며 장원 이곳저곳을 순찰하고 있었다.
‘잠입한다.’
백서휘는 높다란 담을 가볍게 뛰어넘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있는 무사들은 그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자.’
백서휘는 최대한 조심하며 냄새를 추적했다.
그러다 아주 자그마한 창고 앞에 도달하게 됐다.
‘냄새가 여기서 끊겼어.’
창고는 연구 시설을 만들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잡혀간 거지 놈이 하늘로 솟을 리는 없으니 지하에 연구 시설이 있단 뜻이었다.
‘들어가야 하나?’
경험상 지하 시설에 잠입할 때는 조심해야 했다.
적들이 훼까닥 하고 미쳐버려서 벽력탄이라도 터뜨리면 꼼짝없이 토사에 파묻히게 된다.
강기막을 두르면 토사로 인해 죽을 일은 없었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토사에 휩쓸리는 그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죽는 건 아니니까 들어가는 게 맞겠지.’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시설은 적상현의 도박장처럼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입구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백서휘는 눈을 감고 기감을 땅 밑까지 확장했다.
지하 시설의 구조와 생명체들의 위치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졌다.
‘여기 있었군.’
목재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나무 밑에는 철로 된 문이 감춰져 있다.
‘이걸 부수면 되겠네.’
나무 바닥에 진기가 담긴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장심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나무 바닥을 파고들었다.
나무 바닥과 철로 이루어진 문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렸다.
‘들어가도 되겠군.’
백서휘는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5장(약 15m)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작은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일단은 사다리부터 잘라놔야겠다.’
무인은 사다리가 없어도 탈출할 가능성이 있지만, 연구 인원은 뛰어오를 힘이 없어 불가능했다.
‘천지회가 또 부활하는 걸 저지하려면 무인이 아니라 연구 인원을 집중적으로 죽이는 편이 맞겠지.’
백서휘는 검기를 이용해 소음 하나 없이 사다리를 제거했다.
‘다른 퇴로도 막으러 가자.’
기감을 넓혀가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시설과 구조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느껴지니 어느 쪽이 퇴로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남은 퇴로는 둘 뿐이네.’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고 그걸 따라서 퇴로는 딱 세 개만 만든 모양이었다.
백서휘는 피식 웃으며 나머지 두 퇴로 역시 은밀히 제거했다.
‘자, 이제 작업을 시작해볼까.’
사람이 제일 많은 구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감으로 느껴지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연구 시설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곳에서는 이족과 사람 간의 결합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정시(巳正時, 오전 10시 30분) 실험체 정삼(丁三)과 중급 이족 간의 결합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결합해.”
무인들에게 제압당한 거지의 입에 연구원으로 보이는 자가 눈이 달린 촉수 다발을 쑤셔 넣었다.
“우우욱!”
거지가 토하려고 했지만, 제압 중인 두 명의 무인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저 무인들 왜 살결이 희고, 옷이 새까맣지? 설마 진짜 동창 놈들?’
백서휘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무인 중 하나의 입이 열렸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 해요.”
“조건을 달리했으니 이번엔 성공할 것이오. 보시오.”
연구책임자로 보이는 가장 늙은 자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거지의 몸이 소금을 뒤집어쓴 달팽이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무인들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목소리로 욕을 지껄이며 거지에게서 손을 뗐다.
‘목소리 들어보니 알겠다. 저놈들 동창 놈들 확실하네.’
젊은 연구원들이 여러 가지 약물을 거지에게 먹이고 몸에 부어서 붕괴를 막으려고 했다.
“약물 낭비 적당히 하시고 이쯤에서 포기하시지요.”
무인의 말에 젊은 연구원들이 약물을 더 먹이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번 실험도 실패했다고 보고를 드려야겠네요.”
“하, 한 당두, 잘 좀 보고를 올려주시오. 부탁드리겠소.”
연구책임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쪽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에요.”
당두(檔頭)는 동창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첩형(貼刑) 바로 아래 있는 계급이었다.
당두라고 말했는데도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동창과 천지회가 붙어먹은 건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어떻게 둘이 붙어먹은 거지?’
천지회는 황좌를 전복하려 하는 입장이고, 동창은 황제를 수호하는 입장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원수였다.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되는데? 제독을 언급한 걸 보면 동창 제독은 여기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잖아? 설마, 제독이 딴마음을 먹은 건가?’
너무 뜻밖의 일을 접하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찌할지 몰라 지켜만 보고 있을 때 당두가 연구책임자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실패하면 제독께서 귀회(貴會)에 관한 생각을 달리하실지도 몰라요.”
“여, 연구 기록이 없어서 그런 것이오. 본회(本會)가 연구했던 기록들을 찾기만 하면…….”
“그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기록 아닌가요? 허튼 생각 말고 지금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을 하세요.”
“미안하외다. 내 제독 얼굴을 볼 낯이 없소.”
“당연히 볼 낯이 없어야죠. 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서 먹이고, 입히고, 그렇게 원하는 연구도 다 하게 해줬는데 볼 낯이 있으면 그게 사람인가요?”
“다, 다른 건 다 인정하겠는데, 이족 연구는 뜻이 같이 맞아서 한 거잖소.”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한 건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연구책임자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 이야기 계속해주면 안 돼?”
기척을 숨기고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백서휘가 밝은 곳으로 나와 존재감을 드러냈다.
“누구냐!”
당두의 옆에 있던 다른 동창 무인이 칼을 뽑아 들었다.
“누구냐고 말하면 아나?”
“저, 저놈은……!”
연구책임자가 손가락으로 백서휘를 삿대질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저놈 정체가 뭐죠?”
당두가 뒤를 슬쩍 보며 물었다.
“화, 황가장에서 저희 성과물을 죽인 놈입니다.”
“아!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의 주인공이군요? 검강이랑 이기어검을 쓴다던?”
“지, 진짜 썼습니다.”
연구책임자가 믿어달라는 듯 간절히 말했다.
“그쪽이 무공을 몰라 잘못 본 거 일 거예요. 검강이 아니라 검기, 이기어검이 아니라 천잠사를 쓴 비검술일 가능성이 커요. 호호.”
백서휘는 부정하는 당두를 보며 피식 웃었다.
“황가장과 무슨 관계인지 말해줄래요?”
“내가 말해주면 너도 말해줄래? 동창이랑 천지회가 무슨 관계인지?”
“그게 그렇게 궁금한 거예요?”
“당연히 궁금하지. 서로 보기만 하면 짖던 개새끼들이 짝짓기했는데. 아, 너희들은 그게 없어서 ‘짝짓기’를 못 하지? 미안! 말실수했어. 용서해줘.”
백서휘는 머리를 조아리며 비는 시늉을 했다.
“호호호호호!”
당두가 입을 가리고 웃는 데 반해, 그 옆에 있는 다른 동창 무인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잡아다가 국문해서 동창이 왜 무서운지 보여드려야겠군요.”
당두가 탁 소리를 내며 부채를 펼쳤다.
왜 무기를 안 꺼내나 싶어 자세히 살펴 보니 부채가 강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병(奇兵)을 쓰는 놈이군.’
백서휘는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덤벼.”
“궁금한 게 많은 그쪽이 덤비는 게 어때요?”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백서휘가 구천현현보를 빠르게 밟아나갔다.
갑자기 그가 사라지자 동창 무인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각!
당두 바로 옆에 있던 동창 무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제 말해줄 거지? 동창이랑 천지회가 무슨 관계인지.”
백서휘가 당두의 뒤에 서서 속삭였다.
당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쪽을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그렇게 느려서 뭘 하겠다는 거야.”
당두가 밀리는 듯 보이자 연구원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퇴로를 모두 차단했기에 백서휘는 걱정 없이 연구원들을 보냈다.
“먹물 친구들은 나중에 보자고!”
“죽어!”
당두가 다시 한번 부채를 휘둘렀지만 백서휘는 가볍게 피했다.
“이야! 잘 움직이네?”
“무슨……!”
“움직일 때 무게추가 없어서 중심 잡기 힘들지 않아?”
“무게추? 이이이익!”
백서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당두를 보며 지하 시설이 떠나가라 웃었다.